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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년 작/연출, 〈무릎을긁었는데겨드랑이가따끔하여〉: 이행을 위한, 이행에 의한, 이행에 대한REVIEW/Theater 2026. 4. 24. 20:19

김풍년 작/연출, 〈무릎을긁었는데겨드랑이가따끔하여〉©사진: 박태준[사진 제공: 작당모의](이하 상동). 〈무릎을긁었는데겨드랑이가따끔하여〉(이하 〈무릎을〉)는 버스킹을 하는 남자가 자판기 밀크 커피 한 잔을 먹기 위해 부족한 잔돈과 기능하지 않는 지폐만 갖고 있는 단순한 상황을 모티브로, 공연에서 주지하는 것과 같이, 밀크커피가 몸에 들어갔을 때 전해지는 신체적 효과, 화학 작용을 제한 없는 상상력과 다매체적 활용을 통해 확장하고 증폭시킨다. 중요한 건 서사(의 개연성) 자체가 아니라, 서사를 수행하기, 서사를 어떻게 수행함으로써 효과를 구성할 것이냐에 있다.
무대 좌측, 비슷한 높이로 매달려 있는 돈을 넣는 파란색 페인트통, 전동 드릴, 종이컵 디스펜서는 자판기 관리자가 보는 자판기를 환유하며, 자판기 관리자에게 그 의미를 허락하는 또는 자판기 관리자가 그 의미를 다룰 수 있는, 해체된 자판기의 부분들과 실재 자판기 사이의 간극으로부터 합성과 접속의 수행 공식이 산출된다. 곧 실제를 그대로 전시하는 것은 도리어 멋이 없는 것이 된다는 식의 창작 원리에 대한 자기 지시적 발화가 보여주듯, 실제의 자판기를 가정하면, 그것은 결코 어떤 의미도 산출하지 않는다. 그것은 접속의 구멍을 가지고 있지 않은 너무나 매끈한 전체―스펙터클의 과시―일 뿐이다.
이 세 개의 인공물이 이루는 어렴풋한 자판기의 형체는 역으로 자판기임 직함의 형상에 대한 임시적 결합의 분자들로서, 그 세계에 접속하는 세 개의 인공물의 합성적 관계 자체이기도 하다―세 개의 인공물은 하나의 형상을 위해 연합한다. 그리고 그 관계는 이 자판기를 다루는 이와의 접속을 위해 해체되어 있고, 선별되어 있다―버스킹을 하는 이에게는 전체가 열려 있지 않고 부분적으로만 합성 가능하다. 이 분자들의 진동, 진동하는 분자들의 연합, 합성의 과정이 〈무릎을〉이며, 그 원리적 형상으로서 이 세 허공 위의 각기 다른 물질들이 놓인다.

근본적인 서사의 구성과 역할의 층위를 나눠 보면, 〈무릎을〉에는 버스킹을 하는 이의 무대라는 현실의 세계와 그 현실을 이루는 현실 곁의 부분들, 합성 분자들, 해설자이자 코러스의 환상의 세계가 있다. 이 두 세계는 연합하는데, 환상의 세계는 현실의 화학 작용적 분쇄이자 현실의 또 다른 출구로서, 현실을 확장, 증폭하거나 현실로부터 연장되어 세계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현실의 변용이자 현실을 들여다보고 그 현실로부터 다른 입구를 낼 수 있는 구멍 없는 현실의 유일한, 대체 불가능한 가능성이다. 환상이 증폭될 때 현실의 버스킹이 순수 형식, 음악적 질로서 연합하는데, 이는 여전히 현실이 현실로 남는다는 가정 아래서이다.
이는 끝없이 이어지는 서사와 서사의 연합, 동전과 지폐의 캐릭터들, 역사의 사물과 인물 들―십 원-다보탑, 오십 원-보리, 백 원-이순신 장군, 오백 원-학, 천 원-퇴계 이황, 오천 원-율곡 이이, 만 원-세종대왕, 오만 원-신사임당―은 연합하며 버스킹 남의 창작을 위한 열쇠로서 밀크커피 한 잔을 자판기에서 추출하기 위한 긴 여정의 경로를 밟아나가는데, 역사극 형식의 외양을 따라 이야기는 두서없이 마구 얽혀 들어간다. 그것은 이야기를 완성하고 다듬기 위한 절차가 아니라 이야기하기의 무대를 제공하는 일이며, 이 이야기하기는 이야기의 구멍을 향한 맹렬한 돌진에 가깝다.

