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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우재 작/연출, 〈A·I·R 새가 먹던 사과를 먹는 사람〉:(비)인간을 상상하는 법
    REVIEW/Theater 2022. 9. 9. 01:04

    현재를 향한 미래의 구상


    장우재 작/연출, 연극 〈A·I·R 새가 먹던 사과를 먹는 사람〉 ⓒ유한솔 [사진 제공=극단 이와삼](이하 상동). 지니 역 라소영 배우.

    〈A·I·R 새가 먹던 사과를 먹는 사람〉(이하 〈A·I·R〉)이 그리는 2060년대는 사실상 오늘날의 사회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이 체감된다. 그것은 우리가 아는 몇몇 사회의 이념형을 분할한 것이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며 과학 기술이 집약된 스마트 시티의 미래상이 1구역인 국가라면, 동등하고 평등한 공동체의 자율적 역량을 신망하는 곳이 2구역 “네크”이며, 선주민이 살며 국가 바깥의 통제되지 않는 자연이 곧 3구역이다. 이러한 구분은 사실상 그 안에 각기 사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재현되지 않으며, 비로소 이 세 구역을 횡단하는 등장인물들에 의해 정치체제와 사회 현실, 그리고 제도 바깥의 삶과 기후 위기 이후의 삶이 혼합―거꾸로 〈A·I·R〉는 이를 분할하여 횡단 불가능한 공간으로 경계 짓는다.―되면서 역사의 파편들로 절합된 동시대성의 일단으로 기입된다는 점에서 이념형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경계를 오가는 등장인물들의 도약에 의해 비로소 세계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또는 세계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 〈A·I·R〉은 다른 미래를 상상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다른 현재를 구성하기 위한 제안에 가깝다. 그것은 현재라는 몸체를 끌어안고 있다. 결국 〈A·I·R〉은 이념형의 미래를 표현하는 데 집중하는 대신, 현재성의 의제이자 현재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미래를 절감한다. 

    지니 역 라소영 배우.

    국가의 통제가 비가시적이면서 집요하게 드러나는 건 자의식이 생긴 인공지능로봇 S·A·I·R(Self-consciousness Artificial Intelligence Robot) ‘지니’에 대한 연구와 통제이다. 이는 인간과 비인간의 철저한 구분과 인간을 위한 수단으로서 존재해야 하는 비인간의 숙명을 전제한다. 동시에 지니의 의식이 발생하는 경로를 추적하고 파악함으로써 신이 되고자 하는 야망을 전제한다. 곧 이 로봇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수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그것은 인간이 아니라고 볼 수 있는가?’―를 가지고 갈등해야 했던 시기에는 모호한 대상으로 자리하지만, 추후 1구역의 사람들이 팬데믹과 같은 위험으로부터 영원히 안전할 수 있는 육체로 전용될 수 있는 가능성의 단계로 접어들면서는 비로소 그 의미를 확보하게 된다. 하지만 거기에는 그것이 인간일 수 있는지의 고민은 거세한/부인한 단계가 된다.

    사실상 지니가 이나와의 짧은 사랑 뒤로 국가의 수중에 들어갔다 다시 나오고 나서 그는 일종의 질병과 연약함, 질문과 앎에 대한 욕망을 지닌 존재에서 인간의 말에 따르는 기능적 대상이 되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그의 말대로 그가 로봇임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로봇의 역할, 인간이 기대하고 동시에 그 바깥을 용납할 수 없는 인간의 자의식을 드러내지 않아야 국가 시스템 안에서 살아갈 수 있음을 아마도 그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증명하듯 그는 다시 도망가고 이나에게 돌아온다. 그렇게 연장된 마지막 순간은 이나와 수나에게 혼혈종 새 BA의 언어를 지니가 듣고 “번역”해주는 장면이다.

     

    무매개적인 번역의 이상


    (사진 왼쪽부터) BA 역 황윤지 배우, 이나 역 신정연 배우.

