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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미, 〈폐기호흡-감각의 사변적 수행〉: 리허설과 퍼포먼스 사이에서 결정되는 지각들REVIEW/Performance 2026. 6. 1. 18:51

장수미, 〈폐기호흡-감각의 사변적 수행〉ⓒ최형락[사진 제공=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이하 상동). 장수미의 〈폐기호흡-감각의 사변적 수행〉(이하 〈폐기호흡〉)은 호흡을 일종의 순간의 질적, 인식론적 물질의 단위로 처리하며 이를 기입하여 ‘폐기’ 조처하고 다시 시작하는 연습~훈련(practice)의 기저를, 곧 리허설의 시간을 연장한 것과 같다. 공간 전체에 편재하는 문장의 조각들, 그리고 울퉁불퉁한 종이로 만들어진 반쪽의 구 형상으로, 속이 드러나도록 뒤집혀 있으며, 그 안에 호흡에 대한 연습 단위의 기술들이 빼곡하게 혹은 산재한 채 있는 흰색 오브제가 여기저기에 있으며, 입구에서 가장 먼 맞은편에는 음향 장비와 장수미의 〈폐기호흡-감각의 사변적 수행〉(이하 〈폐기호흡〉)은 호흡을 일종의 순간의 질적, 인식론적 물질의 단위로 처리하며 이를 기입하여 ‘폐기’ 조처하고 다시 시작하는 연습~훈련(practice)의 기저를, 곧 리허설의 시간을 연장한 것과 같다. 공간 전체에 편재하는 문장의 조각들, 그리고 울퉁불퉁한 종이로 만들어진 반쪽의 구 형상으로, 속이 드러나도록 뒤집혀 있으며, 그 안에 호흡에 대한 연습 단위의 기술들이 빼곡하게 혹은 산재한 채 있는 흰색 오브제가 여기저기에 있으며, 입구에서 가장 먼 맞은편에는 음향 장비와 이를 컨트롤하는 사람(민트박)이 있다. 입구 방향으로 맞은편을 향해 가며, 긴 형광등 일곱 개가 사선―입구 방향 쪽으로 기울어 있다.―으로 일정하게 기울어져 차례차례 매달려 있다
그리고 이 안에서 다섯 명의 퍼포머―김지형, 손슬기, 이소여, 장수미, 한연지―가 돌아다닌다. 이때 이들이 관객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기보다 관객과 공존하고 있음에서 무언가가 드러난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곧 이들의 ‘연습’은 무언가를 정확히 완성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관객을 연루시킨다. 흐름의 한 부분으로서 그것은 나타나며, 공간은 미리 전유되었었고, 리허설이라는 형식은 언제나 달라지며, 마지막까지 절대적이다. 이 리허설‘로서’ 형식은 결정되어짐에 가깝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호흡이 수행의 단위가 되며, 그 호흡이 내재적이기보다 환경과 존재와 혼합되며 또한 매체 연장적인 특징을 갖고 있음이 전제된다.‘하얀 껍질’ 안에 문장들은 이곳이 수많은 (비)가시성이 축적‘되는’ 곳임을 드러낸다. 그것은 이미 지나간 시간의 흐름 안에서 이곳이 (단지) 연장되는 곳임을 의미한다. 그것은 정확히 관객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무언가를 사유-행위하고 기입하는 성찰적 흐름의 끝없는 연습에 대한 역량을 지닌 (이전) 존재들로부터 연장되는, 무용수와 무용수가 아닌 이에 대한 랑시에르식 ‘감각의 분할’을 철회하는, 민주주의적 영토에 대한 이념이 있다―물론 이는 후반에 장수미에 의해 하얀 껍질 안에 “호흡”에 대한 관객의 생각을 은밀하게 묻고 돌아다니는 직접적 행위에 의해 표기되지만, 그것은 조금 작위적 참여로 보이는 일면이 있다.

첫 번째 움직임은 객석과 무대가 완전히 갈라지기 전, 그 틈새를 가시화하는 방식이다. 불분명하고도 모호하게 주어져 있는 그 시간을 연장하면서 퍼포머가 바깥이 아니라 ‘안’에서 산출됨을 보여준다. 이때 관객은 후드에 레깅스를 입고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새어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흥얼거리면서 종종거리며 관객을 비집고 나가는 존재(손슬기)를 주의하거나 그에게 매혹되는데, 그것은 의사-일상을 묻히는데, 그러니까 일상이 아닌 시간을 일상으로 인위적으로 조작함으로써 익숙한 시간과 장면으로서 일상을 지닌 개체들의 ‘보편적’ 컨텍스트로 관객을 소급시킨다. 그것은 일종의 반-극장의 시간으로써 극장을 탈구성하기의 급진적, 너무나도 극적인 실천(이 지녀야 하는 한갓됨)이다.
