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국립극단, 〈태풍〉(2025. 원작 윌리엄 셰익스피어, 번역·재구성 마정화, 연출 박정희): 세상만사로부터 소거의 수행을 통해 영원한 안식에 이르기
    REVIEW/Theater 2026. 7. 6. 13:58

    국립극단, 〈태풍〉(2025. 원작 윌리엄 셰익스피어, 번역·재구성 마정화, 연출 박정희)[사진 제공=국립극단](이하 상동).

    박정희 연출의 태풍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재구성해 밀라노의 공작 프로스페로와 나폴리의 왕 알론조를 각각 프로스페라와 알론자라는 여성 캐릭터로 전환하는데, 일종의 젠더 프리 캐스팅의 일환은 극의 전제가 되는, 공작의 음모로 왕에서 내려와 섬에 유폐되었다는 전사에서 대비되는 권력의 정점의 두 인물을 여성으로 바꾼다. 이는 남성 가부장 중심의 사회의 제일 윗단을 변경했다는 점에서, 그 외의 배역에 대한 성별 전환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식이다. 중요한 건 이로써 주인공 프로스페라를 예수정 배우가 맡게 되었다는 것인데, 주도적인 여성이 주인공이면서 유명한 배우가 그것을 승계한다는 점에서, 전 작 헤다 가블러의 주인공을 배우 이혜영이 맡은 바를 떠올리게 한다

     

    프로스페라는 자신이 부리는 정령 에어리얼을 통해 알론자 일행이 탑승한 배가 태풍을 맞닥뜨리게 하고 난파되어 결과적으로 자신이 사는 무인도에서 뿔뿔이 흩어지게 만드는데, 이때 생사의 위기에 놓인 인물들이 무인도에 안착할 수 있는 과정에서 그들의 의식이 블랙아웃되는 것처럼, 마법의 효과는 이후 망각과 혼동, 무력함을 동반하며 프로스페라의 의지에 따른 서사의 안정적이고 절대적인 흐름에 속하는 솔기들로 이따금 드러난다. 이 더 큰 힘의 차원에서 프로스페라는 처음부터 복수에 일념을 품고 있지 않음이 전제되며, 일종의 자비로운 신의 관점에서 그들을 대하며 그들이 잘못을 깨우치는 것으로 잘못된 서사의 방향을 교정한다

     

    마법과 현실의 힘의 거대한 격차는 따라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 서사의 변침을 허용하고, 동시에 그 현실의 서사 자체가 의미적으로도 또한 형상적으로도 절대적이지 않음을 전제하는데, 그 지점에서 현실의 서사는 실상 처음부터 경계의 차원에서 시험되고 있으며, 곧 절체절명의 순간과 함께 이 순간이 서사의 종국이라는 현실로서 서사는 그에 반하는 새로운 서사로 곧장 인계된다. 여기서는 블랙아웃의 발생과 동시에 그 블랙아웃을 담는 서사의 시간이 소거된다. 곧 마법적 차원 아래 지배되는 인간의 무의지적 또는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의 삶, 현실적으로는 노예의 삶이 이후/곧장 펼쳐지는데, 이는 자신의 딸과 사랑에 빠진 채 결혼 상대자의 물망에 오른 알론자의 아들 페르디낭 왕자에게도 한결되게 적용된다

     

    프로스페라는 작가의 위치이자 신의 위치에 있으며, 더 정확히는 신의 위치를 체현하는 작가의 위치에 있다. 작가가 신의 위치에 있으므로, 서사는 교정 가능하며, 역으로 피드백이 가능하며, 지난 잘못을 뉘우치는 인물들의 회개가, 그리고 그에 대한 용서 역시 가능하다. 이때 잘못한 이들을 대하고 마주하는 프로스페라 역의 예수정은 그들을 단지 무심하게 관찰하고 문제가 해결될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는 침착한. 모습의 관조자에 가까워 보이는데, 사실상 그의 복수에 대한 정념을 이끌었을 전사는 단지 그것을 자신의 딸 미란다에게 이야기로 건네주는 차원에서만 압축되어 드러나며, 그조차도 감정이 투여되지 않는다

     

    그가 마침내 변경될 때는 관객에게 직접 이 이야기의 종결에 참여를 부탁하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이며, 이는 그가 현실에 귀착되지 않고, 마법의 힘마저 버리고, 서사의  원환 자체를 매듭 지음을, 그리고 그로부터 무의 상태로 돌아감을 또는 비지시적, 비의미적 차원으로 돌아갈 것을 의미하는데, 이때 어쩔 수 없이 노년의 배우 예수정의 연기가 비어진 서사의 축을 잠식하게 된다. 바텐이 내려오며 섬을 둘러싼 하얀 천의 막도 숨이 죽으면서 어둠 아래 숲의 초록색이 어슴푸레 비쳐나오는 작은 공간을 헤집고 그가 하수의 천 틈을 비집고 나올 때 강력한 정적은, 일종의 막이 내렸음에 상응한다

