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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 남웅, 인미공에 대하여Column 2025. 8. 1. 20:09
행정을 어긋 내기 혹은 행정을 기각하기 혹은 스스로를 배반하기의 불가능성
(*세 개의 기관 및 관계자와 관련한 행정의 보이지 않는 절차에 대한 건 개인적인 추정에 바탕을 둔 것임을 먼저 밝힌다.)
최근 목도한 일련의 사건들은 어떤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기관 행정의 불투명성 혹은 비대화, 그리고 민간에 대한 협의 과정 혹은 소통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 전자와 후자는 조응하는데, 이 일련의 사건은 그 정도는 다르고 사안을 대하는 데 있어 요구되는 엄격함의 수준도 다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앞선 이유로 공통된 감각으로 읽힌다.
연극인
서울문화재단(?), 「웹진 <연극in> 잠정 휴간 안내」, 연극인, 2025.06.05. 출처=https://www.sfac.or.kr/site/theater/ex/bbs/View.do?pageIndex=1&cbIdx=1017&bcIdx=136696&tgtTypeCd=&searchKey= 먼저 연극인이라는 연극 웹진의 폐지에 대한 사후적인 인지가 불러온 후폭풍은, 최근 스파크라는 서울문화재단 공식 홍보 포털이 열림에 따라 민간의 철회 요구에 대한 재단의 실질적 답변이 뒤늦게 도착하는 잠정적 결론에 이르게 된 것 같은, 일련의 사건을 주로 그 항의의 기록들을 통해 공론장에서 목격하게 된 부분이다.
사실 이 사이트 개설에 대한 이의제기는 그 웹 디자인에 대한 냉소 혹은 비아냥거림의 태도로 한 발을 딛고 연극인에 대한 항의의 차원은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것 같은데 1, 그렇다면 이는 아마도 그 ‘참여자’들이 바라던 바의 차원에서 어긋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곧 이 같은 반응이 그 불가능성의 항의 자체를 완수하는/즐기는 그 격렬한 항의―실재에의 열정―가 그 열정의 감축 혹은 축소로서 선회하는 것이 아님을 인지하는 가운데에서 다시 한 발을 디뎌야 할 것이다.
물론 그러한 태도는 실제로 그 항의가 이제는 식었으며 잔여로 가라앉는 단계임을 명시할 수 있는 위험 때문이 아니라, 연극인이라는 공백의 실재를 스파크라는 환상의 대리물로써 기각하거나 메울 수 있다는 전제를 우리도 모르게 동의하고 있다고 인정하는 셈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곧 연극인과 스파크를 하나의 선상에 나란히 두는 것이 가능하다는 인식, 전자를 대체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재단이 제시할 수 있었다는 환상을 인정하게 됨으로써 이미 스파크가 연극인의 자리를 냉소적인 태도 아래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가정을 피하기 위해서, 이러한 냉소는 그것이 냉소라면 기각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연극인과 스파크를 하나로 묶는 데는 위험이 따르며, 올바른 범주적 구분과 합목적적 비판의 연결이 동시적으로 다르게 작동해야 하는 것이다.
그 직전까지 연극인은 하나의 ‘공백’으로서 실재가 되었다. 이는 결코 실재의 공백이 아닌데, 오히려 재단의 조처를 통해 연극인은 실재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그것과 연관된 이들을 애도하고 분노하는 주체로 변환하게 되었던바, 재단의 협의 없는 잠정적 조처, 폐간의 에두른 표현으로서 그 잠정 조처(라는 형식적 유인의 언어)를 실질적인 언어로 위치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연극인’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이 연극인을 소수의 네트워크로 작동하는 동시대 연극계의 의제 발굴과 제시, 그로 인한 담론 창구, 그에 걸맞은 희곡 창작의 기능을 수행하(려)는 온라인상의 장 정도로 이야기하고자 하는데, 중요한 건 그것이 치우친, 편협한, 일부의 차원만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곧 거기에는 스파크가 말하는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지원 선정작”이라는 포괄적인 수용, 특색 없는 나열의 차원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비평의 당파성을 지지했던 벤야민의 말처럼 연극인은 실제 그 연극 비평의 아카이브보다는 그 담론 제시 안에 치우쳐서 또는 치우친 그 현장을 불러오고 그 바깥의 것들을 더욱 배제함으로써 그 비평을 완수해 왔다 2.
