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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페이스 타임〉: 부재를 현상하기
    REVIEW/Theater 2023. 3. 14. 01:10

    창작집다 ‘여기에 있다’, 〈페이스 타임〉[사진 제공=두산아트센터](이하 상동). 박세련 연출.

    창작집다 ‘여기에 있다’의 〈페이스 타임〉은 박세련 연출의 사라지지 않은 어머니의 번호로부터 영상 통화—“페이스 타임”—가 걸려 온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전화번호라는 흔적은 부재를 현재로 기입하고 있으며, 이를 눌렀을 때 뜨는 빈 화면은 과거를 미래로 위치시킨다. 물론 이 화면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고, 결말에는 정대진과 이진경 두 배우의 얼굴이 대체한다. 배우들의 발화와 극중극으로 투여되는 인형극 형식의 교차로 진행되는 극에서, 가상의 차원에서 이뤄진 현전은 후자와 관련되는 듯하다. 

    (사진 좌측부터) 박세련 연출, 이진경 배우, 정대진 배우.

    해와 바람의 다툼, 그리고 이를 방관하는 구름으로 인해 비가 내리고 제어되지 않고 홍수가 나서 생물들이 죽고 무덤으로 뒤덮인 세상이 된다. 이제 세상의 수많은 구멍은 갖은 생명체의 무덤이 된다. 또는 세상은 구멍 자체가 된다. 죽음을 삶으로 분리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삶의 일부로 통합하는 데서 나아가 죽음으로 삶이 흡수되는 반복으로서의 서사는, 생명이 없는 것, 곧 초반에 죽음으로 지정된 인형을 생명으로 만들거나 이를 모사해 인형의 움직임을 따라 하는 두 배우의 삶과 죽음의 ‘접촉’, 또는 호환으로의 의지로 연장된다. 죽음을 만지기도 하지만 그 죽음에 동화되기도 한다. 

    이들이 하나의 의식을 향하며 일상의 하나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의 단위를 분절된 신체 행위들의 종합으로 전유하는 것과 같이 인형은 살아있는 것을 분절하는 것이다. 그것은 살아있지만 엄격하게는 기이하게 그러하다. 극단적인 분절들은 현존을 지연시키며 종국에는 무의 지점을 산출할 것이다. 완전한 정지는 죽음이다. 여기서 인형의 움직임에 각인되는 삶과 죽음의 경계는 사라지지 않은 흔적과 존재했던 이미지의 결합이 현재를 멈추게 하는 페이스 타임이 시작하는 ‘직전의’ 순간에 상응하며, 그 사이에는 삶과 죽음의 교차라는 메타포가 자리한다. 

    〈페이스 타임〉은 예기치 않은 순간의 도래를 꿈꾼다. 간헐적으로 여러 차례 열리던 극장 뒷문의 빛은 스마트폰의 블루라이트에 대한 은유이며, 휴대폰을 일시 정지 시킨 관객들의 스마트폰의 갑작스러운 작동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틈은 공연의 집중을 깨뜨리며 시선을 분산시키는 동시에 극장이 지닌 닫힌 공간의 폐쇄성을 공격한다. ‘너머’에 대한 환기는 경계에 대한 집중과 이후의 텅 빈 형식으로서 반복된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건 어머니의 존재(와 직접적으로 비견할 만한 존재)가 아니라, 공백과 쏟아지는 빛, 무심한 스태프, RC카 등등이다. 

    어머니를 묻고 땅을 다질 때를 향하는 감각은 꽤 뚜렷하다. 이를 위해 바닥에는 매트가 깔려 있고, 배우들이 이를 밟을 때 나는 현장의 직접적인 소리는, 암전에서 기이한 노이즈의 반복으로 연장된다. 그 노이즈에서 페이스 타임이 연결될 때의 신호음과 죽음을 딛는 소리는 혼합되고 또한 혼동된다. 이는 끊임없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로지르고자 하는 공연의 주문이 음향적으로 연장된 결과로, 마치 저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나의 죽음으로의 발신(=발자국)이며 그 다른 쪽에서 시작되는 양방향의 극단적인 혼란 속에서 유령 주체와 현 주체의 뒤섞임을 초래한다. 

