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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회 서울국제즉흥춤축제] 《100분 Relay 즉흥 공연》: ‘곁’으로서 춤추기
    REVIEW/Dance 2026. 7. 7. 15:05

    26회를 맞은 서울국제즉흥춤축제는 대개 라이브 연주와 안무가-퍼포머와의 협업에 기초해 진행되는데, 이는 움직임에 선행하는 음악이 또한 움직임 이후에 출현하는 것이 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연주자는 움직임을 보조하지만 어느 정도 움직임을 시험한다는 인상 역시 주는데, 연주자는 보통 퍼포머를 지켜보는 시선과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퍼포머를 객관화하고 동시에 조정하는 건 연주자다. 그런데 동시에 연주자의 자율성으로부터 일정한 포맷이 아니라 비예측적이고 반구조적인 즉흥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곧 연주의 단락화는 퍼포머의 세계 자체를 자족적인 것으로 두기보다 그를 하나의 시험의 장에 둔다. 연주는 계속 변경된다. 이때 그 흐름 자체는 유기성의 차원보다 중요하며, 그것을 대체하게 되는데, 이는 대응, 반응, 조응 등 연주에 따른 퍼포머의 다양한 상호적 차원의 움직임을 살펴보는 것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러니까 둘은 거의 대등하다. 또는 연주가 결코 우위에 있지 않은 게 아니다. 그러니까 연주는 사라지지 않고, 끝까지 남는다. 그리고 이는 전통 공연 형식에 상응하지 않는가

     

    Dorit Weintal & Tamura Ryo: 언어의 수행성

     

    [제26회 서울국제즉흥춤축제] 《100분 Relay 즉흥 공연》ⓒ박상윤[사진 제공=서울국제즉흥춤축제](이하 상동).

    Tamura RyoDorit Weintal가 등장하기 전 상수 뒤쪽에 자리하는데, 나무 조각들이 달린 고리 악기를 바닥 위에 누여 있는 꽹과리와 큰 북에 차례로 떨어뜨린다. 이는 하나의 유희로서 불안정한/자유로운 신체의 착지를 표현하며, 그 나름의 즉흥춤에 대한 표지를 고안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곧 이는 움직임 이전의 것인 동시에 연주 이전의 것이기도 하다. 또는 움직임이 완벽하게 소리로 전이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Dorit Weintal은 하수 앞쪽으로 걸어나와 “Simple”, “Confession” 등의 단어를 주요하게 발화한다. 그것은 명확한 정면성을 전제하며, 동시에 그 연장선상에서 수직-수평의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전환은 Tamura를 크게 도는 것, 곡선적인 것이 된다. 딱 한 번 두 번 연속으로 한 팔씩 크게 휘두를 때 큰 북의 소리에 조응하여 전통적인 몸짓에의 동기화가 일어나는데, 그러니까 Weintal의 기본적 움직임은 음악적으로 분해되지 않으며, 견고하고도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발성 기관의 수직성의 유지와도 밀접한데, 말의 흐트러지지 않음은 곧 움직임 역시 스러함을 의미한다. 연주자와의 대비적 구도, 곧 대칭적 위치의 하수에서 그의 세계가 구현되는데, 정면성을 갖고 두 발을 뒤로 하나씩 끌면서 갈 때 끼이익하는 소리, 그리고 바닥을 두 번 세게 두드리는 것 역시 외부적인 것, 곧 소리에 대한 대응적 차원으로 보인다. 그리고 연주자 쪽을 향해 발을 걷어차 올릴 때 전체 조명이 들어오고 그는 상수 앞쪽, 곧 비대칭적 구도 아래에서, 하얀 눈송이가 떨어짐을 묘사한다

     

    이때 단어는 시적 효과를 띠고, 단어 자체가 감응의 차원을 가져오게 되는데, 이는 단어가 경계의 차원에서 실재를 표지하는 것이 아니라, 단어로서 실재가 변화하는 세계를 구조화하는 것에 가깝다. Tamura의 연주는 타악적인 게 아니라 사물적 차원에 가까워지는데, 실제 단지 안의 물을 제어하여 소리를 내고, 이는 자연의 재현적 상태를 만들며, Weintal의 거의 완전한 이완, 곧 누운 상태를 이끈다. 이어진 Weintal의 두 팔을 들고 발을 제자리에서 구르는 건 마침내 음악적 분해로 그가 동화되었음을 의미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팔을 위로 솟구쳐 사선으로 던지는데, 다시 사선으로 서서 하는 “Confession(고백)”은 그가 단순함을, 인간, 휴머니스트, 여성 등의 눈에, 내 마음 속 생각에 있는 단순함을 사랑한다라는 것이다. 브러쉬 스틱으로 북 표면을 긁으며 암전, 공연이 닫힌다. 곧 고백이 일으키는 진동, 고백에 앞선 자장을 어떤 솔기로서 결정화하는 작업이다. 이때 그 고백의 성격 차원에서, 앞의 고백이 무대를 정초하며 동시에 그것 자체를 단어로서 명시하는 것이라면, 마지막 고백은 음악의 부드러움에 잠긴 몸의 이완적 상태가 초래한 진정한 것이 된다

