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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MODAFE Collection #1] PDPC, 〈애니멀〉: 현대 사회의 일그러진 욕망을 비추다REVIEW/Dance 2026. 5. 17. 19:55

PDPC, 〈애니멀〉[사진 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상동). PDPC의 〈애니멀〉(안영준 안무)은 인간과 동물의 경계선상에서 인간의 본성을 고찰한다.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은 혼자만의 완전한 고립을 선택할 수 있지 않다. 인간은 주변의 영향을 크게 받는 존재로서, 자유의 의미 역시 그리고 온전한 독립의 의미 역시 필연적으로 사회와의 긴장 관계를 수반한다. 여기서 사회는 물리적인 토대이기도 하지만, 실상 보이지 않는 힘의 토대를 구성한다. 개인에게 사회는 표층적인 행위의 차원에서도 작용하지만, 욕망과 같은 무의식적 차원에서 심리적 기제를 조종하는 더 근원적인 동력을 갖기도 한다. 여기서 욕망하는 자와 욕망하지 않는 자가 아니라, 욕망하는 자와 욕망이 투사되는 자가 존재한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1902~1981)에 의하면, 우리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동물’이라는 제목과 같이 〈애니멀〉은 약육강식의 특질이 구조적 토대를 이루는 사회에 던져진 투명한 존재에 가닿는 집단의 영향력을 관망하며 그 둘 간의 맺어지는 관계 양상과 변화의 흐름을 지켜보게 하는 일종의 사고 실험의 성격이 강하다. 전자가 이곳에 홀로 던져진 주인공(안남근)이라면, 후자는 사회를 이루는 집단으로, 후자의 전자를 지배하고 조종하려 하는 심리의 근간에는 전자에 대한 욕망이 자리한다고도 볼 수 있다. 거꾸로 전자는 그 욕망이 생성되는 현장에서 무심하고도 투명하게 자리하며, 본의 아니게 그 바깥 존재들의 욕망을 주조하는 셈이다.

지오데식 돔(트러스 구조의 반구형 구조물)이 무대 뒤쪽에 있고, 그곳에 올라탄 존재들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애니멀〉은, 수직적 구도를 통한 신분의 뚜렷한 격차를 전제한다. 이러한 구조물은 몸의 가동 범위와 허용도를 최소화한다. 곧 구조물과 유착된 일종의 행위 차원에서 몸의 움직임을 발현하게 만든다. 움직임의 건축적 설계를 의도하는 PDPC의 안무 철학―“신체는 비로소 건축된다.”―이 구현되는 이 구조물은, 서사의 차원에서는 문화적 인공물로서의 상징으로서 인간의 심리에서 원형적 타입을 이룬다.
구조물에서 연장되는 무대에 흘러나오는 〈Yesterday, When I was young〉(1969)은 실제 내레이션 형식으로 시작되는 팝송으로, 그와 함께 천진난만한 얼굴로 등장하는 주인공은 노래 가사가 화자의 회고적 사유를 드러내는 것과 같이, 알 수 없는 자신만의 감상을 간직하고 있는데, 구조물과 유착된 존재들과 자유로운 일상의 몸짓을 구가하는 존재의 극렬한 대비와 함께 〈애니멀〉의 세계가 비로소 열린다. 반면, 초반 이후에 음악은 현대 실험음악의 계보 안에서 읽히는데, 점차 파열음이 강조되면서 사물들에서 나오는 노이즈를 일종의 음악으로 이해하고 구현하는 음악의 범주에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사운드의 타격적 성격은 존재들의 혼란스러운 세계와 맞물리며 정위될 수 없이 튀어나온다.

지오데식 돔이 무대 한 축의 뼈대라면, 밧줄은 신체 연장의 직접적 매체가 된다. 밧줄은 움직임의 확장이기도 하지만, 이를 허공에 돌리거나 해서 밧줄 자체의 고유한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 거꾸로 몸이 동원되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 밧줄은 신체의 부속적인 기능을 하면서 춤의 차원에서는 움직임의 변용적 형태를 실험한다. 허리춤에 묶인 밧줄이 꼬리가 돼서, 인간 신체와 다른 동물적 신체를 표현하면서도 그 밧줄 자체를 돌리거나 할 때 꼬리는 장식적인 역할을 하면서 신체에 부속되지 않은 고유한 도구로서 발화한다.
이는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과잉된 자의식 표출로 보이는 부분인데, 어떤 동물도 자신의 꼬리를 손으로 잡아채 돌리지는 않을 것이다. 나아가 밧줄은 두 발을 묶는 것과 같이 신체를 구속하거나 휘두르거나 목을 조이는 등 다른 신체에 위협을 행사하는 힘과 권력의 상징적 기능을 입는다. 권력은 내외부로 영향을 끼친다. 여기서 권력이 어떻게 외재적인 차원에 국한되지 않고, 개개인의 내밀한 정신에 육화되는지가 분명해진다.
집단 의례 혹은 의식(儀式)의 성격에서 치러지는 행위들은 이방인의 몸을 옭아매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동시에 집단 내부의 구조적 역능을 향한 구심력을 만든다. 반복되는 집단의 움직임은 동물적 몸짓을 체현하면서 그 에너지를 분출하고 또 제어하면서 강화한다. 따라서 ‘의식’의 차원은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신체 통제의 구성을 이룬다. 〈애니멀〉의 몸짓, 동물, 곧 비인간의 몸짓은 지오데식 돔 위의 몸짓과 같이 신체를 속박한다. 신체의 자율성뿐만 아니라 중력을 거스르거나 인간의 복합적 감성의 역량을 보여주는 심미적 표층과도 거리를 두게 한다. 네 다리로 바닥을 기거나 얽힌 몸들을 만드는 등 이들은 땅과 연접된 기호를 쌓아 나간다.

