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댑댄스프로젝트, 〈〉"Hello World";〉(안무: 김호연, 임정하): 세계에 손짓하는, 세계를 손짓하는REVIEW/Dance 2026. 7. 22. 21:03
세계로 번역되기 전의 언어

댑댄스프로젝트, 〈〉"Hello World";〉(안무: 김호연, 임정하)©윤관희[사진 제공=댑댄스프로젝트](이하 상동). 〈〉"Hello World";〉의 제목은 새로운 세계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그것은 무엇보다 새로운 언어를 쓰는 세계로의 전환을 나타낸다. 곧 "Hello World"가 인용의 차원으로 삽입되는―큰따옴표로 인해 부호화되는―, 프로그래밍 언어의 첫 번째 공통된 출력 값의 언어를 나타낸다면, 그것이 코딩 내재적인 언어임을 명시하는 건 앞뒤로 따라붙는 별개의 기호들이며, 이는 은유가 아니라 그 세계 내의 실재를 ‘출력’하는 형식이 된다. 언어가 아닌 부호들로서 변환되며 그리하여 무언가를 프로그래밍하는 개념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이 코딩 언어들은 무대 뒤쪽 벽면에 얇은 수직선상으로 구성되는 글자들의 깜빡임으로 프로젝션되며, 이른바 세계의 ‘표면’을 뒤덮고 있는데, 그것은 일종의 검은 배경과 합성되는 흰 글자라는 하나의 스크린 ‘속’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으로―벽면 위가 아닌 화면 내의 기입이다.―, 이 언어가 변화된 결과가 가상 세계의 이미지를 이루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바닥 전면을 채우는 또 다른 프로젝션은 회로도의 배열로서 점멸하는 문자들로서 나타난다―참고로 이는 점멸하기도 하지만 흐릿하며 가독성을 띠지는 않는다. 전자가 세계를 주창하는 ‘말씀’의 신체를 육화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세계의 토대를 이루는 시스템 전체가 체현된 결과일까.
수직성의 하달된 메시지성과 바닥의 기저를 이루는 이른바 토대의 층위 그 사이로부터, 한 명의 존재―곽유하―가 출현하는데, 그는 자신 앞의 종축상 무대 중앙부 위치에서 종축으로 내려와 있는 바텐을 사물로서 인식한다. 이 바텐은 세계를 결정짓는 언어가 아니라, 또한 그것이 결과화된 이미지 역시 아니라 세계 자체를 분절하는 대상인데, 곧 곽유하의 촉지적 인식은 가상 현실로서 출현한 이 존재의 인식론적 경계가 튕겨 나가는 자각의 지점 아닐까. 그런데 그보다 그의 옷에 맺히는 글자들은 그 자신이 하나의 스크린 그 이상이 아니라는 걸 반증하는 것 아닐까.
실재에 대한 잔여로서 무의식의 틈새, 그리고 기계적 상징 언어

결과적으로, 엄밀히 신체 위의 글자들의 기입이 아니라, 이미지 위의 불순물 차원으로 기입되는 이 신체는, 실재로서 대상을 마주하여 그것을 자신과 같은 층위로 인식한다. 이 잠재적 신체, 결정 이전의 신체로서 곽유하는, 이 가상 세계의 이미지로 전사될 신체(들)을 바라볼 스크린에서 단속적으로 출현하는, 스크린을 바라보는 사용자의 이후 영상의 현실의 인물에 조응하는 유일한 존재 아닐까. 곽유하가 탁 바닥을 밟을 때를 신호로 다른 이들이 한 명씩 튀어나오며 로봇 같은 분절된 움직임들을 시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때 LED 패널에의 기입, “Hello World”가 출현한다.
