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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컴퍼니, 〈Next Move〉: 사물의 도입, 그리고 춤으로의 연장REVIEW/Dance 2026. 7. 8. 13:52
김민주, 〈숨(삶-사람-사랑)〉: 세계를 포집하는 숨, 그리고 행위

김민주, 〈숨(삶-사람-사랑)〉@Modeun_company / 최근우 (STUDIO OFF-BEAT). 〈숨(삶-사람-사랑)〉은 꿈속의 집을 찾아가는 상상적이고도 비의식적인 차원의 여정을 보여주는 것과 같은데, 이는 너른 벌판-조각 이불보를 지나 종래 이르는 미니어처 모형 집을 손에 넣는 것으로 이어진다. 처음 이 패치워크된 천은 개어져 있으며, 상수 쪽 그 끝단에는 굴뚝이 달린 모형 집이 있다. 그리고 눕고 허우적대는 여자(김민주)가 있다. 혼란스러운 노이즈에 정위되지 않은 몸짓들을 틈 타 일종의 프로젝션-조명이 크게 이 터를 실루엣으로서 덮는다.
그것은 하나의 전체적인 덩어리로서 틀이자 윤곽이며 단속적으로 그 전체가 다른 전체로 전도된다. 그러니까 이미지가 아니라, 바닥과 맞물리는 네모난 틀의 바뀜이 공간을 주조한다. 이는 무용에 대한 일종의 미디어아트적 절합이라 할 수 있는데, 실제 이 영상의 지배력 안에서 김민주는 허우적거리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분절된 동작들이 일상의 좁은 틀 안의 어포던스적 조응으로 보인다면, 두 팔을 뻗고 도는 연속적 동작에서 그는 고개를 들어 어떤 자유로움을 표현한다.
그리고 이 모든 움직임은 그의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차원에서 나타나는데, 이내 멈춰서 머리를 묶는 장면은 그것을 무엇보다 잘 보여준다. 힘 있게, 왼팔을 고개 앞쪽 수평축상에서 돌려, 다시 오른팔을 머리 위쪽 수직축상에서 돌려 일정한 궤적을 반복적으로 오가며 머리를 묶는 과정이 그것이다. 그리고 조각보를 펼쳐내고 그 천 끝단을 무대 앞쪽에서 잡고 들어올려 훌훌 크게 털어 내어 평탄화하고, 본격적으로 이미지들이 그려지기 시작하는 그 이미지-바닥 위에서 그는 첫 번째 나타난 해파리 이미지를 따라 움직인다.
몸은 수직축으로 굳고, 거기서 팔은 작고 얇은 촉수처럼 뻗어나오고, 마치 실을 잣는 것 같은 연속적 움직임이 만들어진다. 그의 말아쥔 두 손이 어떤 고정된 형상에 가해진 힘과 함께 뻗어나오고 다시 돌아가며 매듭을 짓는 것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또한 두 팔을 가슴께에 붙이고 웅크리듯 하여 뱅글뱅글 잰걸음으로 도는 장면은 부력을 받으며 유영하는 모습으로 비친다.
마지막 장면, 뒤돈 채 두 발을 바닥에 대고 크게 크게 돌아서 이 이불을 종아리께에 휘감기게 하는 모습은, 또한 하나의 틀 안에 갇힌 처음의 형국과 달리, 능동적 힘의 자장 안에 구심점으로 기입된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그 집에 이른다―이때 뉴에이지 풍의 음악은 대기 자체를 표현하는 듯하다.
〈숨(삶-사람-사랑)〉은 ㅅ으로 연상되는 흔하고도 중요한 몇 가지 단어들을 패치워크한 제목인데, “삶”과 “사람”과 “사랑”을 꿰는 건 “숨”이다. 아마 가장 그 숨이 투박한 것으로 직접적으로 드러난 건 머리 묶기의 동작으로, 이는 무언가를 정초하려는, 그 전의 의식적 차원에서 포집되는 숨의 일환을 드러낸다. 이때 삶과 사람, 사랑이 어떤 구체적 상관물을 갖는지, 그리고 어떤 연결 고리를 그리는지는 정확하지 않은데, 곧 숨은 그 모든 것을 환기와 기억으로 흘려보내는 매체가 될 것이다.
김민서, 〈닳아 닮다〉: 멂을 위한 가까움

김민서, 〈닳아 닮다〉@Modeun_company / 최근우 (STUDIO OFF-BEAT). 〈닳아 닮다〉는 두 사람의 필연적인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로 서로를 반향하고 있음을 표현한다. 전자가 물리적 연속성이라면 후자는 상호 관련적 차원의 효과인데, 이는 각각, 단순히 닿는 걸 넘어, 닳고 달은 관성적 시간성, 그리고 서로의 닮음이라는 상호 함입적 물리적 양태를 출현시킨다. 백색소음으로 싸인 어둠에서 모로 선 인물의 형체로부터 시작되는데, 이 어둠~실루엣이 하나의 인물로 보인다는 점은 중요하다.
