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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윤경, 〈피부와 공간의 극작술 연구: 장면 둘〉: 신체-이미지의 유령적 탐구
    REVIEW/Dance 2022. 8. 12. 11:03

    허윤경 안무, 〈피부와 공간의 극작술 연구: 장면 둘〉ⓒPopcon(이하 상동).

    〈피부와 공간의 극작술 연구: 장면 둘〉(이하 〈피부와 공간〉)은 극장 전반에 들고나는 통로로 공간의 구멍을 만들고 마주 보고 어긋나게 객석을 배치하고, 앞뒤로 너울거리는 커튼 위에 투사되는 흐릿한 글자들과 그 글자들을 비집고 나오며 말과 움직임 사이에 위치하는 신체 형상들을 통해 ‘틈’과 ‘간격’의 공간으로 극장을 재구성한다. 이러한 틈과 간격의 안무는 신체와 신체, 신체와 이미지, 신체와 스코어 사이에서도 적용된다. 여기서 ‘극작술(dramaturgy)’은 신체 자체보다는 신체가 작동하는 방식이나 과정, 신체를 구성하는 인지를 시험하려는 기술로 보인다.

     

    공간 구조화로서의 시노그라피에서 시작되는 극장은 등장과 퇴장의 구멍과 공간 사이의 틈을 내버려 두고 우발적으로 몸이 그 구멍과 사이에서 시작되는 움직임으로 연장된다. 여기서 관객은 움직일 수 있는 자유를 주었기 때문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전방위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움직여야 한다. 치솟고 가로막고 비스듬하게 놓인 임시 가설의 구조물 안 소규모의 좌석들을 벗어나는 건 비교적 어렵지 않다. 관객에게 펼쳐진 건 장막 위에 문장들이다. 좌우 반전으로 새겨지는 글자들은 구불거리는 장막에 제대로 안착하지 않는다. 새어나가는 글자들은 인지 가능한 문장들로 바꾸는 입력 과정에서 곧 사라진다―의도적으로 부적절하게 새겨짐으로써 새겨짐을 벗어난다.

     

    이러한 텍스트가 이미지를 그리는(“표상하는”) 의식의 작용을 일종의 안무로서 제시하는 것이라면, 이후 언어와 함께 언어 이후에 출현하는 몸짓은 스코어와 움직임의 관계를 고찰하는 것일 수 있다. 전자에서 종래 수렴하는 신경과학 또는 인지과학에 의거하는 사실을 포함한 메타 인지는 안무의 초점이 되는데, 가령 자막 텍스트 일부에서 장막을 지나간 존재 또는 지나쳐올 존재는 앞선 이미지가 무대로 현동화되었음을 또는 될 것임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경험의 이미지를 수행하거나 수행적으로 미래를 예비하며, 무언가 벌어지지 않더라도 또는 벌어졌더라도 그것이 연속된 시계열에 속함을 주지시킨다.

     

    아마 이 작업에 관한 주요한 질문―아마도 부정적인 의미에서―은 이러한 장막 텍스트는 왜 이리도 불완전한 모습으로 비쳐야 했을까라는 질문일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은 의도적으로 와해되고 지연되며 질적으로 감축된다. 장막에 뿌려지는 텍스트는 원본의 이지러진 형상으로 깨어지는데, 이것은 텍스트가 복제, 확장되면서 결과적으로 신체의 유비를 갖게 되고, 여기서 그 신체 자체를 단 하나의 또는 일반적인 프로세스를 통해 추출되지 않기를 기대하는 안무자의 의도에 따라 왜곡, 굴절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그러니까 전제는 이 장막이라는 것의 신체성이다.

     

    이를 꿀렁거리며 찢고 나오는 덩어리진 신체성은 유체에서 고체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장막이 분기되며 그 연장선상에서 유체였던 신체는 딱딱한 고체로서의 신체임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 신체가 그 이후 어떤 변화를 가져가지는 않음으로써 장막의 신체성은 잠재적 전이 지대 자체로 남는다. 이러한 신체의 탄생은 자막을 통해 자기 지시된다. 이 말의 레퍼런스로서 몸은 존재한다. 곧 〈피부와 공간〉은 말의 우위가 몸의 우위에 있다기보다는 그 말이 작동하는 신체성을 신체-이미지와의 간격을 통해 또한 거대한 신체성으로 새겨지는 말의 무늬를 통해 드러낸다.