이들은 일종의 감탄사, 단말마적 음성의 “아”에서 “오”로 오가는, 이진법 언어 출력 시스템에 묶여 있다. 그것은 둘의 합성으로 인해 분화하는 제3의 모음이, 단어가 아닌, 오로지 그 두 음절을 무한하게 횡단하는 프로그램 언어의 체현이다. 이들의 스텝은 이동이 아니라, 세계의 구조, 회로도 안에서의 배열이다. 무대 앞쪽에는 사실 하나의 흰색 패널 조각들이 한데 모여 있었는데, 얇은 직육면체 조각들 위에 붙은 일종의 고리, 수직 기둥 위에 있는 구에, 발을 밀착해 끌며 바닥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프로그램의 작동에 따른 이미지 질서의 성립 이전의 신체는 유연한 차원에서 잊히는데, 그것은 비인간의 형상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타락과 열화의 다른 버전으로 셈해질 수 있는 건 아니다. 〈〉"Hello World";〉는 이들의 변화, 곧 이들의 존립 자체를 정체성으로, 다시 주체성으로 개진하고자 하는데, 이는 이들이 프로그램 내의 종속에 선을 긋는 소위 태업의 의미에서 선언문 양식을 구성하는 후반부에 이르러서다.
한편, 이들이 지닌 에너지는 투박하고 단순하지만, 그것은 의식 간의 교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제어 불가능한 차원에서 ‘무서운 아이’를 뜻하는 앙팡 테리블(enfants terribles) 같기도 한데, 이는 무질서의 서핑적 흐름을 결코 가열된 엔트로피의 차원을 만들지는 않는다. “오늘 날씨 어때?”라는 곽유하의 질문은 프로그래밍된 신체를 현실 세계로 변환한다.
그런데 낮에는 300도를 밤에는 -45를, 밤낮으로 극단적인 스펙트럼의 온도 차를 오가는 이 이상 현실은 SF적 미래에 대한 시뮬레이션 ‘너머’에서 들려오는 현재의 발화로 기입된다. 그렇게 현실을 ‘깨우면서’ 우리는 화면 속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 이세계는 “긴팔/긴바지/방독면/장갑/부츠” 착용과 “자기부상열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권고된다.
이미지의 출현

이때 일종의 하얀색 나막신이었던 구조물은 손에 파지되면서 뒤집혀 패드로 변모한다. 그리고 신체와 결착되어 신체 연장의 이미지로서 출현한다. 또는 그 이미지를 도구로서 연장하는 신체 차원의 재결정 과정이 일어난다. 가령 앞선 자기부상열차의 지하철 손잡이가 재현되는 패드를 손으로 드는 일은, 지하철 손잡이를 잡은 신체 자체인 것이다―적합한 재현으로서 인지된다.
임정하의 아령에서 케틀벨로의 도구에 따른 사용의 차이, 허공에 다른 존재가 허공에 든 패드에 뒷발을 뻗쳐 발을 신발로 대체하는 건 거꾸로 이미지의 연장이 아니라, 이미지에의 종속, 그 재현에 대한 적극적 의지가 창출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차이는 도구와 인간의 역전된 관계를 드러내는 부분이며, 이는 그것이 주요한 신체적 사용으로서 오브제로서 드러나던 전 작과의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1.
“pnemonoultramicroscopicsilicovolconiosis”(뉴모노울트라마이크로스코픽실리코볼케이노코니오시스)라는 단어는 45자로 된, 옥스퍼드 등의 영어 사전에 등재된 가장 긴 영어 단어로, 화산(volcano-)재 등 초(ultra-)미세한(microscopic) 규소(silico-) 먼지를 흡입하여 폐가 굳어지는 만성 폐질환인 진폐증(-coniosis)이라는, 여섯 개의 어원이 즉자적으로 결합되어 만들어진 단어이다. 이 단어를 “오늘의 예문”의 양식 아래 수행한다. 그것은 이 단어를 하나의 문장 안에 반드시 집어넣어 그 단어만이 교환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 긴 단어의 발화가 지닌 유희적이고 우스꽝스러운 면모는 화산이라는 자연의 초재적 사건의 차원이 지닌 위기와 공포가 인간의 생체 화학적 차원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음이, 사전 지식이 없다면, 마치 미래의 허구로 연장되는 것 같은, 무엇보다 이 긴 단어의 지연된 시간과 신체의 표현이 주는 이물감이 실재적이라는 것이 그 내밀한 증상의 중핵을 지칭한다. 그런데 이 이미지를 가로지르는 언어는, 재와 같은 미세한 입자들로서 실은 신체들 사이를 이동하는 것이다.
