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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연출 류사라, 〈신의 바늘〉: 체험주의적 당사자성의 체현, 그리고 계몽의 다른 판본REVIEW/Theater 2026. 5. 9. 13:20

작·연출 류사라, 〈신의 바늘〉©최정운[사진 제공=창작집단 선단사일](이하 상동). 〈신의 바늘〉은 두 명의 등장인물이 그 둘만의 공간에서 마약을 하는 체험을 강도 높은 것으로 현상하는데, 이는 마약에서 깨어났을 때의 불쾌함 등을 동반한 잔여 감각까지 전달하며, 자기 파멸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향하는 가운데, 이 둘의 자아의 확장과 극단적인 변용의 순간은 시간이 축적됨에 따라, 탈구된 사회와 비대해진 자아의 해소할 수 없는 간격으로 인한 위기감으로 연장된다.
리얼리티로 측정되는 건 두 사람만의 내재적이고 은밀한 세계의 발현이며, 곧 관찰하는 이들에게 열린 닫힌 세계의 틈이며, 예외적이고도 고유한 체험을 하는 이의 당사자성은 〈신의 바늘〉의 표현 양식의 토대이자 주제의 중심 의미를 이룬다. 따라서 그 주제를 선택한 윤리적 고려의 차원은 다분히 재귀적인 것이다. 무엇보다 서사는 그 체험‘들’과 함께 사회와 매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선택지의 부재로 닫힘으로써 존재, 더 정확히는 존재의 몸에서 서사는 종국을 맞게 된다―한 사람의 신체적 죽음이다.
그에 따라 〈신의 바늘〉은 불쾌한 잔여 감각으로 남는데, 이는 해소되기 힘든, 해소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 둘의 특수한 체험은 그 둘의 당사자성 자체로 나타나는데, 이는 제3의 개입 요소를 배제하므로, 사회의 매개항을 설정하지 않으므로, 서사의 확장과 드라마적 전개의 욕망을 따르지 않으므로 현존의 직접적 산출만을 제시하게 된다.
이 둘의 체험은 비합법적이고도 사회적 금기의 차원에 속하므로, 아마도 〈신의 바늘〉은 어렸을 적 학교에서 틀어주던 마약 관련 교육 차원의 비디오가 갖는 계몽의 효과가 실은 오로지 파국적 결과의 제시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마약에 대한 유혹과 두려움을 함께 진작하는 걸 봉쇄하는 게 가능하다고 믿어졌던 것처럼, 곧 그러한 현실의 전개가 내재적 유인을 설정하거나 윤리적 차원의 진작을 성취해 내지 못했던 것처럼, 〈신의 바늘〉은 그 극단적 결말을 법적 처리로 인계하지 않은 채, 무엇보다 그 둘의 세계 바깥을 열어젖히지 않음으로써 그 계몽의 비디오를 현상해 내는 것으로 보인다.

결과는 파국적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반면, 전자의 버전에서 마약으로 인한 쾌는 법의 조처를 통한 사회적 격리와 사회로부터의 소외라는 벌로 처리됨으로써 사회로 흡착되고 봉합된다면, 후자의 버전은 법의 인계를 향하는 대신, 온전한 자기 확장과 자기 파괴의 순환을 하나의 신체 안에서 구현하고 종결한다는 결정적 차이를 갖는다. 곧 하나의 세계와 그 변용만이 있다. ‘그것은 특별한 체험이며 당사자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하나의 힘이다.’라는 명제만 남는다. 따라서 이는 계몽이 은폐하는 실재의 체험을 지시한다.
그럼에도 남는 불쾌함의 잔여는 계몽의 비디오에서 주어졌던 바다. 곧 이 실재의 체험은 사회의 안전망의 역할과 가치를 은밀하게 호출한다는 점에서, 개체의 무력함과 연약함을 극단적으로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도덕을 구성한다. 사회로 연장되지 않는 닫힌 개체는 자기 파멸 외에 다른 결말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끝없는 자기 변용과 확장의 시도는 사회와의 매개를 거치지 않는 차원에서는 필연적 한계 상황을 맞는다는 것.
〈신의 바늘〉은 체험의 재현이 절대적이다. 따라서 이 체험과 이 체험을 구성하는 중요한 하나의 닫힌 공간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마약에 빠진 지우(배우 김하람)의 방을 배경으로, 명진(배우 문병설)이 찾아와 함께 약을 하며, 환각, 과거의 기억과 트라우마를 마주하다 결국 끔찍한 몸의 통증을 겪는 체험이 반복된다.

