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아트프로젝트보라, 〈유령들〉: 현상학적인 비-신체
    REVIEW/Dance 2022. 10. 26. 16:57

    아트프로젝트보라, 〈유령들〉. [사진 제공=김보라].

    아트프로젝트보라의 〈유령들〉은 옷과 누드 사이의 경계를 이야기한다. 처음에 하나의 옷을 입고 벗는 행위, 이것을 연이어서 반복하는 퍼포머들의 행위가 쌓이면서 옷을 입고 벗는 건 무용한 것이 아니라 제의적인 차원으로 변화되어 간다. 이는 의식적이지 않지만 하나의 규칙이며 동시에 모두에게 적용된다. 여기에 저마다의 다른 외계어를 내뱉는 퍼포머들에 의해 언어의 차원이 강조된다. 이는 기표의 흔적을 간직하면서―그러니까 언어에서만 비언어를 만들어낼 수 있을 뿐이다―동시에 그 기표가 기의로 치환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다―기의에 종속되지 않기 위함이 아니라 기의가 주어지지 않을 것임을 말할 뿐이다.

    사실 이것은 어떤 말이다. 그 뜻을 알 수 없는. 하지만 그 뜻이 있으리라는 가정을 버릴 수는 없다. 곧 그 말의 체계를 우리는 벗어나지 못한 채 그것이 뜻이 없을 수 있다는 가정을 내리지 못하는 말을 듣는다. 우리는 말의 의미 없음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유령들’의 말인가. 거꾸로 옷을 다 벗어젖혔을 때 움직임의 양상은 대단히 달라진다. 옷을 입고 벗는 행위는 일상의 움직임을 닮아 있다. 그것은 어떤 목적성 아래 재편되며 완전히 무용의 움직임을 구현하지는 않는다. 반면 옷을 다 벗었을 때는 오히려 무용의 움직임이 크게 요청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 적확한 움직임은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해진다.

    옷은 움직임의 초점을 시작과 끝으로 분별하며 움직이는 신체를 구성한다. 반면 누드는 움직임의 초점을 몸 전반으로 연장하며 시각적 분별을 과잉된 것으로 바꾼다. 신체는 불필요하고 들썩거리며 과잉으로 넘쳐나는데, 이 속에서 적확한 움직임이란 이 몸 전체를 하나의 신체로 분별하는 행위가 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퍼포머는 흐느적거리는 행위만을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하는데, 이는 자기 최면의 주술적 행위로 변화하며 어떤 지루함의 대기를 간직한다.

    여기서 ‘유령’은 시간의 탈구가 아닌 존재의 미끄러짐과 의미 없음에 기반한다. 언어는 전달되지만 소통되지는 않는다. 소통되지 않을 언어가 전달된다. 존재는 표현체로서가 아닌 자기로부터 미끄러짐을 연출할 뿐이며, 그것은 완전히 자기로서 사라짐을 추구한다. 곧 의미적인 기호와 표현적인 신체를 모두 벗어나면서 자신의 신체를 지지하는 것으로 소임을 다한다. 김보라는 때때로 어떤 환호에 가까운 신음을 지르기도 하는데, 이는 공허한 울림에 그치는 듯 보인다. 곧 이러한 소리는 자기가 그곳에 있음을 전하기보다 이곳이 어떤 반향도 묵묵한 것으로 닫힐 것임을 알리는 데 그 소임이 있는 듯 보인다.

    사실상 어떤 적확한 움직임을 거두고 긴 시간 동안 공간을 부유하며 정위되지 않는 자취들로 사라지며 남는 것을 택하는 것으로 보이는 〈유령들〉은, 다른 언어 자체가 있음을 알리는 것에서 언어가 부재함을, 어떤 언어 체계 자체가 무용함을 지시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그럴 때 언어는 무료하다. 무료한 덩어리를 만들고 분쇄하는 것, 이러한 단위를 반복하며 느슨한 시간의 집합을 엮어 나갈 때 분명해지는 건 그 형태도, 움직임의 명확한 단위도 아니며 신체가 그 자체로 작동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옷과 같은 외부와의 접점이 사라졌을 때의 신체, 곧 사회적 언어의 체계를 저 세계로 옮겨 놓은 상태에서 신체에 미치는 어떤 동력은 그 자신으로부터 온다. 이는 자기 순환적인 외침으로 나타난다. 시간은 동결되고 역사는 입을 닫는다. 그리고 끝없는 시간의 늘어뜨림을 표현하는 몸의 늘어뜨림만이 존재하게 된다. 시간은 현재에서 나아가지 않고 어떤 부재의 차원에서 반복적인 놀음으로 상쇄된다. 그리하여 유령의 신체가 도래한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명: 유령들
    공연 일시: 2022.9.14-15 PM8
    공연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주최: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한국본부

    주관: 25회 서울세계무용축제 조직위원회

     

    크레디트

    안무: 김보라
    조안무: 박상미 

    리허설 어시스턴트: 최민선
    시노그래피: 김종석
    사운드: 김재덕
    조명 디자인: 이승호
    무대감독: 손지영
    음향감독: 이동준
    기획: 이미진
    사진: iro photography

    공동창작, 출연 아티스트: 최소영, 배진호, 김희준, 이규헌, 정종웅, 김보라
    공동 제작: 서울세계무용축제‧아트프로젝트보라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재)전문무용수지원센터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