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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은미컴퍼니, 〈디어 누산타라: 잘란잘란〉:(다른) 문화와 지역의 잠재된 시간성
    REVIEW/Dance 2022. 9. 9. 01:35

    안은미컴퍼니, 〈디어 누산타라: 잘란잘란〉 [사진 제공=세종문화회관](이하 상동).

    안은미컴퍼니의 〈디어 누산타라: 잘란잘란〉(이하 〈잘란잘란〉)은 “누산타라”라는 수도 이전을 준비하는 인도네시아의 새로운 수도 이름이며, “잘란잘란”은 인도네시아 말로 ‘산책하다’를 뜻한다. 곧 인도네시아의 근미래에 보내는 인사로, 기본적으로 한국과 인도네시아 간의 협업에서 산책이라는 기본적인 움직임으로부터의 출발을 움직임의 형상적 차원과 교류의 방식적 차원 모두에서 중층적으로 정의하고 있다고 보인다. 여기에는 어떤 민족적인 원형을 그 자체로 재현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모습과 형태들의 다양성을 일종의 알레고리 차원으로 선보일 것임을 전제한다고도 보인다.

    먼저 한국과 인도네시아 각각 다섯 명의 무용수들이 출현하는 〈잘란잘란〉은 안은미컴퍼니가 2015년 이후 선보인 ‘땐스 3부작’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 〈사심 없는 땐스〉,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스〉 이후 최근 〈드래곤즈〉(2021)까지 커뮤니티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거기서 일련의 정석 같은 무대 양식의 상당 부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첫 번째로 쉼 없이 무대 양옆으로 달려나가며 나타나고 사라지는 횡 축의 등장·퇴장 방식과 끊임없이 바뀌는 움직임의 역동성은 각각 유지되고 강화되는데―이는 하나의 문화가 더해지며 발생하는 두 문화 접변의 현상으로도 보인다.―, 이는 고삐를 늦추지 않는 장영규의 ‘뽕 필’ 나는 음악적 강화에 의거한다. 음악이 주는 생리적 차원의 정서 추동은 빠른 움직임과 즉각적으로 동기화된다는 착시를 안기는데, 더딘 움직임 역시 경과의 순간을 예비한다. 곧 빠른 음악은 시각 장에서 움직임의 속도를 추동한다.
    두 번째로 스팽글 같은 무대 장식의 전면화와 이를 스크린으로 전유한 영상 투사의 경우는 공간의 입체화를 더해 음악과 협응하여 무대의 빈틈을 소거하는데, ‘정신없음’의 가속화는 일종의 무대를 지배하는 커다란 정념이자 그 자체로 무대의 이념으로 부상한다.

     

    세 번째로 멈추거나 쉬지 않는 움직임이 횡의 시계열 안에서의 반복과 차이를 만드는 동시에 강박적 음악의 추동이 구성하는 현재의 비트 공간에서 저당 잡힌 몸의 언어 자체이다. 후반 들어 무용수들은 마치 자동인형처럼 변화해 가는데, 유격 없는 음악과 격렬한 움직임 뒤로 등장·퇴장에서의 무용수 교체(장면 전환), 밝은 조명과 노출된 무대는 진공 상태와도 같고, 그 안에서 무용수들의 주체적 차원의 정서 표현이나 숨이나 땀, 휴지기 등이 모두 지워진다.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김혜경은 더욱더 작위적으로 자동인형의 몸짓과 얼굴을 흡수하는데, 이는 자신이 처한 과잉의 시간과 속도에 대한 긍정이자 비인간의 형상으로 그러한 과도함 자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치환한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음악과 완전히 동기화되며 하나의 기호로서 자리한다. 특히, 〈잘란잘란〉은 독특한 몸의 표현들이 도상 기호로서 상징적 의미를 띠게 되는데, 가령 앉아서 두 팔을 양쪽으로 뻗은 가운데, 한 다리는 뻗고 다른 한 다리는 접어서 두 다리의 위치와 형태를 끊임없이 교차시키며 이동하는 모습은, 일종의 노를 젓는 모습을 연상시키고, 인접한 바닥에의 흐름을 물의 흐름으로 환유하게끔 한다. 나중에 바닥에 앉은 채 두 다리를 드러내지 않고 교차할 때는 두 다리는 치마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게 됨 역시 반인반수의 몸이나 몸 하반신이 물속에 자리하는 인상을 준다. 곧 이러한 기호의 생성은 섬이 많은 인도네시아로 연장되며 한층 더 중층적인 의미의 독해를 요청한다―존재를 섬으로 이동하는 존재로 또는 하나의 섬으로 그린 것일지도 모른다.

