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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공독무 서울교방 6인전: 깎여나가며 자리 잡는 형식들
    REVIEW/Dance 2026. 6. 5. 21:36

    6인전이 지시하는바, 홀로 춘다는 ‘독무’는 홀로 닦아 낸다는 ‘독공’과 운을 맞추는 기능적 구성에 가깝다. ‘독’은 완전함의 요체를 가정하고 거기에 대한 1인칭의 신화적 서사를 가설한다. 그 완성을 위한 스스로의 깎여 나감을 감내하는 지난한 노력의 비가시적 시간이 ‘독’이며, 그 ‘독‘의 시간이 펼쳐지는 건 침범하지 못하는 신성의 영역에 다다르게 됨을 암시한다. 곧 6인전에서의 각각의 방들, 일종의 모나드들은 혼자만의 온전한 공간을 구성한다. 

    제목에 가정되지 않은 “온습회”는 “근대 시기에 권번에서 수련생들의 예술적 기량을 공개적으로 발표”했던 “행사”로, 여기에는 다시 대타자의 시선이 들어온다. 그것은 완전함의 요체에 선행하는 엄격함의 틀과 가치가 전제되며, 전통의 확립은 연대기적 시간 안에서 유예되고 기약되는 것으로 설정된다. 결과적으로 ‘온습회’는 대타자의 시선을 관객의 시선으로 전치하지는 못하더라도 권번 시절의 역사적 배경을 지시함으로써 전통에 대한 참조와 함께 전통의 무분절적 시공, 곧 온전한 연속 역시 가정한다―사회를 맡은 배일동 명창의 안내는 이를 침범할 수 없는 배타적 영역으로 설정하며, 그것이 독공에 적용되었을 때는 자연의 기호로 환원된다. 

    독공독무 서울교방 6인전ⓒ옥상훈(이하 상동).

    각기 다른 민살풀이춤이 맨 앞과 뒤에 배치되었는데, 그 첫 번째 무대는 노문선의 민살풀이춤으로,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건 머리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곧은, 정렬한 선이며, 이는 얼굴의 강직함으로도 반영된다. 이는 질서의 기호이며, 신체 전반뿐만 아니라 공간과 관객까지를 붙잡아 두는 절대적인 위엄이다. 동시에 전반적으로 좌우로 펼친, 뻗친 두 팔의 곧음으로 연장된다. 이러한 질서의 힘과 견고함은 ‘남성적’이라는 기호 체계를 열어젖히는데, 이를 풀어헤치지는 것은 소리이다. 

    진공의 공간에 의식으로서 시간의 흐름이 감겨오기 시작하고, 생기가 배어 나온다. 이런 구조는, 음악이 끼어들고 판이 뒤집히거나 뒤바뀌는 흐름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대부분의 춤판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는 음악이 그 움직임을 진정한 의미에서 바꾼다라는 것이 아니라―음악은 어디까지 보조적인데, 또 한편으로는 자율적이다.―, 살아 있는 음악의 개입이 곧 춤의 본령임을 가리킨다. 곧 음악이 춤으로 화할 때, 더 정확히는 춤이 음악적인 무엇으로 상기될 때, 춤 역시 어떤 변화의 흐름을 펼쳐 보이는데, 이때 음악은 춤으로 온전히 전이를 이루기보다는 역시 실재의 요소로 튀어나오고 또 춤에 섞여든다. 

    김미선의 민살풀이춤(조갑녀제)이 노문선의 민살풀이춤과 대별되는 지점은 바로 그가 양립하는 신체의 방향이 뒤틀어져 있다는 것이다. 곧 사선으로 기울어지되 관객과 마주하지 않고 뒷모습을 보이는 자세가 일종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이는 안으로의 수그러짐, 곧 배면으로 자리하는 신체로부터 움푹 들어가는 시선이 갖는 강한 흡입력을 부각시킨다. 노문선의 춤이 식별되는 뚜렷함으로 시작되는 데 비해, 그리고 그 뚜렷함은 그 뚜렷함을 만들어내는 시선의 바깥을 향하게 한다면, 김미선의 춤은 신체의 뒤틀어짐을 통한 공간의 뒤집힘으로부터 거꾸로 시선으로 수렴하는 지점을 만든다. 

