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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직, 〈아파야 낫는다 건강백세!〉: 애도라는 놀이의 효과
    REVIEW/Theater 2023. 3. 13. 23:37

    이성직, 〈아파야 낫는다 건강백세!〉[사진 제공=두산아트센터](이하 상동). 이성직의 할머니인 이명숙 역할을 수행한 이예빈.

    이성직의 〈아파야 낫는다 건강백세!〉는 개인의 사적 추모 혹은 애도에 대한 몇 가지 형식을 구성한다. 이성직의 친할머니, 1933년생 이명숙을 이야기하고(1막) 그가 잘 담갔다는 물김치를 대신 담그고, 또 그를 대리하게 하며, 그를 대리한 이의 친구를 대리(2막)한 이가 꽃꽂이(3막)를 하는 일련의 행위가 그것이다. 1막의 이명숙에 관한 상기가 실상 그에 관한 비평적 해부에 가깝다면, 2막과 3막의 수행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명숙을 재현하는 차원으로 전개된다. 물김치 담그기는 이명숙이 구성했던 맛에 다가가려는 시도로 시작되지만, 그 맛은 공연이 끝나고 별도로 약속을 잡아야지만 실행되는 사후적인 증거로만 남는다. 곧 이명숙의 물김치와 그것을 구현하고자 한 이성직의 물김치와의 관계는 후자를 통해 전자를 볼 수 있다기보다 후자와 전자의 차이를 우리가 볼 수 없다는 차원에서 멈추기 마련이다. 그것은 결국 이성직의 발화를 통해 보충될 수 있을 뿐이다. 

    오히려 이명숙의 외피를 한 자신의 친동생 이예빈과 이명숙의 친구를 가장‘하는’ 김신자 간의 식당, 노래방, 옷가게 등을 들르는 일정을 스냅숏으로 찍은 후 슬라이드 화면으로 넘기는 투박한 송출 아래 그림자로서 자리하며 묵묵하게 물김치를 담그는, 곧 잘 보이지 않는 이성직의 모습이 오히려 이명숙을 현전시키는 것에 가깝다. 무대 화장과도 같은 허접한 분장을 한 이예빈이 이명숙과의 극명한 차이 속에 자리한다면, 김신자의 연기는, 그의 이후 진술을 참조하면, 가상의 이명숙을 현전시키는 이 놀이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그의 얼굴은 이명숙이라는 시공에 이예빈보다 근접해 있다. 

    물김치를 담는 이성직.

    이명숙이 아닌, 자신의 남편과의 관계, 젊은 날부터 직업으로 꽃꽂이를 해온 시간 등을 이야기하는 김신자는, 꽃꽂이하며 이명숙을 애도하는데, 실제 만나지 못하는 이에 대한 애도는 비로소 관계를 맺으며 다가가고자 했던 이명숙이라는 존재를 입은 이예빈과의 시간과 그 시간을 전후로 한 더 넓은 시간의 스펙트럼과 함께 존재하는 이명숙-이성직-이예빈이라는 존재 자체를 향하며 그 스스로에게 슬픔을 불러오는 듯하다. 애초에 주어진 그 둘의 혼동 또는 종합이라는 형식은 이명숙이 누구인지에 대한 물음의 중요성을 유예한다. 

    이성직은 이런 가상의 연기를 지시하고 감독하는 이로서 그의 대타자가 되고—그는 “(이성)직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이성직을 가리킨다.—, 이예빈은 이명숙을 마주할 수 있는 의사 존재가 된다면, 또는 이명숙이라는 시간을 연기하는 동료가 된다면, 이 시간 안에서 이명숙은 이성직과 이예빈 바깥의 존재가 될 수 없다—그는 그 둘이 주는 정보 바깥을 마주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그의 슬픔은 그 바깥으로의 틈을 발견한 것 아닐까. 누군가의 공통적인 죽음(으로서의 쓸쓸함). 추모 행위를 위한 공연이지만 공연을 위한 추모이기도 하다는 모순은, 추모 행위 자체가 추모에 상응하는 감정을 불러올 수 있음과 만난다. 

    이명숙의 일화를 근거로 발화하는 1막과 그 이후의 엉뚱한 재현 간의 단절/간극은 이명숙이 쓴 성경 필사 노트의 공란으로 남은 간증 부분이다. 공백으로서의 형식은 심연에 대한 충동으로서, 이성직을 가로지른다. 그럼에도 ‘무’로서의 언어, 내면 없음의 어떤 분명한 증거는 이성직이 그 전에 말한 욕심 그득하며 자기밖에 모르는 이명숙의 비루함에서 이미 설명된 것 아닐까. 2막 이후가 그것을 뒤집지는 못하는 가운데, 의사-애도의 행위 이전에 어떤 한 존재를 규명하고 정의하는 역할로 수렴하는 이명숙에 관한 결론적인 분석은, 한 개인을 향하기보다 시대적인 차원에서 해석될 수 있는 언어와 나란히 갔어야 할 것이라는 점에서는 동의하기는 어렵다—그것은 고인에 대한 모독이든 그것이 아니든 간에 그 성격을 차치하고 ‘결론’보다는 열린 차원으로 갔어야 할 것이다.

    이명숙의 친구 역할을 한 김신자.

