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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진엽 안무, 〈백조의 잠수 Ritardscendo〉: 발레를 전복하기 또는 흐트러뜨리기REVIEW/Dance 2026. 5. 31. 13:28

차진엽 안무, 〈백조의 잠수 Ritardscendo〉ⓒ윤문성[사진 제공=세종문화회관](이하 상동). 우리가 익히 아는 음악이자 발레 작품, ‘백조의 호수’가 호수 곁의 백조라는 존재를 의미한다면, 그 유사한 명명, 실제 그 음악을 후반에 차용하는 이 작품의 제목, ‘백조의 잠수’는 깊은 물 혹은 바다 안의 백조의 행위를 가시화한다. 다른 매질 안의 움직임은 애초에 굳건한 지층 위의 움직임이 전제되는 발레의 고유한 속성과의 차이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견고한 신체 정렬과 스텝과 점프는 부력 안에서 본질적으로 전복되어야 한다.
차진엽은 여기에 Ritardscendo라는 의문의 단어로써 그 내용이 아닌 형식적 특질을 작품으로 명명한다. 곧, ritardando(점점 느리게)와 decrescendo(점점 작게)에서 각각 접두사, ritard-(느리게)와 접미사 -scendo(점점)을 추출해 하나의 의미로 합성한 자신만의 조어 ritardscendo로써 부제라기보다 ‘백조의 잠수’에 관한 직접적 번역 가능성을 대체하는, 영문명의 새로운 번역을 지정하는데, 여기서 ‘ritardscendo’는 ‘점점 느리게’와 ‘점점 작게’를 동시에 갖고 있으면서 그 둘의 합성으로써만 가능한 의미를 추구한다. 그것은 느림과 작음의 두 속성의 점진적 하강의 국면이 하나로 만나고 합쳐지는 아이디어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추정하게 한다. 그리고 이 음악적 특성들은 실제 작품의 움직임으로도 연장된다.
결과적으로, 제목은 발레의 한 레퍼토리를 상기시킴으로써 발레라는 장르와의 고찰과 어떤 차이로부터 시작되는 작품의 특징을, 그리고 모던 발레를 추동하는 특정 음악적 표지의 특징을 움직임의 단위로 만들어내는 형식적 특질을 함께 드러낸다. 처음 바닥에 힘주어 붙인 발을 미끄러뜨리며 뒷걸음질로 등장하는 여자의 동작은 토슈즈를 신지 않은 발을 초점화하면서 그것을 대체/해체하는 힘의 접촉면과 그 촉각적 전이의 감각을 강조한다. 이 움직임은 자연 꾸물거리고 미끄덩거리는 몸짓의 양태를 구현하며, 존재의 다른 생명 양식, 곧 특이한 생명감 자체를 부각시킨다.
내려 깔리는 음악의 진동이 지배하는 무대에서 움직임은, 발레의 수직적 축을 선택하는 대신에, 점진적인 수평적 축에서의 이동의 양상을 띠는데, 이는 바닷속 해파리의 움직임과도 유사하다는 인상을 준다. 여기서, ‘특이한 생명감’은 분명한 주체의 행위 양식이 아닌 그 생명의 양식적 특질에 대한 신비감이 우선함을 의미하는데, 실제 〈백조의 잠수〉는 뚜렷한 서사의 흐름 대신에, 그 존재의 매질과의 변화 양상을 기입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또한, 바다라는 매질과의 접촉은 뚜렷한 절단면을, 행동반경을 지정하지 않는 것으로 연장되는데, 곧 움직임의 구조적 단위를 만드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는 끝없이 유영하는 몸짓, 흘러가는 제스처에 가까운, 하늘거리는 움직임 양태가 끝을 지정하지 않고 반복되고 계속되는 작품의 환원적 특질을 의미한다. 평평한 땅 위에서의 발끝으로부터 시작되는 발레로부터 형해화된 스텝과 상체의 현란한 형체적 흐늘거림은 〈백조의 잠수〉가 발레의 구조가 전복되면서 그 발레의 반동적 몸짓들이 어떻게 파생되고 형성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곧, 발레는 사라지기보다 사라지는 것으로 매개된다! 이러한 유동적 지층에 대한 구조적 가시화의 장면은, 이후 바다의 파도를 물리적으로 응고시킨 무대 안쪽으로 불쑥 솟아난 플로어-파도를 바 삼아 모든 존재가 한쪽 다리를 일정하게 올린 채 움직임을 만들 때 발레에 대한 오마주로 분화되는 장면에서 엿볼 수 있다.
〈백조의 잠수〉는 발레를 인용하고 새로운 토대로부터 발레를 추출하고 재현하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의 일단이다. 이는 존재의 신비화, 심미적인 존재로의 구성을 보여준 이전 차진엽이 문화비축기지에서 대런 존스턴(Darren Johnston)과 공동 안무 작업으로 선보인 〈미인〉(2017)을 상기시킨다. 곧 존재의 도취와 존재에의 몰입을 동기화하는 그것을 등치하는 안무적 관점의 연장으로서 〈백조의 잠수〉를 바라보게끔 한다. 발레의 스텝을 전유하는 대신에 상체 중심의 전환을 꾀하는 과정에서 신체의 분포 양상을 재배치하는 데 안정화를 이루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두 발을 뒤로 딛는, 촉각적 전이에 대한 수행이 발레의 신비화를 현실의 무대로 바꾸는 하나의 고유한 시도로 자리한다면, 그 이후에 그 장면은 꽤 먼 과거의 기억이 된 것만 같다.
김민관 편집장'REVIEW > Danc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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