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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Y, 〈디사이딩 세트〉: 배구라는, 네트라는 은유REVIEW/Theater 2026. 4. 10. 21:35

극단 Y, 〈디사이딩 세트〉©유경오[사진 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상동). 극단 Y의 〈디사이딩 세트〉는 유영여고 배구부의 선수들이 배구를 하며 겪는 저마다의 불안과 고민을 보여주는데, 그들의 현재는 프로팀에서 신인 선수로 지명(드래프트 draft)되어 본격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데 있어 불확실한 미래를 경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체육관의 불이 꺼진 10시에 네트 너머를 보면,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괴담으로 전도되는데, 곧 이 미래의 파지 불가능성은 그 네트 너머가 보이지 않는 상대 팀의 존재를, 관객의 존재를 가리키는 가상적-물리적 지점으로서 식역에 상응하여 연장된다.
무대는 이 반쪽의 네트가 중앙을 점유하며, 그 뒤편에는 라커룸과 그 앞 벤치가 있다. 그리고 빈 공간이자 흰색 테이핑으로 경계가 그려지는 이 네트의 양 옆쪽의 벽을 따라 각각 벤치가 서로 마주하며 대칭되어 있어 훈련 시간이 아닌 배구부 일상의 공간을 표현하고, 무대 앞쪽으로, 그리고 라커룸을 지탱하고 경계 짓는 두 개의 동일한 기둥 옆으로, 90도를 이루는 두 개의 벽에서 두 개의 뚫린 입구가 각각 자리한다. 불이 꺼졌을 때와 켜졌을 때의 대비는 뚜렷하게 지정되며, 대체로 거의 모든 배우가 투여되는 후자의 경우, 관객석과 통합되는 정도로 조명이 밟아진다.

이 시간의 대비, 곧 조명의 대비는 두 개의 대별된 서사 공간을 만든다. 이전 배구부 졸업생 조은하(박수진)는 처음 선수들 간의 잡담 가운데 괴담의 형태에서 먼저 등장하는데, 이는 유일하게 국가 대표 훈련을 받고 돌아온 여준(경지은)과의 만남으로 실체화된다. 은하가 귀신이 아님을 판명함은 사후적으로 연기되는데, 그가 먼저 귀신으로 규정되었었기 때문이다. 곧 존재에 고착된 허구가 존재의 진실을 압도하는 셈인데, 이는 은하와 연루된 이들이 그를 타자로 산출하는 비윤리적인 언어들이 그 바깥에 있는 이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의 환상이 교환되는 지점에서 본래의 맥락을 상실하고 재기입되는, 불완전한 귀신~실체의 어떤 존재를 조립하는 것이다.
곧 이 공간이 단지 미지의 전사가 잠재하기에 미스터리한 공간이 아니라, 불안과 고민이 불러일으키는 정동이 그 서사를 기꺼이 수용하고 그것에 연루되기 때문에 그러한 공간이 되는 것인데, 여기서 이 서사의 역할은 그 불안을 잠재우며 봉쇄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불안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대신, 바깥의 괴-실체에게 그것을 이양한다. 은하를 여준이 먼저/홀로 만나게 된다는 것은 그가 덜 불안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마도 그가 자신의 존재 자체를 확신하는 데, 사회적으로 승인받는 데 있어 실존적 난관에 봉착했기 때문이며, 그것이 역시 사후적 차원에서 은하로 소급되기 때문이겠다.

그러니까 〈디사이딩 세트〉는 궁극적으로 은하의 존재를 귀신이라는 타자의 영역에서 되찾아주는 것을 향한 잠재적 서사의 지향점을 갖는데, 그것은 다시 은하가 활동했던 당시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배구부의 감독 성민(한혜진)과 은하가 조우하는 것으로 치환되면서, 등장하지 않는 지난 역사의 원한 감정을 청산하는 것의 불가능성이 입증된다. 그것은 이 서사가 단지 수면 아래에서‘만’ 그친다는 것과 같은데, 문제 해결의 몫은 오로지 성민과 은하 양 존재에게 귀착되기 때문이다.