처음 꾸는 꿈은 이 끊임없는 서사의 정신 없는, 산만한, 얼개 없는 이야기 부분들의 합성적 이행과는 다른 서사를 개진하는데, 그것은 완전한 전체로서의 꿈의 형식을 모방하고 있으며, 현실의 바깥에서 현실을 들여다보는, 현실의 부속이자 현실의 확장된 경로를 구성하는 환상과는 달리, 온전히 꿈에 열린 하나의 공간 안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영향력은 현실-환상의 계열과는 그 자신만의 닫힌, 그 자신으로 닫히는 세계를 만들며, 그 안에서 움직임의 원리 역시 근본적으로 다르게 작동하는데, 이는 장소의 자유로운/정신없는 횡단과 연합에 기초한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이 꿈의 세계는 이후 현실-환상의 세계보다 더 경이로운 세계의 원리를 보여준다.
꿈의 세계에는 장소에 고착되지 않는 순간 이동, 장소를 점유하지 않는 신체 또는 장소를 대체하는 신체의 무수한 산란의 순간이 펼쳐지는데, 이는 손전등을 통한, 역할들의 연합과 교환에 의한다. 손전등을 비춰 빛과 하나의 얼굴을 연합하여 무대를 만들고, 빛이 꺼지고 새로운 빛의 영역에서 다른 얼굴이 작동한다. 손전등을 켠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의 쌍은 교환의 구조 아래 연속된다. 이 과정에서, 프레임은 연속되면서도 그 프레임을 이루는 부분들은 동시에 해체되고 합성되는데, 가령 빛이 꺼진 이전의 얼굴의 소리가 현재의 빛-얼굴과 연합하는 것이 그렇다.

〈무릎을〉은 결과적으로 리좀의 형식을 구현한다. 어떤 연결의 창발적 차원에 대한 실험이다. 그것은 유치한 것으로 분석되지만 그것은 실은 경이롭기 위한 것이다. 연결될 수 없는 것들의 환유적 연결, 연결될 수 있는 것들의 은유적 연결 모두 연결 자체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그 연결의 강도를 다른 식으로 수용하는, 연결에 대한 순수 이념의 차원 아래 있다.
그리고 이 연결은 결코 어떤 시각의 결정된 상을 구성하기 위한 기능적 차원으로 소급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연결 체제의 역량이 구성하는 순수 형식은 비미술적이지만 그리고 허구적이지만 무엇보다 실체적이다. 그것은 자질구레하지만 그것은 실은 무엇보다 유연함을 가정하기 때문이다. ‘연속되지만 연결되지 않는’, 이행의 강도를 시험하는 〈무릎을〉은 그 가공과 구성의 차원이 지닌 힘을 순수하게 긍정하는, 예외적으로 과정적인 작업이라 하겠다.
김민관 편집장
[공연 개요]
공연 일시: 2025.06.06 ~ 2025.06.15 화~금요일 20:00 / 토~일요일 16:00
공연 장소: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출연: 김계남, 김용희, 박은경, 박진호
작,연출: 김풍년.
안무, 무대미술: 금배섭
작곡: 옴브레
사진영상: 박태준
홍보물디자인: 주용빈
음향디자인: 김경남
조명디자인: 탁형선
무대감독: 원소미
피디: 신재윤
조연출: 권영인
제작: 작당모의
후원: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
접근성 운영협력: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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