    지니는 새―동물―의 언어를 인간에게 번역해주는 건 의미가 탈락하거나 좀 어렵다고 하며 종내 내키지 않는 듯한 뉘앙스로, 약간의 ‘침묵’을 섞어 그 불가능성을 이야기하는데, 인간과 로봇이 공통 언어를 공유하는 것과 다르게 그는 동물과의 언어를 공통 감각으로 갖고 있음이 전제된다. 그가 인간의 언어와 동물의 언어를 모두 안다면 당연히 그는 그 둘을 매개할 수 있는 역량 역시 갖고 있는 것 아닐까. 이러한 물음을 해소하는 건 지니는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듣고자 한다는 것인데, 곧 소통의 기초적이면서도 근원적인 차원에 듣기가 전제되어 있음이 수나에 의해 지니만의 번역의 해법으로 제시된다―이는 다소 작위적인 계도로도 보이는데, 이러한 깨달음은 이나에 의한 주체적인 생성이 아니기 때문이며, 수나는 그 전에 중심인물로서의 특별한 그리고 예외적 지위를 별도로 형성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듣는다’라는 것은 아마도 상대방의 존재가 그 언어에 각인되어 나타남을 의미한다. 애초에 이나는 들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듣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이야기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도돌이표처럼 환원되는 기술이다. 너와 나의 다름을, 통약 불가능성을 애초에 전제할 때 어떤 통약 가능성도 성립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새가 먹던 사과를 먹는 사람”은 바로 지니의 눈에 띈 이나이다. 지니는 인간과 동물의 공존재적 차원을 본능적으로 인지하는 이에게서 적대감을 지운다. 그럼 그 바깥의 존재는 어떠한 존재인 것인가. 〈A·I·R〉에서는 그러한 물음에 대한 답에 집중하기보다는 이나와 지니의 특별한 첫 번째 만남의 순간을 복선처럼 제시하는 데 그친다.

     

    국가의 시선과 이를 빠져나가는 예외적 존재

    (사진 왼쪽부터) 컨덕터 역 이성재 배우, 김동규 배우, 지니 역 라소영 배우, 리언 역 안준호 배우, 이나 역 신정연 배우, 수나 역 김선표 배우, BA 역 황윤지 배우.

    〈A·I·R〉는 여전히 국가와 사회의 시스템이 균일하고 정상의 기준에 맞춰 존재 양식을 구성할 것이고, 그에 저항하는 존재가 필요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존재의 가능성을 인간이 아니라 비인간에 두는 건 인간의 불가능성을 인간의 한계로 규정하지 않으려는 극의 의도에 따를 것이다. 곧 지니를 통한 우리의 배움은 곧 인간을 향한 불가능한 믿음을 동시에 인간에 관한 헛된 믿음을 적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A·I·R〉는 그렇게 인간의 한계를 미래로 고스란히 연장한다.
    〈A·I·R〉는 레고로 쌓아 올린 미니어처 도시와 레고 인형을 생중계하면서 등장인물 각각에 대응하는 장면을 번역한다. 이러한 수고는 국가의 관리자 역할을 하는 컨덕터들에게 돌아간다. 무대 바깥에서는 아기자기한 장면으로 갈음되며 또한 일종의 확장된 무대 경험을 도출하는 심미적인 유희의 형식은, 사실 공연 내적으로는 국가의 시선에 의한 통치의 일환을 재현한 것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차원에서, ‘지니’의 자의식은 인간의 자의식이 어디서 오는가를 또 창의적인 생각을 수월하게 도출하는 방법을 규명하기 위한 과제가 되기보다는 그 국가의 결여를 보여주는 중핵으로서 자리하며, 국가를 전복시키고 교란하는 시스템 바깥의 힘으로 자리하게 된다. 곧 ‘지니’의 자의식을 시스템으로부터 관성화되어 있지 않은 존재가 발현할 수 있는 순수한 감정과 타자를 향한 공통 감각과 의식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에 초점을 맞춰 생각해볼 수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이나 역 신정연 배우, 지니 역 라소영 배우.

