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화이트큐브 프로젝트, 〈얼키설키〉: 수직과 수평, 비일상과 일상의 대립 혹은 난립
    REVIEW/Performance 2026. 5. 22. 17:23

    화이트큐브 프로젝트, 〈얼키설키〉 포스터.

    〈얼키설키〉의 제목인, ‘얼키설키’라는 어떤 모양 혹은 형태, 그것이 가리키는 관계와 상황을 내비치는 단어는 작업의 주요한 모티브가 된다. 돌출무대를 구성하는 패션쇼의 런웨이는 관객보다 높은 시점을 상정하고, 관객을 향한 끄트머리에는 차이니즈 폴이, 그 반대편에는 런웨이의 입구와 2층에서 음악 연주자가 자리한다. 런웨이를 걸어 나오는 패션쇼의 장면으로부터 시작되는 〈얼키설키〉는 예기치 않은 실수, 곧 앞으로 고꾸라지며 튀어나가는 동작으로부터 삐거덕거리는 모습을 연출한다.

     

    중반 이후에 도입되는 차이니즈 폴은 〈얼키설키〉의 서사적 고점을 이룬다. 그 전을 채우는 건 대체적으로는 일종의 집단적 안무의 반복으로, 이 안무는 대단히 양식적인 몸짓 차원에 가까운데, 이는 현실 행위자의 틀 안에서 그것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밝고 개방된 런웨이에서 일상의 복장들을 착용한 사람들은 일종의 스타일 혹은 양식으로서 춤을 기꺼이 입고, 그것이 바깥으로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임을 인지한 가운데 그것을 행한다. 그 몸짓은 직접적인 소통의 언어이자 구문이라는 점에서 명확한 동시에 상투적이며, 표피적인 동시에 기능적이다.

     

    움직임의 미학이 아닌, 어떤 양태에 접근하기 위해 몸짓들은 구가된다. 정성태가 2층에서 라이브 연주를 하는 옴브레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외로움에 대해 고민하면서 결국 혼자만의 독백으로 이어지며 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 우연적 사건을 가장함으로써 고독해지는 장면으로 끝나면서 소극 안에 그 외로움의 형상을 밀봉하는데, 이는 도도한 몸짓의 런웨이 워킹이 미끄러지는 균열로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것에 상응한다. 이 외로움은 의미론적이기보다 급변하는 관계의 동물적이고 정치적인 사태의 관계 맺음 속에서 상황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한 명(김효경)이 약육강식의 언어에서 밀려났을 때, 그리고 외부에서 등장한 한 남자(정성태)가 그를 대리하기 위해 왔을 때, 폭력적인 집단은 와해되는 모습을 그린다. 그리고 외부의 관객을 데려옴으로써 힘의 균형을 되찾아오는데, 여기서 떨어지는 개연성은 얼키설키 엮이는 관계의 비논리성, 비정합성 같은 특질의 반대급부다. 이는 사실 서사적 도약과 물리적 도약의 일치를 정점으로, 그 아래에서 벌이는 연극, 소극의 양상이 그 자체로는 그다지 온전하지 않음, 또는 이 광활한 무대를 메우기 위한 갖가지 손질들이면서 거꾸로 전자의 차원으로 가기 위한 임시 절차이자 봉합의 과정에 불과함을 의미한다.

     

    곧 무용이든 연극이든, 무용극이건 간에 〈얼키설키〉는 극장이 지배하고 전파하는 압도적인 힘으로부터 무기력하다. 차라리 미시 서사의 난립, 양식적 몸짓들의 축적의 측면은 그 극장에 대한 분투의 결과에 가깝다. 이 극장을 광활한 무대를 수직적 시점으로 고립시킴으로써 비로소 극장의 틈새를 메우는 게 가능해진다. 따라서 물리적이고 서사적인 도약은 필요했다. 만약, 거리였더라면, 지지부진한 거꾸로 다채로운 소극적 양상의 나열적 방식은 그런대로 흥미와 이목을 끌고, 그 자체로 효과적일 수 있을 것이다. 곧 유동적인 존재들의 난입과 뒤덮는 소음은 이 서사의 틈을 훌륭하게 메웠을 것.

     

    반면, 그 서사들의 틈새는 음악이 없이 벌어져 있다. 그것은 거의 일상의 공기 그대로를 재현한다. 그것은 너무 가까워서 생생하고도 간지럽다. 일상의 장면이(어야 하)지만 서사적 개연성을 납득할 만한 장면은 또한 아니라는 점에서 그러한 감각은 더욱 증대된다. 음악은, 더 선명하게는 기타의 라이브 선율은 이들의 현실이 어떤 장면으로 안정화될 때 비로소 작동한다. 또는 지배한다, 2층에서 이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것과 같이. 따라서 현실은 매우 분명하게 틈을 벌리고 있고, ‘고요’ 속에 머문다, 채워지지 않는 고요 속에.

     

    차이니즈 폴로 한 사람이 오르는 걸 다른 사람이 도와주는 협력 구조의 반복으로 연장되면서 미적 양식으로 고양될 때, 곧 비일상적인 구도로 승화될 때, 조명을 통해 어둠을 획득할 때 〈얼키설키〉는 심연의 코드를 완성한다. 표피적인 일상성이 소극적 양상으로 펼쳐지는 것을 넘어, 인간의 언어가 아닌 내면의 정서를 들여다보는 것과도 같은 층위에서. 〈얼키설키〉는 서커스와의 접변을 통한 현대무용의 굴절, 변형된 형상에 가깝다. 또는 서커스의 틈새를 미학적으로 봉합하기 위한 현대무용의 손짓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안에서 몸짓은 다분히 상투적인 양식으로 수렴한다. 서커스의 수직 움직임과 평면 무대의 몸짓이 명확히 분기하는 데서 나아가, 그 둘은 통합적인 양상, 중간적인 형태를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짧은 수직적 서사와 긴 수평적 서사의 대립은 서사적 고양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지만, 가장 처음 미끄러짐이라는 균열은 얼키설키 엮이는 관계성의 이전으로 극을 끝맺기보다는 이 극의 코믹한 코드라기보다 진정한 주제로서 자리 잡으려는 듯 보인다.

     

    곧 일상의 균열은 비일상으로 가는 통로이자 서사적 접합점이자 단계적 요청이었던 것. 그러나 사실 그것은 공연 전체의 인장이자 완성이기도 했던 것. 그러니까 비일상으로의 고양이 클라이맥스가 아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 이 광활한 무대를 고스란히 남겨 두기 위해 그 중간자적 행위는 다시 한번 더 반복되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해지는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안무/연출_ 정성태 
    출연_ 김봉수, 김선혁, 정의영, 김효경, 김혜림

    프로듀서_ 강유진  
    무대디자인 • 무대감독_ 이은규  
    무대제작감독_ 신재욱  
    조명디자인 • 조명감독_ 노명준  
    음향감독 _ 이현석  
    음악감독 • 연주_ 김헌기(옴브레) 
    코디네이터_ 신현아  

    기획•운영_ 프로젝트 다리  
    무대제작_ 나무타는 목수들  

    주최•주관 화이트큐브프로젝트  
    후원 경기도, 경기문화재단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