    안은미컴퍼니의 또 다른 전매특허인 안은미의 무대 등장 역시 자리하는데, 안은미는 처음부터 하나씩 무대에 떨어뜨린 자잘한 구체들을 빗자루질을 통해 내보내고 나아가 관객석으로 하나씩 던지며 관객 반응을 끌어내면서 중간 무대 정리의 스태프 역할을 자처한다. 이는 다른 의미에서는 안은미컴퍼니의 무대가 과잉된 음악과 무대, 그리고 움직임이거나 아예 멈추거나 하는, 곧 절대적으로 가득 찬 표면의 연쇄적인 나열로 무대가 점철됨을 나타낸다.

    안은미의 등장은 국제 교류와 협업의 일상적 시간이 무대로 순일하게 흘러나오는 유일한 순간 역시 제시하는데, 곧 무대 바깥의 무용수들의 목소리가 그러하다. 두 국가의 무용수들이 둘씩 짝지어, 인도네시아 무용수들의 자기소개 부분이 한국 무용수들의 목소리로 전유되는 부분과 인도네시아의 무용수들이 각자 한국말로 개인의 이야기를 하는 부분―결과적으로 각자의 순일한 언어를 지속하는 것이 아닌 상대방의 언어를 통과하며 이를 선택한다.―은 말 그대로 발화 자체에서 그 다른 발화의 설기를 드러내는데, 이는 일견 우스꽝스럽다고 할 수도 있지만 어떤 닮음의 형태가 일으키는 낯섦과 친숙함이 균열적 양상을 띤다는 차원에서 오히려 새롭다, 곧 신화적이다.
    이는 적어도 그 창작의 메커니즘을, 나아가 교류가 변형(이라는 의미 지층)을 가정할 수 있음을 드러낸다. 곧 바다 위의 어떤 생명체를 신화적 도상으로 추정할 수 있지만 이를 어떤 신화적 원형으로 귀속할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라는 점에서, 이는 보다 까다로운 부분이며, 그것이 시대착오적인지를 가늠하기 어렵다―그것은 그냥 표층적 차원의 변주일 뿐일 수도 아니면 알레고리 차원의 유사 감각 차원을 일으키는 계열체의 일종에 귀속되는 것일 수도 있다. 예외적으로 안은미의 첫 번째 등장은 빨간 손톱을 붙이고 가채같이 머리를 장식하고 흰 드레스를 입은 채 횡 축의 지나감으로 나타나며, 이는 비교적 신화적 도상으로서 가장 분명한 모습이면서 이후 재출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제시’의 성격을 띤다.

    앞서 언급한 두 번째 등장은 이러한 시간 축, 무대 위 재현의 질서, 제4의 벽 모두를 깨어버리는데, 이로써 ‘굳이’ 교류의 의미를 설파하는 것이다. 다섯 명의 인도네시아 무용수와 마찬가지로 다섯 명의 한국 무용수는 무언가 일군의 그룹으로 묶이며 그것을 향해 간다. 어떤 흥분과 도취의 순간에 순간적으로 합의하며 축제의 질서를 수용하고, 비가시화된 영역, 곧 무대 바깥에서 누군지 모르게 1/n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이후 무용수들은 은밀한 시간과 거대한 공간의 형상을 지우고 자동 인형과 같은 모습으로 ‘재깍재깍’ 오로지 현재와 동기화되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잘란잘란〉은 안은미컴퍼니의 무대 위 노동 집약적 투신과 정동, 난반사의 허야멀건한 무대와 기괴한 뽕 필이 주는 트랜스 감각, 변신과 횡 축 이동의 시계열의 안무, 배속되는 움직임과 자동 인형적 몸놀림 등에 다른 지역과 시간에 대한 상상력과 문화 접변―여기서는 문화가 뒤섞이기보다 문화와 문화 사이의 어떤 것을 구성하는―에 따른 제3의 것, 그리고 교류 자체의 정동이 더해진다고 할 것이다. 이 후자의 차원에서 다른 아시아 문화와의 교류와 리서치가 수반되는 건 향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 일시: 2022.09.01(목) ~ 2022.09.04(일) 평일 오후 7시 30분 / 주말 오후 6시(공연 시간 : 70분)
    공연 장소: 세종S씨어터

    안무 및 출연: 안은미
    출연: 김혜경, 이재윤, 정의영, 문용식,  에이 레사르(Eyi Lesar), 오트닐 타스만(Otniel Tasman), 레우 위제(Leu Wijee), 로레이나 피쟈트(Loreina Pidjath), 하리 굴루르(Hari Ghulur)

    연령: 만 7세 이상(2015년 12월 31일 포함 이전 출생자까지) 입장 가능
    문의: 세종문화티켓 02-399-1000
    주최·주관: 세종문화회관 
    제작: 안은미컴퍼니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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