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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애순, 〈척〉: 몸‘들’의 서사를 향해REVIEW/Dance 2026. 5. 17. 19:55

안애순, 〈척〉[사진 제공=ACC](이하 상동). 〈척〉에서 처음 무용수가 등장하기 전 빈 공간에 프로젝션되는 애니메이션 영상은 〈척〉의 안무 세계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공연의 프로토타입이자 안무의 이상향으로, 영상은 존재한다. 검은 배경에 흰 도형들이 정신없이 자리바꿈을 하는 복잡다단한 풍경이 부감 쇼트 아래 축소된다. 먼저 이 작은 도형들의 구성은 자의적인 질서를 가장한다. 또는 무한한 질서를 추구한다. 자유로운 움직임인 동시에 일종의 알고리즘화된 움직임의 산출이 그것이다. 이는 차이에 입각한 반복을 유도하기보다는 반복을 통해 일정한 움직임의 협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양식적 구성 속에서 자유로움은 어떻게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것일까. 실제 어떤 도형의 움직임도 다른 도형과의 관계 속에서 적용될 수밖에 없다. 공간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반면 움직임은 공간의 제약을 반영하지만, 그것에 갇히지는 않는다. 곧 움직임이 공간이다. 공간 내의 움직임이 아니라, 공간을 직조하는 게 움직임이다. 이러한 자율적 움직임 자체의 종합은 거대한 질서의 심미적 추이로 나타난다. 부분과 파편으로 존재하고 사라지는 각 무용수의 몸짓들이 이루는 흔적의 아상블라주는 그 배치 자체에 무심한 목적성을 가진다.

‘척’은 무언가를 연기함을 의미한다. 이는 자연스러움의 상태를 시뮬레이션을 통해 출력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는 가상과 실재의 간격을 줄이려는 노력이며, 거꾸로 이를 지켜보는 수용자에게는 그 ‘척’을 수용하는 척하면서 온전히 분별해야 할 몫이 주어진다. 안애순 안무가의 〈척〉은 그러한 혼재된 커뮤니케이션의 자연스러움과 인공적임 사이의 틈을 이야기하려 했던 것일까. 이후, 그 ‘척’의 인공성은 작업 어디에서 만나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이번 안애순의 “모든 움직임은 결국 장소를 건축하고 확장하고 제거하고 재생시킨다.”라는 명제나 “기억과 예감의 세계를 동시에 경험하고 그 사이를 이동하는 몸”이라는 정의를 보면, 움직임을 만드는 몸은 ‘필연적으로 장소를 생성·소멸’시킨다. 안애순은 움직임 자체가 주는 무한한 가능성에 절대적인 도약으로서 내기를 건다. 그 몸은 같기보다 자신의 고유성을 주장, 주창한다. 가령 첫 번째 등장하는 지경민은 세세한 몸짓을 끈기 있게 연결하며 몸 전체로 유기적인 그림의 흔적을 만드는 그의 평소 움직임을 무대로 연장한다. 반면, 중반 등장하는 박유라는 짧은 스커트 의상에 맞춘, 종종거리는 스텝과 함께 인형 놀이 같은 과도한 장식성과 작위성을 드러내는 그로서는 다른 움직임을 선보인다.
따라서 여기서 움직임이 뭘 의미하는지가 아니라 그 움직임이 어떤 효과를 내느냐가 중요하다고 해도, 그 움직임이 각 무용수에게서 어떻게 산출되는지는 해소되지 않는다. 이는 개별자가 가진 진정성의 형식으로 나타나기보다 하나의 다른 이미지로 대치되며 휘발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구조의 내용이 아닌, 구조 안의 대체재로 적용된다. 움직임과 안무가 동형 관계가 아니라고 할 때 형식이 없는 움직임의 온전한 자율성이 무용수에게 맡겨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안무의 틀이라는 것이 없다고 할 때, 다른 것들을 무한하게 배치해 나가는 것만이 하나의 질서로 남는다고 할 때, 그리하여 각각의 고유성이 나열된다고 할 때 안무는 차이를 생성하는 창발적 기계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다름을 유도하는 강박의 기계 장치는 아닐까. 무용수의 자율성은 온전히 안무의 배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동시에 안무의 온전한 배제는 무용수에게 무한한 자율성을 선사하는 것 역시 아니며, 안무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 가깝다.
결과적으로, 안애순 안무가의 구조적 배치의 기술로서 존재하는 차이의 나열 방식은 각 무용수의 고유성을 존중하는 것 같지만, 실은 새로움의 강박이 무용수의 기예적 생산의 범위를 확대하는 과정에 불과한 것 아닐까. 안애순 안무가의 고유의 미학은 과연 오늘날 어떤 새로운 감각의 응결점을 구성하는 것일까. 〈척〉은 시간‘들’의 총체이지만, 시간의 흐름에 집중하지는 않는다. 분절된 시간들은 공간적 배치의 차원에서 하나의 효용, 그리고 다름으로서 자리 잡는다. 앞선 영상의 부감 쇼트의 시선처럼 안애순은 정면의 시각 외에도 위에서 그것을 내려다보는 감각을 더하는 한편, 공간을 여러 분절된 형태로 쪼개 등장과 동시 진행의 차이를 지속적으로 가져가려고 한다.
〈척〉은 체스의 여러 말이 동시에도 나아가는 독특한 게임의 기술을 보여주며, 움직임이 특정한 시공간의 배치 아래

