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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놀이클럽 제작, 〈버건디 무키 채널 오프닝 멘트〉: 핍진한 재현과 서사 너머의 공터
    REVIEW/Theater 2023. 6. 1. 00:05

    공놀이클럽, 〈버건디 무키 채널 오프닝 멘트〉 포스터.

    〈버건디 무키 채널 오프닝 멘트〉(이하 〈버건디〉)는 긴박하고도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말들의 섞임과 침투, 존재의 투여와 재투여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가속도는 역할과 역할을 섞고 말과 말의 자리를 바꾼다. 이는 관계의 갈등과 역할의 존재감이 툭툭 불거져 나옴을 의미한다. 동시에 중간중간 삽입되는 이미지나 전환 음악 등을 통해 감각적 편집의 효과가 현실에 적용된다. “버건디 무키”라고 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이들의 현실을 다룬 〈버건디〉의 일상은 채널 송출의 이미지의 연장선상에서 존재하며, 이러한 이미지들로 수렴되는 이미지, 곧 메타-이미지로서 스크린이 그 일상을 되비추며 잠식하고 있다. 참고로 “버건디”는 색상의 이름, “무키”는 이들이 키우는 고양이 이름으로 여러 단어의 조합이 이룬 채널명과 채널을 시작하는 “오프닝 멘트”의 후속 결합을 통해 채널이 시작되는 분기와 긴장 등을 나열된 단어들로 나타내며 흥미를 촉발하려는 의도로 지어졌다고 볼 수 있겠다. 

    미지의 존재는 가장 잘 알려진 재희(이봄 배우)로, 그는 남자 친구이자 채널 총괄 기획자인 주원(류세일 배우)과의 관계와 맞물려 채널 수익 창출로 이어지는 채널 구독자 수 확대를 위한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한다. 선하고 예쁨을 성실하게 드러내야 하는 노력이 그를 지배하고, 그에 따라 그의 내면은 조금씩 쪼그라들고 우울과 나약함, 공황 상태가 그에게 찾아올 것이라는 게 자연스러운 결과로 보이는 상황이다. 그가 곧 자신의 일상을 ‘건강하게’ 되찾는 것, 주체의 공백을 어떤 다른 식으로 해소하는 것이 〈버건디〉의 과제로 부여된 셈이다. 

    재희를 제외한다면, 〈버건디〉에서 인물들이 가진 개성, 그것이 과거 전사와의 유착 속에서 제시된다는 점에서 흥미를 끌지만, 이들은 주변부적 인물이라면, 재희는 그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분위기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그가 곧 극을 결정 지을 것임이 명확하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갔다 사기를 당하고 돌아온 채널의 메인 편집자인 윤영(김민주 배우)은 재희의 방송상의 이미지와 자신이 알던 그의 과거로부터의 본질적인 정체성의 간극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을 통해 재희와 대립하는 경쟁자나 적의 정체성이 아니라 사실 재희를 매개한다면, 운동화 덕후이자 그에 관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채널 한 꼭지를 맡은 슈랭(김지훈 배우)과 히키코모리로서 가면을 쓰고 일본 애니를 리뷰하는 빈쿤(이세준 배우)은 채널의 하위 카테고리이자 하위문화의 수호자로서, 선망의 ‘이미지’가 아닌 욕망을 매개하거나 구체적으로 연장하는 어떤 방법론적인 차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동등하고 우리에게 친절한 대상이 된다. 그렇지만, 슈랭은 채널 안에서 방송 횟수가 적다는 데 불만을 갖고 있고, 빈쿤은 가면을 벗고 다른 주제를 다루고 싶어한다. 

    한편, 노출 방송으로 퇴출당한 후 호시탐탐 채널에 관한 질시와 욕망을 드러내는 혜정(김보경 배우)은, 극의 갈등을 재점화하고 채널의 위기를 불러오며, 현실과 이미지의 경계가 흔들리기에 이른다. 한 폐건물에서 사라진 동생을 찾는 대신 멍하게 바깥을 응시하던 재희의 과거를 찍은 영상을 슈랭이 공개해 버리고, 이후 일상의 분위기는 전환돼 있다. 후폭풍은 잠잠한 일상에 난 생채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대체된다. 

