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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므로살롱, 〈성인물〉: 스타일 혹은 코스프레로서 형식
    REVIEW/Dance 2026. 5. 15. 13:36

    모므로살롱, 〈성인물〉(안무: 이가영/연출: 이가영, 안겸)ⓒSang Hoon Ok[사진 제공=18th ARKO SELECTION](이하 상동).

    〈성인물〉은 투명 막 구조물 안에서 일관되게 진행되는데, 이러한 진공 형식의 기술은 통일된 캐릭터성의 차원에서 발현되는, 2박자의 긴 호흡 단위의 건조한 움직임의 나열을 영화적 장면처럼 편집해 내는 데 주효하다. 곧 명확히 구별되는 몇 개의 외부 음원 트랙은 그들의 안쪽 공간 ‘바깥’에서 그들과 동조된다. 완벽히 분리된 공간은 그 공간에 좁아짐에 반비례하는 밀도로 축적되는 한편, 2차원으로 납작해진다. 이 스크린에 가까운 장치에 이들이 포박되면서 우리는 그들의 소리를 잘 들을 수 없음을, 음악으로 완벽히 잠식된다는 사실을 알면서 그 소리를 완전히 ‘소거’하지 못한다. 저기는 곳 하나의 ‘막 안’이다.

     

    이러한 차폐 장치로부터 “성인물”이라는 관념은 어떻게 솟아나는가. 관음증적 시각 장치의 메커니즘은 그들이 보는 대상이 아니라, 그들을 대상으로 보는 것으로 전도되는데, 그것은 일종의 바깥에서만 그 안이 보이는 일방향 거울 같은 것 아닐까. 곧 조명은 결코 바깥에서 구조물을 뚫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만 소구되는 부분이다―그 바깥의 조명은 관객을 향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 내용이 성인물에 가깝지는 않은데, 기껏해야 이 기괴한 춤의 규칙이 머무는 곳에는 복장 도착자 정도의 이상함만이 감지되는 것이다―또는 그 캐릭터성이 코스튬 플레이의 기저를 이루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하나 별도로 부착되는 시선의 자리는 객석 방향으로 이 구조물 위쪽에 붙어 있는 모니터로, 이는 안쪽 공간을 중계하되, 반전시키거나 그레이딩해서 보여주거나 RGB 색상으로 환원시키며 뭉개거나 ×-ray 이미지의 별도 영상을 부가시킨다. 곧 움직임을 일차 소스로 활용함으로써 원본의 파생된 이미지로 기능하면서, 그와 동시에 편집점의 비가시적 시각 영역을 가정하여 움직임을 그 ‘아래’로의 시각적 대상으로 전도시킨다. 이는 다시 하강하며, 그 안쪽의 공간이 일종의 실존적 상황 자체가 아니라 클럽 댄스의 설정값을 안고 있음의 상태에서, 그것을 배가하는 장식으로 또한 낙착된다.

     

    그 안의 공간은 인지 부조화적 차원의 설계 양상인데, 주차장 표지의 노란색과 검은색 사선 조합의 선분 위, 하수 쪽 상단 벽면에는 일반적으로 다세대 주택 건물 로비에 위치한 회색 알루미늄 우편함―2×4 배열―, 그 중앙에 맨홀 뚜껑처럼 생긴 무늬가 양각으로 나온 원―잠수함의 해치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 옆으로 의상이 걸려 있으며, 그 앞에는 등받이 없는 회전 의자와 이동형 간이 테이블 퍼포머 수대로 4조로 분배되어 있다.

     

    곧 실내 공간과 외부 공간이 겹쳐져 있는 양상으로, 도상적 질서를 통한 철저한 재현에 기초를 두지만, 그 재현물‘들’의 혼탁함으로 인해 하나의 기괴한 ‘이미지’로 거듭난다/비의미화된다. 이는 특이한 배경 이미지로 기능하는 MTV 뮤직비디오에 가까운 것 아닐까―그에 따라 현장은 그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이전의’ 장소로 소급된다. 그러니까 〈성인물〉의 현재가 환기하지 않는 현재적 맥락의 모호함, 코스프레와 캐릭터성이 가진 코드들, 어떤 비역사적, 진공적 시간성은, 80~90년대의 미국 문화의 포스트모던적 흐름 아래 펼쳐졌던 패션-이미지-안무가 결합하는 대중음악 문화에 참조점을 두고 있는 것 아닐까.