     

    빈 극장에서 그가 등장함으로써 마침내 섬에 유폐된 채로만 있던, 그 섬 자체이기도 했던 그의 마법이 잠재한, 마법의 봉인이 자리한 섬이 그것을 기호화한 신비한 문양들이 새겨진 천의 해제에 따라 마법의 상징성이 꺼지게 되고, 결국 그의 본래적 자아만이 남은 실재의 장소에서, 빈 극장이 지시되는 이 적막한 장소에서, 프로스페라는 무엇보다 예수정이다. 4의 벽이 허물어졌다는 통상적인 비유를 쓸 수도 있지만, 열린 결말에 주어지는 작가의 디에게시스라고도 할 수 있다. 곧 작가의 위치의 연속선상에서 프로스페라는 서사의 영점으로 돌아간다

     


    셰익스피어 말년의 최후의 작품이라는
    템페스트에서 프로스페라의 위치는 삶에의 서사 전반을 긍정하고 수용하는비극에서 희극으로 변주되는 특이성의 결과가 사실상 기인하는, 작가의 위치를 상기시키며 그것이 관객과 접면하는 차원에서 부재하는 서사와 그 서사를 갈음하는 자의 무력함을 관객을 호명하면서 승화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결말은 서사 자체의 해결을 넘어, 서사의 유인이 사라진, 종국에 서사가 성립하는 인간의 욕망의 근저를 가리킨다. 그것은 영원한 죽음에 대한 의식이다.

     

    프로스페라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 죽음으로부터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 아닐까. 무대가 잠으로, 죽음으로 잠식된 가운데, 시간의 무한함이 열린 가운데, 과거의 시간들이 기억의 파편들로 흩어지고 세상만사의 조각 난 이미지들로 형해화될 때 태풍역시 가라앉고 서사는 철저한 과거의 붕괴로부터 공백의 서사를 메우는 개인의 현존재의 양상이라는 서사의 텅 빈 잠재성텅빔을 잠재한 반-서사으로 전환한다거기에는 필경 죽음이 있다

     

    사실 모든 서사는 희미하게도 그리고 무력하게도 서사의 위치를 반가상적인 것으로 획득하고자 했었다. 곧 프로스페라를 제외한, 그 바깥에서의 타자로서 환경은 비주체적인 존재들의 양식과 연결되었으며, 이는 무대 전반의 환영성, 연극성을 상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바깥에서 프로스페라의 권능이 무대와 무대 바깥 모두를 잠식했었다면, 이제 프로스페라의 맨몸은 그 덜그럭거리는 서사의 소극적 양상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또한 헐거워져서 응시의 지점을 만든다

     

    그것은 프로스페라가 보는 세계라는 잉여가 소거된, 단일한 절대적 하나의 세계라는 하나의 응시이다. 곧 그것은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 내는 응시로, 또한 일종의 태풍에 의한 존재의 장소적 변위로, 태풍은 바로 이 지점에서, 유령적이고도 실재적인 하나의 섬에 모두를 가둔다, 그것은 셰익스피어가 제시하고자 했던 서사 바깥의 유일하고도 예외적인 하나의 서사가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작동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일까. 삶과 죽음의 경계로부터 쓰이는 이 반서사적 서사의 씨앗으로 소급되는 가운데, 바로 그 지점에서 저자는 자신의 죽음 역시 수용하고 있는 것일까

     

    김민관 편집장 

     

    2025.12.04 ~ 2025.12.28 평일 19시 30분 | 토·일 15시 (화 공연없음) 12.15.(월) 공연 없음, 12.25.(목) 15시 ※ 접근성 회차: 12.20.(토) - 12.22.(월) - 음성해설, 한국수어통역, 한글자막해설, 이동지원, 무대모형 터치투어(전회차) 

    명동예술극장  

     

    만드는 사람들

    원작 윌리엄 셰익스피어ㅣ번역·재구성 마정화ㅣ연출 박정희

    드라마투르기 조만수ㅣ무대/조명 여신동
    의상 김지영ㅣ분장 백지영ㅣ소품 김혜지
    음악 장영규ㅣ음향 최환석ㅣ움직임 심새인
    조연출 김하늬 김강민ㅣ컴퍼니매니저 박은서

    출연
    프로스페라 役_예수정
    에어리얼 役_이경민
    칼리반 役_홍선우
    미란다 役_황선화
    페르디낭 役_성근창
    알론자 役_문예주
    곤잘로 役_박윤희
    세바스찬 役_윤성원
    안토니오 役_김나진
    스테파노 役_김은우
    트린큘로 役_구도균
    갑판장 役_하재성
    아드리안 役_이강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