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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 매칭 프로젝트 제26회 생생 춤 페스티벌》(240922) 리뷰REVIEW/Dance 2026. 1. 19. 20:51

김유미×오르난댄스컴퍼니의 〈Childlike〉는 무용수들이 지닌 젊음의 특징을 작품의 형식으로 고스란히 전환하는데, 패션은 그 물리적 특징과 차이의 기호학으로 적용된다. 파란 정장에서 하얀 티셔츠로의 변화는 해방과 일탈의 의미로 부상한다. 상의를 벗어 던지고 베개를 던지고 환호성을 지르며 뛰쳐나오는 모습은 싱그러움으로 가득한 공간을 만든다. 말하듯 표현되는 보컬 아래, 정장의 움직임들이 세련됨의 기호를 추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면, 전환의 구문은 앞선 시간을 손쉽게 전복하고 탈환한다.김민×KARTS무용단-Choreography의 〈BARCODE〉는 앞서 다룬 바 있는 작품으로(https://www.artscene.co.kr/1923), 이번에는 그 길이를 줄여서 진행되었다. 대중을 상대로 한 서커스의 코드는 눈속임 같은 전환과 발 빠른 움직임과 행위 등의 진행에 있다. 여기서 안무는 움직임 자체에 있어 무거움을 의미로 전환하는 대부분의 안무 지형에서 이탈하는데, 그것이 우려되는 건 순간적이며 휘발되는 움직임이라는 전제이다. 곧 오래 갈 수 없다거나 지루함과 허무감이 재미를 재탈환할 것이라는 것이다.
속도와 소진, 구축되지 않는 몸짓들이 만드는 텅 빈 공간의 실재, 행위자의 행위 양상으로만 점철되는 무대라는 것은 〈BARCODE〉에서 표면적으로는 적어도 진실인데, 음악적 힘은 이를 은폐한다. 심층은 이러한 행위가 순전히 기능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곧 행위는 BARCODE, PRODUCT라는 기호를 횡단하며 가시화하는 전략이 된다. 진리는 뒤집힘의 마술에 대입되는 두 단어의 동등함을 전제로 한 끊임없는 변환에서 유추되는 자본주의적 이념으로 적시된다.
최호정×The Park Dance의 〈PEAK 2.0〉은 포장지 구겨지는 것 같은 노이즈와 함께 무대 한쪽으로 치우친, 뒷모습의 선 채 꿈틀거리는 여자와 그 앞에 엎드린 남자의 형상으로 시작되는데, 수직적 낙차를 만드는 둘의 대비는 ‘정점’이라는 제목의 상징적 표지를 나타내는 예외적 순간으로 기입될 것이라면, 이후 곡소리와 같은 사운드와 함께 단체의 움직임은 집단적 트랜스 상태를 표현하며, 하나의 이미지 혹은 이데올로기에 복속되는 집단의 성질을 일사불란한 일원화된 기표가 주는 쾌감으로 변환시킴으로써 현대 사회의 영혼 없는 세계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이는 다시 앞선 장면을 재점화하는 것으로 변화되면서 나르시시즘적 면모를 풍기는데, 구조적인 수직성, 곧 정점 이전과 이후의 낮거나 더딘 밀도의 힘은 개별자의 태도보다는 그 무의식 자체를 보여주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우석×SAC DANCE COMPANY의 〈광대 이야기〉는 집단적 질서를 구가하지 않는 예외적 작품으로, 무질서한 배치, 이미지의 충돌과 혼재됨을 기초로 한다. 말타기를 연상시키는 스텝을 기초로 한 움직임은 헐거운 신체 양상을 만드는 한편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충동도 구성한다. ‘인물’들의 옷 역시 헐렁한데,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의 차원과 의상이 주는 분위기는 다분히 중세적인 전형을 만들어낸다. “광대”는 무르고 비실거리고 구축되지 않는 이미지로부터 자유로움과 느슨함, 무질서함의 가치를 추출해 낸다. 우화적 이미지는 그같이 정위되지 않는 캐릭터들의 차이에서 비롯되며, 상의의 옷에서 연상되는 발레리나처럼 사람들 무리의 끝에서 등장한 여자의 긴 치마는 아이러니하고도 다분히 희극적이다.
강혁×블루댄스씨어터의 〈Desire for movement〉는 현대무용의 어떤 대주제의 범주에 있어 개인의 내면에 대한 조명과 현대 사회의 실존적 몸부림 사이에서 개체적 본능에 대한 탐구를 향하면서 제3의 경로를 노정하는데, 정서보다 정동을, 개인보다 집단 무의식을 좇으면서 다분히 추상화된다. 푸른 빛 아래 실루엣으로 선 집단의 까딱거림으로부터 시작된 작품에서, 마침내 봉인 해제가 되고 나서 뛰어다니고 한 발로 중심을 잡는 과정과 같은 행위의 연장은 여전히 자유로움보다는 집단적 의식의 상태를 가리키는 데 가깝다.
파랑색은 분위기를 통해 주제를 형상화하는 매체가 되는데, 마지막 피아노 건반이 내리깔릴 때 발생하는 정동은 그 낙차의 물질감과 함께 싱그러움의 정서이다. 이어진 움직임은 얽힘의 이미지들을 만드는데, 팔을 뻗고 두 다리를 내리꽂는 동작들에서 자기표현의 열망을 엿볼 수 있다. 여기서 집단적 힘의 사회는 개체의 공통된 의식을 드러내기보다 공통된 정서가 가능해지는 경계의 영역으로서 작동한다.
김동규×밀물현대무용단의 〈Heyecan〉은 마리오네트 같은 움직임이 특징인데, 집단 의식적 질서의 힘은 한층 더 강력하게 작동한다. 좌우 위빙과 같은 기초 동작의 반복적 수행이 주는 집단적 움직임은 초과되고 압도되는 형상을 구축한다. 〈Heyecan〉은 집단의식에 대한 손쉬운 동화작용을 전제하는데, 이는 자유와 규칙의 상관관계를 주창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에 대한 조종, 지배의 힘은 집단적 도취와 몰입을 향하는데, 이는 유연함과 힘의 매끄러운 질서를 구성하며, 강력한 이미지의 힘을 적시한다.
김민관 편집장'REVIEW > Danc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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