이는 성평등과 위계 없는 연극계, 퀴어, 기후위기, 장애, 접근성, 무대 바깥의 여러 전문가 등의 범주를, 그 전까지의 일반론적인 차원의 연극계를 기각하고 부정하며 ‘소수’를 향한 ‘닫힌’ 창구로 명맥을 유지해 왔음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개인적으로 연극인은 기존의 공동체, 아니 집단이 아닌, 이상(향)적 공동체를 향한 틈을 발견하고 새로운 공동체의 정동을 만들어 내는 가운데, 서로를 이따금 마주하며 발신하는 편지적 네트워크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3그러니까 비로소 정치적인 이 사이트는 완전한 정치성의 소거, 완전한 열림, 그리하여 달성되는, 서울문화재단 지원작이라는 편협한 자기 근거로의 환원에서부터 적어도 거리를 둘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연극인의 특정한/창발적 네트워크의 치우침이라는 것을 재단이 인지하고 있다면, 그리고 아마도 지금의 게임이 불리한 국면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의구심과 연관해 스파크가 하나의 입구(portal)로 재위치되는 것으로 수용된다면, 분명 현재 스파크의 개설은 우려될 만한 부분이 맞다. 곧 스파크가 지닌 특성은 광대한 ‘포용성’인데, 이 우파적 전략이 힘을 갖는 건, 곧 아주 단순하지만 힘을 가질 수 있는 건, 바로 이 특색 없는 정보 전달의 공평함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 프로파간다에는 아마도 전략적인 고려가 담겨 있는데, 아마도 그 치우침에서 벗어남으로써 연극계의 종사자가 지닌 연극인 안에서 표현하지 못한, 그곳에 소속되지 못한(?) 적대감으로부터 적어도 이제는 나의 몫을 경제적 관점에서 1/n으로 되찾아온다는 환상을 줌으로써 이 게임을 종료할 수 있다는 또 다른 환상의 서사가 그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치우침만이 연극계를 어쩌면 다른 미래의 가능성으로 이끌어 가고 있었는지 모르는데, 그것이 불러온 착각은 가령 ‘연극계는 지금 이렇게 이상적인 곳이야!’, ‘우리 주변에는 다 저렇게 사리에 밝게 사유하며 명확한 이들뿐이야!’라는 것 정도가 될 것이다. 사실 그 바깥을 나오면 연극계가 그렇지 않다는 것, 그렇게 많은 것들이 이전처럼 잔존해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되는데―그리고 앞선 생각이 착각임을 곧 깨닫게 되는데―, 곧 그 같은 영역이 직접적 발화가 아닌 투명하게 작품으로만 드러날 수 있게 하는 것―그 작품으로 은폐, 봉합할 수 있는 기제를 마련하는 것, 거기에 (다시) 희망을 걸 수 있게 만드는 것, 아마도 오직 개체의 차원에서만 그 스파크가 튀는 지금의 광활한 영토를 누빌 수 있는 것, 그 같은 소수의 유토피아적 왕국 대신에, 군림하는 이 없는 이상의 영토를 정보의 매끈한 평면으로서 관리하는 불투명한 지배자의 영토, 그것이 곧 스파크의 이념 없는 이념인 것이다.
쉽게 말해 그 치우침은, 곧 주체의 여정에서의 지향은, 관리가 불가능하며, 정리가 불가능하며, (하나의) 범주로 규정 짓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행정은 그것이 온당하지 않다. 마땅하지 않다. 관료제의 체계적인 관리를 통한 영토 구축이 시급한 것이다.
