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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잉거, 〈워킹 매드 & 블리스〉: 고전/과거에서 현대/현재로…REVIEW/Dance 2026. 5. 9. 13:39

요한 잉거, 〈워킹 매드 & 블리스〉[사진 제공=서울시발레단](이하 상동). 〈워킹 매드〉와 〈블리스〉는 일정한 서사의 전개 양상 아래 움직임을 예속시키는데, 이는 〈워킹 매드〉에서 강화되며, 〈블리스〉에서 해체된 양상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이는 음악적 차이에 상응한다. 우선, 하나의 음악을 사용하는, 곧 일종의 재즈 즉흥 피아노 연주인 후자의 키스 재럿의 〈쾰른 콘서트〉를 사용하는 후자에서는 개별 동작들의 수행성과 자율성, 일의적 차원의 특성이 강조되는 한편, 등장과 퇴장의 가변적 특질 아래 개입과 분산이 자유롭게 일어난다.
반면, 두 개의 음악을 사용하는 전자는 곧 (너무나도 익숙한) 모리스 라벨(Maurice Joseph Ravel, 1875~1937)의 〈볼레로〉와 이후 등장하는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 1935~)의 피아노 독창곡 〈알리나를 위하여〉, 두 음악을 차례로 사용함에 따라 상이한 분위기의 차이와 함께 서사적 반전의 최종 결말을 수여함으로써 물리적으로는 두 번의 시작과 두 번의 끝을 상정하는 가운데―두 음악은 혼합되지 않고 각각의 온전한 시간을 구현한다.―, 하나의 음악에서 다른 하나의 음악으로 이행하며 새롭게 주제를 업데이트한다.
〈워킹 매드〉에서 반복성과 점증적 확장의 특질을 지닌 〈볼레로〉가 차지하는 대부분의 비중에 따른 일종의 소극적 양상은 음악과의 폭발적 합치 이후 한 번의 막에 닿은 다음, 정적 이후에 남은 처음의 두 남녀의 관계로 돌아간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정적 자체는 제3의, 아니 숨겨진 첫 번째 음악인 셈인데, 두 남녀와 그 둘의 만남이 정초되는 첫 번째 순간은 곧 또 하나의 정적, 〈볼레로〉가 시작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블리스〉가 환원되는 장면들 속에 고유한 역할들이 물리적인 산포의 형식으로 배치되고 해체되며 끝없는 시간의 변주라는 서사만을 갖는다면, 따라서 희미한 서사의 지형을 즉흥성 짙은 유희의 현재성이 채우고 있다면, 〈워킹 매드〉는 고전 발레의 드라마성을 혹은 연극성을 완연하게 가져간다. 결국, 전자에서 서사의 개입을 제한다고 해도, 두 작업 모두, 단일 색상으로 구성된 무용수들의 의상이 지닌 색상 차와 함께 그들 각자의 고유한 시간과 개성의 분화로부터 전개된다는 지점은, 움직임의 형식이 기원하는 희미한 서사의 틈새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곧 ‘서사’는 각 무용수의 캐릭터성이 (〈워킹 매드〉에서와 같이) 온전히 발현되어 자리를 잡느냐 혹은 (〈블리스〉에서처럼) 잠재된 채 부유하느냐의 사이에 분포한다. 이 두 작업의 차이, 그리고 공통됨, 또는 공통됨으로부터 오는 차이는 결국 안무가 요한 잉거의 안무 방식을 정의한다. 요한 잉거가 갖는 창의성, 그것이 동시대적 새로움의 가치를 갖는 부분은 무엇일까. 그것은 오히려 마스터가 갖는 완숙함의 어떤 경지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인가.

〈워킹 매드〉가 무용 작품에서 수없이 사용되는 〈볼레로〉를 가지고 거대한 구조물을 지지체로 활용하여 표현하는 가운데 드라마적 서사의 지형을 구성하며 인상적 장면들과 함께 관객을 압도한다면(작품의 고유성과 예외성의 합치), 〈블리스〉는 즉흥 접촉으로부터 파생되는 비교적 평이한, 그러니까 동시대 다른 작업들에 상응하는 익숙함, 곧 새롭지 않음―고유하지 않음과는 다른―의 가치에 속한다(작품의 고유성과 일반성의 합치).
그리고 이는 물론 두 작품의 (다른 계열로서) 질적 판단에 앞선 예술계 내의 비교 차원에 기인할 것이다. 요한 잉거, 〈워킹 매드 & 블리스〉는 그 두 작품을 한 자리에서 소개함으로써, 오직 그 두 작업이 서로 다른 계열이며, 다른 테크닉과 형식의 기원을 가진다는 점에서 안무가는 동시대적이면서 동시에 동시대의 마스터의 잠재적 자리로 소급된다.
하지만 그 둘은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데, 구조화된 무대와 함께 그와 결부되는 서사적 짜임이 중요하며, 그 짜임이 곧 형식의 중핵인 〈워킹 매드〉의 고전적 작법은, 순수한 몸짓으로 출발한 몸짓의 실험적 양상이라는 현대적 작법으로 나아간다. 여기서 전자는 단단하고 명확한 고전으로, 후자는 유연하고 불안정한 현재로 기입된다. 그렇게 시간은 자연스레 이행‘하고’ 있다. 이 두 작업의 묶음은 그 선형적 차원의 진화를 또한 요한 잉거의 역사로, 동시에 춤의 역사와 현재로 기입하고 있다.
김민관 편집장
2025.05.09(금) ~ 2025.05.18(일) 평일 19:30 주말 15:00 세종M씨어터
안무 요한 잉거 Johan Inger
워킹 매드
무대·의상 디자인 요한 잉거 Johan Inger
조명 디자인 에릭 버그런드 Erik Berglund 피터 룬딘 Peter Lundin
스테이저 칼 잉거 Carl Inger
음악
"Boléro" Maurice Ravel
"Für Alina" (Arvo Pärt - Universal Edition) Werner Bärtschi, piano 1992 ECM Records GmbH블리스
무대 디자인 요한 잉거 Johan Inger
조명 디자인 피터 룬딘 Peter Lundin
의상 디자인 요한 잉거 Johan Inger 프란체스카 메소리 Francesca Messori
스테이저 이반 뒤브회유 Yvan Dubreuil
음악
"Köln, January 24, 1975, Part I" (Keith Jarrett - Cavelight Music)
Keith Jarrett, piano 1975 ECM Records GmbH'REVIEW > Danc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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