     

    우편함에서 찻잔을 꺼내 차를 마시는 동작과 찻잔을 활용한 안무를 펼쳐내는 것처럼, 표층은 안으로 말려들며 뒤집힌다. 또는 심부와 같은 이중 공간의 신비를 간직한다. 중앙부는 빨간 액자 공간이 끼워 맞춰져 있었고, 이것이 앞으로 나오면서 일종의 감옥의 독방 같은 통제된 환경 안에서 생활하는 남자(안겸)의 생활상을 구체적인 세부로서 표현한다. 이때 억압과 통제는 그의 좁은 공간을 통해서라기보다 전체의 투명막 프레임의 연장선상에서 2차원 평면의 이미지로 환원되어야 함의 차원에서 작용한다.

     

    이때 남자에의 통제는 명목상으로는 일종의 중독적 상태, ‘도파민에 절인 삶’을 위해서다. 가령 ‘콜라를 마실 때 남자에게는 희열이 생성된다.’ 이는 이렇게 표현된다. 콜라를 먹임 당할 때, 그의 내부 장기에는 하트가 피어나는데, 그는 안쪽에 ×-ray로 찍은 내부 장기 인쇄물이 붙은 판지―그것을 내려 붙잡고 있는 또 한 명의 행위자가 투여된다.―를 담고 있는 그 일종의 판지-봉투를 그가 붙잡고 있는 것으로 갈음되는 것이다.

    곧 그의 손이 이미지를 직조하는 차원에서 기능적으로 활용되는 지점에서 그는 자신의 자유를 잃는 식이다(이때 세 이미지-행위 구문의 기호학적 합성 과정이 일어난다. 콜라를 들이켠다.―목구멍에서 내장으로 콜라가 내려간다.―내장의 이미지를 펼친다.). 그러니까 그는 실은 2차원의 이미지에서 연장된 일종의 팝업 씨어터 안의 재현되는 행위자의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통제당한다.

     

    이 정면성을 지향하(는 수밖에 없)는 좁은 공간에서 남자는 변기에 앉아 용변 보는 걸 표현하고, 컨페티를 위에서 뿌리는 것으로 샤워를 갈음한다. 이런 통제의 우화는 아기자기한 상상력의 차원에서 연루되고 보충되며 실은 공모한다. 처음 ‘전광판’ 스팸 광고―스팸에 대한 광고이자 광고로서 스팸―는 우리의 자율적 사고가 타동적으로 작동하는 아이러니의 구조를 드러낸다. 스팸은 초반, 무대 막 쪽에서 의자 위에 앉아 빨대를 꽂아 빨아먹는 식으로 무대에 실제 투입되는데, 이는 스팸에 연육 처리를 더 해서 거의 액체처럼 흡입할 수 있는, 최상의 편이를 제공하는 상품으로 재처리된 상태를 가리킨다. 이 스팸은 ‘저항할 수 없는’ 쾌(적)감으로 내장된다―여기에 부가되는, 에드워드 엘가(Edward Elgar, 1857~1934)의 〈사랑의 인사(Salut D'Amour)〉(1888)는 안내 멘트의 교양으로서 전형성을 갖고 반복된다.

     

    껍질을 까며 변신하는 모티브는 동그랗게 모여 위를 향하며 ‘슈퍼맨’ 자세를 취할 때 부감 쇼트로 이를 연결하는 장면에서 결정적으로 완성되는데, 이는 초반 가장 긴 군무 장면에서, 고독한 사투를 무심하게 이행하는 느낌을 정형화된 차원으로 부각하는 가발-선글라스-양복에서 하나씩 그것들이 들추어지고 벗겨지는 과정을 거친다. 차콜색 블레이저와 하의의 빨간 넥타이는 사실 훨씬 긴 목줄 같은 것이었고, 용변을 쏟아낼 때 벗어던진 하의 속 파란색 트렁크 팬티를 훌쩍 넘겨 치렁거리고, 상의를 벗어젖히자 다시 망토로 넓게 펼쳐져서 몸 뒤로 날린다. 이때 슈퍼맨에의 염원 혹은 상상은 가발과 선글라스를 벗어 던진 민얼굴로서 그것이 예외적으로/유일하게 카메라를 정면 응시했다는 차원에서 의미로 각인된다.

