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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샤르 무르쿠스 & 쿨르드 바젤 - 카사비 시어터 Khashabi Theatre, 〈뮤지엄 THE MUSEUM〉: 테러의 재기입REVIEW/Theater 2026. 5. 9. 13:45

바샤르 무르쿠스 & 쿨르드 바젤 - 카사비 시어터 Khashabi Theatre, 〈뮤지엄 THE MUSEUM〉[사진 제공=2024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이하 상동). 〈뮤지엄〉은 테러를 저지르고 7년이 지난 후, 사형을 앞둔 사형수와 형사의 만남과 밀실에서의 하루를 구현하며, 두 남자의 언어가 복합적으로 착종되고 얽히며 상호 반영되고 굴절되는 심리의 일환을 치밀하게 바라보게끔 만든다. 형사의 은근한 주도 아래, 두 남자는 후반으로 갈수록 무대 안쪽에 놓인 카메라를 직접 향하며, 제삼자의 시점에 은밀한 둘의 시간을 맞세운다. 관찰되고 있음의 환상을 경유하며 연극 하기는 과잉으로 현상된다. 여기에 1막까지는 크게 의미가 없었던, 아니 이미지를 열화시키거나 중화시키는 감산적인 장치로서 여전히 기능하고 있었던, 그 둘 앞에 쓰인 거대한 샤막은 은밀한 관찰자의 심리와 결부되는 제4의 벽을 실제적으로 연장한다. 우리는 그 점들로, 점들의 틈으로 그 둘을 흐릿하게 바라본다. 묘연한 광경의 심리적 실재가 이따금 격발되지만, 그것은 우리를 직접 향하거나 바로 향하지는 않는다.
사형을 일주일 앞둔 상황에서, 박물관에서의 테러에 대해 막 사건이 발생했던 것처럼 심문이 시작된다. 1막은 그렇게 어두운 방이며, 사형수 그리고 형사라는 정보가 주어지기 전, 그러니까 현재의 시점이 아닌, 장면의 상상을 동반한 기원에 대한 탐색이 수행된다. 심문하는 남자는 조명을 켜고 끄고 갈아끼며 심문의 당사자를 심리적으로 억압하고자 하고, 심문받는 이는 시종일관 고개를 끄덕거리며 알 수 없는 미소를 띤 채 이에 대응한다. 고갯짓은 음악적 체현 그 자체이며, 음악은 배경음악으로 둘의 표층에 분리된 환경으로 더해지기보다 그 둘의 과잉의 연극에 수여되는 직접적 질서로 따라붙는다. 사디스트와 마조히스트의 표층적 이미지로 분류되는 것 같은 이 둘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게만 직조되지는 않는다.

형사는 사형수의 엘리트적 단계의 삶으로부터 정상성을 끌어내며 사건의 무화된 순간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로써 광기를 물리치는 정상성이 사건의 부조리함을 물리치고 안정적인 일상의 풍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강박이 드러난다. 사형수는 텅 빈 백색 공간의 박물관을, 그림 한 점을 피로 물들이며 공간의 심미적 재배치와 미학적 완성을 도출하고자 한다―‘그림은 현실보다 아름다워야 한다.’ 테러는 무심하고도 특색 없는 박물관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 것인 양 표현된다. 형사의 입장에는, 사건의 기원에 사형수의 심리적 기제가 자리해야 한다. 그것이 범죄를 일으킨 직접적 원인이 되는 것이다. 형사가 앎을 확정하고 사태를 결정짓고자 하는 반면, 사형수는 형사의 심리에 침투해 공통의 기반을 만드는 데 관심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사형수가 페이스북에 사건 직후 사진을 올림으로써 대중의 주목을 받고자 했다는 형사의 논리는, 미디어의 급격한 복제와 전파의 차원과 연루되는 과잉된 자의식 표출로 사형수를 진단하려 하고, 이러한 전제는 일종의 은밀한 리얼리티 쇼로서 현장을 공개적 장으로 치환하며 일종의 매개자로서 사형수의 범죄에 부합하는 발화의 증거를 이끌어 내려 하는 가운데, 그 스스로 사건에 심리적으로 연루된다. 형사는 사형수를 강제하고 판단하려 하지만, 사형수는 형사를 언제나 앞서고 그를 좇는 형사의 가학적 행위의 단서를 제공한다.