리얼타임으로 현상되는 이 체험이 벌어지는 지우의 방은 그때마다 닫힌/안온한 그 둘만의 아지트가 되는데, 전면의 벽과 문은 그 체험의 반영이거나 연장으로서 삶의 시간을, 예술적 고양의 메타포로서 약의 효능을, 나아가 제3의 시선, 사물의 시선, 텅 빈 실재의 그것이자 누구도 이들과 함께하지 않는, 바라봐 주지 않는 사회 너머의 동굴 속 벽화 그림처럼 발견되는 것에 가깝다.
오른쪽 위 귀퉁이가 깨어진 문과 눅진한 벽지의 양옆 낙서와 LP 플레이어와 음악은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약은 그것을 완성시키고 진작한다. 강렬한 예술의 효과는 부정적인 것이기도 한데―거꾸로 부정적인 차원에서의 예술이라는 것을 상정할 수 있는가.―, 신체와 일상의 피폐화로 이어지는 약에 대한 경각심의 차원에서 또는 비사회적 행위로서 범죄라는 낙인이 찍힌다는 차원에서 그러하다. 그렇다면, 더 본질적으로 그것이 결국 일시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러한가, 아님 예외적이며 개인이 제어할 수 없는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어찌 됐든 그 둘의 결론은 모두 치명적이다.
제목의 ‘신의 바늘‘은 마약을 팔에 꽂는 주삿바늘을 이야기하며, 팔을 묶는 실과 바늘을 신이 수여해 주었다는 지우의 수사는 마약에 대한 면피이자 명목이면서, 동시에 근대 사회의 통제와 합리주의적 세계관이 은폐한, 전근대적이고 부족적인 차원의 세계로의 입구를 희미하게 암시한다. 하지만 이는 전자의 차원에서 사후적 해석으로 매듭 지어지는데, 그 결과는 사회와의 개체의 대립의 양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연극 제도적 차원에서 보자면, 〈신의 바늘〉은 금기시된 소재를 다루며, 이를 특정 당사자성의 관점에서 접근함으로써 동시대 연극의 존재에 대한 확장성의 차원을 꾀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파국의 결말을 향하며 사회라는 거대한 힘을 불러오지만, 그것을 마약이 주는 환상의 효과와도 같은 것으로 처리하여 봉쇄한다. 여기에는 어린 나이와 조숙함이라는 또 다른 요소가 개입한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미숙함은 자기 선택의 합목적성과 윤리의 구축과 함께 이뤄질 수 없었던 바다. 그리고 이 미숙함은 예술적이거나 심미적인 강렬함의 효과 너머에서 비극적 결말을 안타까움으로 재승화함으로써 계몽이 원하는 결말과 그것에 다다르지 못했을 때 오는 불쾌감의 잔여 감각을 간신히 비켜날 수 있게 만든다. 곧 비극의 온전한 완성을 위해 이들은 어리고도 조숙한, 그리고 결정적으로 소외된 존재 양상으로 구성된다.
김민관 편집장
[공연 개요]
- 2024년 12월 13일 ~ 2024년 12월 22일 더줌아트센터
- 공연 시간: 100분 (만 15세 이상 관람 가능)
제작진
작·연출 류사라
조연출 문제
드라마투르그 장영
출연 김하람·문병설
기획 김언
프로젝트 매니저 권나은
접근성 매니저 하라
홍보 전세현
무대감독 안정빈
무대조감독 박서현
음악감독 이형주
무대디자인 222
조명디자인 박유진
조명 디자인 어시스턴트 김성민
조연출 어시스턴트 정종관
조명 오퍼레이터 정지현음향 오퍼레이터 이형주
포토그래퍼 최정운
워크숍 자문 박영덕·최진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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