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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와 간(남우찬·이유·최인엽), 〈테테테테테테테잎〉: 인간 너머에서 되돌아오는 대상REVIEW/Theater 2026. 7. 8. 13:52
삽입된 기억

순대와 간(남우찬·이유·최인엽), 〈테테테테테테테잎〉ⓒ현석현(이하 상동). 〈테테테테테테테잎〉에서 테이프는 기억의 보존과 재생 장치로서 상정되는데, 이는 중반 이후에 사용된, 1951년 세계 최초 시연을 보인 후 1990년대 전성기를 거쳐 2000년대 사라진 비디오테이프라는 특정 기록 매체의 성질에 기억이 조응됨을 의미한다. 비문법적으로 늘어뜨린 제목은 테이프에 대한 말더듬이의 어법을 경유해, 늘어난 테이프의 속성과 그로 인해 화면 역시 늘어나고 끊기는 물리적 매체의 소진, 열화 현상을 기입한다.
기억은 어떤 순간에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변용되거나 소거된다고 보이는데, 비디오는 그것을 물리적 이미지로서 재생한다. 일종의 뇌 재세팅 용도로 전유되는 미용실에 한 남자―김의태―가 손님으로 찾아오고, 할아버지와의 언쟁에서 교통사고로 이어지는 불쾌한 경험을 처리하기 위해, 뇌-미용사 한 명―최기량―은 비디오테이프의 옆면의 모서리 틈을 벌린 곽에서 하나의 릴을 추출해 그의 모자 꼭대기에 꽂고, 더 높은 미용사 수장, 소위 원장―조어진―은 그것을 돌려 풀어내고, 다른 한 명은 회전의자를 돌려 그것을 원활하게 돕는다.
이때 남자는 그 기억을 재생하는데, 여기서 테이프의 역할은 정확히, 거꾸로 기기억된 것을 재생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설명되지 않은 몇 가지 사실이 있는데, 테이프는 어떻게 남자의 기억을 이미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느냐는 것이다.
곧 테이프를 풀어냄으로써 기억을 마찬가지로 풀어내는 것, 테이프와 기억이 하나의 의미로 합성되는 생성의 마법적 효과가 발현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테이프의 용도를 기각하지 않는다면) 남자가 곧 테이프의 재생 장치로 변용되는 역설적 광경을 보여주는 것과 같으며, 이는 남자의 이전 기억을 지우고자 하는 뚜렷한 목표에 입각해 종합하자면, 실은 지금의 단계가 새로운 의사 기억을 심고 있는 것이라는 가설을 향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손님은 처음 이곳을 찾은 것으로 보이며, 별도의 정보를 불러오지 않고 이 모든 단계가 시험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원장은 테이프를 돌려도 계속 부정정 기억에 사로잡혀 있고,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남자의 기억을 말 그대로 테이프를 잘라내는 것으로써 잘라낸다. 긴 조각에서 작은 조각으로 이어지는 그 강박적 잘라냄 속에서, 남자의 부정성의 마지막 조각은 유예되고 기억된다.
이 끔찍한 트라우마적 기억의 소산은, 물리적으로 환유된 절차, 곧 머리와 테이프가 어찌 됐건 동기화된 상황에서, 물리적 단위로 환산되지 않는 기억의 미스터리, 뇌의 인지, 파지 불가능성을 섬뜩한 교훈으로 안긴다, 원장의 행위가 다해가는 그 테이프가 운명의 종료를 대신하는 것처럼 다급함을 안고 있는 가운데 말이다.
중의적 매체

