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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젤 비엔(Gisèle Vienne), 〈사람들〉: 음악과 춤의 상응 관계에 대한 탐구REVIEW/Dance 2026. 6. 1. 18:45

지젤 비엔(Gisèle Vienne), 〈사람들〉[사진 제공=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이하 상동). 지젤 비엔의 〈사람들〉은 음악이 춤을 대리하고 정지하거나 잠잠하거나 실은 단순한 몸은 음악을 들음으로써 순전하게 발화되는 음악의 영역이 미시적인 몸의 영토의 광대함으로 되먹임된다. 처음에 무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등장하는 여자 무용수는 느려지고 무거워지며 장면을 입체화한다. 시각을 왜곡하며 시간성을 굴절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로 확장된 이 같은 느림의 층위는 ‘지연의 숭고함’을 발생시킨다. 모든 것은 지연되고 유예되며 그를 통해 나아가고 시간축의 변화로서 공간을 발생시킨다. 현재를 붙잡고 늦추며 순간들의 집적으로 영원화함으로써 현재는 무화되고, 과거의 시간이 곧장 미래로 향한다는 인상을 준다. 또는 미래로부터 추출되는 시간이 과거의 시간과 접면하고 있다. 순간의 영원성은 현재주의의 강박을 분쇄한다.
〈사람들〉은 일상의 복장과 여러 유형의 사람들과 일상적 행위 양식을 통해 일상의 심미화 혹은 변환 과정을 구성한다. 이러한 전제는 기실 음악의 전면화를 통해, 음악과 몸의 상관관계, 음악적 리듬으로 재구성된 세계에 대한 관점을 실험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사이렌 소리와 조명의 어두워짐은 비상사태를 함의한다. 그렇지만 이는 일상의 변전의 한 사례로 포함시키면서 다양한 층위의 일상으로서 평탄화하는 것에 그치는 것으로도 보인다.
이러한 변화의 순간은 무의식적 지층에 드리우는 정치적 기억의 어두운 영역을 단순한 차원의 밝음과 어두움의 고전적 상징 범주로 각색하는 것일까. 오히려 일상의 단위가 가진 평온함과 정상성의 지대로부터 정치성을 직접적으로 소거하는 것은 아닐까, 음악의 한 범주로 특이화하면서. 나아가 춤에 부가(등치)되는 목소리 없는 매체(실재)의 영역은 언제나 움직임의 바깥이 아니라 움직임을 바라보는 방향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내면서.〈사람들〉은 바로 그 움직임을 향한 음악이라는 매체를 가시화해낸다. 또한 마찬가지로 음악이라는 문화적 권역으로서 90년대 테크노라는 장르를 디제잉의 전유라는 기술의 형식으로 나열, 선곡해 낸다―제각각의 일상은 음악적 형식의 닫힌 영역에서 열리고 그 영역에서 다시 닫힌다. 음악은 가장 처음에 빈 무대에 울려 퍼지다가 종국에 어둠이 출현하고 나서야 사라진다. 그 중간에서, 대부분의 움직임은 간격 자체로서 자리함으로써 거의 유일하게도 처음으로 텅 빈 음악의 실체를 드러낸다.
음악은 몸으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공간으로 환원되며, 움직임은 음악에 상응하고 부합하지만, 그것은 특정 순간의 장면일 뿐이다. 몸과 춤은 미세하고도 확연한 틈의 연속체로 있다. 그 틈은 분절 양상이지만, 음악이라는 물리적 시간 측정의 배경 아래 그것은 연속되는 무대 바깥의 시간으로 연장된다. 여기서, 잠자코 있는 몸은 그야말로 음악을 실체적인 것으로 들음으로써 음악을 전면화하고 그 기능성을 무화시키고 동시에 물화시킨다면, 춤추는 몸은 그 음악을 포획하고 붙잡으며 정위시킨다는 인상을 준다. 음악이 바깥의 실질로서 전유되는 순간은 음악과 몸의 동기화라는 기제와 다를 뿐더러 그것을 거부한다.
〈사람들〉의 느림, 멈춤, 행위의 세 양태는 각각 시간성이 새롭게 구성되는 것, 음악을 듣는 것, 음악을 전유하는 것에 상응한다. 양태, 매체에 대한 실험의 차원에서, 정치적 함의는, 그 긴장은 사라지고 잊힌다. 그에 따라 초반의 작품이 가진 영향력이 이후 서사의 구성적 차원에서 밋밋해지고 지루해지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실험의 미적 양식은 정치적 무의식을 온전히 소거하지는 못한다. 사이렌의 특별한 정치적 함의는 현대적인 기억의 서사로 배면에 안착된다.
일상은 이 모든 것들을 감춘, 떠안은, 쌓인 ‘이상한’ 표면이다. 그것은 심층의 반대말로서 표층이 아닌, 그야말로 두께를 가진 하나의 표면들이다. 두 개의 지루함, 곧 음악의 자장이 빈 공간에 울려대고 멈춰 있는 몸들과의 간격을 확인할 때, 그리고 다시 현재의 몸들을 감염시킬 때 하나의 순간으로만 치달을 때는 하나의 구조적 얼개로서 다시 반복된다. 이 구조는 첫 번째 내재적 분기의 차원이 쌓이는 것, 곧 음악의 형식적 전환과 그보다 훨씬 단순한 움직임의 형식이 맞물리며 변화됨이 다시 반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전자는 변경되고 후자는 온오프 되는 가운데, 세계의 구조가 반복되면서 관성화, 안정화된다. 또한 의미심장한 역사 정치적 장면이 일상과 대등해지면서 우리의 감각은 더욱 무뎌진다.