국립극단, 반연간지 연극 창간호 (2011 가을) 이미지. 출처=https://www.ntck.or.kr/ko/education/publishing/39746 개인적으로 연극인의 사라짐은 그곳의 마지막 편집장이었던 김슬기의 앞선 역사의 불행이 반복된다는 인상을 주는데, 곧 그가 편집자로 있었던 계간 《연극》이 연극 평론가 김윤철의 부임 이후로 폐간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역시 편집위의 의지로 이뤄질 수는 없는 부분이다. 사실 연극인보다 이 계간 《연극》의 존재가 개인적으로는 더 크고 안타까운데, 거의 유일한, 유일했던 연극 담론의 어떤 정수들이 이 책을 통해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이 잡지는 분명 참조할 여지가 있었다(그리고 이후로 반복할 것이지만, 어떻게 보면 우린 가치 있는 것들의 사라짐을 집단적으로 ‘주목’하지 않으면 그것이 있었던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시 말하면 그저 어떤 하나의 일에만 일시적으로 열광할 뿐이다). (가령 당시 새로운 극장장과 함께 이것의 사라짐을 인과관계로 엮는 게 자연스러운 추정이라면, 아니 그것 외에 가능성을 추정하기 어려운 것이라면,) 이른바 연극 평론을 하던 이가 극장장의 위치에 올랐을 때, 자기 정체성, 직업에 대한 가치 하락의 모순을 스스로 선취하는 행태를 보인 것인데, 그는 그로써 계간 《연극》의 존재에 앞서 그의 지난 삶과 이후의 삶을 부정한 것 아닌가―사실 이 부정은 자기 배반이라기보다 평론가의 사후적이고 부차적인 지위, 위상에 대한 연속적인 이행의 차원이 더 클 것이다.
극장은 극장 안의 물리적인 것들만을 다루어야 하는가, 극장은 담론을 생산하며 그 장소성을 확장시킬 수 있지 않은가. 아니라면 모든 걸 예산 문제와 분배의 차원으로 환원시킬 것인가. 예산이 모든 실재의 터전을 실질적으로 구축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비평의 기능이 누군가의 대가 없는 후원으로만 가능한 것이라면, 곧 비평의 자율성만이 곧 비평의 본질을 완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면, 연극인은 분명 이상적인 터전이었던 것이 맞다. 기억하는 바, 증언하는 바에 따라 재단 관계자의 호의적이고 정성 어린 행정적 도움 아래, 연극인은 치우친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후원의 조건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라는 지원 시스템의 범주 아래에서 처리될 수는 없는 부분일까―‘비평이란 섹션을 작업의 다른 범주로서 인정하고 시행하는 건 불가능할까.’. 이 부분에서 민관 거버넌스라고 하는 협의체 구조의 창의와 행정의 분리된 만남은 그 지위가 역전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행정의 힘이 과연 어디로 투여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함께 가져온다.
하지만 행정은 그 딱딱함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힘껏 투여해야만 하는데, 그것은 어떤 언어, 체계, 자신의 시스템, 관성적 매뉴얼을 달성하기 위해서만 그리하여 독립된 각각의 구역‘들’을 철저하게 분절함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것처럼 보인다.
남웅
남웅, 「[미술 평론] 급진적 예술 실천을 위한 기억의 훈련들」, 2025, 행성인 웹진. 출처= https://lgbtpride.tistory.com/m/2064. 최근에 불거진 또 다른 사건은 남웅 평론가의 원고 4 를 자료집에서 뺀 서울시립미술관의 행위에 대해 집단 성명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는 일로, 보통 자료집이 그 안에서 비평의 우위를 평가하기보다는 양적 균등함을 충족하는 차원에서만 형식적으로 편집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이는 꽤 의외의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곧 행정이 자신의 편의적이고 공정한 룰의 규약을 스스로 기각하고 더 많은 에너지를 투여하는 기괴한 일로, ‘윤석열’에 대한 (비판적) 언급이 있었다는 것이 그 원고 검열의 이유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업을 담당하는 일개(?) 