    강박적인 음식 섭취에 대한 추구랄지 남아 선호 사상에서 연장된 남성을 살피는 좋은 반찬의 자리 배치의 수행이랄지는 사실상 소위 굶주림을 동반한 가난한 시절을 살던 세대—그가 가난했던지의 여부를 떠나—의 궁극적인 목표로서 그의 삶의 동력으로 연장되었을 수 있으며—신의 말씀 역시 마찬가지였을 텐데, 다만 그는 그것을 내재적인 자신의 언어로 연장하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식사 자리의 수행을 포함해 그는 규약을 “연기”하기보다는 ‘체화’하는 데 사력을 다하는 듯하다.—, 실제 그가 가부장제의 위계질서를 구사할 수 있는 역량 역시 이 세계에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성직과 이예빈은 각각 그와의 거리감을 간직하거나 극단적인 싫음의 정서 속에 이명숙을 바라보며, 반찬의 자리 정하기라는 수행 역시 각각 이성직과 이예빈에 의해 번번이 철회당한다. 곧 이명숙은 적어도 이 둘에게는 위협적인 타자라기보다는 미학적으로 맞지 않는 존재에 가깝다. 

    이명숙이 평소 자주 하던 말, “아파야 낫는다 건강백세!”라는 제목은 그에 대한 “아파도 낫는다 건강백세!”라는 이성직의 착오를 이예빈이 바로잡아주는 장면에서 되새겨진다. “아파야”는 다른 가정을 전제할 수 있는 “아파도”에 비해 아픔을 의미로 승화시키는 ‘절대적’ 의지에 사로잡혀 있다. 결국, 이는 고통 자체를 받아들이기보다는 고통이 없던 정상의 시기에 대한 열렬한 애착과 고통 자체에 대한 부인을 함의한다. 이성직에게 병상에 누워 귓속에 속삭이던 말, 절대 남들에게 지지 말고 싸워서 이기라는 말, 곧 절박한 생존에의 의지와 바깥이 없는 고독한 시점에서 연장되는 말은, 죽음 직전에 인생의 어떤 성찰이 아니라 부단히도 생의 의지 자체를 꺾지 않(으려)는 하나의 일관된 시점이 고스란히 투영된다. 그러니까 이는 이명숙의 다양한 면이 아니라 이명숙의 총체적이고 순일한 어떤 세계관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이성직의 묵묵한 물김치 담그는 수행은 처음 자개장롱과 매트가 놓인 사람이 없는 텅 빈 방, 곧 사물이 아닌 비어 있음 자체를 응시하는 장면으로 돌아가게 한다. 이러한 마지막 장면은 다시 한번 되풀이된다. 일상은 지속되지만 그 방은 새삼 같지 않다. 그와 같이 애도는 끝날 수 없는 것이다. 요약하면, 〈아파야 낫는다 건강백세!〉는 이명숙이라는 특정 개인에 대한 서사를 파편적인 기억을 통해 접근하는 한편, 일상의 아카이브와 수행 및 미미크리의 재현을 통해 애도를 질문한다. 후자는 당사자성이 가진 중요성보다 어떻게 애도라는 과정이 특정 개인들의 시간으로 옮겨지며 의미를 구성하는지를 보여주는 데 초점이 맞춰지는 듯 보인다—물론 김신자와 이예빈의 내면은 이성직에 비하면 또 다른 관찰 대상의 차원에 그친다. 〈아파야 낫는다 건강백세!〉는 (기존의 작업들이 대체로 보여주는) 슬픔과 숭고함이 없는 애도는 가능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하며, 이전 세대와의 적대, 혐오의 정서를 친족 체계로 옮겨오는 과감함 속에 애도에 대한 의미를 다르게 반향시킨다는 점에서 분명 문제작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두산아트랩 공연 2023, 이성직, 다원 〈아파야 낫는다 건강백세!〉
     
    공연 일시: 2.16 – 2.18 목금 8시 토 3시
    공연 장소: 두산아트센터 Space111

    구성/사진: 이성직
    출연: 김신자, 이성직, 이예빈
    드라마터그: 신재욱
    분장: 석필선
    조명: 고귀경
    음악: 이예빈
    무대감독: 이보한
    무대팀: 이승희, 조수아
    조명팀: 신희, 고두영, 정혁영, 김현, 김지인, 오현아
    조명오퍼레이터: 김현
    음향팀: 박진아, 이효진
    영상/음향, 오퍼레이터: 백소정
     
    〈아파야 낫는다 건강백세!〉는 친할머니 이명숙을 추모하기 위한 연극이면서, 연극을 만들기 위해 친할머니 이명숙을 추모하는 작업이다. 이성직은 서로 상충하는 두 개의 문장 사이에서 묘하게 뒤엉킨 질문들을 하나씩 꺼낸다. 가족보다는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데 가장 최선을 다했던 이명숙. 이성직은 이명숙을 기억하는 목소리와 배우가 연기하는 이명숙의 사진 등의 재료로 만들어진 연극적 이명숙과 무대 위에 함께 머문다. 이명숙이 삶을 살아낸 동력과 그의 삶을 연극적으로 재현하는 동력이 어떻게 엮여 있는지 살펴보고 삶과 기억, 추모가 어떻게 ‘공연 만들기’와 관계 맺을 수 있을지 질문한다.
     
    이성직
    이성직은 연극, 공공장소예술, 다원예술 등 통상 ‘공연’으로 명명되는 무언가를 만드는 창작자다. 참여자(관객)와 함께 맥락을 만들어 나가는 커뮤니티 작업 방식을 지향한다. 기후위기, 시민적 돌봄, 노년 세대 등 동시대 이슈를 찾아내 일상에서의 행동을 작업으로 선보이며 공연의 정의와 경계에 대해 질문한다.
     
    다원 〈sf식당〉, 〈Let’s Birding!〉, 〈감자전스www.gamjajeons.com〉, 〈만성탈수 간병하기〉, 〈아프면 낫는다 건강백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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