이 미완의 서사는 현 배구부의 약동과 활기가 향하는 긍정의 미래로 통합되기보다 그것으로써 봉합되는 데 가깝다는 점에서 서사의 중핵을 이룬다. 곧 서사의 방향은 과거에서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서 과거로 진정 흘러가(야 하)는데, 여기서 현재의 서사는 과거를 이어받지 못하며, 오히려 그것을 뒤덮는 차원에서 진정 미완으로 남는다―중핵의 희미한 자리는 부차적인 서사로 분할되어 강등된다. 여기서 어떤 결정할 수 없는 현재가 지닌 ‘불안’과 짝지어지는 건 기실 ‘안정’이 아니라 ‘희망’인데, 그것은 일단 과거를 유예하고 망각한다.

은하와 성민의 만남은 갈등이 재점화되고 폭발하는 것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은하가 여준에게서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끼는 것과 상반되며, 귀신으로부터의 오해가 직접 풀리기 때문이 아니라, 은하 스스로 그를 어떤 모습으로 정체화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안정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곧 그가 귀신인지 아닌지가 판명될 수 없음은 그것이 성민에게는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근본적으로 성립하며 유예되는 것이다. 〈디사이딩 세트〉의 종료 지점이 가리키는 희망의 근거보다는 존재의 상처를 어떻게 회복하여 삶을 재안정화시킬 수 있을지의 차원에서 다시 쓰일 수 있는, 쓰여야 하는 작품이다.
사실 이 문제는 사랑의 차원으로 고착되어 모호해지는데, 곧 동성애로 낙인찍혀 왕따가 되었던 은하의 전사는 성민을 향한 짝사랑의 기원으로 소급되며, 성민이 그 부조리의 현실을 비판하고 처리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 문제는 재결정된다. 곧 문제는 그 문제 자체가 아니라, 그 문제를 대하는 진정한 사랑하는 이에 대한 문제로 전도되며, 가해자가 아니라 감독을 향한다. 그리고 그것은 문제 규명과 해결의 실패가 아니라 사랑의 진정한 실패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사랑이 문제와 착종되는 지점에서, 그 둘은 아마도 과거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머무르며 유폐되는 결론을 향해 흩어진다―은하는 왼쪽 출구로, 성민은 오른쪽 출구로 거의 동시에 퇴장한다. 감독은 그 사랑을 받아들여 주지 못하는 것의 곤궁―그가 퀴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당시 결혼을 해서 아이가 있는 사람으로서 그 사실 자체를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간에 봉쇄해야 하는 입장임에는 분명하다. 1―과 훈련에 정진해야 하는 긴박한 시기의 일차적 목표 아래 적대가 일반화된 팀 분위기 전체를 재조정하는 것의 어려움을 혼동하거나 적확하게 그 둘의 차이를 판명해 내(는 것으로써 이 둘을 연합하)는 것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은하와 성민 사이의 어긋남은 사랑의 실패가 아니라 사랑을 배반하고 부인하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성민에게 은하의 퀴어성은 과잉된 것이다. 동시에 그 존재는 과잉으로서 사회에서 배제되는데, 그에게 사랑과 정의 모두 시스템의 안정화라는 명목 아래 부차적인 것이 된다. 어쩌면 그 명목은 사랑과 정의가 중첩되는 그 지점을 은폐하는 것이기도 한데, 반면 은하는 사랑이 정의로부터 분열되는 시점을 분명하게 목도해야만 한다. 곧 은하에게 성민은 절대적인 사랑의 존재이다. 동시에 그는 냉담하고 부정적으로 자신과 관련된 가해를 방관하며 연장한다는 점에서 부조리한 존재이다.
