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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현대무용단, 〈인잇〉(김성용 안무): 표현 방식 그 자체의 잠재성 혹은 닫힘
    REVIEW/Dance 2026. 6. 7. 19:30

    ‘나는 걷는다’, ‘나는 듣는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결정한다’, 〈인잇〉의 각기 다른 막을 지정해 내는, 이 네 개의 목적어 없는 짧은 문장은 각 행동―전자의 두 동사―와 행위―후자의 두 동사―로 구분되는데, 더 직접적인 감각의 차원에서 심리적이고 의지적인 차원의 자아가 개입되는 것으로 전진함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전자를 포함해도 ‘나’라는 주체로부터 파생되는 각각의 동사들은 수행의 직접적인 지침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이는 희미하게나마 또는 간접적으로나마 서사의 일단을 완성하는 차원에서 그 부분적 단위로서 움직임이 확장되며 분화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 대상을 거론하지 않는, 나 자신만을 그 대상으로 삼는 이 문장‘들’이 어떤 서사의 명확한 얼개를 지정하지 않는 건 자연스러운 도출일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각 막에서 동사와 몸과 맺는 공식적 관계가 각각의 서사를 이루는 가운데, 각기 다른 네 개의 동사가 지니는 연결, 종합의 차원에서 서사가 발생하는가 묻는다면, 각 막은 뚜렷한 접점도 발생의 원인도 규명하기 힘든 사태 속에 모호한 것으로 남는 경향이 있다. 

    국립현대무용단, 〈인잇〉(김성용 안무)ⓒ황인모[사진 제공=국립현대무용단](이하 상동).

    엄밀히 막의 구분은 더 실재적인 차원, 무대 구성 요소의 하나로 직접 자리 잡는데, 이는 그야말로 새장 같은 무대 오른쪽 심부에 치우친 구조물과 무대 중앙 쪽에 술, 양쪽 옆면의 술로 둘러쳐진 무대의 물리적 구성에 연관되는 빛과 신체와의 관계에 따라, 유동적이고 유연하며 또는 변화무쌍하고도 임시변통적으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이 막은 그 자체의 존재로 현현되기도 하는데, 2막이 시작되기 전에, 꽤 긴 시간 조명에 의해 바깥쪽 수평축의 공간이 옆으로 이동하는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다시 전환되어 안쪽의 공간만이 보였다 하는, 공간의 입체적인 정렬과 특정한 공간으로서 분별되는 순간이 지속되는데, 이는 빛과 건축이 그리는 안무라 할 수 있다. 

    일차적으로, 막 사이의 짧은 문장들, 막을 구분하는 그 문장들은 각각 수직으로 나열된 채 세 개의 다른 언어의 등가를 상정하면서 번역으로서 언어라는 서로 다른 국가에서 온 아시아 무용수들과 그들 간의 시차적인 접점의 생산―하나의 단일 언어가 아닌 여러 언어가 공존하는 장―, 그리고 동등한 존재에 입각한 교환의 일단이라는 제도적 조건, 공연 외부의 선제적 조건에 대한 기입의 차원으로 명시되는 것이기는 하다.

    이는 각기 다른 국가에서 온 무용수들의 고유성을 기입하는 것이면서 그 무용수들을 그 국가로 환원하는 차원에서의 기입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국가보다는 언어와 신체를 등치시키는 차원에서의 접근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인잇〉은 여기서 문화인류학적 차원에서 언어와 그 언어가 구성하는 몸의 특질을 비교 분석하는 토대를 펼쳐놓는 대신, 하나의 의미로 수렴되는, 곧 그 세 개의 문장이 등치되는 차원의 표면적 기입 너머의 힌트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이는 (각자의 모어가 다른 것처럼) 각기 다른 몸의 원안을 제시하는 대신에 통일된 움직임의 점진적 흐름 안에 이 작품이 놓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세 개의 문장은 다른 표현의 특질로 자리하지만, 결국 하나의 의미로 환원되는 것이다. 곧 하나의 의미 안에 질서 지어진 차이들인 것이다. 

    이 작품의 드라마투르그인 사코 카나코의 말―“DMAU(Dance Makes Asia become the Universe)의 프로세서는 같은 단어나 문장에도 각국의 문화와 언어 그리고 자신이 현재 처해 있는 환경이나 경험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한다. 그 다양한 해석을 다 같이 둥글게 둘러앉아 다양한 언어로 이야기하고, 의견과 감각을 더욱 명확하게 언어화하여 확인함으로써 개성을 유지하면서 서로의 움직임과 춤을 공유하는 표현 방법을 모색한다.―을 참조하자면, 하나의 단어/문장에 대한 각자의 언어 체계와 질서의 차이를 다양성의 견지에서 전개하는 프로세스가 적어도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주요한 전제가 되었음을 인지할 수 있다.  

    각기 다른 언어는 여러 언어의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오지만, 이는 흐릿한 윤곽으로 그 차이를 분별할 뿐이다. 짧은 문장이 국적의 차이를 명시한다면, 긴 문장은 그 언어의 다름을 실제적으로 들려주는 데 그친다. 따라서 언어는 문화적 표면을 건드리지만, 그 심층의 갈라짐을 향하는 단서가 되지는 않는다. 주목해야 하는 건 “인잇”이라는 프로세스가 그리는 공통됨의 어떤 이미지일 것이다. 이는 아마도 무대가 명확하게 구현하지는 않는 이미지를 추적해 가는 것에 의해 가능해지지 않을까. 