직원이 그러했을 수 없다는 합리적 추정과 함께 그에 대한 일차적 해석은 윤석열이 퇴진한 마당에 윤석열 라인이 미술관에 있어 그것을 거부했다라기보다 어쩌면 정부 기관의 연장선상에서 그 장의 추락은, 추락한 위신은 차마 보기에 민망하고 입에 담기 그러며 자기 부정을 한다는 생각, 곧 정신분석적 거부 혹은 기피 기제의 발로라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이런 느낌적 느낌을 뒤로 하면, 어쨌거나 중요한 건 그 글을 거부한(?) 이에게는 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뚜렷한 구분이 남웅의 글을 가로지르고 있으며, 따라서 후자가 전자를 침투해 오자 그 심급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는 것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그 전시 자체가 정치적인 것과 미학을 뒤섞는 걸 지향하는 전시였다는 것이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강에 스며든다》 포스터 이미지. 출처=https://sema.seoul.go.kr/kr/whatson/exhibition/audio_guide?exNo=1375994&audioGuideNo=1376014&photosketchNo=136219¤tPage=1&glolangType=KOR 그리고 추후 공개될 이 전시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강에 스며든다》(2025,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 대한 글에서 다루는바, 그 제목은 묘한 정신분석적 징후를 드러내는데, 곧 ‘다른 강’이라는 사회라는 타자성에 직면한다기보다, 그 강에 스며드는 주체의 이유 없는 무의식적 제스처에 방점을 찍고 있다, 또는 그 타자성을 정신분석적 차원에서 직조해 내고 있다. 곧 이는 운동의 주체를 명시하기보다 어떤 것을 심미화하고(그것은 왜 ‘다른’이라는 말이 붙는가?) 그 대상에 침잠하는 주체의 상태, 또는 그 운동을 지향하기보다 간접적이고 수동적으로 위치할 수 있음으로써 주체의 심리 안에 머무를 수 있는 상태를 강조한다.
이를 사회적인 것(대상)과 미학적인 것(주체)의 일정한 유격을 둔 분리로 갈음해 본다면, 이 사회적인 것이 미학적인 것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을 때, 바로 남웅의 글에 현재의 더러움, 지저분함, 왜상이 끼어들었을 때 그 ‘우리’가 다른 강에 스며드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젖어버리는 형국을 맞게 되었던 것 아닐까. 곧 마치 우리가 그 강에 발을 담그는 것이 아니라, 스며드는 것으로 수동적으로 임하는 주체의 위치, 마치 우리가 아니라 그 강이 우리에게 스며드는, 우리에 방점이 찍히는 이 문장에서 그 물이 실재로서 우리를 침범하며 우리를 완전히 젖어버리게 한다면? 이 문장 안의 주체는 그곳으로부터 불쾌함을 맞고 황급히 도망쳐 나올 것이다.
사회는 안전하게 미학적인 것 안에 머물러야 한다. 그것은 아름답되 불쾌한 것이어서는 안 되고, 그러니까 이전의 대다수의 글들이 그런 것처럼 미학적 용어로 갈음될 수 있어야 하되―곧 작품의 심미적인 것과 마주하며 그것을 포장할 수 있어야 하되―, 사회적 차원의 실재로서 튀어나와서는 안 된다, 아마도 이 불쾌함과 제어 불가능한 용어, 거리 두기가 불가능한 단어로부터 발작 버튼이 눌렸던 건 아닐까.
그런데 묘하게도 전시에서는 이 사회적인 것이 미술(계) 안으로 바로 침투하며 그것으로 정의될 수 있느냐를 문상훈 작가의 영상 작업 〈전시 《레즈비언!》에 대하여〉(2019.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0분 52초.)가 묻고 있다는 것인데, 이 자기 지시적으로 묶이는 질문, ‘레즈비언 미술’이 레즈비언의 세계를 다루는 미술(만)이 아니라 레즈비언의 미술(로 인정되지 않았던 역사의 파편적 증거들 모두)로 규정하려는 이 전유와 침범과 도발의 질문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전복의 질문이 다른 강과 우리의 구분을 파기하며 그 위치를 역전하려는 질문으로 읽히지는 않았던 것일까.
SeMA-하나 평론상, 결국 서울시립미술관이 수여한 이 상의 공동 수상의 주역으로서 남웅은 처음부터 미술평론가이면서 인권운동가였고, 그 반대이기도 했다. 곧 서울시립미술관의 입장에서는 남웅의 미술평론가로서의 하나의 지위만의 인정, 곧 남웅은 미술평론가이지만 (알고 보면) 인권운동가이기도 한 인물이었어야 했던 것일까. 이는 남웅의 소개가 그가 두 존재의 몫을 모두 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의 관점에서 포장되거나 불충분하게 둘 다 수행할 수밖에 없다는 전문주의의 관점에서 비판되거나 간에, 그 모두에서 드러나는 어떤 편견의 연장선상에서 읽힐 수 있는 부분일까.