     

    사실 이들의 군무는 비루하면서도 실재적이며―라이처스 브라더스(The Righteous Brothers)의 〈Unchained Melody〉(1965)가 고양되는 분위기 안에서 그것의 진정성을 그들의 상투적인 차원으로 치환한다.―, 그 마지막 장면처럼 하늘을 향한 초월의 의지와 숭고한 대상을 상정하는 듯 보이는데, 두 팔을 머리 뒤로 올리거나 고개에 턱을 괴거나 뒷발을 잡아 올리거나 제기차기 자세를 취하는 것처럼 일정한 동작들의 반복된 이행 속에서, 옷더미를 바치는 것처럼 그 자신을 봉헌물로서 구성하고 있었다는 인상을 준다. 이는 앞선 독방의 남자 장면으로 단락되기 전에, 이 투명 막 공간 바깥―무대 상수 쪽 바닥의 홈에서 검은 비닐에 싼 흙―에 헬멧을 쓴 이가 나타나 ‘당근을 심는다’―중간 정도 길이에서 멈추도록 박아 넣는다.

     

    이때 무엇보다 내외부의 단절이 확인되는데, 곧 그들은 스팸과 대별되는 그 바깥의 살아있는 것의 그 기호와 ‘절연’되어 있다. 이때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1997)가 흘러나오는데, 현장은 스크린에서 RGB 색상으로 해체된 이미지들로 중계된다. 세계는 한층 ‘모호’해지는데, 퍼그가 그 안에 들어차면서 더욱 그러하다. (천장 조명과는 절연된 독립된 공간으로서) 조명은 옆에서 뻗쳐 나오는데, 이때 카키색 항공점퍼와 짧은 챙의 야구 모자, 빨간 팬티를 입고 추는 춤은 제식에 가깝다. 이들의 건조하고도 무심한 일체화된 반복 패턴의 구문들은 고독하고 고립된 현대인의 부조리한 제의를 의미하는가. 그런데 그러한 춤의 기의는 춤의 스타일로서 형식으로 뒤집히지 않는가.

     

    그것은 진공된 혹은 포장된 상태의 신체들, 따라서 이 닫힌 공간에서 그 음악적 동기화에 맡겨진 그들의 소리는 소거되고 은폐되는데, 이곳이 일종의 클럽 공간으로 전용됨은 그 이탈 불가능성에 대한 항변이라기보다 그 자체로 이룰 수 있는 최대한의 성취이자 일종의 코스프레식 형벌로서 수용이다. 따라서 〈성인물〉의 메시지는 고독한 현대인의 실존이 아니라, 그에 대한 역할 놀이이자 하나의 스타일로 승화시키는 바가 주는 심미적 쾌감 자체에 있다.

     

    그리고 이 ‘성인물’은 외부적 대상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평범한 우리 자신을 비추는 측면으로만 (우리를 자각하게 하며) 우리에게 재생되는, 일종의 변천하는 디제잉과 그에 합성되는 뮤직비디오 두 편과 그 사이의 막간극이며, 그 모두를 담은 테이프 자체라 하겠다. 그 연장선상에서 빨간 상자 안의 남자는 그 나머지 코스프레의 모습이 ‘탈은폐’된 모습 자체라 하겠다. 곧 슈퍼맨이라는 첫 번째 코스프레와 같이, 평범한 일상의 모습은 하늘을 나는 특수효과 차원의 전용으로만 달리 실천되는 듯 보일 뿐이며, 그럼에도 우리는 그와 같은 일시적 순간―곧 클럽―에서‘만’ 해방의 순간을 맞이한다.

     

    여기서 ‘성인물’이 음란물(Adult Video)이 아니라, Unspoken Duties, 곧 ‘무언의 의무들’로 번역되고 있음은, 성인물이 성인을 위한 대상이 아니라, 성인이 가진 어떤 것, 사물(thing)로서 곤궁을 의미한다. 곧 까다로운 대상으로서 성인에게 주어지는, 성인을 규정하는, 구속과 형벌의 차원으로써 성인을 식별하는 어떤 무엇임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야말로 성인에게만 지우는 부담과 억압의 산물, 곧 의무일 것이며, 잘/굳이 말해지지 않‘는’ 그러나 익숙하고도 보편적인 차원의 어떤 것일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공연 개요]

    2026.03.27 ~ 2026.03.29 금요일 20:00 / 토요일 15:00, 19:00 / 일요일 15:00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안무 이가영
    연출 이가영 안겸
    출연 안겸 이가영 이학 장경민 박진호
    영상 Limvert
    음악 최혜원
    무대 윤미연
    조명 김병구

    무대감독 김인성
    음향 허선영
    의상 김은영
    페이퍼엔지니어 김수현
    무대제작 무부
    그래픽디자인 최민욱
    포스터 사진 Limvert
    프로듀서 이보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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