〈테테테테테테테잎〉는 이 강박적 제스처로부터 이상 증세를 겪는 각종 현대인들의 단면을 그려내며, 일종의 부조리극과 같은 심연을 열어내고자 하는데, 거기에는 이제 끝나지 않을 거 같은 지속(“테~”)이 있는 것이다. 이곳저곳 장소를 계속 옮겨 다니며 공간 전체를 자의적이고도 모조리 사용하는 이 퍼포먼스에서 전시장은 주로 여러 종류의 테이프를 활용해 연출한 세트에 가까워지는데, 이는 시각예술 전시장으로서 만들어진 특정 대상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지 않는다. 공간 전체의 일정하게 조율된 톤은 공연의 세트로 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의 차원에서 그러하다.
〈테테테테테테테잎〉에서 테이프는 모든 것의 시작이자 모든 것이 경유하는 매개이며, 종국에 향하는 사물이다. 그와 동시에 붙고 떨어지고(1), 감기고 풀어지는(2) 동명의 두 사물을 횡단하는 것이 곧 작업을 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다른 사물들 역시 테이프에 ‘흡착’된다. 가령 처음 시작된 장소에서 매달려 있던 테이프들, 두 번째 장소의 좁은 방 안 실버/홀로그램 테이프들이 손 만한 크기로 잘려 둥근 아치를 이루며 편재하는 흡사 윤슬 같은 바닥, 2층 안쪽 넓은 공간에서의 각종 여러 테이프가 어지럽게 천장에 붙어 매달려 있는 모습은 순전히 붙이는 테이프가 이룬 광경이다.
그리고 그것이 확장되어 응결되는, 더 안쪽 다른 공간에는 걸개 그림으로 내려뜨려진 그림, 곧 축 늘어지며 바닥에 접면하는 배치로서 사물―곧 갖가지 색들의 조합이 이룬 결과이자 그것의 최종적 하강 이미지―이 붙이는 테이프의 변주라면, 돌돌 말리며 깎이는 사과의 이미지는, 머리 위에서 뱅뱅 돌아가는 마그네틱 테이프, 곧 필름의 이미지에 대한 변주이다. 그리고 이는 이후 고 맞은 편 좁은 방의 검은 마그네틱 테이프의 엉킴이 주는 내장의 널브러짐으로서 이미지로 이어진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바닥에 떨어져 있는 테이프의 잔여들은 장식적이지 않고, 기억의 잔여에 대한 은유로서 보다 실재적이며, 통창문 앞쪽의 테이프의 진자 운동과 그 바깥의 최기량의 움직임, 춤으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테이프는 이미지 매체의 자장을 경유해 기억에 대한 은유를 이루면서부터 다시 달라붙어 있는, 흘러내리는, 끈적하고도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는 왜상적 기억을 노골적으로 상기시키는 매체가 된다. 테이프(1)~테이프(2)의 진자 운동이 곧 종합이, 〈테테테테테테테잎〉의 실질을 구성한다.
인간을 뒤집기

우리에게 기억이란 무엇인가. 이미지 기억, 곧 삽화적/에피소드적 기억은 상연 가능한/재현 가능한 차원으로 전제된다면, 그리하여 우리는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면, 왜상으로부터 계속 고통받아야 한다면, 기억 제거술, 기억 돌려깎기와 같은 기술로써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 긍정적인, 옳은 일인가, (중핵이 삭제된, 비진정성의 인간은) 인간적인 것인가. 〈테테테테테테테잎〉은 이런 형이상학적 질문에 대해 질문하거나 답변하는 대신, 부조리성의 차원으로 그것을 냉소적으로 비춘다.
테이프는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고, 끊기듯 지연되며, 단말마의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필름이 늦게 돌아갈 때 이미지는 명확해질 수도 있다. 또는 이 지연 작용의 효과 속에서 멈춤 없이 돌아가는 이미지들의 공작으로부터 사유가 가능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결정적 장면이라 부를 만한, 뇌-미용실 같은 경우에서처럼 어떤 기억이 이식 가능하다면, 재생 매체로서 뇌가 작동하며 따라서 재생 가능한 기억의 단위를 바꿔 낄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게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이러한 과정은 ‘다행히도’ 뇌를 사과로 다시 환유하듯, 물화된 신체라는 가상적 치환으로써만 가능하다고 하는 듯하다.
하지만 사물과 인간이 등가 교환이 가능한 그 지점은 바로 〈테테테테테테테잎〉가 목표하는 지점이 아니라 전제하는 곧 출발하는 지점이다. 각종 테이프들로서 체현되는 인간의 여러 부조리적 양상은 곧 대상에 대한 우위를 점했다고 생각되는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최대한의 거리를 두는 것으로 연장되기 때문이다. 곧 이것은 종말적 세계에 대한 재현이 갖는 냉소가 아니라, 대상적 존재화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간 바깥의, 여분의, 결여의 어떤 세계가 주는 기이함, 그것이 상대하는 인간에 대한 태도에서 역전되어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김민관 편집장
2026.06.12.(금)-06.14.(일) | 온수공간(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1길 74)퍼포먼스(약 50분, 총 5회) 금·토 14:00, 20:00 / 일 14:00'REVIEW > Theat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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