     

    Jungwoong Kim & Germaine Ingram & Denis Fournier: 음악과 몸의 공동의 기원

     

    Jungwoong KimGermaine Ingram, Denis Fournier의 공연은 먼저 극장 하수 쪽 열린 문틈 비상구로부터, 드럼을 연주하는 Fournier가 위치한 상수 앞쪽으로 이어지는 사선 공간이 그어지고, 그 문틈으로부터 끈덕하고 꾸물거리는 Ingram이 등장한다. 상수 뒤쪽에는 Kim이 멈춰서 눈 감은 채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반향하고 있다. 딱 붙는 화려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Ingram은 동시에 흥얼거리는데, 그의 움직임은 노래를 하기 위한 리듬이다. 구음 기관으로서 몸은 동시에 리듬과 박자를 체현하는 움직임을 체현하는 몸이기도 한 것이다

     

    음악과 몸짓의 뿌리가 한데 닿아 있는 기저의 어떤 몸을 Ingram이 보여준다면, Kim은 음악을 함입하고 섭취하며 자양분으로 삼는다. Ingram의 사선의 이동은 Kim에 이르러 그의 이동은 더뎌지며 둘은 거의 수평선상에 놓이게 된다. Fournier는 두 개의 비닐 같은 걸 들어 양측의 심벌을 마구 두드리는데, 이때 둘은 겹쳐지며, ‘비닐처럼 가볍게 뭉친다. 다시 Ingram의 스텝은 토속적인 아프리칸 리듬을 흡수하지만 결코 그것으로 완전히 형식화되지는 않는다

     

    Kim의 팔은 음악을 향한다. 그때 현실의 캐릭터성이 빚어지는데, 연주는 장소성으로 지정되고, 무대는 현실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는 즉흥춤에서 단속적 차원에서 흔히 벌어지는 순간이기도 한데, 퍼포머는 음악 안에 있지만, 음악의 경계 자체에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퍼포머의 음악에 대한 중간적 상태의 인식은 연주자의 신체적 표지의 현격함이, 곧 연주자 역시도 즉흥의 차원에서 자리하며 따라서 (퍼포머에게 또는 관객에게 역시) ‘분명한사물로서 현동화되는 순간이 자연스레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음악은 결코 보조적인, 부차적인 지위에 있지 않다. 또는 그 같은 온전한 계약 관계의 구속에 갇혀 있지 않다. Kim이 음악으로부터 변용되었다면, Ingram변용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따라서 음악은 그 둘의 중간적인 상태라고 볼 수 있다. Fournier는 장난 같은 연주를 이따금 선보이는데, 비닐에 이어, 병 위에 달린 손잡이를 돌려 내는 장난감 악기 같은 걸 운용하는 것 역시 그러하다.  

     

    Kim은 누워 있고, Fournier는 부채로 심벌을 긁어 대자 깨어나는데, 어두워진 가운데, Ingram은 뒤를 보고 이내 멈춰서며 그의 의식이 곤두선 모습, 곧 신경이 바짝 선 모습으로 있다. Kim은 그를 감싸며 동시에 미끄러지는데, 곧 단단한 것과 유연한 것의 대비적 코드를 만들어 낸다. 곧 유연한 것이 단단한 것과 결부되며 반대되는/상응하는 자신에서 연장된 관념쌍을 직조한다.  

