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걸작들, 〈당신은,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십니까?〉: ‘공간’에 대한 신체적 탐구
    REVIEW/Dance 2023. 3. 14. 01:33

    걸작들, 〈당신은,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십니까?〉ⓒ필름바우쉬 김재현[사진 제공=걸작들](이하 상동). 윤예은.

    걸작들의 〈당신은,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십니까?〉(이하 〈당신의 이웃〉)는 안무를 맡은 윤예은의 집을 근거로 한다. 신동아3단지아파트 111동 경비실에 모인 관객들이 아파트 1층에 들어서면 공연이 시작된다. 층마다 각기 다른 장면이 펼쳐지며, 좁은 공간에서 분산돼 움직이던 퍼포머들은 옥상에서 최종적으로 하나의 그룹을 이룬다. 관객은 이들을 따라가며, 몇 발짝 앞서 나간 퍼포머들을 지켜본다. 움직임은 시작되고 그치기를 반복한다. 움직임에 동반되는 자전적 내러티브가 이동식 스피커를 통해 ‘은근하게’ 퍼져 나온다. 

    끊임없이 주어지는 새로운 자리를 위해 ‘5명’의 관객은 기본적으로 앞선 이가 자신이 곧 이를 경로임을, 그리고 장면에 대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하나의 계단에 한 명 정도의 점유라는 최소한의 틈을 기본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점 역시 인지하고 있으며, 나아가 이 공간이 사적 영토들이며 각자의 발걸음과 움직임이 조심스러워야 함을 안다는 점에서 하나의 연약한 공동체를 이룬다고도 할 수 있겠다. 

    8층은 윤예은의 집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면 굳이 연고가 없는 이 집을 특정해서 빌릴 이유는 없을 것이며, 〈당신의 이웃〉의 서사 역시 지역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이 좁고 임시적이며 완전히 사적이지만은 않은 공간 자체를 반향하는 데 초점을 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물론 또 다른 특정 공간을 마주하는 ‘당신의 이웃’에 관한 후반부의 이야기는 구체성을 띤다. 전자가 다분히 문학적이라면, 후자는 타자의 목소리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적이다. 이 ‘공간’은 예은이 어렸을 적 키가 없이 기다리던 하염없는 시간의 크기에서 시작한다—우리에게 시간은 나이가 들수록 가속하는 데 반해 그때의 시간은 진공처럼 깊숙한 현전을 부르며, 현재와 비교하면 아득하다. 이러한 감각은 언어를 통한 것이지만 동시에 장소 자체에서 반향된다. 

    공이 계단 틈을 따라 떨어지고, 그 틈 사이에서 뻗은 손들과 계단에서의 움직임이 엿보인다. 관객들은 그 전과 달리 고개를 아래로 향하며, 보이지 않던 아래에서부터의 움직임이 가능한 건 다름 아닌 엘리베이터라는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사에 대한 언급은 후반 옥상에서 다시 이어진다. 이웃과의 인사, 아니 다정한 인사를 하는 사이로서 성립하는 이웃의 개념으로부터 〈당신의 이웃〉은 사실상 ‘이웃’이라는 노스탤지어적인 개념을 ‘요청’한다. 독립된 주거 공간의 확보를 기본값으로 취하며 이를 문화화한 데서부터 층간소음과 같이 더 내밀한 침투의 경계를 회의하는 현재의 시점까지 아파트의 문화사적인 차원에서 보면, 다분히 낭만적인 전유로 보인다. 

    이러한 내용적인 서사를 뚫고 나오는 건 몸과 공간의 유착이다. 실제 그곳에 함께 위치하기, 이동과 봄이라는 수행이 동반된 퍼포먼스는 의미를 배반하거나 역전하며 독특한 정동으로 부상한다. 대면 접촉과 이웃의 긴밀한 관계성이라는 내용의 예외로서 손이라는 형식은 신비하게 출현한다. 이는 계단과 계단 사이를, 나아가 “인사”에 대한 일상적인 이야기 녹음을 비집고 나오며, 계단과 계단 사이의 ‘틈” 자체를 지각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건물을 더듬어 가는 몸들은 사실상 공간 안에 자리하기보다 공간을 자리하게 한다. 이러한 공간은 물리적인 영역과 경계이며 수직 상승해 가는 건물의 ‘역량’으로 연장된다. 따라서 그 틈 바깥의 보이지 않는 신체는 이 공간의 신체를 뛰어넘는 아득한 거리감과 함께 그것과 결합하려는 시각적 충동을 안기며, 아찔함과 아련함 따위의 어떤 감정들을 불러일으킨다. 

