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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이트큐브 프로젝트, 〈Recall; 불러오기〉: 서커스를 불러오기
    REVIEW/Dance 2023. 2. 10. 15:21

    화이트큐브 프로젝트, 〈Recall; 불러오기〉ⓒ옥상훈[=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이하 상동).

    무대 오른쪽은 움푹 파여 있다. 반듯이 잘려 나간 네모난 구멍은 어떤 ‘근원’으로서의 세계라는 메타포를 설계하기보다는 ‘근원 없는’ 실재의 감각을 유도하는 매개물이 된다. 음수의 구조물에는 기계적 증폭 장치가 숨겨져 있는데, 이는 트램펄린이다. 극단적인 조명의 켜짐과 꺼짐의 극단적 대비 속에 정성태가 등장한다. 먼저, ‘그’는 일상 너머가 아니라 일상에서 출발한다. 다른 이들과 대별되는 후줄근한 복장은 그가 일상에서 나온 존재임을 각인시키기 위한 설정이다. 
    전적으로 패션을 수용하거나 움직임이 쉬운 옷을 입거나 하는 다른 퍼포머들과 비교해서, 곧 그들이 작위적으로 멋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연극적인 양상을 그와 마찬가지 차원에서 조금 다르게 연장하거나 단순히 퍼포머로서의 기능적인 차원을 가져가는 것과는 다르게 그는 ‘정성태’ 자신으로 발화한다. 이는 짧은 인트로 성격의 군무 이후, 무대 오른쪽 맨 앞에 위치한 카메라 앞에서 관객에게 말을 거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다음으로 그의 반짝이는 광경 아래 움직임의 달라진 차이 자체를 시현하는 첫 장면은 그러한 일상에서 순식간에 존재가 고꾸라지는, 어떤 사건으로 파열되는 일상으로 연장된다. 그러한 첫 장면에서 그의 움직임은 빛과 어둠 사이에 정확히 위치하기보다는 어중간하게 빛이 명멸하는 그 순간에 드러난다는 점에서, 곧 그 ‘중간’ 움직임이 파악된다는 점에서 애매하다. 그러한 애매함을 캐릭터 스스로가 가져가는데, 곧 사건이 서커스 자체, 기술적인 양상으로 수렴할 때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차원, 그것에 내면과 의식을 불어넣을 서사의 한 조각으로서 마치 그가 존재하는 것이다. 

    서커스와 움직임의 차이를 시험하는 것, 더 정확히는 서커스의 테크닉의 현시적 기능, 비일상의 선명한 이미지라는 장르적 정의 차원에서 수렴되는 서커스와 ‘순수한’ 움직임 사이에서 이른바 서커스의 불가능성과 어떤 가능성 모두를 가져가려는 시도가 사실 〈화이트큐브〉를 비롯한 소위 서커스로부터의 춤, 또는 서커스와 춤 그 모두의 현시를 가능하게 하는 것 아닐까―화이트큐브 프로젝트의 정성태 안무가는 춤에서 서커스로 활동 영역을 확장해 왔다. 
    ‘일상의 언어’는 그런 의미에서, 투명한 공간, 그 연장선상에서 움푹 파인 마이너스 잔여 공간이 더해지는 것과 같이 일상 그 자체에 다가간다기보다는 그 일상에 구멍을 내서 서사의 양분을 끌어내려는 시도 아닐까. 이 이야기들 자체는 사실 신변잡기의 과잉 정보쯤으로 느껴지는데, 정성태의 향수 냄새를 맡고 첫사랑을 떠올리거나 홍은지의 무언가를 대단한 것으로 표상하는 경험, 김효경의 자신의 얼굴 생김에 대한 세상의 평판과 자의식 등은 무대를 지체하고 무대에 ‘삽입’되는 시간으로, 이를 통해 일상은 다시 소환(recall)된다. 
    특정 기억의 호출은 그 기억 작용의 타자성, 곧 절대적인 우연성을 전제한다. 이러한 기억의 발화는 일상이 아니라 일상의 분절로서, 일상 안에 삽입되며 그 일상을 물리적으로 지연시킨다―카메라와 마이크 앞에 위치할 때 이들의 존재는 무대에서 일상으로 내려오는 반면, 그 일상이라는 내용은 일상의 재형식화를 의도한다. 이러한 기억의 부분 절개는 그 기억의 서사적 전개가 아니라 기억에 관한 물리적 메커니즘을 시현하기 위한 포석이 된다는 점에서 어떤 예시들에 가깝다. 