현실을 보증하는 법의 원칙, 곧 형사를 형사이게 하면서 그의 온전한, 평안한 일상으로 돌아가게 할 그의 직업적 윤리는, 하루 남은 사형수에 대한 폭력을 법의 권역 안의 실천으로 양도하는 데 충분하다. 반면, 이는 그의 충동과는 다른 차원에서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모순적이며, 그의 충동의 동시적 발현 역시 온전히 수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여전히 또 사형수와 구분할 수 없이 야만적이다.
- 작·연출바샤르 무르쿠스
- 공동 제작슐라흐트하우스 극장(스위스 베른),
무셈 노마딕 아트센터(벨기에 브뤼셀),
아트센터 부뤼트(벨기에 겐트) - 일정10.24.Thu. 7:30pm10.25.Fri. 7:30pm10.26.Sat. 2pm
- 관객과 대화10.26.Sat. 4pm
공연 종료 후 예술가와 대화가 진행됩니다. - 언어아랍어
- 접근성한글자막
- 관람연령만 18세 이상
- 공연장소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SFAC Theater QUAD
- 공연시간100분
- 초연2019 카사비 시어터, 하이파
- 입장료균일석 50,000won
- 유의사항본 공연은 총기사건, 범죄 등 폭력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일부 장면에서 출연자의 노출이 있습니다. 몇몇 장면은 소리, 빛 등으로 인하여 일부 관객에게 민감할 수 있습니

선행하는 테러의 행위가 언어로만 부기되는 데 반해, 신체적 우위와 정상성의 차원에서 발현되는 권위와 도덕이 가하는 사형수를 향한 형사의 폭력은, 역설적으로 테러를 구현하고 완성한다. 테러의 자리는 언어가 아닌 수행을 통해 현재 맴돌게 된다. 폭력의 현재성과 예측 불가능함은 심리 스릴러적인 장르의 외양을 통해 드러나는데, 그렇다면 〈뮤지엄〉은 그 긴장과 자극의 표피로써 어떤 이미지를 구성하려 하는 것일까.테러는 애도의 차원을 경유하지 않고 드러난다. 그것을 기피하고 우회한다. 죽음은 그 기억의 주체를 명시하지 않고, 두 사람의 교류 안에서 서로를 겨누는 현재적이고 증발되는 차원에서만 부상한다. 죽음은 자연의 더 넓은 시간의 반경 안에서 ‘소화’되는데, 가령 교사의 뇌수 이미지는 땅 위에 놓임으로써 곤충의 무리에 의해 분해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타임랩스상의 이미지로 변환된다. 영상은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기억 역시 형해화될 것이라고 주문을 외는 듯하다.
그 전에 가해지는 테러, 사형수 스스로가 자신의 팔을 깨물어서 흘리는 피와 떨어져 나간 살점은 그 뇌수를 대리하는 직접적 연관 이미지를 이룬다. 형사는 그것을 말리거나 놀라워하지 않고, 나아가 그 피의 흔적을 뛰어넘고 다리를 벌려 그 사이에 자리함으로써 사형수와의 거리를 확보하기에 이른다. 범죄자에 대한 엄격한 그의 분리 의식과 비인간적 취급은 범죄자에 대한 격리의 온당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가 받아야 할 형벌의 끔찍함 역시 합당한 것이라는 주장을 내포한다. 나아가 테러가 개인 고유의 몫이고, 사회는 그것으로써 ‘오염’된 것임을 드러낸다. 살인자의 피는 더러운 것이다!

