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시나브로 가슴에, 〈태양〉: 서사의 도입이 갖는 어떤 효과
    REVIEW/Dance 2023. 2. 23. 01:25

    시나브로 가슴에, 〈태양〉ⓒ옥상훈[사진 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상동).

    시나브로 가슴에의 〈태양〉은 마에카와 도모히로의 동명의 희곡 『태양』을 모티브로 한다. ‘태양’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동그란 철조 구조물이 무대 전면에 자리하고, 여기에는 촘촘이 무대 조명이 달려 있다. 이러한 조명에 대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전기선은 무대 안쪽을 파고드는 가운데 높이를 달리하며 띄워져 있다. 하나의 강력한 무대 디자인은 이렇게 보통의 위에 달린 조명의 재분배로 완성되며, 희곡상의 태양 아래 존재 가능한 기존의 인간 집단―녹스에게는 “큐리오”로 불린다.―과 태양에 극도로 취약한 새로운 인류인 녹스 집단은, 조명의 암전과 밝아짐 사이에서 차이화된다. 주요한 서사는 다른 시공간, 곧 태양 아래와 어둠이라는 다른 양식 아래 그 두 집단의 양태적 차이, 그리고 기승전결의 극적 흐름 정도로 인지된다.

     

    말로 이뤄진 희곡에서 말이 없는 무용으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가. 이 둘은 어떤 유사성의 척도로 이야기될 수 있는가. 가공과 번역이 가진 새로운 가능성이 이전 작업에 대한 종속이나 유사성의 획득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할 것이다. 거기에는 장르의 차이 역시 전제되는데, 이는 곧 무용수들이 현실을 입고 말을 하는 어떤 일상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을뿐더러 그것은 최악의 선택이 될 것이라는 점을 말한다. 그렇다면, 기존의 서사는 어디까지 분명해질 수 있는가. 살아남을 수 있는가. 나아가 살아남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으로부터 공연을 추적해 나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태양』에서는 큰 움직임적 요소가 없는데―녹스와 큐리오의 싸움 정도가 되겠으나 이런 부분이 형상화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대신에 앞서 언급한 무대 설치와 조명의 역할이 가진 이미지의 요소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실상 극의 흐름은 조명의 분별과 음악의 차이와 그 전개에 의하며, 조명이 밝아졌다 어두워지며 공간을 변화시킨다면, 음악은 심리적인 양상의 차이를 불러오며 공간 전체를 휘어잡는다. 이는 생각보다 너무 크게 신체를 억누르는데, 곧 음악은 스피커라는 물리적 장치의 증폭으로 가시화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음악이 가진 정서뿐만 아니라 질감, 밀도가 신체가 가진 밀도의 간격을 ‘정확히’ 타공하며 그것과의 자연스러운 거리를 상쇄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음악이 서사적인 극의 흐름을 담보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드는 물음은 서사의 약식적 정의를 차치하고, 시나브로 가슴에가 지닌 형태에 대한 지독한 연구는 그 자체로 미학적인 정의와 그로부터의 서사 양식을 추출하지 않는가에 대한 것이다.

     