그와 동시에 손슬기의 행위는 관객을 가르면서 그곳을 안이라고 믿게 하며 바깥을 봉쇄(한다는 오지각을 구성)한다. 하지만 그 행위에 더 근본적인 건 그와 관객 사이에 어떤 틈이 그 둘의 중간적인 상태로서만 주어진다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완전히 공간을 물리적으로 구조화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둘이 함께 공존하고 있음이 이상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너른 (비)접촉의 경계를 강화한 데 그친다. 〈폐기호흡〉은 이 고유한 생명 단위들이 산재하면서 각자의 호흡 단위를 실행, 기입하지만, (그것 안에 있지만) 그것은 다른 것들과 연루되어 있다는 점에서,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불연속적이라기보다 혼합적이며, 연속적이라기보다 울퉁불퉁한 차원임을 가리킨다.
하얀 껍질이 그렇듯, 그것은 어느 정도 신체에 닿기 위해, 신체를 덮으며 신체와의 틈을 줄이기 위해 (그 안으로 접힘으로써) 오히려 울퉁불퉁해진다1―후반 그것은 다시 뒤집혀 신체를 덮는 ‘담요’가 되거나 그 사이에 위치하여 몸을 숨기는 은신처의 매체가 된다. 손슬기를 통해 열린 반쪽의 공간, 곧 입구의 좌측으로 반절의 형광등이 자리한 공간에 퍼포머들이 포화되는데, 이때 관계는 서로에게 무심하며, 그럼에도 서로에게 반향하는 존재로서 수용되고 있음이 눈에 띈다. 이러한 간접성의 관계가 하얀 껍질의 압축 성형의 흔적에서처럼, 그리고 그것의 완전한 흡착의 불가능성처럼 서로를 덮치는 것으로 향해 간다는 것으로 움직임의 강도적 이행의 차원에서 〈폐기호흡〉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 급진적인 형상은 그 이전의 흐름에 비추어 극적이고도 급작스러운 데가 있는데―따라서 서사적으로 개연적이지는 않은데 또는 합목적적으로 성취되는 건 아닌데―, 이는 모호하고도 비선형적으로 편재하는 존재자들로부터 어쩔 수 없이 이르러야 하는 ‘결말’을 향한 봉합일까, 아님 서서히 달구어진 전반의 온도가 응결되는 자연스러운 결과일까. 각각의 존재자들은 모두 다른 고유성을 갖고 자리하는데, 뒤집힌 몸으로 먼저 각인되는 김지형은, 아마도 가장 분명한 소리를 먼저 나타내는데, 그것은 숨의 변주이다. 숨 쉬는 것의 고통이 전면화되며, 숨이 고통으로 가시화되는 이 순간은 사물화된 신체에서 발작적으로 작동하는 각인된 행위들의 발산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가 일종의 정동적 사물 혹은 오브제라면, 가장 직접적으로 이를 벗어나는 건, 그 반대편에 머무는 건 이소여로, 그는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면서 기 설치된 “소여의 스프레드시트”, 곧 공간에의 소리나 대화를 관찰해 스프레드시트에 작성한 전자 패드가 있는 것과 같이, 이를 연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때 그는 움직이기보다 관찰하고 사유하(고 기입하)는 정도의 행위―그가 무엇을 하는지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 설치의 요소에서 추정해볼 수 있다.―로써 경계에 걸쳐 있는데, 앞서 장수미가 관객과 직접 만나는 것과 같이, 장수미는 안팎으로 달리 연루되어 있다는 점에서 또한 예외적이다.한연지는 손슬기를 이어, 손슬기가 구성한 반쪽의 공간에서 전체로 확장해 가는데, 그것은 하악을 내리며 내쉬는 숨을 길게 빼는―손슬기가 흥얼거림으로 숨을 역동화했다면―, 반쯤 의식을 놓는 숨의 가시화로, 이는 위태로운 균형, 한 발로 점프하며 중심을 잡는 양가적인 형식을 이룬다. 바깥을 향하며 자신을 반쯤 비워낸다, 또는 바깥을 수용하기 위해 자신을 반쯤만 지지한다. 이때 그는 허공이라는 비가시적이고도 불완전한 지지체에 반절을, 그리고 물리적 지지체인 반절의 발로써 나머지 반절을 맡긴다. 그것은 난교를 상징―그는 거의 눈을 감고 ‘외부로부터’ 도취되어 있다.―하고 또 예기하는데, 곧 집단적 뒤덮음, 싸개-되기의 마지막 장면을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닿지 않음에 대한 닿음이다.