이 지점에서 어떻게 더 나은 성찰과 회복의 차원이 미래의 질서를 재결정짓는 것으로 연장할 수 있을까. 두 존재의 블랙박스를 열어 문제를 진정 재점화할 수 있을까. 은하는 배구부를 맴도는 ‘유령’이 되어 해소할 수 없었던 과거를 향하지만, 과거는 물리적으로 더 뒤늦게 출현한다. 따라서 여기서 여준은 사라지는 매개가 되는데―진정한 유령이 되는데―, 그가 유령을 수용하는 데 결정적인 매개로 작용하지만, 은하를 안정된 삶의 자리로 되돌려 놓기에는, 또는 그것을 인지하고 자신의 문제와 연합시켜 미래를 구상하는 것으로 연결하기에는, 그 만남은 너무 일렀거나 또 한 번의 기회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더 나은 진정한 연결은 없는데, 그 대신에 다양성의 수용을 위한 또 다른 연결이 있다. 그러니까 〈디사이딩 세트〉에서 또 하나의 서사의 축으로, 여준의 정체성 번민은 그의 이야기가 은하와 마찬가지로 성민에게 무력화된다는 지점으로 반복된다. 그렇게 서사는 이중으로, 또 하나의 형상으로 실패하는데, 여기서 페미니즘에 대한 미묘하지만 분명한 단서를 확인하게 된다. 곧 여준의 이야기를 결정적으로 듣지 못하게 된 것은 여준의 자식이 다쳤다는 전화인데, 그의 산만함이 또는 분열이 여성 독박 육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에서 재기입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의 한 수사가 퀴어의 다양성을 수용할 수 없는 전제 조건으로 적용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좌절된 이야기는 수아(김섬)가 여준을 존재 자체로 인정하고 사랑으로 연결됨으로써 진정 해소된다. 따라서 성민에 의해 결정된 비극의 양상은 사랑의 성사를 통해 희극의 차원으로 반복될 수 있게 되는데, 이 사랑에 대한 절대적인 차원을 수용하는 수아가 다른 고민과 갈등으로부터 예외적이라는 사실은, 그가 여준에 대한 순전한 대상의 차원으로만 존재한다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여준의 이야기를 진정으로 들을 수 있는 이는 또 다른 다양성의 ‘이름’을 수용한, 곧 “무성애자” 채은(이세영)이 있다.

그러니까 그는 적어도 다양성을 받아들이려는 시도가 부재했던 것으로 보이는 성민보다 더 나은 존재의 차원을 극에 부여하는데, 그것은 사랑이 (분열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승화할 수 있는 예외적인 지점 외에 사회가 진정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윤리적 자질의 차원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는 서영(정대진)과 흥미로운 대구를 이루는데, 그는 이성애자 규범 바깥의 세계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여진을 “우정”―사랑―의 대상으로 대하기에 그것을 강제로 이해하려고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수용한다고는 볼 수 없다.
차라리 이 ‘완전한’ 무지의 상태가 퀴어를 차별 없이 수용하는 데 필요한 지점을 강조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부여된 몫으로 생각하는 건 어렵지 않다―그러니까 서영은 ‘차별금지법’을 위한 한 순수한 매개 같은 대상이다. ‘너의 다름을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너를 수용하(고 나중에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어.’라는 태도는 적어도 다름이 그 사회에서 이행될 수 있는 기반에서 ‘함께’ 제대로 시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서영의 퀴어에 대한 무지는 상대에 대한 이해할 수 없음을 우정과는 별개의 층위로 두는 분리와 지연의 태도로 비약하는데, 이때 ‘우정’―이의 근거로서 여준과 서영이 하나의 ‘합’을 이뤄 경기를 상승시켰음이 급하게 끼워 넣어진다.―은 하나의 명목으로, 그것은 차이를 그 자체로 수용하는 이념을 임시로 매개한다. 그로써 여준의 자기 긍정에 이르는 경로로 안정적으로 소급될 수 있으며, 여준에 대한 사회로의 매개는 감각적이기보다 이념적이며, 대화적이기보다 지시적이다.