랑시에르의 (통상적인 사회의) 분할을 가로지르는 사유, 가령 (대단히 읽기 힘든 책이지만) 『프롤레타리아의 밤』의 역사의 추적으로부터, 노동자로서 놀랍게도 지적 탐구를 할 수 있는 어떤 존재는 노동자이기에 노동자로서 지적 탐구를 하게 되는 존재로 변환된다. 미술평론가와 인권운동가는 분할되기보다 서로에 대한 서로의 지지체가 되는 데 가까운데, 그 둘은 교차하며, 예컨대 ‘낮’의 활동은 ‘밤’의 사유로 연장되고, 밤의 그 활동은 낮의 사유로 이어진다. 5
“하여 예술가는 운동과 같은 방향을 향하면서도 그것이 운동의 주변을 맴돌거나 평행선을 그리며 예술 실천이 항상 사회운동과 같이 기능을 가질 수 없음을, 그럼에도 이를 통해 투쟁의 이전과 이후를 마주하고 열어낸다. 그는 예술의 무력함을 감각하고 현실의 견딜 수 없는 부정성을 안으며, 과거가 되어버린 사태에 뒤늦게 찾아와 미래로 가장 먼저 도약한다. 그는 재현적 파국으로부터 기회의 틈새를, 잔존하는 빛을 찾는다.”
그가 검열된 원고에서 쓴 이 문장은 그가 의식했든 안 했든 간에, 예술가보다는 오히려 남웅 자신을 더욱 지칭하고 있지 않은가.
결과적으로, 이 글은 그 기각의 이유인 ‘중립적이지 않다’기보단 불안정한 것에 가깝다. 이 글은 사건의 영향 혹은 효과 아래 있다. 거꾸로 말하자면, 거리를 둘 수 없는 채, 두지 못한 채 사건의 잠재된 힘을 불러오고자 하고, 기어코/도리어 그로부터 글을 연장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그에 대한 예술가의 지위를 (사건에 대응하는, 사건을 현실로 끌어오며 연장하는) 일정 정도 매개자/대리인의 입장에서 (그의 입장을 거기에 전치시키며) 접근하게 되었다고 보인다.
사건의 자장과 사건으로부터 예술로 돌아오는 두 단락으로 분기되는 이 글의 불안정성에서, 전자가 문제라면, 곧 이를 중립적이지 않음으로 돌리려면, 우리가 사건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거나 흔들리지 않으며 성찰하지 않을 수 있는, 인간적 차원을 소거할 수 있음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거꾸로 그 단서를 제공하는 일은 해석, 수용되기 전에 기각, 배제되어야 한다. 비평은 시간성을 소거한 영원한 진리의 외양을 갖추어야 한다. 이후 인용된 부분은 모두 인미공의 마지막 전시 《그런 공간》(2025, 인사미술공간.)의 서문에서 발췌한 부분들이다.
예술을 근거로 이 당대에 대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거꾸로 당대를 예술을 통해 재확인할 수 있는 이 비평의 잠재성 혹은 잠재성으로부터의 비평은 왜상적 기피, ‘거부’에 의해, 그 왜상성이 갖는 당대성의 상징으로, 전시의 끝나지 않은 생명력으로, 덜컹거리는 전시의 가상적 생명력을 실재의 차원으로 마침내 변환할 수 있게 되었다―마치 ‘연극인’의 소거가 연극인의 혁명을 초래한 것과 같이.