    여기서 촉발된 것은 촉발하는 것이기도 하며, 타동성의 능동성 같은 차원이 만들어진다. IngramKim은 뒤쪽 문으로 다시 사라지고, 이때 마치 Fournier는 그 둘을 몰아세우는 듯 구음을 더하고, 그의 소리에 그 둘이 함께 반향하여 ~” 하는데, 그것은 저항이라기보다 또한 코러스라기보다 사그라드는 가운데, 희미해지는 가운데, 단말마 같은 여운의 지속으로써 을 일부 지속하는 것이다

     

    Youngho Nam & Michel Marre: 대화로서 움직임

     

    Youngho NamMichel Marre는 상수 뒤쪽에 선 색소폰을 연주하는 Marre로부터 하수 앞쪽으로 뻗어나온 긴 직사각형 그림자, 그리고 그 끝에서 다시 이어 상수 쪽으로 수평으로 뻗어나간 직사각형 그림자로써 직각삼각형의 검은 영역이 그려지는데, 이때 Nam은 그 뒤쪽, 상수 너머에서 괴성이 섞인 소리를 지르며 보이지 않는 그림자로서 먼저 등장한다. 그리고 진짜 가시화된 등장은, 곧 그 검은 삼각형 영역 안으로의 출현은, Marre 옆에서의 등장은, 괴성을 실체화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둘의 공연은 일종의 대화의 과정으로 체감되는데, 이는 Marre의 시선이 뻗어나간 경로 안에 Nam이 예속되어 그의 지배 권역이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Nam의 초과됨에 Marre의 불쑥 끼어듦이 예외적인 반응으로 확연하게 드러날 때 특히 그러하다. 특히 초반에 Marre는 벨을 빼 마이크 아래 두고, 마이크를 벗어나서 Nam에게 가까워지는데, 이 과정에서 소리가 전반적으로 작아지는 가운데, 말을 색소폰 목 부근에서 갇히도록 부는행위가 직접 Nam을 향하면서 둘의 본격적인 대화가 만들어진다

     

    Nam의 과잉 행동에 질색하고 혀를 차고 때로 놀리는 식의 Marre의 행위는 연극적 상황의 밀도를 올린다곧 연주자가 주도적으로 퍼포먼스에 개입하는 때는 순간이거나 예외적이다. 때로 Nam 역시 눈을 감고 음악 에 있지만, Marre의 연주는 직접적인 말걺에서처럼 부산스럽고 난삽하다. 곧 그것은 Nam에게 과도하다. 마치 둘의 전도된 관계로부터 색소폰의 소리는 말로 변이되며 거듭난다. 그리고 세부의 몸짓 역시 중심에 들어온다. 하지만 기실 둘의 관계는 어떤 위계도 없는, 해프닝적 상황에 대한 연극적 흐름으로 이어진다

     

    김바리 & 강태환: 단단한 벽으로부터 일정한 틈을 찾아내기

     

    김바리와 강태환은 각각 상수와 하수 쪽에 대칭되어 자리하며, 위태로운 균형 아래 김바리는 운신한다. 눈을 감고 무릎을 꿇고 정좌하여 명상의 기저를 형성한 김바리는, 그 윤곽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하는데, 중반 이후에야 일어서게 된다. 하나의 놀라운 순간은 지나치게 시끄럽고 요란한 연주에 맞춰 그가 정신 집중을 유지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중 아주 잠깐의 순간, 몸이 왼쪽으로 기울어진 상태에서 깨어나서 마치 그가 허공 위에 갑자기 있는 감각을 그가 깨닫고 허공에 헛손질을 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 같은 일련의 흐름이다

     

    그러니까 이는 의식의도과 무의식의 경계를 뒤섞는데, 가령 갸우뚱함, 또 아찔함은 그 순간의 기지아래 제자리를 금새 잡는 것이다또한 그 순간의 기지 안에 아찔함과 갸우뚱함이 담긴다. 이를 통과하며 이 짧은 순간은 매우 긴 시간으로 연장되어 감각되지만, 결국 마치 그 모든 것이 무의식적 기울임인 것처럼 사후적으로 정리되는 것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이 정확히 분기되는 시점, 곧 눈을 뜨는 시점의 찰나는 그것이 어떤 전환에 대한경계적 인식을 드러낸다는 점따라서 그것은 그 상황에 내속적인 것을 극복하는 것처럼 보인다.에서 매우 인상적이다

     

    김바리가 눈 감은 채 팔을 벌려 무릎을 살짝 들어올리는 자세를 할 때, 강태환은 색소폰의 키들을 한데 잡고 공기를 계속 주입하며 순일하지 않은 음들의 미세한 진폭으로써 전자음처럼 합성된 일정한 톤의 산물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역동적으로 손을 휘갈겨대며 현란한 음의 종잡을 수 없는 난사로 이어졌다, 발 하나를 뻗고 모로 누어 꾹 불러댈 때, 한 호흡으로 색소폰을 타고 흐르는, 곧 악기의 구조적 토대를 확인시키는 음의 반향적 차원이 만들어진다. 이때 음은 하나의 불균질한 덩어리와도 같다