    『태양』의 세부를 사실상 조명과 음악의 전개로 어느 정도 표상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태양〉은 녹스와 큐리오의 대립과 차이로 상정된 희곡의 세계관을 존재 간의 가장 큰 대별점으로 두는데, 이를 각각 이재영과 박성율의 움직임 간 차이를 통해 가시화하고자 한다. 녹스와 큐리오의 차이, 그리고 이를 넘어, 대립적 세계관의 예외적 표상으로서 녹스와 큐리오의 예상 밖의 우정 또는 연대가 마지막 태양 아래 큐리오와 함께 자리하며 녹스의 시간으로 점멸되는 희곡의 마지막 장면의 정점을 찍는 부분은, 분명 〈태양〉에서도 구현된다. 따라서 한동안 둘의 움직임으로 무대를 수놓다가 다른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앞에 두고 움직임 없이 자리하는 이재영과 박성율의 마지막 모습은, 그 두 존재에 대한 중요성을 알려주는 한편, 서사의 완성을 위한 잉여적인 축적임을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완전한 어둠 속에 거의 점멸하며 몸이 하나의 조명이 되는 첫 장면―꽤나 긴 시간 지속된다.―, 태양, 곧 조명이 완전히 밝혀지는 가운데, 수없는 점프를 구사하는 무용수들―그와 반대되는, 어둠의 물리적 차원에서의 기계적인 움직임을 쌓는 무용수들에 비하면 이는 생명의 약동을 상징할 것이다.―을 보면, 가령 녹스의 탄생과, 녹스와 비교되는 큐리오의 원시적 육체―희곡에서도 녹스에 비해 큐리오의 생명의 자연스러운 외양이 강조된다.―는 어는 정도 희곡이 상정하는 존재 양식을 이미지와 움직임으로 표상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조금 더 세부로 들어가면, 각각의 움직임이 희곡의 어떤 내용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지는 묘연해지게 된다. 한 명의 무용수가 눕고 그 위를 굽힌 무릎과 함께 기계적으로 올라타서 바닥을 휘젓는 일련의 동작은, 미래 시대의 다른 운송 방식을 표상하려 한 것이었을까. 그것은 순전한 움직임의 미학적 전개일 수도 또 서사의 함축에 대한 해석을 요청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따라서 움직임은 그 자체로의 서사를 이미 갖고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은 다시 한번 유효해지는 듯 보인다.

     

    희곡이 가진 서사와 무용의 매체적 특질이 갖는 어떤 부조응의 관계를 희곡 이전의 무용이라는 희곡 너머의 (불)가능성으로 전도할 수는 없을까. 녹스와 큐리오의 세계, 어둠과 빛의 세계에 대한 체험 자체를 가져오기. 곧 유일한 하나의 구조물과 그것이 일종의 투명하고도 과잉된 막으로서 기능하며 시각장을 변전하게 만드는 부분, 그리고 그로부터 거의 파악되지 않는 또한 분별되지 않는 움직임의 요소들이 감각에 관한 하나의 리트머스지로 작용하고 있었다면, 그 부분을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태양〉은 빛과 어둠 아래의 신체, 아니 빛과 어둠 자체로서의 신체. 곧 명멸하는 신체 또는 빛으로 변주되는 신체, 어둠을 먹은 신체 또는 어둠으로 흡수되는 신체. 빛과 어둠을 가늠하게 하는 신체, 그로부터 조금씩 생겨나는 미시-움직임들을 시험한 것 아니었을까에 대한 어떤 추정을 따른다면 말이다.

     

    p.s. 공연은 전 회차에 걸쳐 실시간 폐쇄형 음성해설과 개방형 자막이 사용되었으며, 음악의 ‘묘사’는 자막을 통한 묘사로써 청각장애인을 위한 해설로 작용한다. 아이러니한 건 어쩌면 음악이 없었다면(〈구조의 구조〉에서 선보인 청각을 진동으로 번역하는 “우퍼조끼”가 없는 지금의 경우에) 더 분명했을 동작, 그리고 그에 포함된 숨과 움직임이 갖는 소리의 부분인데, 음악은 순전한 시각적 차원의 번역에서도 잉여적인 부분이다. 따라서 음악이 드라마 서사에 대한 번역의 의미를 가져갈 때 거꾸로 또 다른 번역의 차원은 한층 더 복잡해지면서 절삭되는 것 아닐까라는 질문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 시나브로 가슴에 〈태양〉

     

    일시: 2023년 2월 10일(금) ~ 2월 12일(일) 금요일 20:00 / 주말 15:00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10길 17)

    주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 시나브로 가슴에

     

    〈만드는 사람들〉

    원안: 마에카와 토모히로의 희곡 『태양』

    안무: 이재영

    조안무: 권혁

    출연: 김소연, 김혜진, 박성율, 변혜림, 양진영, 이대호, 이재영

    드라마터그: 김정

    음악: 김현수

    무대미술: 남경식

    조명디자인: 홍유진

    의상: 김우성

    분장 자문: 백지영

    일본 코디네이터: 이홍이

    접근성 매니저: 권지현

    음향감독: 김경남

    무대감독: 김인성

    홍보: 박서우

    프로듀서: 조하나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