현전하고 있음 자체를 보여준다. 배치술의 역량을 시험하는 가운데, 안애순은 내용을 가진 서사의 무게를 벗어나는 데 성공한다. 동시에 하나의 일정한, 안정된 움직임의 형태를 벗어남으로써 각 무용수의 고유성과 잠재성을 발현케 하는 데 성공한다. 반면, 이러한 무심한 기술에 의한 의도 없음, 의미를 추구하지 않음의 안무는 역설적으로 안무가의 언어를 불투명한 것으로 또 신비한 것으로 남겨둔다. 그것에 인접하는 몸은 그것을 매개하면서 동시에 단서가 될 것이다.
“서로 다른 신체의 경험”(김지연)은 무대 이전의 시간을 전제한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그 다른 신체 경험의 여러 양상을 제시하고 있지 않은 드라마투르그의 말은 아쉽게도 춤의 보편적 전제일 뿐 작품의 어떤 단서가 되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척〉은 모든 몸은 극장의 시간이 아닌 현실의 중첩되고 파편화된 시간을 동시에 전제하고 있음의 결론으로 향하는 것 역시 아니다. 몸은 웅숭깊은 매체임을 반증하지만, 그럼에도 너무 세련되고 정제되어 있다. 이것은 ’척‘하는 몸, 가장된 움직임이다.
앞선 최초의 시각, 곧 움직임들의 맞물림이 벌어지는 세계, 움직임 기계로 짜인 세계를 증명하듯 안애순은 시간과 공간의 배치술 아래 여러 몸을 그저 두는 데서 멈춘다. 그것은 선택되고 각색되어진 움직임이다. 그렇다면, 무용수의 몸이 안무가의 시선을 입고 변용되는 그 결과가 ‘척’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상 안무(choreo-graphy)라는 개념 자체는 그 시작점을 전수자의 몫으로 온전히 전제하고 있으며, 무용수의 전수에 대한 강박을 당연시한다. 그 과정에서 각 무용수의 몸을 통과하며 어떻게 다른 결절을 맺는지는 블랙박스로 남는다.

〈척〉은 다른 양태들의 흐름을 직조한다. 여기서 ‘흐름’은 기승전결이 아니라, 세계 속의 한 부분이 구체화되는 순간들의 나열에 가깝다. 그 속의 양태들은 곧 다른 움직임이고, 그 움직임은 다분히 심미적인 코드에 맞춰져 있다. 그럼에도 미적거리고 반복하며 이탈하는 몸이 “경험”에 대한 흔적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안애순은 몸의 다름을 안무의 의도에 앞세운다는 차원에서, 안무가의 언어를 내세우지 않으며, 여러 다른 몸을 하나의 세계에 끼워 맞추기에 이른다.
그것은 시간의 서사보다는 몸의 궤적과 다른 몸들의 차이라는 장소와 인접한 서사를 도출한다. 그 양상의 유사성에 입각해,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신분열증적 발산으로 향하는 대신, 약간의 미묘한 틈을 벌린다면, 비로소 몸의 서사에 귀기울일 수 있는 첫 번째 단서를 안애순 안무의 실질에서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김민관 편집장
2024.10.22 ~ 2024.10.23 명동예술극장
<출연진>
한상률, 김호연, 박유라, 이승주, 도윤승, 김도현
<제작진>
예술감독, 안무 : 안애순
음악 : 박민준
무대디자인 : 김종석
의상: 이서윤
드라마터크 : 김지연
무대감독 : 최상지
조명디자인 : 이승호
프로듀서 : 이영찬
영상디자인 : 추미림
영상프로듀서 : 박서현
매니지먼트 : 김진아, 조현서, 이근재, 배희주
사진 : 방영문
제작 : 안애순컴퍼니,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공연지원 : 옐로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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