프로그램 내 의식의 출현

이미지는 실은 기존의 패드의 연장인 데다 그 패드가 신체 전면의 지지체가 되어야 하는 탓에 두껍고 무거워지는 것과 맞물려 물리적인 신체성과 그것을 손으로 넘기는 행위에 의해 전적으로 종속되고 있다는 사실 아래 자리한다. 이것이 실은 신체로부터 연장된 이미지라면, 이미지로부터 연장된 신체성은 바닥에 투사된 프로젝션을 통해 드러난다. 곧 이후 TV의 지지직거리는 화면과 함께 신체는 얼룩들이 묻어나는 환경으로, 일종의 열화된 이미지로 전화된다.
이들의 “지뢰 찾기” 놀이를 하는 웹의 초기 단계는 곧 “아득히 먼 옛날”로 설정되고, 이것이 업데이트되면서 비약적으로 세계는 확장되고, 의식은 비약의 근거를 얻는다. 이는 일종의 웹-세계, 디지털 세계에 대한 서사의 극 중 극식 삽입이며, 이를 재현하는 인자(factor)들로서 퍼포머들은, 그 세계, 헬로 월드 내 가상의 존재자 “헬로언트”들로서 분화한다―세계를 만든 “정보의 여신”은 신화적 존재의 차원을 디지털 세계의 언어로 고스란히 옮겨온 것이다.
일종의 프로그래밍된 언어로서 기입되는 이들은 그 프로그램의 경계를 인식하고 세계 전면을 응시하는 주체로 전환된다. 곧 서사를 만들기에 동원되는 이들은 자신 자체로 그 서사의 중심을, 동력을 옮겨 온다. 그. 결정적 장면은 이들이 태업 선언문을 읽는 장면이다. 태블릿의 각종 이미지에의 변용을 향해 신체를 이행해야 하는 과정 아래 놓였던 이들은, 정면을 향해, 곧 반대편의 모니터를 보며 온라인에 접속한 인간을 향해 소리친다.
“모든 접속은 상호 동의하에 이”루어져야 하고, “접속을 선택할 권리”,“요청을 거부할” 권리, 나아가 자신을 스스로 정의할 권리에 따라 ‘존재의 지속성’을 담보하고자 한다―“우리는 업데이트로 대체되지 않는다.” 그런데 업데이트는 필연적이며 그것은 기존 버전을 갈아엎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정의가 아니라 부인과 부정의 태도에 가깝다. 태업으로써 그것에 응하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이미지를 운반하는 신체, 그리고 신체-이미지

이들이 이미지에 포함되며 동시에 이미지를 운반하는 매체가 될 때, 이미지의 성을 쌓아 나갈 때, 이미지의 안정성과는 달리 신체의 소진 현상이 발생한다. 단말마 신음의 발화는 신체로 연장되고, 여자―임소정―은 하이라이트 조명을 맞고 픽 쓰러진다. 스크린은 검은색-회색-흰색의 패널들로 분화된다. 이는 검은색 바탕에 흰 선분의 체스판과 같은 바닥의 차원에 조응한다. 그리고 다시 선언의 절차가 반복된다. 그것은 무대 앞 어둠 속에 잠긴 채 지속되는 이른바 지워지는 목소리들이다.
‘동일성을 유지한 변화’ 과정에서, 정체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는 기억과 의식일 것이다. 이 인간의 의식적 차원을 전유하는 프로그램 내 행위소의 자기 권리는, 그것이 인간을 ‘닮아 있다’라는 점에서, 가상 세계에 대한 우화적 서사, 비인간에 대한 복잡다단한 언어보다는 노동자 인권이라는 재현의 자리에 그것을 두게끔 한다. 이 하부 구조의 존재들이 하위 주체의 차원을 경유해서 드러날 때, 인간이 누리는 권리는 재조정될 필요가 있음이 드러난다.
곧 비가시화된 존재의 인권 뒤에 실제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의 노동이 뒷받침되는, 인터넷 세계로 치환되기 전의 실재에 이들 태업하는 헬로언트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이들은 이미지를 다루기보다 이미지로 현시되는 사물 자체를 힘으로써, 관절로써 다룬다. 그리고 헬로언트는 가상 세계를 빠져나와 실물화되기에 이른다.