곧 본래 두 명이었다기보다 한 명이 분화되어 둘이 되는 것에 가까운데, 이 둘의 분화는 어떤 복제와 증폭의 차원으로 ‘묶인다’. 스릴과 긴장을 자아내는 역동적이고도 위태로운 균형 잡기의 측면은 이 둘이 하나의 허리를 공유한다는 데서 유래하는데, 끌어당기고 조종하며, 또한 당겨지고 종속됨은 실은 그 둘의 허리를 한데 묶는 로프 때문이다. 트릭은 순차적으로 드러나는데, 예컨대 하나의 트릭이 둘이 아닌 하나였다면, 두 번째 트릭은 이 연결에 대한 물리적 지지체다.
이 결정적 매체의 특징은 서로를 겨냥하고 마주하기 이한 ‘일정한’ 거리를 보존한다는 것이다.그것은 원심력에 탄성을 부여하며, 서로를 그만큼/강력하게 함입하게 한다. 이 떨어질 수 없는 상관관계는 그 둘의 관계성의 서사에 내속적이지만, 물리적으로는 물론 외부의 사물이다. 하지만 그것은 늘어나지 않고 굳어 있기에 그것을 부가적인 것으로 되지 않게 하기 위해 그 둘은 ‘그만큼의’ 거리를 벌린다. 곧 절대적인 것으로서 받아들인다.
여자(김문주)가 머리를 객석 쪽으로 하여 십자가 형상으로 무대 뒤쪽으로 향해 갈 때, 남자(김민서)는 정면을 향해 서서 뒤로 물러선다. 이때 희생물로서 여자의 형상은 오히려 주도적이고, 그 반대편에서 남자의 형상은 그것에 이끌려 움직이는 것과 같다. 이때 바닥으로 투영되는 그림자는 수많은 거품의 결정들인데. 이때 서로를 마주하게 된다. 이는 바다의 물결 파동 같은 걸 형상화한 것으로, 마지막 장면에서 둘은 수면 아래로 감기는 듯한 모습이다.
의도적인 것으로는 보이지만, 그 딱딱한 것과 부드러운 것의 대비가 명확하지는 않은데, 은유적인 제목의 의미보다 정서적 차원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닳아 닮다〉는 둘을 묶는 끈을 경유해 외심의 힘을 하나의 토대로서 구축하며 제한된 영역과 범위를 일관된 힘과 거리, 그리고 이미지로 기입한다.
그럼에도 이 거리는 후반에는 어떤 또 다른 물리적 차원의 ‘관성’을 보여주는 일면도 있는데, 그것은 상대를 수그리게 하고 상대는 그 수그린 상태를 유지하는 연속적 행위의 차원에서 특히 그렇다. 그러니까 〈닳아 닮다〉는 어떻게 한계와 가능성이 하나의 차원인지를 결정적으로 드러내는바, 관건은 이 물리적 지지체의 연속적 차원을 차이와 반복의 세계로 이끌어 갈 것인가가 되겠다.
박상현, 〈intersection〉: 여진으로서 정서

박상현, 〈intersection〉 @Modeun_company / 최근우 (STUDIO OFF-BEAT). 〈intersection〉은 관계의 연결 뒤의 잔여 감정 같은 것의 표현을 의도하는데, 이는 조명을 물리적 실재로 수용함으로써 그러하다. 그러니까 보통 배경적 공간으로 암묵적 전제를 이루는 조명을 직접 길게 바라봄으로써 그것이 나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수용하고 사유한다. 조명의 하이라이트로 인해 퍼진 원형 그림자 공간은 주요한 관계의 채널이 되는데, 그것은 제목과 같이 서로를 스쳐지나가는 계속된 흐름 아래 그러하다. 이때 중요해지는 건 관계라기보다 구조이며, 그 구조가 응결되는 장소 자체이다.
크게 엇갈림은 더 근접된 관계가 실패한 결과이다. 검은 의사을 한 다섯 명은 분간 불가능한데, 스쳐 지나가거나 집단을 이룰 때 구분된 개체가 아니라, 어떤 ‘틈’ 자체를 채우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관계는 마치 서로에게로 자연 교환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틈을 파고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타동성 자체가 선행위적인, 극히 능동적인 행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집단은 하나인 듯 움직이는데, 이는 한 명과 네 명의 대비가 부여되는 장에서 명징하게 드러난다.
곧 하수 앞쪽에서 한 명의 여자가, 상수 뒤쪽에서 나머지 네 명이 분리된 동시적으로 움직이게 될 때, 마치 후자는 하나의 존재인 것처럼 움직인다면, 전자는 온전한 전체인 것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그 안에 다양성의 가치는 부차적인 것이다. 이 집단적 조화의 논리에 개체적 차이는 그 전체 틀을 바꾸지 않는 가운데‘에서만’ 특정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개체에 귀속되지만, 집단의 내재적 차원으로 수렴하는 지점에서 그러하다.