인미공
인사미술공간 홈페이지 캡처. 출처=https://www.arko.or.kr/insa/ 마지막으로 언급할 사건은 인사미술공간(이하 인미공, 그러나 이는 관습적으로 굳어져서 ‘인사미술공간’ 전부로 부르는 경우는 사실상 거의 없다.)의 운영 종식으로, 인사동 시대의 화려한 전성기에 지근거리에 자리하며 젊은 작가들을 불러 모았던―“교류나 협업의 장”―, 이미 2020년 20주년을 맞았던 인미공은 《그런 공간》에서 과거형으로 자신을 호명하게끔 하며, 그 끝을 맺었다. 아카이브 전시, 그리고 1층의 전시 형식에서 연표, 분류된 연대기는 그 긴 역사에 맞춰 가능했고, 또한 필연적인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인미공은 미술 바깥의 역사와 마주해 왔고, 동시에 미술의 역사 속에 있었다. 온전한 화이트큐브도 아니고, 블랙박스도 아닌 이 모호하게 다룰 수밖에 없는 인미공은 이 전시를 통해 암실의 지하, 어수선한 실내 공간의 1층, 기둥으로 가로막힌 2층, 좁고 제약된 3층 사무실로 이뤄진 건물 전체를 활용했는데, 그야말로 인미공 자신을 벌거벗기며, 제약 없는 전시 형태를 구성하도록 했다.
공간은 기획을 통해 작가를 초대하며, 이 초대는 매번 새로운 차원으로, 새로운 존재로 갱신되기 마련인데, 그 초대가 가진 열린 형식의 차원은 특히 인미공에서는 열린 차원의 형식을 발명하는 초대에 가까웠다는 생각이다. 곧 이 특정 공간의 주형성, 분위기, (그로 인한 또는 그로부터의) 탐색과 리서치의 기조가 인미공(만)의 형식을 이뤄 왔는데, 이 공간의 다루기 어려움, 실재성, 물질성은 잔여의 기억으로 처리될 수밖에 없었고―“경험한 이들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말해지는 ‘그런 공간’”―, 이전 전시‘들’을 불러오거나 또 다른 공간을 상상하는 차원에서의 전시―“방향성과 역할을 끊임없이 갱신해야 했던”―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 인미공에 대한 일종의 개인적인 잠정적 가설이자 추론인데, 그러니까 공간의 잔여적 차원은, 장소 특정성은 다른 출발과 시도의 여정으로 연결되(어야 하)며, 인미공에 대한 기억과 연결 짓자면 아카이브 전시들로 연장될 수 있는 주요한 어떤 물리적 조건의 하나라는 것이다―이러한 조건 아래, 결코 작품만으로, 작가만으로/작가 스스로에게 수렴되지 않는 전시들이 출현하며, 작가의 연대기가 아닌, 장소의 연대기를 가늠해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장소 특정적 차원을 환기하는 조각들이 마지막 전시의 작품에서 특정돼 감각되는 부분이기도 한데, 장소에의 실험을 장소의 실험으로 바꿔 본다면, 그 실험의 결과로서 인미공은 항상 전시의 도록을 만들어 왔는데, 이는 작가에게 환원되는 게 아니므로 기념품이나 선물보다는 연구 차원에서 기록 차원의 성격이 강하다―거칠게 말하면, 이는 전시가 아닌, 장소로 환원되어 왔다. 거기에 (디자인) 형식 실험의 차원에서 도록의 특성도 갱신되어 왔다.
인미공, 《그런 공간》 전시 포스터. 인미공에 참여한 큐레이터 9명의 콜렉티브―아마도 이로 인해 임시로 결성되고 해체 순서를 기다리며 대기할―인 아트-토커는 인미공의 역사를 몇 개의 범주로 반추하는데, 여기에는 희미하게나마 그 역사를 (거대한 것으로 재)목격하는 이들의 존재들의 성장 서사가 도착되어 나타나는 것처럼도 보인다. 전시의 흥미로움은 공간의 종료와 맞물려 그 즐거움을 분쇄하는데, 기억과 장소, 그리고 메타 미술적 차원에서 공간의 리좀적 연결 가능성은 시간이라는 불안정성의 똬리 아래 먼저 종료되고 있기 때문이다―반대로 공간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기초로 그 실험 자체가 더 가속화되는 측면이 있다.