    뭔가 일반적이지 않은 차원에서 동생인 빈쿤이 자신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일까. 주체의 공백은 실상 그를 잠식한 일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적인 것임이 드러나는 장면은 그의 부도덕함과 잘못으로 봉합되면서 부상할 수 있었다. 따라서 바뀐 것은 없고, 이미지의 힘은 그 이미지를 향해 가야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차원을 마주하는 재희에게 온전하게 적용되지 않는 부분이 되었다는 점만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상은 반복되려 하는데, 우리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제 행복을 여러분께 나눠 드릴게요.”라는 오프닝멘트는 결말에서 반복되는데, 다소 공허하고 무의미하다고도 하겠지만, 실은 여전히 이러한 발화는 작동하고 현실을 구성할 것이다. 곧 이미지는 가짜가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이미지와 현실의 유착을 벗어나서, 성공과 욕망, 성공에 대한 욕망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고, 그것은 과장되고 과잉된 무엇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것이 무엇인지 드러난 것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부로서의 연극이라는 공간 특정성은 연극의 내부에 대한 압력의 강도를 높이면서 바깥 세계를 내부로 ‘은밀하게’ 옮긴다. 〈버건디〉는 그러한 동력을 외부의 현실 자체가 지닌 코드에 대한 수용으로 가져오고, 이는 현실을 인지하고 상상하는 우리 자신의 관점으로 연장된다. 
    이 부분에서 〈버건디〉는 과연 유의미하게 동시대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가라고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긴박해서 재밌다. 갈등들이 첨예해서 재밌다. 현실을 닮아 있어 재밌다. 그래서 뭐 어떻다는 것이지?’라고 한다면. 어떻게 현실의 욕망을 모방하고 재현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욕망의 탈출이 불가능하거나 그 욕망 자체를 해제하는 방식이 중요한 것이라면. 

    유튜브를 구성하는 역동적인 생산 역량이 주는 긴박함의 절차, 존재들의 갈등과 불화, 외부의 시선에 응전하는 내부의 초조와 긴장 등 연극이 흥미로울 수 있는 요소들로 점철되는 〈버건디〉의 세계와 지루함과 공백의 변증법이 지닌 연극의 어떤 질서와는 차별화되는 것일까. 곧 전자는 〈버건디〉의 욕망 자체인가. 새로운 감각인가. 현실을 감각하는 하나의 방법론적 양식인가. 재희라는 존재의 투명함은 현실이 잠식하지 못하는 자아의 결여를 이야기한다. 전반과 후반에 반복되는 그의 존재 양식은, 발화를 대신하며, 사유를 정초하는 장치이다. 전도가 불가능한 현실, 현실으로의 출구가 없는 연극은 무수한 재현으로서의 현실을 감각적으로 재현하며 말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줌으로써 무수한 말들 뒤로 사라진다. 그 같은 텅 빈 일상은 부정적이기보다 지속되는 일상으로서 오히려 긍정된다. 그리고 이러한 미완결의 결말, 헛헛한 마무리는 앞선 공백의 진리를 연장하며 대체한다. 결과적으로, 〈버건디〉는 큰 낙차 속에 간직되며, 그러한 낙차를 통해 말한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 제목: 버건디 무키 채널 오프닝 멘트
    공연 기간: 2023년 4월 21일(금)~30일(일) (평일 7시 30분, 토 3시/7시, 일 3시 / 월 공연 없음)
    공연 장소: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QUAD
    출연: 김민주, 김보경, 김지훈, 류세일, 이봄, 이세준

    〈스태프〉
    무대감독: 용도
    조명디자인: 이경은
    음악감독: 이재
    무대디자인: 송지인
    드라마투르그: 김지혜
    영상 디자인: 장주희
    가면 디자인: 김승민
    기획: 이재: 이윤숙
    홍보/마케팅: 한주연
    그래픽 디자인: 장한별
    사진: 이지응
    조연출: 임동주, 이수진
    연출: 강훈구
    제작: 공놀이클럽

    주최: 서울연극협회, (재)서울문화재단
    주관: 서울연극제 집행위원회
    후원: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특별시, (사)한국연극협회, (사)한국연출가협회, (사)한국소극장협회, (사)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한국본부(ASSITEJ Korea), (사)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사)한국극작가협회, (사)한국연극배우협회, 한국연극평론가협회, 공연과이론을위한모임
    문의: ballplayclu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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