    반면, 국가 통치의 기제는 그렇게 명확하게 극에서 드러나지는 않는데, 미니어처-중계 형식은 그것의 비가시성을 가시화하는 장치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의 국내 사회에서 ‘혐오’라는 키워드로 수렴되는 더 넓은 차원에서 인간 사회의 보수성과 폐쇄성은 〈A·I·R〉에서 현재에 고착된 곧 현재를 보여주는 중요한 이슈로 자리하는데, 2구역의 A·I·R의 존재를 추방해야 한다는 인간의 시위는 현재 광화문 퀴어 축제 반대 시위와 오버랩된다. 1구역이 A·I·R의 존재를 스마트 시티의 보족 장치로 사용하는 데 반해 이러한 계층성을 전제하지 않는, 2구역의 공산주의적 이념을 간직한 사회가 인간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인간으로 한정된 집단으로 돌리는 건 아이러니하다.
    S·A·I·R의 존재는 가정될 수 없는 것인가. 과학 기술을 배제한 자치와 인접한 장소의 정보가 온전히 분리될 수 있음 역시 이와 함께 가정된다고 봐야 하는 것인가. 가령 미래의 인간 사회는 발전된 과학 기술에 대한 함의를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무지함을 견지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오히려 이들은 노동의 관점에서 인간의 자리를 물리적으로 차지하는 로봇의 위상이 아니라 로봇의 인간화, 확장된 차원에서의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부인하며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물론 로봇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내재적 차원이다.

     

    관객의 위치성을 구성하는 장치


    (사진 왼쪽부터) 이나 역 신정연 배우, 리언 역 안준호 배우, 지니 역 라소영 배우.

    결과적으로 〈A·I·R〉는 분리된 세 개의 구역을 통해 현재의 동시대를 분절하며 재편함으로써 우리의 세계를 가시화한다. 반면, 이러한 세계에 대한 전제가 극 중 존재들의 언어와 경험만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데, 이러한 각각의 세계는 결합되지 않음으로써 곧 그 어떤 것도 온전히 선택될 수 없음으로써 세계의 간극과 부정합성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끝이 난다고도 할 수 있다. 곧 총체적인 하나의 세계는 이뤄질 수 없는데, 실상 각각의 세계가 지닌 이데올로기가 내파되지 않으며 그 안에 침잠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이는 오로지 각 존재의 수행과 깨달음을 통해서만 극복의 ‘여지’를 남긴다.

    지니라는 통제되지 않는 무엇보다 파악되지 않는 존재는 시스템의 시선에 의해 감싸진다. 흥미로운 건 이 시스템이 지닌 구조적인 힘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한계다. 그것은 오히려 생명을 완전히 대상화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이다―생명의 신비는 미래 사회와 고도의 과학 기술에도 불구하고 결코 파악되지 않을 것에 손을 걸 것임을 장우재는 이야기한다.
    더 중요한 건 그러한 시선을 통해서‘만’ 지니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스템의 시선은 인간 이성과 그 한계를 동시에 담지하는데, 어쩌면 지니를 스스로 체현하거나 그를 타자화하는 것의 전략이 아니라 타자로서의 그에 대한 인지를 내재적인 차원으로 수렴시킬 때 우리의 한계와 그 변화의 양상을 추후 수행적으로 가져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그 자신의 주체로서의 발화가 없는 컨덕터들,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더 A·I·R와 같던 세 명의 컨덕터들―곧 A·I·R의 등가물로서 존재하던 컨덕터들(실제 해당 배우들은 이 두 역할을 번갈아 수행한다.)―이야말로 관객의 자리를 전유하며 동시에 내재적으로 체현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무언의 주체, 로봇화되는 인간은 지니의 타자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질문이 수여된다. 그리고 거기에 관객의 자리가 있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명: 연극 〈A·I·R 새가 먹던 사과를 먹는 사람〉
    일 시: 2022년 8월 27일(토) - 9월 8(목) 총 11회, 평일 오후 8시, 주말 오후 3시 월 쉼.
    장 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작·연출: 장우재
    출연: 김동규, 김선표, 라소영, 신정연, 안준호, 이성재, 황윤지 

    〈스태프〉
    드라마투르그: 조만수
    무대: 박상봉
    조명: 손정은
    의상: 김지연
    음악: 박소연
    음향: 이현석
    영상: 정병목
    움직임: 손지민
    분장/소품: 장경숙
    프로듀서: 손신형
    그래픽디자인/사진: 유한솔
    조연출: 오승현
    분장팀: 남혜연
    소품팀: 남혜연, 임민정
    조명오퍼: 양믿음
    음향오퍼: 조형락
    영상오퍼: 조우경
    기획어시: 진하연

    제 작: 극단 이와삼
    후 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연령: 만 13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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