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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아트로 라 플라사 Teatro La Plaza, 〈햄릿 Hamlet〉: 기표와 수행성 사이의 존재
    REVIEW/Theater 2026. 7. 14. 20:35

    테아트로 라 플라사 Teatro La Plaza, 〈햄릿 Hamlet〉[사진 제공=모두예술극장](이하 상동).

     햄릿은 연극 바깥에서 연극으로 수렴하는 특징을 보이는데, 이 같은 구심력은 원작을 수행하는, 배우들의 정체성을 전면에 드러냄으로써 발생한다. ‘햄릿’(이 글에서는 원작 햄릿과 그 속의 주인공 햄릿, 여러 다른 햄릿의 판본, 햄릿들 모두를 가리키는 데 구분 없이 사용하였다.)은 일종의 역할 입기 놀이가 되며, 그들의 사적 진실을 토로할 공공의 장이 된다. 8명의 배우의 공통된 특징, 다운증후군에 대한 사회적 시선, 곧 외재적 속성은 그 존재를 결정짓는 절대적 기준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데따라서 중요한 건 후속적으로 자리하는 그들 각자의 사적 진실의 고유성에 입각한, 곧 내재적 차원의 발화들이겠다., 이 같은 숙명을 햄릿은 선왕의 유령으로부터 끔찍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 햄릿의 실존적 삶이 기원하는 자리에 둔다

     

    햄릿은 다시 쓰이는데, 이는 원작과 배우의 삶을 횡단하면서 그러하다. 이는 원작이라는 경계와 함께 배우들과 결부되는 진실의 차원을 반영함이 또 다른 경계, 규준이 되어야 함을 의미하는데, -텍스트에 따라붙는 또는 그것을 맴돌고 있는 하이퍼텍스트라는 확장된 경계의 햄릿은 그 반대의 측면, 햄릿이라는 표현을 빌려 말하는, ‘햄릿안에서 배우들의 진실이 관객을 향한다는 점에서, 이른바 원작의 일차적이고 기능적인 차원의 축소를 의미하며, 결과적으로 햄릿을 일종의 반영적 거울로 놓고 현실의 서사를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둠 속에 등장한 존재들, 우왕좌왕 유령을 찾는 랜턴 역시 이들의 존재를 감추는 도구가 되며, 선왕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화면에 등장할 때 역시 뒷모습의 그들에게서 삶과 죽음 사이의 실존적 물음에 대한 단계를 대체하는 건 바로 이들이 각자의 자신으로 돌아와서 햄릿을 시작하는 단계다. 여기서 장애라는 일종의 가시화의 차원은 일반적인 배우 본연의 그것과 공통되는데, 우리는 공통되게 이 둘을 짐짓 특별한 무엇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햄릿이 극 초반의 전개를 그들의 존재를 지우고 가져가며, 본격적으로 햄릿에 진입하는 그 과정을 분절하여 자신들을 소개하는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다운증후군이라는 외재적 사실을 배우라는 존재의 차원과 함께 하나의 인터페이스로 마주하게 되는데, 다운증후군이 이들의 외모를 그렇지 않은 존재, 그리고 (배우가 아닌) 일반인과 차이화하는 기제이며, 나아가 기타 다른 어떤 특성들과 결부된다는 점에서 또한 그러하다

     

    이는 다시 다운증후군이라는 편견 또는 환원의 위험을 동반하는데, 이는 곧 다운증후군을 정체화함으로써 그 바깥에서 이들을 사유할 수 없는 위험 또는 한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우리의 패러독스의 상황을 대신해서 그들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애(를 보는 선입견을 가진 사회와 그 속에서의 우리)는 가시화된다. 이를 증폭시키는 건 그들이 우리중 일부가 아니라, 차이화된 집단 정체성으로 묶이며표방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는 이들 안의 차이보다는 이들과 우리의 차이를 가시화한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햄릿의 질문은 그들을 다운증후군 장애의 존재로만 보느냐 혹은 그렇지 않고 그냥 우리와 같은 동시에 고유한 각자의 존재들로 순수하게 보느냐의 질문으로 우리에게 전이된다. 여기서 다운증후군이라는 조건은 우리에게 단순히 하나의 사회적 편견인 것만이 아니라, 또는 초월의 대상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경유해 그것을 가로지르며 나아가야 하는 조건이 된다

     

    부재하는 선왕의 자리는 현실적으로 노년의 부모를 내가 돌볼 수 있는 미래의 장면에 대한 불가능성으로 치환되는데, 여기에는 돌봄을 받는 주체에서 돌봄을 하는 주체로의 전환과 더불어 다운증후군과 취약한 건강 상태의 가능성에 대한 함의도 있다. 이는 햄릿의 자리에 다운증후군을 대신 끼워 넣으며 그 같은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을 자각하며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한다어머니가 나를 낳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는 식으로 이는 한층 더 비극적으로 우리를 경유해 발화된다.라는 비교적 처음의 문장과 삶과 죽음의 실존적 상황의 의제로서 상응한다.