뒷축으로 옮기는 다리나 앞으로 과감하게 네 다리로 점프하는 움직임 등은 방향은 서로 다르지만 공간을 바꾸는 거대한 힘의 동력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상응한다. 일종의 커다란 에너지가 무대를 누비고 휘젓는다. 안무가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서 중간자적 존재의 양상을 펼치고자 했다고 하는데, 이는 인간도 동물도 아닌 제3의 존재, 변형된 인간 신체의 움직임이 펼쳐짐을 의미한다. 동물적 에너지를 갖춘 인간의 원초적 모습은 고대 시기나 원시 종족의 사회를 닮아 있다. 그리고 관객은 이를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일종의 인류학자의 위치에 선다.
반면, 이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한 존재, 극적으로 이곳에 투여된 존재, 바깥의 세계에 의도치 않게 속한 순진한 존재에는 우리의 시점이 투사된다. 곧 그는 바깥의 힘이 침투하며 감각되는 일종의 리트머스지가 된다. 융의 집단무의식의 개념으로, 이 동물적 세계의 집단적 구조의 힘을 풀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앞에 펼쳐지는 현장은 우리의 원시적인 에너지가 공통의 상징 기호로 수렴하는 처소일 것이다. 가령 초반에 얼굴에 덮은 종이는 그 종족의 제의 과정의 일부로서 바깥으로부터 종족을 식별하고 차이를 구성하는 정체성의 중요한 기호로서 의미를 가진다.
종이로 얼굴을 가리던 종족은 이후 종이를 떼고, 손으로 그것을 대체하며 정형화된 의식의 틀에서 제어된 에너지를 파괴적이고 지배적인 힘의 연결고리로 터뜨리게 된다. 한 명의 얼굴을 덮는 여러 손은 상징 질서의 재현이 아닌, 타자를 지배하려는 욕망의 발현을 보여준다. 이는 에너지의 방향이 내부에서 외부로, 집단의 기존 질서가 무질서로 바뀌는 지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타자를 향한 제어되지 않는 동력과 의식(意識)은 안무가가 묘사하고자 한 현대사회의 질서다.

예외적 존재로 자리하는 주인공의 경우, 그 집단의 움직임에 점차 동화되어 하나의 동등한 일원이 가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그와 분명한 차이를 가져간다. 일 대 다의 구도가 만들어진다. 그는 그 집단의 질서를 다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 동인이 된다. 애초에 그는 희생제의의 대상이면서 바깥의 존재로서 완전히 제어할 수 없는 숭고한 대상이다. 주안점은 하나의 집단이 아니라 그 집단 속에 하나의 예외가 만드는 파장이다. 그로부터 집단을 재정렬하는 욕망의 메커니즘이 발생한다. 카니발을 중의적이면서 중첩적인 의미로 확장시키는 안무가의 의도를 연장해 보면, 주인공은 식인종을 뜻하는 카니발(cannival)의 공격적 행위를 축제의 현장인 카니발(carnival)이라는 제의의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행위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뒤에 달린 밧줄, 곧 꼬리를 뒷손으로 돌리면서 동시에 점프와 착지를 반복하는 동작은 커튼콜의 시점에 행해지고, 관객은 이를 박수로 대응하며 제4의 벽은 허물어진다. 반면, 이는 끝이 아닌 공연의 일부였음이 드러나면서 관객은 참여자로서 자신이 공연에 일부 속하게 되었었음을 인지하게 된다. 중요한 건 이 도약 행위가 수직 구도를 이루는 움직임이며, 그것이 끊임없이 더 높은 곳을 향한 맹목적 의지의 산물일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구조물은 뒤집혀서 그 위에서 아래의 존재를 내려다보는 구도를 만들기도 하고, 다시 선회해서 그 위에 위태롭게 매달린 한 명의 존재를 올려다보는 구도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즉각적인 위상 전이의 과정에서 존재는 급격한 상승과 하강을 경험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예외적 차이로 존재하던 주인공은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사회의 일원으로 동화되어 간다. 집단의 변화를 불러일으키던 그는 그 변화의 중심에 자리한다. 〈애니멀〉에서 움직임의 생생한 동력은 제어되지 않는 사회의 모습을 재현한다. 비판적으로 현실을 보는 안무가의 관점은 우화적이고 생경한 풍경으로 승화한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열망과 계급적 상승을 향한 초고도 경쟁 사회 안에서 변해버린 이질적인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김민관 편집장
2024.05.15 수요일 20:00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안무: 안영준
출연: 김재진 안남근 이유진 하권재 고동훈
의상: 신호영
작곡: 부다혜
작품길이: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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