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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진새 작/연출, 〈시스터 액트리스〉: 미래를 위한 역사로의 잠입
    REVIEW/Theater 2026. 1. 19. 20:31

    정진새 작/연출, 〈시스터 액트리스〉포스터.


    ‘중세 시대의 수도원에 위장 전입한 로봇 수녀가 있었다면’이라는 가정으로부터 〈시스터 액트리스〉는 출발한다. 이 가정은 극에서도 하나의 모티브로서 그 주변을 맴도는 네 명의 수녀와 한 명의 이야기꾼을 통해 보존된다. 〈시스터 액트리스〉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실제 로봇은 등장하지 않으며, 그것은 거꾸로 로봇 서사를 재현할 임무가 그 주변에 자리한 수녀들에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로봇과의 관계 속에서 변화되는 캐릭터의 양상과 함께 주어지며, 따라서 로봇을 제외한 여타의 존재들은 상호 관계적인 변화의 흐름 속에 유동적인 실체로 자리하는 한편, 그 관계의 이전을 통해 초점은 그들 자체로 옮겨간다. 곧 “세인트스완”으로 불리는 액트리스원(“시스터 액트리스”)은 이야기 안에 존재하되 등장하지 않는 대상으로 남되, 서사를 재구성하고 매개하는 수녀들의 행위 안에서 계속 나타나며, 그들의 집단적 성장의 고리를, 그리고 중심에서 모든 이야기를 완성한다. 

    여기서 액트리스원, 곧 부재하는 존재는 가정법의 효과를 보존한다. 어쩌면 중세나 그 이후의 극장과 연극 모두, 로봇과 같은 테크놀로지 대신에 인간 배우들의 힘과 정동으로 채워진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는 건 중세와의 연속성을 가져가고 중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필연적인 것으로 만들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가정법의 영역을 계속해서 따르며 재현의 차원을 가미하지 않는다는 건 상상의 영역, 극작의 언어가 계속해서 전진하며 그 묘연한 서사가 가진 동력을 계속해서 추출할 수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로봇 수녀의 중세로의 잠입은 페미니즘이 닿지 않는 시대를 향하는데, 페미니즘의 언어가 통할 수 없는 막다른 지점에서의 빈곤한 상상력의 증폭을 꾀함은 중세가 그것이 온전히 위장, 가장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로봇의 존재는 지난날의 언어로 재현할 수 없고 재현하기 까다롭다. 그러니까 반면, 이는 중세의 관념 아래에서는 그 신비한 것을 지칭하고 감당할 수 있는 악(마적인 것, 혹은 신의 반명제적인 것)이라는 개념이 성립한다. 여성의 권리가 주창될 수 없는 시기라는 점에서, 여성들만의 공동체가 여성 로봇에 대한 관심으로 향하는 건 불공정한 신의 권능에 대한 해석적 접근을 뒤집기 위함이라 것이다. 

    〈시스터 액트리스〉는 중세의 시간에 틈입하고 중세의 언어에 기식하며 중세를 전유하며 돌파하기에 이른다. 중세와 미래를 연결하여, 시간을 가로지르고 도약한다. 과거에 갇히기보다 현재의 한계를 적시하며, 미래를 여는 하나의 입구를 발견한다. 극 속에서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로봇이 인간의 죄를 대속하는 예수의 자리를 상정하는 것과 같이, 여성이면서 타자인 시스터 액트리스가 보여주는 건 중세에서의 신에 대한 종속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일하는 신의 형상이 노동에서 해방된 인간에게 무한한 시간 속에서 예술을 할 수 있는 권능을 준다는 것이다. 

