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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진 · 황태인, 〈조금만 바꿔볼까?〉*: 좁은 지대에서 너른 시간으로 전통을 구가하기REVIEW/Dance 2026. 6. 1. 18:44

조용진 · 황태인, 〈조금만 바꿔볼까?〉 연습 현장[사진 제공=서울남산국악당](이하 상동). “조금만 바꿔볼까?”라는 제목은 한국무용이 가진 형식에 대한 다른 접근을 일컫는다. 착장의 방식, 음악의 혼종적 결합, 전통의 재수용의 차원 등 공연 전반을 통한 한국무용의 형식에 변화를 두는 시도는, 제안의 형태를 띤 문장으로 나타나고, 이는 한국무용의 동시대적 쇄신에 대한 필요성을 전제한다. 조용진, 황태인, 박소영, 이태웅, 이상 네 명의 출연자는 모두 국립무용단 단원이며, 서울남산국악당과 국립무용단의 협력으로 프로젝트가 성사되었다.
다소 길게 자리하는 인트로는 〈조금만 바꿔볼까?〉가 지닌 태도를 일종의 콩트와도 같은 재현의 형식을 의도적으로 차용한다. 무대 안쪽 중앙에서 시냇물 소리와 함께 거문고를 연주하는 목기린을 두고, 무대 왼쪽에 등장한 이태웅은 두 발을 뻗고 먼지를 떨궈 내고 겹버선에 홑버선에, 한복을 천천히 입으며 의관을 정제한다. 뒤늦게 나타난 황태인은 찍찍이로 된 의상들로 신속하게 의상을 결착하며 그것을 따라잡는다. 한국무용이 가진 고유한 정신과 그것을 견지하는 태도는 삐딱한 태도이거나 자유로운 정신의 반동과의 비교를 통해, 비효율적이고 과장된 것으로 위치된다.
이는 과거의 부정이라기보다 혼재된 시간대의 병기를 통해 현재를 드러낸다. 두 시간대의 극단적/대립적 공존은 현실을 묘사하며 결과적으로 다르지 않은 형식으로 모아진다. 이 마법적 전환에는 현재의 기술이 뒷받침되어 있다. 이는 이후 연이어 롤러 슈즈를 신고 무대를 가로지르는 무용수들이 잰걸음의 빠름을 상회하는 장면에서 반복되고, 하이브리드라는 개념을 이 ‘빠른’ 형식에 덧입힌다. 이는 음악의 태도에서도 드러나는 부분이다. 거문고는 선곡된 사운드 스케이프를 틀면서 그에 맞춰 연주된다. 전자음은 거문고 연주에 부가되는 음악이 아니라 오히려 거문고가 그에 맞서며 존재하는 형국이 되며, 결과적으로 겹쳐지는 음악은 둘의 전도된 지위를 상정한다.
앞선, 의관의 정제와 (단순한) 충족의 두 다른 접근은 태도에 대한 대립적 표면을 낳는다. 황태진은 그 신속함에 편리함을 느끼기보다 뭔가 못마땅하거나 지루하거나 뜻뜨미지근한 태도를 견지한다. 여기서 이태웅에 대한 황태진의 견줌이 있을 뿐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태웅은 황태진을 의식하지만, 자신의 태도를 전면 수정하거나 행동 양식의 재고를 향하지 않는다. 이는 전통으로서 모범과 그 현재적 양상의 차이를 드러낸다. 각자의 태도에는 형식이 공명한다.
이태웅의 손짓이 올곧고 단순한 펼침을 통해 신체 전체의 움직임으로 확장된다면, 황태진의 손짓은 안의 중심을 향해 자유로운 유격과 차이를 보이며 그만의 세계를 다져간다. 전자의 풍류에는 걸림이 없다면, 후자는 까다롭게 형태를 깎고 다져 가는 셈이다. 태도로부터 나오는 몸짓은 각각 전통의 기상을 온전히 담고 뿜어내는 자유로운 정념의 기호로, 그리고 고뇌하고 사유하는 과정의 개인적이고 창의적인 차원의 기호로 두 다른 시간대를 정립한다.
이 시간의 차이는 전통의 수용과 새로운 출구로의 모색을 병존시킨다. 움직임의 축은 일상과 일상의 변용으로서 전통의 전유이다. 앞선 의관 정제의 시간과 같이 조용진은 요가 매트에서 간편한 복장과 움직임으로 박소영은 한삼 자락을 발에 끼고 치렁치렁한 복장으로 대조되는데, 이 비교의 차원은 현대의 일상적 차원의 몸짓과 신비화된 전통 캐릭터에 대한 상상력의 일면으로 각각 분화된다. 캐릭터가 비일상의 다른 시간대를 노정한다면, 현대인의 존재는 전통의 파편을 취하는 것으로 변화의 시간을 노정한다.