    정대진 배우.

    공교롭게도 이전에 열린 두산아트랩의 이성직의 〈아파야 낫는다 건강백세!〉 역시 애도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이성직의 작업이 애도의 수행성이 애도를 거꾸로 만드는 실험의 성격이 짙었다면[참조: https://www.artscene.co.kr/1896], 〈페이스 타임〉은 삶과 죽음의 분리 불가능성의 신화로써 애도를 반복하며 애도(의 불가능성) 자체를 현상하는 측면이 크다. 〈아파야 낫는다 건강백세!〉가 애도에 관한 ‘더한’ 존재가 아니라 애도에 관한 ‘덜한’ 존재가 애도를 향해 가는 이상한 경로를 보인다면, 〈페이스 타임〉은 애도라는 과정 자체를 넘어선 너머의 세계를 현재로 오인하게 아니 신뢰하게 만든다. 

    〈페이스 타임〉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배우가 아닌, 그들이 다루는 인형도 아닌 투명한 풍선 인형이다. 삶과 죽음의 불연속적 연속성은 분절들로서의 ‘존재’, 곧 떼었다 붙였다 하는 투명한 풍선들의 신체에서도 반복된다. 여기에는 어떤 신체 기관도 담겨 있지 않는다는 점에서, 엉성하게 신체를 구성하면서 또한 그것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부정되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동시에 떼어지면서도 그것은 훼손이 아니라 어떤 또 다른 가능성을 담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그것은 다정하고 또 귀엽다. 지나친 투명성, 곧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아니 아무것도 보이는 것을 담지 않는 매체로서 이러한 투명 풍선 인형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명확하게 존재의 숨결을 간직한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두산아트랩 공연 2023, 창작집단 여기에 있다, 연극 〈페이스 타임〉

    공연 일시: 3.2 - 3.4 목금 8시 토 3시
    공연 장소: 두산아트센터 Space111
    공동구성: 창작집단 여기에 있다
    작/연출: 박세련
    작/출연: 박세련, 정대진, 이진경
    시노그래피: 김지우
    영상: 장주희
    사운드: 카입
    음향: 김여운
    음향 오퍼레이터: 강수경
    조명: 정채림, 김민경, 서상수, 전규상
    진행: 문병재, 조장호
    무대감독: 이보한

    〈페이스 타임〉은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어머니의 전화번호를 보다가 ‘영상통화를 걸면 엄마가 받을까?’ 하는 막연한 상상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닿을 수 없는 누군가와의 연결은 나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추적해가며, 세련은 인형극을 통해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불러온다. 〈페이스 타임〉은 전화 한 통이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도 단숨에 연결되는 시대에 우리는 서로와의 ‘연결’이라는 것을 어떻게 감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우리는 이 시대에서 어떻게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창작집단 '여기에 있다':

    창작집단 여기에 있다는 연출 박세련, 배우 정대진과 이진경, 시노그래퍼 김지우로 구성되어 있으며 공동창작 방식으로 작업한다. ‘모든 일은 여기에서 일어난다’,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은 거기에서도 일어난다’라는 모토를 가지고 극장 안과 밖에서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극장 무대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집, 골목 등 다양한 공간에서 벌어진다. 개인의 이야기는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역사임을 발견하고 ‘I am here’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나’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연극 〈에이징 인 플레이스〉, 〈유니온〉, 〈뉴스페이스: 연극〉, 〈오늘의 급식〉, 〈안PARK[안:팍] 다시 만난 세계〉, 〈인터미션〉, 〈안PARK[안:팍] 우리가 공원을 기억하는 방법〉, 〈투명인간을 찾습니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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