    (사진 왼쪽부터) 송윤아, 양예석, 권혁재, 윤예은.

    8층에 이르러서는 퍼포머들은 집에 들어가고 나오고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걸 교차하며 입체적인 동선을 만드는데, 이는 문이라는 경계 자체를 현상한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광경은 인사에서 풋풋한 남녀의 연애 감정을 이야기하던 장면과는 또한 분절되는데, 문이라는 경계는 “나”와 “타인”을 나누는 어떤 원초적 기억에 가깝다. 일상어와 다른 개념으로서, 음향이 공간 전체에 얕게 울리며 흐트러지는 가운데서도 튀는 소리 “리미널리티(liminality)”는 이를 해석하는 사후적 용어로 자리 잡는다—이것은 윤아의 극단 선배가 알려준 것이다-. “(이웃에게 하는) 인사”가 표면으로 드러나는 하나의 메시지일 수 있다면, 기실 ‘문’은 〈당신의 이웃〉을 독해할 수 있게 하며 그 이면을 향하는 중요한 메타포가 된다. 인사는 이러한 나와 타인의 경계를 횡단하고 통합하는 수행사로 자리한다, 또는 희망된다. 

    (사진 오른쪽) 송윤아.

    〈당신의 이웃〉은 도시의 삶을 문화사회학적으로 직접 반영하기보다는 유년기의 원-기억과 정동, 그리고 나아가 고독한 인간이라는 큰 서사로 연장되며 아파트를 내밀한 ‘공간’ 자체로 변형시킨다. 예은의 어린 시절로 갈수록 더욱 강렬한 기억이 자리하며, 이러한 기억은 아파트라는 공간을 몸과 유착된 상상계적 차원으로 나타난다. 어쩌면 이 같은 환상의 세계가 깨어지는 게 단단한 현실과 그와 결부된 존재의 고민이며, 이는 존재와 존재의 마주함 자체를 가로막는 것으로도 추정된다—모든 인물에게서 반복되는 “왜 이렇게 서로를 미워하지?”라는 대사가 그 맥락의 소결이다. 

    모든 퍼포머가 집산하며 관객과 인사를 나누는 마지막 옥상 공간에서는 건물 안쪽의 양옆 벽 사이의 공간에서 다시 관객이 있는 쪽으로 이동하며 진행되는데, 사이 공간을 통한 극적인 장면의 연출은 종국에 옥상 꼭대기에서 관객에게 떨어뜨리는 공들과 함께 서로를 마주하는 커뮤니케이션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장면들은 앞선 계단과 계단 틈의 기이한 커뮤니케이션의 거리감을 재확인시키는 한편, ‘이웃’ 자체로 서로를 현상하기에 이른다. 

    막바지 인사를 나누기 전에 퍼포머들은 각자 이웃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전에는 아파트에서 녹음한 이웃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웃들’은 예전 같지 않다. 소위 각박한 세상이 되고 만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 관객과 둥글게 원을 만든 뒤 인사 나누기와 인사에 대한 정의가 겹쳐 있는 퍼포머들의 ‘인사’에 대한 이야기는, 공연의 수행성이 일시적으로 만드는 공동체, 곧 흩어져 버릴 공동체로서 나와 너의 경계를 지우는 듯 보인다. 

    걸작들은 말에서 딴 움직임, 서로의 배경이 되는 말 그리고 움직임을 보여주며 말과 움직임을 종합한다. 그것은 둘을 구분하지 않는 것으로도 보인다. 나아가 공간을 조형하는 몸들을 통해 극장 바깥의 부피와 질감과 분위기를 공연으로 가져온다. 이웃에 대한 리서치와 자기 서사 및 발화, 내밀한 유년기 기억, 그리고 무엇보다 공간으로부터 시작되는 공연은, 그 말들의 정밀도—사운드의 입체적 전파와 파편적 내용의 종합—에 대한 부분을 조금 더 고려하며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 일시: 2023.02.24.~02.26 오후 2시
    공연 장소: 서울 방학로 15길 26-7 신동아3단지아파트 111동

    연출/기획: 윤예은
    공동창작·출연: 권혁재, 송윤아, 양예석, 윤예은
    디자인: 윤예정
    사진/영상: 필름바우쉬(김재현, 현석현)
    서포트: 윤석, 황난희
    음향: 배종찬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