     

    한편, 이는 주로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주어지는 외재적 조건이 이들의 삶을 옥죄는 요소로 전제되는 햄릿에서 그 너머에서 내속되는 조건들이 점차 침투하는 부분으로 극의 변화된 관점을 암시한다. 그러니까 표면과 사실, 분류의 차원 너머에서 이들을 고유한 각자로 ()위치시키는 것이야말로 정치적 과제가 내재적인 차원으로 발현되는 부분일 텐데, 햄릿은 그런 지점에서 일종의 절차적 단계, 편견을 가시화하고 비판하는 첫 번째 단계의 전략이 상대적으로 더 강조된다

     

    이는 한편으로 이 햄릿이 갖는 예술계 내부의 예외적 위치, 곧 조금 더 다양하고 많아져야 하는 필요성에 대한 자기 고려의 차원에서 역시 바라볼 수 있는 부분이다적용하면, ‘우리는 현 상태 내에서 (다운증후군 관련한) 정초의 단계가 필요하며 이를 우선하겠다.’라는 것이 될 것이다. 결국, 햄릿은 발화하고 즐기는 주체로 스스로를 연장하는 배우들을 통해, 관객 모두를 무대로 끌어들이며 햄릿외의 시간을 확장하며, 우리 안의 그들 또는 그들 안의 우리라는 존재론적 질서를 회복한다.

     

    햄릿은 결국 햄릿을 얼마큼 잘 재현하느냐, 그것에 충실하느냐의 차원으로부터 이탈하는데, 이 같은 부분은 사실 햄릿을 기능적으로 소비한다는 비판의 차원을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실은 이는 동시대적 가치로 어떻게 햄릿이 소구될 수 있느냐의 질문을 차치할 때만이 가능한 부분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곧 실존적 상황을 질문하는 이의 예외적이고 특수한 존재론적 양식 자체의 특별함으로부터 햄릿다시시작한다, 앞서 언급한, 선왕의 죽음이라는 서사를 일단 보류하고

     

    테아트로 라 플라사, 〈 햄릿 〉ⓒAurora Nova

    햄릿의 분절된 시작과 이탈된 끝의 연장은 다운증후군이라는 특수성으로부터 평범한 삶의 일단으로 확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일종의 만드는 과정 자체를 햄릿에 투사하며 햄릿과의 간격을 만드는 햄릿에서 이 존재들의 연기는 역할에 대한 일종의 과제이자 도전으로 그 역할에 앞서 기입된다. 수많은 연기의 표본들을 보여주는 햄릿 컬렉션이 흐르고, 마침내 바위에 앉아 비스듬하게 몸을 기울인 로렌스 올리비에의 햄릿앞에서 하이메 크루스가 같은 자세를 취하는 부분은 햄릿에 대한 연기 양식의 다양한 분포나 역사, ‘햄릿이라는 하나의 작품으로서 기표를 그 햄릿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위치로, 그리고 그에 대한 욕망과 열망의 간격으로 굴절시킨다

     

    햄릿이라는 자리가 수여되는 배우는 응당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었다는 사실, 따라서 햄릿이라는 역할은 일종의 배우에게 있어서는 대단한 열망의 자리라는 사실, 그리하여 햄릿을 연기하기를 연기하는 것, 기존의 연기에 기생하고 전유하는 방식의 연기는 햄릿 연기를 못 하겠다는 그 전의 발화로부터 일종의 신화로 자리 잡은 장면들의 온전함으로부터 연장되기보다 그것과의 차이를 드러내며, 현재 경합하는 내재적 갈등과 햄릿으로 봉합되지 않는 현재의 사태를 지시하는 것으로 수렴된다. ‘이것은 마스터피스가 아니며, 다만 그것을 차용할 뿐이다.’ 

     

    햄릿  마스터피스로서 햄릿을 가로지르며 그 틈새를 차지한다. ‘햄릿의 바깥에 있던 하이메 크루스처럼 햄릿은 햄릿 안에 가 아닌 내 안의 햄릿을 찾는 그리고 발화하는 일종의 프로젝트로 자리한다그것은 햄릿으로 봉합되지 않는 언어들, 햄릿이라는 서사와 작품의 경계를 초과하는 현재들, 역할에 앞서 자리하는 존재들이며, 햄릿은 그런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 소수이자 예외자적인 지위의 존재를 앞세움으로써 존재론적 질문과 사유를 하는 주체로서 그에 전제되는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주체라는 가정을 시험하고 질문한다.

     

    궁극적으로 햄릿  ‘햄릿을 뚫고 나오는 존재들의 진실의 자리에 다운증후군을 하나의 불가피한 삶의 숙명으로 둠으로써 거꾸로 그들의 삶을 다시 전유하는 자리를 만든다. 이는 그들의 삶을 비극적 차원으로 관람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대신, 수행적 차원으로 극을 다시 씀으로써 햄릿의 균열을 역할에 대한 존재의 균열로 바꾼다. 곧 극의 내재성은 존재와의 간극으로 바뀌면서 존재 내재적인 것이 되며, 그 간극은 불완전함이나 완벽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수행적인 것을 들여오는 계기가 된다

     

    김민관 편집장 

     

    2025년 5월 23일 ~ 2025년 5월 25일 금 오후 7시30분 / 토·일 오후 3시

    모두예술극장

     

    창·제작진
    극작·연출 첼라 데 페라리
    협력 연출·극작 자문 클라우디아 탕고아, 조나탄 올리베로스, 루이스 알베르토 레온

    보컬 트레이닝 알레산드라 로드리게스 
    안무 미렐라 카르보네 
    비주얼 디자인 루초 솔데비야 
    조명 디자인 헤수스 레예스
    프로듀서 시우 징 아파우

     

    출연
    옥타비오 베르나사, 하이메 크루스, 루카스 데마르치, 마누엘 가르시아, 디아나 구티에레스, 크리스티나 레온 바라디아란, 시메나 로드리게스, 알바로 톨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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