    커다란 구조물들이 본격적으로 무대에 펼쳐지는 전환 이후에, 〈Recall; 불러오기〉는 구조물들에의 협응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끝없이, 구멍으로부터 소생하고, 경사로를 올라갔다 내려오는 시시포스적 수행은 기억의 반복적 수행 과정을 모티브로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뇌의 한 영역에 상응한다는 점에서 일상이 아닌 기계적이고 초시각적인 영역에 대한 재현으로서 자리하지만, 곧 은유적 몸짓들로 연장되는데, 기억이 가진 힘을 재현하기 위한 노동의 육체, 사유를 멈춘 충동의 신체 기관들을 보여주게 되기 때문이다. 
    낙하하고 곧 튕겨 나오는 신체, 곧 순식간에 사라지는 이미지는 그 사라지기 직전의 순간과 그 ‘원위치’를 교환하게 한다. 이에 따르면 이미지는 사라지지 않았으며, 이미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일종의 착시가 주는 놀라움은, 그것이 물리적 메커니즘의 재현적인 차원에서 인간 존재의 의식적 서사를 조명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는 테크닉적이다. 반면 계속된 무의식의 작용과 함께 육체를 사로잡는 반동적인 육체 자체, 곧 움직이지만 거기에 어떤 의식적인 표정을 기울이지는 않는다는, 곧 어떤 ‘영혼’ 없이 그것을 한다라는 명제에 이르면, 〈Recall; 불러오기〉는 후반에 더욱 가까워진 서커스라는 형식의 테크닉적 시현의 성격에 더해 암묵적으로 기계적 메커니즘을 재현하는 신체라는 도식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그 성격을 지속한다. 그 이상의 은유는 찾을 수 없을까. 

    사유 없음으로서의 충동적인 신체는 스펙터클한 광경을 위해 복무한다. 그 전에 〈Recall; 불러오기〉는 일상-말과 스턴트 치어리딩, 와킹 등 다양한 장르적 양식을 도입한다. 후자는 극장 바깥, 스트리트 아트의 장르적 특질을 직접 가리키기도 하는 듯 보이는데, 가령 왁킹의 시현은 관객 전면으로 고스란히 열리며 무대를 열어젖히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이는 무대라는 일상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후 연장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분히 나열되는 이미지로 휘발된다. 
    〈Recall; 불러오기〉는 전반부에서 무대의 온전한 하나의 서사를 극적으로 전개하기보다 그 자체의 생성적 역량을 현시함으로써 또는 앞서 언급한, 무대를 일상으로 분절하며 무대와의 경계를 일시적으로 지워내는 것으로써 무대를 무대 자체로 둔다. 이는 무대를 어떤 특정 공간으로 순일하고 완전하게 메우기보다는 그 틈을 계속 들어낸 결과인데, 결과적으로 극장은 일상적인 것들, 극장 바깥의 움직임을 수용하는 장소가 된다. 그 주요한 서사의 얼개가 극장의 경계로서의 일상에서 나아가 일상을 구성하는 기억의 물리적 전개를 이미지로 포착하는 시험이 되면서 〈Recall; 불러오기〉는 서커스의 총체로서 무대를 구현한다. 이는 그럼에도 서커스에 대한 유인과 서커스를 포함한 서사의 일반이라는 경계에 위치한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 일시: 2023.01.27 ~ 2023.01.28. 금 20:00 / 토 15:00, 19:00
    공연장소: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관람등급: 만 7세 이상
    관람시간: 70분

    〈크레디트〉
    연출: 정성태
    출연: 김효경, 박정휘, 신원민, 이혜연, 정성태, 주영상, 홍은지
    드라마터그: 조성아
    무대디자인: 이은규
    음악감독: 장일호
    음향감독: 이현석
    무대감독: 김진우
    조명감독: 노명준
    기술감독: 김경록
    영상감독: 신재희
    의상디자인: 유미진
    홍보물디자인: 신현아
    프로듀서: 임현진
    프로젝트 매니저: 강유진
    기획 운영: 프로젝트다리
    무대 제작: 와스테이지
    후원: Vomlab
    주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arkoselection(인스타그램)
    주관: 화이트큐브 프로젝트 @whitecubeproject(인스타그램) 
    문의: whitecube.pj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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