조용진이 유유히 이동하는 박소영의 발에 낀 자락을 붙잡고, 아랑곳하지 않고 이동하는 박소영의 자락이 자연스레 벗겨지는데, 거기에 춘향전의 노랫가락이 얹히면서 다시 전통의 서사가 전유되며 발현된다. 유유자적하고도 생기발랄한 캐릭터는 사실 이 장면에서, 고전적 여성상에 대한 스테레오타입 대신에 수궁전에서의 토끼와 거북이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결과적으로, 벗겨냄과 벗어던짐, 수동성과 능동성의 중첩된 층위가 혼재되는 순간에서는 페미니즘의 전유와 확장의 여지가 생겨난다. 동시에 신화의 시간과 현대의 시간의 시차가 발생한다.
여기서, 현대의 시간으로부터 ‘전통’을 붙잡고자 하는 조용진은 속도와 남성적인 차원에서 새로움의 기호를 축적한다. 황태진의 주변을 뱅글뱅글 돌며 거칠고 빠르고 리드미컬하게, 상대적으로 몸짓을 구사하며 조용진은 이후에 네 명의 조합에서 가속의 반경을 만드는 이동의 선봉장으로서 자리한다. 조용진은 나중에 이태웅이 타고 나타난 롤러 슈즈를 자신도 착용하는데, 이는 기본에서 연장된 스텝, 정위치에서 무대 전체로 확장되는 흐름을 신속하고도 효율적으로 가속화한다. 무대의 활보는 전통의 위상을 시험하고 교란하고 혼돈의 사태로 동시에 자유로운 영토로 구성하는 기호가 된다.
고정된 움직임의 심미적 기호에서 무대 전체를 가로지르는 몸짓의 가벼움은 간소한 의상에서 의상의 벗어냄의 앞선 장면과 하나의 궤를 이루며, 전통의 해체와 그에 대한 갈망의 정념을 드러낸다. 이는 기본에서 강강술래의 전통적 몸짓으로의 이동과 분별을 기입한다. ‘기본’으로서 움직임이 신무용의 정립 이후의 것으로서 그것의 정교화로써 펼쳐진다면, 강강술래와 같은 전통 놀이의 차원은 전통의 경계를 한층 더 확장하고 범용화하는 차원이 강하다.
여기에 목기린의 음악은 자기 분열적인 초상으로까지 생각되는 일면이 있다. 목기린은 기녹음된 사운드 스케이프를 디제잉하면서, 그 위에 실제 연주를 덧입히는데, 마치 전자의 사운드가 배경에 머무는 것에서 벗어나 강력하게 장악하면서 그것과 맞서는 파편들의 새어 나옴으로 변주된다는 점에서, 꽤 아이러니하게 작품의 참조점을 지시한다. 곧 사운드가 자연을 상정하는 무대 바깥으로서 도입 장면에서의 전통적 시간이 도저하게 자리하는 시간의 연장선상에서 자리한다면, 전통의 연주는 현대적으로 변용된 차원으로서 시도가 힘겹고도 혼재된 양상으로 자리할 수밖에 없음을 그 자체로 발화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조금만 바꿔볼까?〉는 전통을 가져오되 개별적으로 분화된 네 명의 개성이 각기 다르게 병존하는 장을 구성한다. 이는 축제의 형상 안에서 하나의 타래를 이루는 기차놀이 같은, 강강술래의 한 부분인 것 같은 이동 속에서, 또 산재하는 파편들의 몸짓으로 드러난다. 전통을 입고 구현하기, 전통을 캐릭터로서 치환하기, 전통을 자신만의 속도와 외양적 전이로, 또는 전통을 자신만의 흐름과 시간으로 직조하는 것, 각각 이태웅, 박소영, 조용진, 황태인은 전통의 닫힌 기호에서 열린 기호의 너른 시간대로 확장해 간다. 그리하여 전통은 한층 새롭고도 자유로우며 변용 가능한 무엇으로 수용될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수용된다.
김민관 편집장*참고로, 본 글은 서울남산국악당 모니터링 의뢰로 기록되었습니다. 당시, 일정한 포맷과 형식상의 제한이 없었던 관계로 공유합니다.
2024-11-01 ~ 2024-11-02
서울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
안무 조용진 황태인
출연 조용진 황태인 이태웅 박소영
음악감독 목기린
드라마투르그 황수현
거문고 연주 김민영
기술감독 박기남
의상 라인플랜트
프로듀서 조화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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