그러니까 네트 뒤로 무언가가 보인다는 것은 무엇인가. 훈련의 열기와 고됨이, 상대팀이, 경기의 양상이 잠시 멈춘 자리에 무의식적 정념이 솟아 나옴을 말하지 않는가. 또한 네트는 자신이 벗어날 수 없는 사회 시스템의 속박~안정의 형용 모순적 개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여준은 그 “울타리”를 벗어나 자신에 대해 더 깊숙하게 탐구하고 성찰하며 진정한 자신에의 경로에 닿고자 한다.
이는 왜 배구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인지 모호하며 동시에 섬세한 접근을 요청하는데, 그가 “가슴이 나오지 않고 생리를 하지 않는 몸”, 마치 자신이 여자라는 형상에 잘못 갇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처럼, 어떤 사회적 틀 안에서 그가 전형성의 차원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 자체―그것이 자기 자신에 대한 수용을 방해하기 때문에―가 그 네트 바깥으로 나가고자 하는 선택을 만드는 것일 것이다.
그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은 그것을 “무성애자”와 같이 규정할 이름이 없다는 점에서, 곧 언어화되지 않은 차원에서 그의 내면에서 과잉된다는 점에서 고통을 초래하는데, 그것이 매개될 수 있는 차원에서 성민이 그것을 또한 듣지 않음으로써 이는 계속 지연되게 된다. 성민의 반복적 실패는 학생들의 성장을 저어하는 한편, 어른과 청소년의 분리된 지층을 영속화한다. 그것은 은하라는 조각 난 기억으로부터 계속 되돌아오는 타자의 형상을 만든다. 학교는 폐쇄된 시스템으로 검출된다.

여준의 불안정성은 다양성의 언어로써 안정화될 수 있을 것인데, 곧 기존의 제도와 언어의 전략이 지닌 한계가 그에게 금기와 억압의 기제를 수여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언어 자체 역시 모호해지며 불안정해진다. 따라서 여준에게는 자신을 언어로써 직접 매개하기보다는 그것을 일단 들어주며 옆에 있어 줄 누군가가 더 필요하다. 따라서 중요한 건 여준 자신보다는 매개자의 태도와 역량인데, 성민은 실패를 반복하며 미래가 반성과 책임의 주체적 경로가 아니라 친밀함과 연대, 사랑의 정서적 차원에서 진작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사라진다―따라서 대부분 〈디사이딩 세트〉에 대한 후기는 성민을 망각한 가운데 쓰인다.
여전히 여준에게 이 세계는 불안정한 것이다(“나는 이 세계에서 우리가 안전할지 잘 모르겠어.”). 따라서 네트 안의 세계가 경쟁과 룰이 지배하는 게임의 세계인 것처럼, 승리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 일방향적 주의의 차원 자체에서 여준의 갈등이 전면화되는 지점을 상징적으로 기입한다는 점에서, 배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은유가 된다. 그러니까 배구를 그리기 위해서보다 불안정성과 불안전성의 차원을 은유하는 기호로서 배구가 도입되는 데 가깝다.
이에 따라, 경기가 끝나는 마지막 세트를 의미하는 ‘디사이딩 세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은유로서, 〈디사이딩 세트〉에 중간중간 나오는 모든 경기가 마지막 점수에 가까워졌을 때를 가리키는 것처럼, 따라서 승패에 모든 것이 수렴되도록, 그리하여 승패로서 경기가 은유됨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경기의 전반적인 과정과 그 흐름을 생략하는 것으로써 재의미화된다. 〈디사이딩 세트〉는 진정 배구를 다룬다기보다는 네트라는 은유를 통해 불안정한 청소년의 특수한 시기 자체를 조명한다. 거기에는 어두운 현실 아래,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 등의 여러 정념이 자리한다.