    김미선의 춤 역시 진공 상태의 공간에 뻗치는 힘의 도약과 분절적 신체의 미세한 분기가 적용되는데, 이때 추임새가 단속적으로 튀어 나온다. 이는 일종의 실재적 격발이다. 기와 같은 하나의 흐름이 하나의 신체를 지배하고 있으며, 이는 그 사이의 작은 분절들 또는 일정한 틀 아래의 시각적 기호로 계속해서 연장될 때 거기에는 힘의 잔여가, 어떤 잠재된 힘의 중단 없는 지속이 있음을 의미한다. 곧 분절들은 힘의 다 펼쳐지지 않은 부분의 힘들이며, 그 거대한 힘은 그 외부의 격발의 소리로 증명되는 셈이다. 결국 춤이 힘의 영속 아래 있다면, 소리는 그 힘을 감당할 수 없음을 보여주며, 그 부분 신체로도 환원할 수 없음의 잔여를 대리한다. 

    최주연의 교방굿거리춤에서 클라이맥스는 물론 후반의 소고가 곁들어진 춤에 있다. 앞에 놓인 소고를 수중에 넣으면, 그것은 소리로서 기능하지 않지만, 모든 소리가 그곳으로 수렴하는 그리고 그로부터 방사되는 시각적 요체가 된다. 단정함과 절도를 기본으로 하는 춤은 소리가 더해지며 몸짓은 자유로워질 뿐만 아니라 유연해지는데, 이런 점차의 분위기에 따른 흐름의 전개는 생각보다 급격하고 또 흥의 달아오름의 신체적이고도 심리적인 추이를 고스란히 반영하며, 그 흥의 최대치가 바로 소고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소고는 ‘그의 스승 김수악이 남긴 여덟 마루의 굿거리춤사위에 최주연 스스로가 더한 것’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굿의 감흥, 현장성, 신이 당도함 모두 실내임에도 압축돼 상연되는 것이다. 

    김미애의 논개별곡은 논개에 대한 재현과 서술의 중첩된 접근을 취한다고 보이는데, 이는 김미애 스스로가 논개이면서 그 논개가 역사적 인물이자 여성의 한 유형을 추상한다고 상정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논개는 적을 향한 비운의 마지막 무대를 펼치는 존재의 자리를 취하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 역사의 자리를 다시 호출할 때 그 적의 바깥에 관객과 함께 놓이게 된다. 이는 적이 아닌, 역사의 한 인물에게, 곧 논개를 대리하여 논개 스스로에게 다가서며, 이로써 논개로부터 확장되고 전이되며 공명하는 관객과의 연대가 성립한다. 

    ‘논개이자 논개에게’라는 김미애의 수행은, 그리고 논개를 추상한 보편의 여성 주체를 향한, 곧 통시적 역사의 계보로부터 공시적 현재의 현장을 함축하는 자리에는 일종의 드라마적 상연과 그 이해가 따른다. 가지런한 두 손으로 절하는 모습은 논개의 형상이면서 논개의 자리에 대한 숭엄함을 보존하는 이중의 지향과 애착이 자리한다. 

    수건은 이 애착의 이중적 지향을 보존하고 드러내는 대상이 되는데, 펼침의 유연한 확장보다는 두 손으로 강하게 감싸 쥠의 상태에 힘이 실리게 되며, 그것은 수평과 수직의 차원에서 발현하는 몸의 확고한 중심축 대신에, 신체 마디마디의 재배치가 일어남을 의미한다. 곧 부분적인 신체의 기울어짐 양상과 녹아내리는 몸의 정동적이고도 현상학적인 신체의 변환을 구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심리 드라마와 수행적 발화로서의 신체 모두를 구현한다. 

    결과적으로, 수건의 활용을 통한 몸의 확장과 변환은 몸의 지지체로서 수건의 중요도를 보여주는 한편, 실제로 역동적인 흐름과 양태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수건이라는 외부의 기호는 신체적 애착의 대상으로 내재적인 것이 되는데, 여기에 더 큰 외부의 것이 김미애의 신체를 침입한다. 곧 김미애를 비추는 파란색 조명, 그로 인해 한 축의 공간이 변화함은 물속으로 가라앉음이라는 실재의 효과를 동반하며 대단원의 막을 구성하는데, 이는 논개의 죽음에 대한 알레고리를 구성하지만, 그 죽음에 대한 재현 자체는 아니다. 

