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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극단, 〈닐 암스트롱이 달에 갔을 때〉에 대한 메모: 역사의 매개로서 형식REVIEW/Theater 2026. 6. 26. 13:56

보편적극단, 〈닐 암스트롱이 달에 갔을 때〉 포스터. 보편적극단의 〈닐 암스트롱이 달에 갔을 때〉(이하 〈닐 암스트롱〉)는 조작 간첩 사건의 피해자들을 다룬다. 네 명의 실제 인물(의 대리물)들에 대한 인터뷰라는 형식을 경유하는 (착한) 증언의 양식으로부터 억울한 이들의 말을 듣는다라는 행위가 청자―인터뷰어―의 반영적 신체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고문과 사회적 고립의 경험이 주가 되는 그 불편한 각자의 진실을 꺼내 놓게 하는 인터뷰이의 형상 역시 소거함으로써 그 증언의 무게는 관객을 직접 향하게 되는데, 이는 철저하게 신체적인 것을 동반하며 구성되는(나아가 이들의 이야기 역시 사건과 결부되는 자신의 신체적인 경험의 차원이 동반되어 있다.) 진정성으로부터의 윤리가 그 반대편에서 그것에 대한 반영적 신체의 자리를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 이들은 타자의 형상으로 관객을 마주한다.
직접 소거된 것은 아마도 이 모든 걸 찍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상 감독의 시점 혹은 카메라의 현재형의 위치라는 점은, 〈닐 암스트롱〉이 영화를 완성시키는 과정 안에 포섭되는 단락들로서 현실을―물론 처음 네 명의 진술을 영화의 장면으로 분절해 놓은 기록 영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특정 신체를 청취의 대상으로 바꾸고 있음을 알려주는 한편, 그 드러나지 않는 감독의 자리가 유예됨은 관객의 몫으로의 이전 가능성을 만드는 동시에, 그 의도와 (미완성이라는) 파편의 현존으로서 현실 역시 미래로 유예함을 의미한다.
미래는 또 다른 한편, 이들의 억울함이 풀리는 것, 조작 간첩 사건의 명백한 피해자로 규정되는 것, 법적 판단의 언어로 재정의되는 것의 서사적 경로를 향하는 것을 의미하며, 〈닐 암스트롱〉의 미결정의 서사는 극의 시간을 극 바깥의 시간으로 기약 없이 연장한다. 여기에는 매개가 따르는데, 인터뷰가 나쁜 증언, 곧 조작을 위한 강제적 차원의 증언이 아닌 그것을 드러내는 착한 증언을 통한 목적을 지향하는 것과 같이, 이들이 가진 누명을 벗고 뼛속깊이 박힌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남을 의도하고 응원하고 지지하는 세력이 자리한다.
증언 이후의 현실의 자리는, 고립된 자신만의 진실을 세상으로 꺼내놓음을 목격하고 아는 사람들의 자리로 드러난다. 그곳은 카페와 전시의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으로, 그 자체로 극과 극 바깥의 간극을 간첩인 자―간첩이 아니지만 간첩으로 누명을 쓰였다고 발화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간극이 중첩되는 양상 아래 놓이고, 이는 물론 후자의 입장에 서서 전자를 이해하고 수용하며 나아가 그들의 억울함을 국가 차원에서 풀어주기를 간청하는 그 자리에 관객을 위치 세우는 것과 같다. 이러한 투명한 매개는 매개를 위한 매개에 가까운데, 실은 그사이를 연결할 다른 요인을 내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매개의 차원이 특별해지는 건 우리가 변호사 반철승과 법대생 석미영의 시점이 아니라, 곧 ‘착한’ 인권변호사의 형상에서가 아니라, 그 바깥에 있는 이와의 연결, 곧 조선족 오순희의 시점으로 옮겨감을 통해서다. 다큐멘터리 촬영의 마지막 인터뷰어로 등장한 1974년 울릉도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 김영국은 요양원에서 여생을 보내는 가운데, 홀로 재판을 진행한 채 혐의 없음의 판결을 얻는다. 이 판결문을 사건의 여파로 먼저 떠난 아들의 무덤을 향해 간병인 오순희가 중국어로 읽는 것인데, 이때 그것은 직접적 당사자의 절절함을 가정하지 않지만, 또 다른 타자의 형상이 역사의 잔여를 갖고 우리를 향함으로써 판결문은 공허함이 아니라 어떤 새로운 의미의 출구로 나갈 수 있는 여지를 발신한다.
또 하나의 매개는 근본적으로 그것 안에 모든 걸 놓는, 다큐멘터리라는 매체의 촬영인데, 이는 공준된 장을 가설하고, 마치 시대와 상관없이, 시간의 구애됨 없이 그가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지난 경험을 기술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든다. 이때 우리가 무언가를 다시 보여주기 위해 이 ‘편집되지 않은’ 증언의 나열을 어떻게 하나의 편집 원칙에 의해 재배열, 재조정, 그리고 어떤 메시지와 의미를 부여하는 데 이를 수 있을 것인가와 같은 질문이 자연 그것에 뒤따를 수밖에 없다. 아마도 우리는 그 판결문의 대독을 통해 우리가 가설하는 시간과 역사의 범위를 재고찰의 영역에 둘 수 있을 것이다.김민관 편집장
2025.02.21 ~ 2025.03.02 화, 목, 금요일 20:00 / 수요일 15:00, 20:00 / 토요일 15:00, 19:00 / 일요일 15:00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작 이보람
연출 마두영
드라마투르그 신윤아
자문 변상철
조명오퍼 정지환음향오퍼 조형락
영상오퍼 류세일
현장진행 곽예진
무대디자인 정승준
조명디자인 정유석
의상디자인 김미나
분장/소품디자인 장경숙
소품팀 박진아
일본어 자문 강유미
중국어 자문 이송아접근성매니저 권지현
음성해설 대본 구지수 김내원
음악감독 신세빈
음향디자인 임서진영상촬영 김성하
영상디자인 장주희
안무 조아라
음성해설 낭독 백혜경
음성해설 자문 김혜영
자막제작 이수림
프로듀서 박서우무대감독 이지혜
무대크루 강희세 이해원
그래픽디자인 황가림
홍보/티켓 차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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