박보마 작가의 〈프린트 숍: 단어, 개념, 이름 그리고 초상들〉(2025. 극, 각본, 종이 위에 레이저 프린트, 인쇄기, 오브제, 기성향수, 배우들)의 경우, 동명의 글 「단어, 개념, 이름 그리고 초상들」에 온오프라인으로 접속이 가능했는데, “2000년부터 2025년까지의 ‘인미공’과 관련된 전시, 워크숍, 행정, 미디어, 사업보고서 등의 여러 자료에서 총 550여 개의 이름과 400여 개의 단어들을 수집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핍진성을 띤 픽션으로, 미술계의 단면을 정신분석적으로 해부하게끔 하는 데 가까운 이 실재의 흔적을 가져온 가상의 희곡은, 유기적인 연결 대신에 계속 달라지는 파편적 조각들의 짧은 30개의 막으로 이뤄져 있으며, 총 83개의 등장인물이 있다고 명시되는데, 하나같이 역할이 비어진 채 그 역할에 대한 가상의 관객을 특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띤다. 따라서 이 연극은 이 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다고 해도, 그 공간을 초과하며, 공간의 역사가 지닌 방대함을 물리적 공간의 제약을 무모함의 규칙과 방만함의 시점들로 갈음하며, 공간을 역사적으로 또 물리적으로 지시하는 기이한 정신분석적 전이―그러니까 그 완결을 다시 그 시작으로 보내며 결코 종결되지 못하는 종결―로 볼 수 있을 것이다―이 희곡은 애초에 가상임 직함의 사실을, 결과적으로 불완전한 서사를 위한 조각들의 동등함을 내세운다.
결과적으로 인미공 자체의 물리적 공간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 그 기억의 장소로서 정서 역시도 투영되지만, 이러한 실험들, 아카이브, 연구, 작가의 다른 시도를 자유롭고도 방만하게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대안공간’이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됨을, 그리고 더 명확하게도 이미 종식되었었음을 뒤늦게 고지하는 것이라면, (그래서 과거의 끝이 도래하는 것 같은 이 환상은) 이는 물론 결코 이 장소가, 기억이, (오래전의) ‘대안’이 어떻게 대체되거나 옮겨질 수 있을지, 또는 반복 (불)가능한지에 대한 부분까지는 적어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런 공간’이라는 투명하고도 무심한 마지막 전시의 제목은 현재형으로 이 공간이 지속될 수 있을 것 같은 헛된 희망, 박보마의 글의 일부를 (탈문맥화하여) 인용하면, “오늘도 형태를 재현하며 존재해야” 할 것 같은 그런 희망을 준다.
엄연하게도 “인미공은 연속되면서도 완결되지 못한 논의들을 지나 이제 과거의 한 축으로 자리하게 되었다.”라는 문장은 주체가 빠진/주체가 빠져나가는 문장이다. 따라서 이 문장은 “인미공은 (‘무언가/누군가에 의해’) 연속되면서도 완결되지 못한 논의들을 지나 이제 과거의 한 축으로 자리하게 되었다.”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는 그랬던 공간으로 미래 시제를 선취한다. 따라서 “인미공은 연속되면서도 완결되지 못한 논의들을 지나 이제 과거의 한 축으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오직 그 바깥의 관찰자의 시점에서만 가능한 문장으로서. 긴 역사의 청산은 그 역사와 결부된 모든 이의 몫이기도 하다, 이 문장은 과도한 것일까. 곧 역사를 누가 삭제할 수 있는가, 명령할 수 있는가, 멈추게 할 수 있는가. 행정의 지위는 그 역사를 깡그리 소거할 수 있는가.