그렇다면 그 모두가 하나의 결합부로 연결될 때 그것은 집단적 성교가 마침내 ‘실현’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그것은 서사가 성공적으로 안착된 순간일까. 적어도 하나의 신체-구멍으로서 연결-접합을 기다리고 있던 존재들이 빛을 찾았듯 또는 다공성의 신체적 연합으로써 더 많은 잠재적 용출의 장소로서 변모하게 되었다는 듯 말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건 그것이 예정된 서사의 연장인지 서사의 미완성을 갈음하는 서사적 장치인지라기보다 이러한 ‘결말’이 사변적 수행으로서 유효한가라는 것이다.
그것은 앞서 즉자적으로 놓이는 신체들의 양상이 잠재적이면서 예비된 것이라는 점을 부정한다기보다는 그리고 대자적으로 엮이는 신체들의 반향 작용으로 대조적으로 명시된다기보다는, 독립적인 개체/변수로 자리하던 신체들이 덩어리의 육체들의 합성으로 변모할 때 그것들이 지닌 사변적 성격의 발화와 몸짓이 기묘하게 상실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토양과 식물의 재배가 한 축의 오브제 환경을 이뤘던 것처럼 신체에 대한 자연적 배양, 세계 안의 신체들이라는 또 다른 관념의 낭만주의적 실천일까.
〈폐기호흡〉은 선형적 순서로서가 아니라 여러 경로성을 상정하는 것으로서 과정을 구성하며 실재의 시간이 또 다른 공동의 현장에서 배어나올 수 있도록 의도한다. 각종 전략들, 방식들, 양태들의 배치가 관객과 직접 결합되는 대신, 흔적과 자료, 사물로서 검토되고 관찰된다. 거기에는 퍼포머들 역시 포함된다. 호흡은 늘 폐기되는 것이지만, 호흡을 흔적으로 각색할 때 퍼포먼스는 방만한 부산물의 회집 자체와 동거하고, 그것의 전표현적 가능성의 가능성을 전제하면서도 실은 분명한 시나리오를 지정하지 않은 가운데 갖는 머뭇거림과 유예됨, 결정된 순간에 대한 기다림과 의존 등의 여러 양상으로 분화된다. 따라서 긍정성을 위해 부정성이 잠식된다.
아마도 〈폐기호흡〉이 갖는 단 하나의 긍정성이라면 그 부정성을 수용하는 부분으로, 그것은 퍼포먼스에서의 정동이면서도 퍼포먼스를 위한 정동 자체가 무엇인지도 함께 드러낸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리허설의 개념으로 포섭될 수 있다라면, 실은 그 리허설의 절대적 우위와 고유성 안에서 자리하기보다 그것이 극복하고자 하는 퍼포먼스에 대한 관계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차원에서 그것이 (재)정의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부분은 그것이 단순히 미완성의 측면을 지정하기 때문에 그렇다기보다 이 끝없는 과정으로서 시간이 실은 완결의 순간‘들’ 자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니까 그것은 퍼포먼스의 규약을 벗어나기보다 ‘더’ 퍼포먼스적인 무엇을 그 안에서 상기시켜 주는데, 그것은 물론 예측 불가능한 차원의 성격이다. 그렇지만 퍼포먼스는 끝내기보다 (일차적으로) 종료되는데, 따라서 〈폐기호흡〉의 결말이 다다르는 바는 리허설로서 퍼포먼스의 차원에서 결국 닫히지 않는 서사가 가진 결말의 취약함이나 불가능성 자체를 선택하지 못했음(의 실패함)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그 어쩔 수 없는 닫힘의 결말이 갖는 서사적 성격을 배제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 아닐까. 그것은 곧 무엇보다 퍼포먼스라는 ‘결정적’ 형식이 가진 제도적 관념으로부터 우리가 자유로울 수 없다라는 것을 전제하는 듯 보인다.
김민관 편집장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 개관특별전 세마 퍼포먼스 《호흡》
장수미, 〈폐기호흡 - 감각의 사변적 수행〉, 2026
서서울미술관 지하1층 전시실2
라이브 퍼포먼스
4. 3.(금) 16:00
4. 4.(토) 16:00
4. 5.(일) 16:00
콘셉트/연출: 장수미
안무/퍼포먼스: 손슬기, 김지형, 장수미, 한연지, 이소여
크리에이티브 기록: 이소여
이미지 디자인: 이세린
사운드: 민트박
의상: 김정아
조명 디자인: 공연화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 커미션
기획·제작 이성민
제작·운영 곽소민, 김수나, 박수정, 이소영, 이지연, 임다울, 이도현
조명 공연화, 김세현, 신유미, 박지원
음향 김성욱, 이원석, 전희주
무대 이도엽, 이유성, 김지수, 김진태, 손성현
사진 최형락,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2026.4.2.)
주최 서울시립미술관- 1. 이는 ‘비주얼시어터 꽃’의 〈종이인간〉에서 누인 관객을 하얀 종이를 덮고 주무르면서 그 신체의 형상을 띠게 하는 접촉~주물을 뜨는 행위를 상기시킨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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