사형수는 사형 집행 전 마지막 식사에 대한 권리 아래, 양 한 마리를 칼과 함께 통째로 요구한다. 칼은 그의 총을 대리하고, 양은 그의 떨어져 나간 살을, 그리고 이후 형사가 취급할 그의 살을 예기한다. 환유의 직접적 이미지의 연결을 통해 짜이는 〈뮤지엄〉에서, 칼과 살은 그 자체로 폭력을 전사하는 이미지로서 자리하고, 동시에 그 폭력의 전사를 정당화하는 기호가 된다. 요구의 조건에서 양은 사형수가 그의 아버지와 함께 일했던 정육점에서 가져온 고기여야 한다.
양은 기억을 보증하는 살이고, 감옥이 아닌 그의 사회와의 연결성을 담보로 하는 신체이다. 그 기억을 파괴하는 것으로써 형사는 사형수를 공격하는데, 곧 그 정육점이 있던 시장은 파괴되었으며, 그의 사회는 허물어졌고, 그의 현재성 역시 변화함으로써 그의 기억이 현재와 더 이상 결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하게끔 하려 한다. 그는 자연에 놓인 뇌수를 보여주고 설명하는 것에서처럼 그의 죽음을 비천하고 비루하며 천박한 것으로 포장하고, 동시에 그와의 거리를 통해 지저분한 신체와 기꺼이 처리될 수 있는 신체, 그리고 그것을 다루는 유연하고 적확한 기술과 정당화된 권리를 지닌 이의 세련됨의 신체를 대비시킨다.
〈뮤지엄〉은 테러의 기원 대신에, 테러리스트를 다루는 형사의 역전이된 모습에서 살인의 동기와 의지를 추출하는데, 전자에서 생명이 숫자와 단말마적 순간으로 셈해진다면, 후자에서 생명은 고깃덩어리의 은유 속에서 살아 있는 신체에 가해지는 직접적이고 명료한 폭력의 행위로써 기입된다. 따라서 그 고통은 순전하면서도 순수한 ‘동물’로 환원된 생명체의 보편적 차원에서 표현되는데, 이는 악인에 대한 단죄로서 윤리적 합목적성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그 단죄의 형식은 차라리 테러리스트가 가한 테러의 차원에 가깝다.―, 고통을 물신화하면서 비윤리적 주체의 쾌락을 성취하는 데 가깝다.
테러리스트를 다루는 곤궁에서 쉬이 빠져나가면서 단죄의 명목을 취하는 이러한 모순적 행위, 자기 배설적 행위는 우리가 시작해야 할 윤리가 테러에 대한 (또는 단죄의) 기원으로 소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어떻게 근본적으로 다룰지, 다룰 수 있는지에 달려 있음을 의미한다. 곧 테러를 우리 삶이 아닌 삶의 차원에서 분리주의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통합된 차원으로, 최소한의 생명으로가 아니라 어떤 의미를 주장하며 실제로는 어떤 충동에 의해 그 이행의 지점에 이르게 되는지에 대한 맥락의 동원으로써 새롭게 셈해져야 하는 것이다. 〈더 뮤지엄〉의 목적은 바로 이러한 뒤집힌 운동장 가운데서 틈의 윤리를 찾는 것이 된다.
김민관 편집장
[공연 개요]
작·연출 바샤르 무르쿠스
공동 제작 슐라흐트하우스 극장(스위스 베른), 무셈 노마딕 아트센터(벨기에 브뤼셀), 아트센터 부뤼트(벨기에 겐트)
일정 10.24.Thu. 7:30pm 10.25.Fri. 7:30pm 10.26.Sat. 2pm
언어 아랍어
접근성 한글자막
관람연령 만 18세 이상
공연장소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SFAC Theater QUAD
공연시간 100분
초연 2019 카사비 시어터, 하이파
유의사항 본 공연은 총기사건, 범죄 등 폭력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일부 장면에서 출연자의 노출이 있습니다. 몇몇 장면은 소리, 빛 등으로 인하여 일부 관객에게 민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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