     

    좀처럼 이 악기의 강함과 독주에 몸은 반응하기 쉽지 않은데, 김바리는 약간의 틈을 찾아 헤매며 빠져나가고자 한다. 그 와중에 탁탁 몸이 걸리는데, 이는 그 음악에 대한 일종의 문턱의 물리적 직유가 된다. 사선으로 앉고 김바리는 전기가 통하듯 몸을 떨어 낸다. 다시 앞으로 나올 때 소리는 휘어지는데, 회전 반경을 그리며 이내 뒤로 빠진다. 음악이 안정적으로 되고, 몸은 그 공기만큼 무겁게 떠 있다

    앞으로 수그렸다 폈다 하는 건 음악적 자장 그 자체와 직결된다.음악이 다시 진열을 갖추려 할 때 즈음 김바리는 일어나고, 연주자 앞에 서며서 두 개의 몸이 종축으로 포개진다. 그리고 원처럼 뱅글뱅글 돌고 무릎을 굽혀 앉아 다시 처음 자세로 돌아오면서 마친다

     

    Julyen Hamilton: 내부를 외부로 펼치기

     

    Julyen Hamilton은 자신의 동료이자 이제 90이 되어 세상을 떠난 즉흥 연주자 한 친구를 기억하는 공연을 펼치는데, 그가 두르고 온 빨간 스카프를 상수 앞단에 놓고 시작하여 그 친구에 대한 상상적 대리물의 자리가 만들어진다. 그는 말을 걸면서 행위하는데, 그건 그 친구에게 말하는 수다와도 같다. 동시에 이는 그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의 표시이자 실은 애도인데, 그것은 또한 (필연적으로) 분열적이다. 너는 여기서 들리지 않지만, ‘여전히 어디에나 있으며, 프랑스어로 아주 아름다운 남자이기도 하다.

     

    특히, 치즈로 끝나는 연쇄 작용의 일정한 언어 유희적 흐름 속에서 “You wanna family” 같은 말이 출현함은 환유적 언어 양태들이 실은 그로부터 추출되는 의미 없(어 보이)단어들 너머로, 관계의 직접적 연결 양식에 대한 갈망 같은 것을 내포하고 있었음으로 결정된다. 재즈 음악에 가까운 친구가 녹음했던 이 음악으로부터 그는 팔을 벌려 친구같이 추고 그 환상적 매개에의 그림자가 떠난 후 이내 혼자 남은 실존적 고독의 형상이 되기도 한다

     

    현악기의 튕김은 그의 움직임 메커니즘과 조응하는데, 그의 물리적으로 분절되면서도 예측 불가능하게 뻗어나가는, 산만하면서 정위되지 않은 특성의 몸짓이 그러하다. 거기에 존재의 자리가 생겨나고, 그것이 떠나 갔음으로부터 다시 떠나는 일련의 뒤바꿈의 환상적 장면들의 흐름 아래, Hamilton은 성냥갑처럼 몸을 접어 넣고 반대로 펼치고, 용수철처럼 튕겨 올라오며, 실존하는, 생기 있는, 그러면서 고독하고도 슬픈, 애도하면서도 슬픔의 대상이 되어 버리는 중첩된 존재의 양상을 다채롭고도 혼란스럽게 펼쳐낸다

     

    마지막 장면, 어둠에 잠겨 가면서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돌렸다 하면서 두 손을 허공에서 감아 가는 모습, 무언가 작동시키려는 모습 또는 작동되어 가는 모습, 미약한 생명력을 발산하거나 발신하는 생명의 존재가 갖는 미약함을 따라 가는 이미지로, 그는 그 행위 이후에 나지막하게 “Thank you!” 하는데, 이 장면은 무엇보다 울림이 있다

    곧 물리적 어둠의 깊이를 움츠러드는 몸과 목소리의 흔적으로 가만하게 얹는 것으로서 목소리는 외부적인 것으로 도래하되 그 진정한끝을 그 스스로 맺어야 하기 때문이다. 곧 그것은 그 외부를 자신의 내재적 차원에 선고하며 수여하는 행위나 마찬가지인데, 곧 그 목소리가 소급되는바, 이제 진정하게 친구의 빈자리가 수용되어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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