    카톨릭 과학수사대(CSI) 요원으로 밤베르크 수녀원에 잠입한 까탈레나 수녀(조명진 배우)의 억견을 버리고 과학적 진리를 수호하고자 하는 모습에서 종교적 억견이 과학적 진리를 대신하는 당대에 맞선 비판적 시선을 엿볼 수 있다면, 예술을 습득하고자 수녀원에 온 힐데(고다연 배우)의 신을 위한 재현적 수단으로 자리하는 예술로부터 예술 그 자체의 자유로운 권능을 수호하려 한다는 점 역시 중세라는 클리셰를 구멍 내려는 한 시도이다. 이는 세인트스완의 연극이 현실로부터 갖는 자유, 현실의 재현이 아닌 고유한 표현 역량을 가진 것임을 시대적인 한계 속에서 죄를 수여받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수녀 마리아 역의 배우 김이현은 묵언 수행을 하는 마리아의 모습에 비해, 극을 여닫는 역할을 하는 내레이터 샤일록에서 활기차게 단독의 무대를 이끌어가는데, 이는 후자의 결정적 효과를 위해 전자의 소극적 역할을 일부러 선택하는 것으로 보인다―말을 하지 않음은 역할의 존재감으로 직결된다. 샤일록은 〈시스터 액트리스〉를 일종의 이야기의 이야기, 이야기에서 파생된 이야기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그 자신이 익숙한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이라는 다른 이야기의 부분으로 자리하는 인물이며, 중세의 한 현실을 재현하기보다는 중세를 인용하고 참조하며 그 시대 양상에 근접해 가는 극의 특징과 같이 순수한 매개자로서 샤일록의 성격과 배경에서 벗어난다. 그가 선택된 이유는 중세 이후 르네상스의 시대에 출현하는, 자본이 무한정 증식하는 자본주의의 단초를 간직한 서사의 일단을 그가 체현하기 때문이며(반면, 그러한 현재를 관통하는 시대적 차이가 중세로 어떻게 향하는지는 미지수이기는 하다.), 중세 직후에 자리함으로써 중세와의 거리를 두고 중세의 연장선상에서 중세 이후의 현재로 나아가며 이야기를 건네고 매개할 권리를 획득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리대금업자로서 그가 가진 악랄함은 “얍삽상인”으로 명명되며 이야기의 무게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카탈레나와 함께 잠입한 같은 신분의 이브(박수빈 배우)는 그 의중을 읽기 어렵다. 이는 그의 시선만이 현실을 제대로 읽고, 고스란히 파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오로지 그만이 천국의 입구에서 거절당하는데, 그의 죄는 다른 이들과 달리 자신에 대해서도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서는 아닐까. 〈시스터 액트리스〉는 시대를, 과거를 미래의 모습으로 매개하기 위해, 등장하지 않는 세인트스완을 더하기 위해 인물들을 그 자체의 고유성을 되찾기보다 상황에 따라 변화하며 그 변화의 힘에 휩쓸리는 비정체적 존재로 자리한다. 이는 다분히 기능적이고 또 무력하다. 역동적 이념의 힘이 그들의 신체를 경유한다. 인물 간의 갈등보다는 인물과 사회, 존재와 시대, 이념과 이념의 대립이 강조된다. 이에 따라 그의 지옥행 미래에 대한 미스터리는 풀리지 않고, 그를 제외한 다른 이들이 하나의 몸으로 미래를 향해 전진한다는 운동 차원의 힘으로 환원되어 버린다. 

    〈시스터 액트리스〉는 낙타가 바늘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불가능한 상상력을 극단적인 차원에서 예외적 존재인 세인트스완을 비롯한 수녀들의 이야기와 입장으로 펼쳐내지만, 시대가 갖는 명확한 한계는 단두대나 화형과 같이 이들의 삶에 작용하여 파국적 현실로, 그리고 SF적 서사의 증폭을 통해 앞서 언급한 시대를 가로지르고 통합하는 도약으로 곧장 연결된다. 이는 SF적 봉합의 어떤 손쉬운 선택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도리어 피해가기 위함인데, 그것은 그러한 초재적인 역량을 지닌 존재가 살아 있다면, 비판적 현재의 연장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점에서의, 곧 SF를 성립시키는 현재의 시선을, 현재의 불가능성으로부터 가능성을 추출하는 SF의 이념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결과적으로, 〈시스터 액트리스〉에서 불가능한 가능성의 역사로 잠입함은 역사적 현실의 공고함을 지시하기 위한 상상의 일시적 성취를 보여주는데, SF의 장면이 현실로 봉합되어 가는 와중에 또 다른 틈새를 찾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이야기는 현재로, 미래를 향한 현재의 우리에게 주어진다. 따라서 ‘상상’은 과거 그 자체보다는 상상할 수 없는 미래를 예기하고,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진단해 보기 위함이다. 과거에 불시착한 미래는 미래가 들여다보는 현재와의 격차를 이야기한다. 그 격차 속에서 우리는 미래와의 틈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공연 개요]
    일시: 2024년 8월 29일(목)~9월 1일(일) 목금 오후 8시 / 토 오후 3시, 7시 / 일 오후 3시
    장소: 예술공간 혜화 (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로 10-3 성인빌딩 지하)
    관람 시간: 90분

    제작: 극단문
    주최/주관: 페미니즘 연극제 운영위원회
    후원: 한국여성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 창작주체(창작공간)

    ○ 출연진 및 제작진 소개

    출연: 고다연, 김이현, 박수빈, 조명진
    작/연출: 정진새
    드라마투르그: 양근애
    무대/의상 디자인: 임은주
    조명 디자인: 이혜지
    안무: 윤상은
    노래 지도: 이빛나
    조연출: 윤현경

    접근성 매니저: 김민솔
    수어 통역: 김현숙, 명혜진
    자막 디자인: 김민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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