     

    자막 이후 등장하는 위성희는 전의식적인 말을 주어 삼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눈을 감은 상태로 이 공간과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연관 관계를 맺지 않는 말을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위성희는 발을 디뎌 이 공간을 촉각적으로 확인하며 ‘신소재로 만든 건물’이라는 말로 운을 떼는데, 가상의 공간 이미지는 신체를 경유하는 가운데 그것이 가상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상의 이미지가 신체를 구동시키는 데 효과를 미치고 있다는 게 중요해 보인다. 여기서 눈을 감은 위성희에게서 다양한 이미지가 흘러가고 이는 말로 치환되며 관객이 그 상상의 이미지를 따라가도록 만든다. 가상-이미지는 실재로의 스코어가 된다.

     

    허윤경이 그와 마주하면서 스코어는 한 문장 혹은 한 구문으로서 현재 작동하는 움직임을 가리킨다. 수많은 묘사 혹은 재현의 말은 움직임을 반영하고 움직임으로부터 반향된다. 움직임은 말로 전이되기 이전의 상태에서 말보다 투박하거나 말로 전이된 이후의 기점에서 말과 다른 상태를 띠고 있다. 말과 움직임은 분명 일치하지 않지만 서로를 향한다. 이는 그 말과 함께 움직임이 출현하거나 그 움직임을 말이 따라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문장으로서 스코어, 극장 공간의 재구성을 통한 현동화를 이전 작업들에서 꾸준히 활용해 온 허윤경 안무가는 〈피부와 공간〉에서도 이를 연장하는데, 퍼포머의 신체성 자체보다는 신체성으로서의 말과 말의 신체성을 드러내며 신체가 이와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에 집중하는 듯 보인다. 말의 신체성을 전제하며 신체의 직접성과 순수성, 무매개성을 그 자체로 전제하는 대신, 그것이 입체적인 시간성 아래 (가상의) 이미지와의 접합을 통해 존재할 수 있으며 따라서 거꾸로 말과 사유로 번역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는 허윤경 안무가가 진행한 워크숍 〈피부와 공간의 극작술 연구〉(22.07.30~31, 서울무용센터)에서, 신체 바깥의 이미지와 신체를 잇는 이미지 구상화에서 유래하는 신체 구동 과정과 같이 일종의 명상적 상태를 동반한 느린 호흡의 움직임 메소드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움직임을 기입하는 텍스트 방식은 바깥의 시선을 가시화하는 것으로, 실제 연장된 워크숍의 형태를 가정해보면 워크숍에서 참여자가 신체를 움직이고 있고 그 움직임을 인식하게 하는 여분의 (목)소리가 ‘바깥’에서 가시화되고 이를 그 밖에서 지켜보는 것에 비견할 만하다. 내부와 바깥의 언어가 닿아 있는 그 지점, 아니 닿아 있다고 믿어지는 지점에 〈피부와 공간〉의 이념상의 신체-언어와 물리적인 신체성의 언어 그리고 언어라는 실재와의 간극 역시 분포할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명: 피부와 공간의 극작술 연구: 장면 둘

    공연 일시: 2022년 8월 4일~6일 목, 금 20시/토 15시, 19시

    공연 장소: 연희예술극장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맛로 2-3)

    소요시간: 60분

     

    안무: 허윤경

    출연, 공동 리서치: 김명신, 위성희, 허윤경

    음악, 사운드: 김현수

    무대 디자인: 정승준

    조명 디자인: 서가영

    의상: 온달

    무대 디자인 어시스턴트: 양병환

    무대 감독: 서수현

    프로덕션 매니지먼트: 맹나현, 서예원

    그래픽 디자인: 비고

    영상 기록: 김소성

    사진: 팝콘

    후원: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 다원분야

     

    피부와 공간의 극작술 연구는 신체적 공감의 과정을 안무적으로 기술하기 위해, 몸이 주인공인 서사를 설계하고 그 시공간적 구조를 실현해본다. 서로의 피부를 입어보거나 반영하며, 세계의 이미지를 몸 안으로 표상하거나 자기지시적인 작용을 통해 느낌의 주체가 되는 등, 몸은 복잡한 과정을 겪는 동안 여러 관점들이 교차하고 공존하는 장소가 되는 듯하다. 여러 공연들이 오가며 변신을 거듭하는 극장이라는 커다란 몸 안에서 피부의 안과 밖, 작은 단위와 큰 단위의 몸들에서 일어나는 움직임들은 서로를 은유하거나 공명할 수 있을까? 순간순간, 몸과 공연은 ‘어디에’ 위치할까? 수많은 중간지점들과 중간지점들의 흔적이 배치되는 장소들을 상정한다면, 움직임은 어디에서 생겨나거나 이탈하며, 곁에 머물다 사라질 것인가? 극장이 되려는 몸을 상상하며 이야기를 써본다면.”(허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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