환상물로서 조명은 실재하는 것이지만, 관계의 정확한 치환은 아니다. 따라서 그것은 부질없거나 소용없는 것인데, 마치 관계가 장소 자체에 정박되듯, 개체가 집단을 넘어설 수 없듯, 존재는 정서에 ‘고착’된다. 이는 그 정서적 효과에 대한 강조이자 부각인 동시에, 주체의 비주체성에 대해 또한 말해주는 바 있는데, 그것은 어느 정도 실질적이며 고정된 양상을 보여준다. 교차되면서 실은 관계는 결정되지 않고 어떤 시간 속에서 형해화되는데, 이 지점에서 상호성은 어떻게 함입될 수 있을까.
이가영, 〈Sillage :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사라지지 않는 것들…

이가영, 〈Sillage :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Modeun_company / 최근우 (STUDIO OFF-BEAT). 〈Sillage :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는 제목과 같이, “사라지는 것들”을 두 번 반복하는데, 이는 ‘사라지는 잔향(sillage)’으로서 물리적 지지체와 그것이 가리키는 의미의 차원에서 그렇다. 횡축으로 두 단의 비닐을 깔고 그 위에 하얀 가루를 뿌리는데, 이 흔적이 그 위의 행위자들의 움직임에 따라 변용되지만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미약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실재의 기호로서, 그러한 관념의 보조자적 측면으로 이 ‘‘흔적’이 도입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여자―이가영―는 처음 두 남자 사이에서 한쪽―강동범―으로는 발을 올리고, 다른 쪽―위예울―으로는 팔과 상반신을 기대 여유로운 자세를 취하는데, 이는 다분히 귀족적이고 그 자체로 과잉되어 있으며 따라서 재현-연극적이다. 여자를 내려놓고 나서 둘은 경쟁적이고 또한 동류의 존재성에 부속된다. 곧 대치하면서 대칭된 이미지를 보존한다. 둘은 그 가루를 담은 주머니 같은 걸 들고 나오는데, 한 명의 그것은 밑이 뚫려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여자는 그 틈에 사라지고 포그가 상수 앞쪽과 하수 뒤쪽으로 동시에 뿌려지는데, 여자가 없는 둘은 그 여자의 비대한 환상 그 여남은 도식의 부가적, 부차적 차원으로 그 둘이 다르지 않음, 실은 거의 같음의 결과로 수렴하는 듯 보인다. 드럼의 햄, 심벌로 부상할 때 두 남자는 상수 앞과 하수 뒤에서 위치를 달리하지만 결국 좌우로 어깨를 들썩이며 꿀렁거리는 것으로 같아진다. 다시 니타난 여자는 남자에 의해 수직 상승하고 다시 내려오고 하는 동작 아래, 타동적으로 보이지만, 물론 남자가 지지체로서 몸을 내어줌을 자연스럽게 경유하는 것과 같다.
파열음과 함께 여자는 뒷걸음질치며 하나의 검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듯 순간 퇴장한다. 이때 환상성의 얼굴이 두드러진다. 〈Sillage :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는 흔적으로서 소재를 일종의 변용된 이미지로 남기면서 그것들을 들고 신체로 연장하는 한편, 포그와 같은 형태로 변용적으로 공간에 산포시킨다.
설치미술적인 요소들을 활용하지만, 진정 사라지는 건, 아니 사라지는 걸 통해 표현한 사라지지 않는 것은 신체성에 대한 직접적 표식보다는 그것들에 결착되는 행위성의 부각으로 인해, 작품이 정작 말하는 건 어떤 미결정적인 사물, 그 주변의 환경적인 요소에 대한 것이 되는 듯 보인다.
김민주의 〈숨(삶-사람-사랑)〉과 이가영의 〈Sillage :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는 무대에 놓인 환경 자체가 작품의 중요한 매질이 되는 작품인데, 전자가 땅을 펼치고 집에 도달하는 서사를 그로써 구현함으로써 의미화된다면, 후자는 그것을 의식하지 않거나 또는 신체 일부로 가져오는 가운데 신체와 물리적 연관성을 맺는 식으로 발현되면서 수행성의 부분 조각, 곧 사물화된다.
김민서의 〈닳아 닮다〉가 끈을 활용해 결속되는 두 사람의 관계 양상을 밀접하고 동어적인 차원으로 반복하는 것으로 춤의 형식과 양태를 구성했다면, 박상현의 〈intersection〉은 조명의 물리적 위치성을 상징적인 자리로 수여하는 한편, 집단 내 연결-접합의 차원에서 긴밀한 구성을 만들며 그러한데, 여기서 움직임은 어떤 물리적 지지체로써 또한 어떻게 변용, 또는 의미를 구성하는지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김민관 편집장
예술감독·기획총괄 김모든
안무_김민서, 김민주, 박상현, 이가영
출연_강동범, 김문주, 김민서, 김민주, 박상현, 박재현
박혜리, 위예울, 이가영, 장은영, 정민우
조명디자인_이승호
무대감독_조은진
음향감독_박준
그래픽디자인_이한수
사진_최근우
영상기록 연두 픽처스
행정PD_이보휘
운영총괄 김혜연
기획팀 김명지, 김예은, 김하은, 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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