    곧 땅과 붙어 있는 것 같은 움직임, 앞의 조명을 빛의 표면으로 반응하는 움직임, 나아가고 안으로 되먹이는 과정 등은 어떤 환경에 반응하는 움직임, 곧 그 환경을 드러내는 움직임, 더 구체적으로는 정글이나 밀림의 자연 아래 놓인 부족적 몸짓의 그것이 아닐까―특히 1막에서 움직임은 세계에 대한 경험론적 접근의 차원을 형성한다. 그리고 수평의 막과 그 안의 원형 공간의 막 역시 그 조건 아래 놓인 특수한 적응의 원시적 건축 단계를 보여주는 것 아닐까. 

    아시아적인 것이라는 건 현재 아시아의 여러 이미지의 구체적 나열을 통해서만 획득되는 건 아니다. 그 반대의 경우, 우리의 현재 너머의 미지의 차원에 이를 투사함으로써 비현재적이고 비가시적인 나열이 그로써 거꾸로 획득될 수도 있는데, 이는 타자화된 아시아의 이미지일 것이다. 그것은 비도시적이고, 비개인적이고, 비의를 새겨 넣는 의식을 가진 집단의 산물이고, 자연과 밀착된 사회의 모습에 가까워 보인다. 그렇지만 순수한 춤의 철학의 구현이라는 차원에서 그 이미지는 매개되지 않고 상기될 뿐이다. 

    이 어렴풋한 이미지, 그것이 갖는 원시적이고 근본적인 차원은 아시아의 심층 무의식에 대한 접근을 통한 것일까, 아님 타자성으로서 재발명된 아시아의 모습에 대한 근사치일까. ‘나는 결정한다’는 단지 문장의 제시로 끝이 난다. 결정의 몫은 미래로 또는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그리고 나는 후자에 방점이 찍힌다고 보인다, 또는 결정한다. 

    ‘공통됨의 이미지’는 집단의 변모하는 모습, 환경에 대한 뚜렷한 반응, 전개체적인 차원에서의 존재를 드러낸다. 이는 각자의 차이, 무용수 자체의 고유한 개성을 드러내는 것과는 거리가 먼데, 이러한 집단적 행동 양식으로서 움직임은 무엇보다 그 안의 관계를 허용하지 않는다. 관계는 전화되지 않고, 오로지 어떤 흐름과 양태를 구성하는 분자적인 것들의 총체로서 무대는 구성된다. 가령 어떤 막에 끼인 유일한 개체로부터도 그것의 차이가 대별되기보다 그에 대한 모두의 관심과 주의로 연장되는 집단적 흐름의 추이만이 발생한다. 

    따라서 ‘프로세스 인잇’은 하나의 일정한 이미지를 구성하는 집단 차원의 워크숍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특별한 서사의 지층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명확한 힌트를 따른다. 움직임을 촉발시키는 건 추상적 문장이며 그 서사의 구체성과 표현의 의미는 그 문장과 움직임을 연결 짓는 가운데 그 집단적 역학과 도취 그것들의 내재적 차원에서 이미 충분한 것이 된다. 서사는 어렴풋하지만 분명한 이미지의 차이 안에서 구성된다. 내재적인 합목적성은 각각의 모나드(막)에서는 수렴하며, 전체의 차원에서도 동등하지만, 그것의 총체를 인과의 흐름으로 결정짓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그 막을 뚫는, 표현의 서사적 인과성이라는 해석의 입구는 닫혀 있다. 

    〈인잇〉은 움직임의 최소 단위, 응축된 움직임의 전개 양상에 입혀지는 문장, 이미지의 단서 속에 변화하는 움직임의 장면을 세 개의 막, 틀 속에 담아낸다. 이 문장은 힌트이지만 무용수들에게는 규칙일 수 있다. 나아가 안무가에게는 서사의 전반적 얼개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관객에게 해석의 단초가 되는 문장은 안무가로부터 무용수에게로 이전되는 기초적인/근본적인 움직임 양식에 어떤 색채를 변화시키는 것이 되는 반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내재적)인 것으로, 그 문자 단위가 이루는 막이 서사의 총체성을 구현하거나 그 변화의 흐름이 갖는 유기성을 가져가는 데는 다분히 무관심해 보인다는 것이다. 오직 내재적인 차원의 움직임의 질서를 유지하고 보존하며 고양하는 차원에서 ‘집단’의 역학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인잇〉이 ‘프로세스 인잇’이 가진 워크숍 형식의 단계에 천착되어 있음을 반증하는 부분일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2025.03.21 ~2025.03.23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공연시간 60분

     

    안무 김성용 국립현대무용단 단장 겸 예술감독
    연습감독 위보라
    음악감독 유지완
    드라마투르그 사코 카나코
    무대디자인 유재헌
    의상디자인 최인숙
    조명디자인 이정윤
    제작무대감독 조윤근
    연습통역 김민정
    프로세서 강승현, 김나의, 누트나파 소이달라, 바이 리 비그만스, 조셉 추아, 응우옌 하록, 제이슨 옙, 창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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