몸의 시간적 단위를 지정함은 몸의 형식을 구성하는 것으로 오인되고 스스로도 착각에 빠진다. 전자에서 몸의 강도가 시간축의 형성과 함께 고유한 장면의 단위에서 이뤄진다면, 후자에서의 몸의 다양한 양태는 음악과의 동기화에 대한 비중을 상향시킨다. 따라서 몸은 불충분하고 또 투박해진다. 소강상태는 구조의 단위가 지정되었음을 자각했음 이후부터 음악의 차원에서 나타나는데, 또 다시 부상할 그것, 그리고 그에 맞춘 움직임은 그것에 전적으로 상응하기보다 그것을 듣고 그것과의 유격을 사유하고 그것으로부터 추출할 일부의 파편으로 존재할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
두 남녀가 키스를 하려 하거나 포옹하는 장면에서와는 달리, 물을 상대방에게 쏟거나 소리를 지르는 장면에서는 소리가 뒤덮지 못하는 무대 안의 마찰이 발생한다. 이때 음악에 포함되지 않는 실재는 풍경이 아닌 또 다른 접면의 감각적 잉여인 셈인데, 그 직접성은 소요 사태나 폭발하는 정동의 차원에서 발현된다. 그것은 음악이 나오는 스피커가 창출하는 공간으로 확장, 정향되어 있던 감각을 새삼 무대로 돌아가게 하는 조율의 기제가 된다. 이 폭력과 소요의 자리는 바닥에 누워 의식이 절연된 집단적 침잠의 사태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또한 그것과 한 궤를 이룬다.
일상으로서 풍경을 깨뜨리는 파열의 순간은 하나의 덩어리로서 정지된/정체된/얼어 있는 시간의 차원으로부터 그것을 뚫고/찢고 나오는 부분의 또 다른 시간성이다. 그리고 이는 처음 무대를 가로지르며 나왔던, 그 자체가 하나의 시간이 되었던 여성의 발걸음을 떠올리게 한다. 후자가 오염되지 않은 최초의 시간이었다면, 그러나 전자는 이미 일상의 흔적과 시간이 묻어 있다. 거기에는 사람들, 군중이 있다. 그는 그보다 더 살아 있지만, 그들보다 더 삶의 의미를 강조할 수는 없다.
김민관 편집장10.26.Sat. 7pm10.27.Sun. 4pm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제작진
콘셉트·안무·무대 지젤 비엔
어시스턴트 안자 뢰터캄프, 누리아 귀우 사가라
출연 필립 베를린, 마린 체스나이, 실뱅 데클로이트, 소피 데마이어, 빈센트 뒤푸이, 마시모 푸스코, 레힌 홀란트, 오스카 랜드스트룀, 테오 라이브시, 루이스 퍼밍, 카티아 페트로윅, 조나단 샤츠, 헨리에타 월버그, 티라 위그 (대역 루카스 바세로, 누리아 귀우 사가라, 조르주 라그바트, 린 라그나르손)
조명 패트릭 리우
드라마투르기 지젤 비엔, 데니스 쿠퍼
음악 언더그라운드 레지스탕스, KTL, 베이퍼 스페이스, DJ 롤란도, 드렉시야, 마션, 초이스, 제프 제프 밀스, 피터 레버그, 마누엘 괴칭, 썬 일렉트릭,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편집·음악선곡 페테르 레흐베르크
음향 확산 디자인 스티븐 오말리
의상 지젤 비엔
협력 카미유 케발
MC93 연계 무용수 - Maison de la Culture de Seine-Saint-Denis, le CND Centre national de la danse, Festival d’Automne à Paris 협력
제작 DACM
공동제작 Nanterre-Amandiers, centre dramatique national ; Maillon, Théâtre de Strasbourg – Scène européenne ; Wiener Festwochen ; manège – Scène Nationale – Reims ; Théâtre national de Bretagne – Centre européen de production théâtrale et chorégraphique (Rennes) ; Centre dramatique national Orléans Centre-Val de Loire ; La Filature, Scène nationale (Mulhouse) ; BIT Teatergarasjen (Bergen)
협력 MC93-Maison de la Culture de Seine-Saint-Denis (Bobigny), CND Centre national de la danse (Pantin), and Festival d’Automne à Paris
후원 그르노블 국립 안무센터(CCN2), 국립 무용센터(CND, 판틴), 반클리프 아펠 댄스 리플렉션
감사 루이즈 벤트코프스키, 도미니크 브룬, 파트리크 치하, 잭 팔리, 우타 게베르트, 마그레트 사라 구존도티르, 이사벨 피에차치크, 아르코 렌츠, 장 폴 비엔, 도로테아 볼락 피엔
후원 반클리프 아펠 댄스 리플렉션
파트너십 프랑스 컬처'REVIEW > Danc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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