〈디사이딩 세트〉의 특별한 인장이라 할 부분은 배구 경기보다는 그에 부속되는, 응원가로서 자주 쓰이는 가수 신해철(1968~2014)의 〈그대에게〉(1991)로, 경기에서 그 너머의 관중을 상정하지 않는 가운데―또는 상정하기 어려운 가운데―, 그 부재하는 응원과 관중의 효과를 따로 보여주기/병치하기 위함이다―이는 커튼콜에서 한 번 더 반복되는데, 거기에는 물론 모든 배우가 ‘화합’하여 투여된다. 이는 따라서 경기 자체와 직결되는 정동을 산출하는 대신, 그 노래가 환기하는 여타의 차원에서 경기와 같은 어떤 정동을 관객에게 이행시키고자 하는데, 그것은 선수-관중의 연합을 배우-관객의 연합으로 되돌리는, 일종의 무대로서 분출에 가깝다. 그리고 이는 〈디사이딩 세트〉 자체를 자족적으로 지시하고 기호화한다.
〈디사이딩 세트〉는 마찬가지로 배구에 대한 지식을 크게 동원하지 않는데, 배구의 전문 용어로서, 배구의 각자 포지션이 아이돌의 등장같이 프레젠테이션 효과에 입각해서 한 차례 소개된다. 이때 각자의 배구 포지션은 어떤 관계성으로, 각자의 특성으로 개성화되는지 견지에서보다는, 키와 능력이 그것을 타동적 차원으로 그들을 갈음하는지의 차원에서 공고한 기준의 차원으로 제시되는 데 가깝다. 그러니까 배구와 삶의 관계는 입체적으로 교환되기보다는 배구에 삶이 일방향적으로 부속되는 데 가깝다.
네트 너머의 공간이, 네트 이후의 시간이 상상적이면서도 은하의 경우에서처럼 실재적인 것이라면, 〈디사이딩 세트〉는 은하를 경유하지만, 네트의 세계가 지닌 순수한 긴장과 그 잠재적인 차원으로 돌아옴으로써 그 실재를 봉쇄한다. 아마도 그래서 진정 아쉬운 건 은하라는 존재가 아닌 여준의 서사이겠다. 그러니까 은하의 서사로 ‘더’ 나아감으로써 은하와 여준의 서사로, 그리고 그 나머지 존재들과의 새로운 관계가 그리는 서사로, 그리고 그리하여 다시 여준의 연장된 서사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여준으로 소급되는 외부의 확장의 서사가 아니라, 여준에서 나아가는 여준 자신의 확장의 서사로서 말이다.
김민관 편집장
[공연장소/일정]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2026.03.13(금) ~ 03.22(일)
화, 목, 금 7시30분 / 수, 토 3시, 7시 30분 / 일 3시 / 월 쉼[출연]
경지은, 김섬, 라소영, 박수진, 백소정, 원채리, 이세영, 정대진, 한혜진
[제작진]
작 조승혜
연출 강윤지
조연출 박세련
무대감독 이효진
무대디자인 조경훈
조명디자인 홍유진
음향디자인 목소
의상디자인 김미나
분장/소품디자인 장경숙
영상디자인 강수연
오퍼레이터 김소영, 이예본
움직임 권은혜
의무트레이너 박정은
배구코치파견 위밋업스포츠
배구코치 박혜미
접근성 운영 권지현
한글자막해설 디자인 임민정
한글자막해설 운용 이수림
음성해설 대본 구지수, 김내원
음성해설 자문 김혜영
음성해설 황순미(3/17-19), 정다함(3/20-22)
그래픽/사진 이미지작업장(박태양, 강정한)
기획/운영 나희경, 이도원
주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 극단Y
협력 팀 티티새,페미씨어터
공동기획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1. 하지만 그것이 은하의 절대적 사랑의 순수성에 기초하면, 그것이 어떤 차원에서 그의 퀴어성을 감독으로부터 처음 분별하게 되었던 것보다는, 어떤 차원에서 그 사랑이 자연스럽게 점화되는 여지가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추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을 포함해, 은하의 세계와 성민의 세계, 그 고유한 세계의 양상들이 다만 하나의 잠재적 영토 안에서 그친다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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