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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가슴에, 〈Earthing〉: 지구에의 접지된 감각에 대한 의례적 재생산의 형태들REVIEW/Dance 2025. 8. 20. 22:58
시나브로가슴에, 〈Earthing〉 ⓒ 황선하 [사진 제공=시나브로가슴에](이하 상동). 서로를 마주하는 원형의 대열은 〈Earthing〉에서 시종일관 유지된다. 정향된 움직임의 반복적 단위에 미세한 차이를 주어 점증적인 변화를 꾀하는 가운데, 몇 번의 전이 단계가 발생하고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구심력은 땅과 붙어 있는 절반의 신체, 곧 제목의 접지를 뜻하는 ‘어싱(Earthing)’이 자연을 맨발로 감각하는 활동을 일컫는 것과 같이, 거의 제자리에서 이동 없이, 무대 바닥과 하반신의 밀착됨은 공연의 중반까지로 이어지는데, 이는 팔 동작의 세부에 주의를 기울이게 됨을 의미한다. 가령 두 발을 들고 내려놓고 고개를 숙이고 하는 하나의 단위가 성립한다면, 다음은 또 다른 단위적 움직임이 고안된다.
움직임은 포착 가능하며, 일정한 분기 아래 구분 가능하다. 그리고 일종의 의식적 절차로서 이 행위들을 바라볼 수 있다. 그것은 공통 감각을 공유하고 일정한 하나의 세계관을 기저에 둔 공동체의 집단적 양식의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다. 무대 바닥을 향한, 그리고 서로의 서로에 대한 접지된 감각의 일환은 하나의 특정한 장소, 치우친 영역에 근거하므로 조명의 직접적 환기 작용에 따르는 구조적 변경에 의한 장소의 이전은 그 차이가 극대화된다. 그 가운데 우리는 이들의 실재의 몸에 근접하게 되는데, 이는 조명이 가해지지 않은, 맨몸의 향연이 객석과 가장 축소된 거리를 확보할 때다.
그 접지된 범위의 제한적 영역에 대한 시각을 산출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몸에 대한 접지된 감각으로 확장 가능하기 위해 프로시니엄 아치가 아닌 소극장은 합목적적 장소로 보인다. 구심점을 이룬 반복된 단위의 움직임 체계와 점진적 고양의 흐름을 좌우하는 건 음향인데, 큰 북소리와 같은 일정한 진동을 주조음으로 하는 가운데, 자연의 소리가 간헐적으로 퍼져 나온다. 쿵-착과 같이 움직임과 직접적으로 동기화되며 맺고 끊는, 구조적 단위의 인지 경로가 생성되기도 한다. 파도 소리와 함께 무대는 스모그로 둘러싸이고 접지된 감각부는 하단에서 중단으로 연장될 가능성을 획득하며, 산포된 범주의 확장과 함께 신체 전반의 운용으로 나아간다.
유동적인 음악, 마구 두드리는 건반은 사이렌 같은 경고음의 효과를 얻는데, 이는 음악이 박동으로서 몸에 얹혀 있음을 의미한다. 곧 주조음의 희미한 배경음은 처음부터 움직임의 토대가 되어 왔던바, 그 잠재된 힘으로 움직임을 좌우하고 있는데, 그 위에 더해진 레이어는 정서적 불안정, 비평형적 상태를 구성한다. 이는 안정적인 명상의 상태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지만, 자연의 진폭을 체감하게 하는 확장된 범주 안에 그 몸들의 반향과 공통적인 체계를 더욱 굳건하게 위치시키게 됨과 연동된다.상의를 탈의한 채, 일어선 상태에서 두 팔을 위로 뻗어 사선의 방향에서 양옆으로 내리 꽂는 움직임의 구조적 단위를 이룰 때 이르러서는 안정화된 조건에의 속박, 제한된 몸의 신체적 반경을 그 폭발적 힘의 반향으로 온전히 치환 가능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향된 구심점을 경유한 채 원형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수직에서 수평으로의 가동 범위에서, 후자의 정확한 꽂힘, 타격은 힘의 축적으로부터 힘의 반향이라는 서사의 공식을 만들어 낸다, 곧 잠잠하게 피워 올리던 닫힌 공간 안의 분위기는 급격한 탐침의 기로 안에 확장된 세계로의 증폭.
하늘을 향한 접지적 행위에서 발 구름은 음악과 비동기화된 흐름을 산출하는데, 이 역시 접지된 바닥으로부터 실재에의 감각을 추동한다. 스모그와 조명을 벗어난 상반신이 객석의 경계에 육박할 때 실재로서 체감된다. 〈Earthing〉은 세계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지닌 행위자들의 훈육적인 몸의 현재적 체험의 여정을 보여주는 듯 보인다. 따라서 육박하는 몸에 이르는 과정은 몸의 즉물성 자체에 대한 강조보다는 그 공통 존재들의 기저에 있는 신념으로부터 도출되는 극적 드라마성으로 드러난다.그렇다면, 합산 가능하며 측정 가능한 몸짓들, 분절된 마디들마다 부여되는 의식의 흐름, 오로지 축적되는 몸짓들, 발산의 영향력마저 힘의 거대한 중심의 운용 법칙으로 수렴시키는 움직임이 가진 서사의 종착지는, 아마도 예상 가능한 것일까. 이는 거꾸로 뒤집은 몸, 중심축의 급격한 이동, 나무의 형상으로의 귀결인데, 곧 움직임의 흐름을 전도된 도상으로 바꾸면서 주체의 중심적 토대를 허물어뜨려 비주체적 영토를 모사한 것이라 하겠다.
진동의 폭을 조율하고 관계의 거리를 통제하며 분절된 단위의 구조를 추산하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Earthing〉은 대지의 유장한 리듬과 숨을 복구하고 재생하는 어떤 분명한 의도를 드러낸다. 이러한 흐름이 지구에 대한 가이아로서 관념에 근거를 둔 것인지 아님 전통 의례나 종교적 양식의 일부에서 그 움직임을 착안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기후 위기라는 전 지구적 사태에 직면한 인류의 현재성에 비추어 시의성을 얻는 것은 사실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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