역사의 (사라지는) 의미 속에서
이로써 연극‘인’의 어떤 범주를 이념을 이상을 설정하는 연극인에 대한 통섭적 환원과 결과적인 배제를, 사회를 예술로써 탐구하며 예술과 사회의 긴장 영역을 운동의 연속선상에서 어쩌면 글로써 실천하는, 사회와 예술이 결코 두 개의 범주로 분할되지 않는 이로서 남웅(의 원고)에 대한 기각을, 기이하고도/기이하게도 오래 지속된 인미공의 우연한/필연적 (행정의 산물로서의) 종료를, 무리하면서 하나의 선상에서 다루어 보았다. 이것은 행정이 모든 걸 무리해서 결정한다는 그리고 그로써 만들어지는 바깥은 그 내막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라는 닫힌 환원의 결말에 대한 대응이다. 개인적으로는 기능하지 않는 자, 곧 그 사안이 현실적으로 심각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의미를 저울질하고 가늠하는 불투명한 관찰자의 시점을 자처해 왔고, 이 세 개의 대상은 적어도 나에게(는) 의미(의 역사)로, 그리고 2025년에 벌어진 그것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필연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과도한 행정이 불러온 예술계의 어떤 시대착오성의 징후들로 읽히기 때문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 1. 그리고 이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 7월 31일, 지금은 다시 불이 점화되고 있다. [본문으로]
- 2. 그리고 연극인의 네트워크적 발화, 편지쓰기의 형식이 강렬하지만 비교적 소수였다면, 많이 참조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인 연극 공연에 대한 비평들에서 실천되지 않은 바에 대한 개인적 아쉬움의 소회를 이 틈에서 잠시 말해 보자면, 곧 심각한 비판이 가능한 것을 피하는 것, 그리하여 좁혀진 대상을 보았음에 따르는 자연스러운 합목적성을 부정하기보다 오로지 작품만이 그 의제의 첨예함, 담론의 발명 차원을 설명적으로가 아닌 감각적으로 그리고 새로운 경로로 열어줄 수 있다는 지점에서, 비평에 도달하기에는 어떤 “리뷰”의 경우에는 무언가 너무 평범한, 마치 그것을 그 자체로 긍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작품은 그 의제를 다루고 있음만으로 긍정되기보다 그 의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더 나아가면 그 의제 자체를 찾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의 차원에서 면밀하게 검토되며 투명하기보다 철저히 기능적으로 그리고 작품‘들’의 지난/도래하는 맥락 아래에서 배치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본문으로]
- 3. 일종의 정동을 띤 공동체의 이상을 그리는 차원에서, 가령 박수진 배우의 「틈」(2023)이라는 글을 보자. 이는 자신이 속한 집단 내에서 그 바깥으로의 시선, 연대, 새로운 유대 가능성을 자신이 기본적으로 자리한 배우의 위치의 물리적 재분할을 통해 찾고, 현재의 집단 너머, 이 이상적 공동체에게 다시 발신한다, 존재와 다른 존재와의 묘한 틈을 찾아내는 가운데. https://www.sfac.or.kr/theater/WZ020600/webzine_view.do?wtIdx=13165. [본문으로]
- 4. 남웅, 「[미술 평론] 급진적 예술 실천을 위한 기억의 훈련들」, 2025, 행성인 웹진. 출처= https://lgbtpride.tistory.com/m/2064. 분명 이 글은 사회적인 것의 초과됨이 일상을, 남웅을 지배하던 시점에 쓰인 게 맞다. 그뿐 아니라 이 글이 그 사건에 대한 충격을 해소하지 못한 채 또는 그 해소하지 못함에 대응하기 위해 쓰였다는 인상을 준다. 사회적인 것에 대해 대응하는 주체의 특수한 지위는 이후 그의 관찰에 따라 다른 사회 참여적 예술가들의 지위로 전이된다. 그럼에도 곧 이 둘의 사회적인 것이 시차를 보이며 뒤집힌다고 해도, 결정적으로 그 둘이 사회적인 것과 아닌 다른 것으로 또는 미학이 다룰 수 있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의 주제로 분할되는 건 아니다. [본문으로]
- 5. 이전 참여한 전시의 평론을 남웅 평론가에 부탁한 적이 있는데, 인상적이었던 건 그가 쉬이 봉합의 기술을 선사하지 않았다는 것, 곧 주체의 대상에 대한 간극을 들여다보려 시도/노력했다는 점이다. 곧 마스터피스로서 작품을 완성하는, 곧 이상적이고 균열 없는 전시 혹은 작품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 주체를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평론(가)의 통상적 규약을 택하는 대신, 그 대상으로부터 주체 스스로의 균열을 드러냄으로써 그 주체 스스로가 작품과 함께 변화하며 열린 과정 안에, 다른 담론의 가능성과 더불어 작품의 다른 가능성에 대한 작은 틈새를 노정하며 그 전시를 두었다는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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