    그럼에도 관객은 논개의 죽음을 거기서 보는데, 이는 김미애의 수용 혹은 수동의 자세로부터 온다. 감정적 동요를 보이지는 않지만, 비장하고도 절절한 분위기 아래 한결 같은 김미애의 표정은 색과 빛의 스펙트럼에 대한 효과를 연장하는 대신 반영한다. 그것은 죽음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고 죽음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그럼으로써 죽음을 언급하는 것이 된다. 곧 죽음을 상연하는 건 죽음의 재연에 대한 인지적 충격을 향하며, 그 죽음의 숭고함의 가치를 태도와 자세, 의지의 차원에서 수행적으로 체현해 나감에 의한다. 

    진현실의 승무는 구도자의 의식을 드러낸다. 소리는 분위기를 이끄는 배경음 아래, 춤의 바깥에서 몸짓들을 이미지로 전경화하는데, 이는 고깔을 쓴 진현실의 표정과 태도의 차원이 현실과의 경계로 자리하는 것에 기인한다. 곧 소리와 몸짓의 이중적이고도 복합적인 상연의 공식이 만들어지고, 달빛 아래의 다른 시공의 펼쳐짐 속에, 사선으로 은근하게 비춰지는, 우묵한 얼굴로부터 고뇌와 초연함 사이의 알 수 없는 감정은 신비함과 다름의 차원으로 인계된다. 

    여기서도 의상은 일종의 주요하고도 특별한 매체로 갈음되는데, 특히 바깥으로의 측정하고 재단하기 힘든 얇고도 긴 장삼은 분절로서 힘의 강화 대신에 힘의 분산과 그로 인한 붙잡을 수 없는 무상하고도 무심한 너울거림, 형해화된 힘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시선 역시 현실, 곧 객석에서 비켜 나 있다. 배경음악은 그의 움직임을 이끌어 가면서 중심으로서 춤을 강화하기보다 무대를 그 시선과 같이 하나의 축으로 독립시키면서 또한 전경화하며, 그로부터 춤은 환영적인 실재, 의식의 무한한 절편화를 진행하는 것처럼 나타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그 무심한 시선, 알 수 없는 시선의 향방과 동기화되는 것이다. 

    서진주의 구음검무에서 의상은 매체 고유의 차원의 발현보다 조금 더 서사적인 차원을 예비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색동옷의 화려함은 시각적인 표상으로 직접적인 신체와의 접촉을 가능하게 한다. 그 다채로운 색의 스펙트럼은 춤의 다변화적 흐름을 통한 극적 스펙터클의 흡입력으로 연장된다. 그것은 극단적으로 상이한 전개 양식이 주는 인상을 선취하기 위함처럼 보인다. 변경의 통과라는 총체적인 그리고 가속되는 그 흐름은 교방굿거리춤과 비교해볼 수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의 의미를 지정하는 서진주의 얼굴, 곧 알 듯 모를 듯한 미소와 눈은 살포시 자리하며, 변함없이 모든 변주를 다스리며 기이한 안정감을 준다. 그리고 이는 그 시각적 다양함의 의상을 무게감으로 전치해 낸다.

    처음 외화면 목소리가 서사적으로 영적인 세계를 표방하며 몸짓을 독립된 장으로 구분한다면, 점차 어우렁더우렁하는 한삼 자락이 기입되고 약동하는 신체로 자리하며 유희와 재롱적 몸짓이 펼쳐지면서 소리는 애드리브를 동반해 그 몸짓들에 맞장구치고 반응하며 튀어나오는 또 다른 신체의 흔적들로 완전히 변화한다. 무엇보다 포스트모던적인 곧 비구조주의적인 장, 변화로서의 장들에 그 소리의 즉각적이고도 임시적인 반응들이 있으며, 춤이 곧 연행적인 무엇임을 말해 준다. 

    김민관 편집장 

     

    2025-02-21 ~ 2025-02-22 금 19:30, 토 17:00 서울남산국악당

     

    공동기획 서울남산국악당, 서울교방 

     

    제작진
    | 창제작진 |
    예술감독 김경란
    제작감독 최해리
    연출 김서진
    리허설감독 서정숙
    도창·사회 배일동
    음악감독 유인상
    악사 이관웅 이성준 이정훈 박순아 어수민 김보라 정부교 박주홍
    무대감독 전홍기
    조명감독 김려원
    일러스트레이션 정은지
    분장 강윤자
    사진 옥상훈
    기록영상 이동준
    홍보영상 강지원
    홍보물 제작 디자인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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