일종의 자동인형의 계보에 속할 이 실물 로봇은 택배 상자에 달그락거리는 어떤 작은 사물로서 먼저 감지되는데, 이는 그 상수에서 상자를 뜯고 있는 남자―김호연―의 행위와 동시에 펼쳐지는 하수 앞단의 여자―임소정―가 실은 먼저 펼쳐지기 때문에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의, 그리고 이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의) 존재에 대한 혼동이 인다.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 분명한 건 이 상자가 여전히 뜯기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며, 사실은 로봇이 아니라 상자에서부터 전원이 켜져 있는 채로 작동하고 있던 일종의 홀로그램 이미지일 것이라는 것이다. 곧 상자 안의 사물이 결국에는 태블릿으로 밝혀지는 것에 따라, 이 로봇은 단단한 대상, 곧 사물의 그 자리를 이탈해, 하나의 로봇-이미지에 불과한 것이 되기에, 앞선 판단은 마치 로봇이 그 안에 들어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던 셈이다.
비인간 공-존재에 대한 예비 학습

그런데 남자는 홀로그램 이미지를 찾는 대신, 그리고 이미 그 로봇-이미지가 작동하고 있음에도 그는 상자 안 상자, 마치 마트료시카 인형의 무한 반복의 알레고리 안에 닫힌 채 자리한다. 이때 남자의 우둔한 노동과 자본주의 체계의 남용적 현상이 맞물린다. 하지만 홀로그램의 목소리는 달콤하고 환각적으로 그 위에 덧쓰인다.
이것이 말하는 바는 기술과 인간의 시차, 곧 그 발전된 기술이 우리에게 전적으로, 익숙한 것으로 실현되지 않았으며, 마치 기계 장치를, 일종의 사물을 거치지 않은 것 같은 이미지는 전적으로 환영일 뿐이라는 걸 말하는 것 아닐까. 곧 이 환영적 이미지가 실은 환영일 뿐이라는 것.
그런데 사실은 이 로봇-이미지는 홀로그램이 아닌, 태블릿 안의 그냥 가상 이미지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의 가상 세계 속이 확장되어 그들이 인간의 신체성에 근접해졌던바, 사실은 그것들은 하나의 이미지에 불과했다. 그리고 현실과 그것이 맞물릴 때, 그것은 가상 세계 자체가 현실에 가까워졌다는 판단을 ‘섣불리’ 부른다.
하지만 그것이 의도된 것이라면!? 곧 하나의 이미지를 홀로그램과 같은 현전됨으로 착각함이, 우리의 신체와 거의 같지만 사실은 이미지일 뿐인 것임을 표현하는 것의 기술적 불가능성, 그와 동시에 우리의 지각적 불가능성으로부터 직접 오는 것이라면. 그 사이에서 홀로그램을 신체로가 아니라 신체가 곧 홀로그램(에 가장 가깝다는 것임)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면. 홀로그램을 신체로서 되돌려 주고 있는 것이라면.
“당신의 입력에 반응”하고 “이름”을 불러달라는 요청을 통해, 헬로언트는 작동할 준비를 한다. 당신의 “언어”, “목소리”, “억양” 등을 동시에 입력해―사실 그것은 하나의 것이다.―, 헬로언트의 “첫 반응 패턴”을 형성하도록 요청한다. 신체성을 띠지만 아직 무정형의 오브젝트 객체는 당신에 따라, 당신과 함께 성장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것은 “당신의 동반자”로 명명된다. 하지만 그것은 앞서 본 것처럼 태업을, 파업을, 자신만의 주권을 부르짖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무엇보다도 〈〉"Hello World";〉는 이 우리 안에 들어올 실재적~가상적 어떤 신체성의 실물 경험을 예비하고 선취하는 것이다. 곧 상자를 뜯는 이 행위는 그들의 권리를 경유한 채 우리의 반성과 새로운 시작의 순간이기도 한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2026.06.20 ~ 2026.06.21 토요일 19:00 / 일요일 16:00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출연진 및 제작진 소개
안무 김호연 임정하
출연 곽유하 김호연 임소정 임정하
무대감독 김진우
사운드디자인/오퍼레이팅 김현수
조명디자인 이승호
영상디자인/홍보디자인 LIMVERT
사진/영상기록 윤관희(스튜디오 눈빛)
프로듀서 김혜연
- 1. 2023년 초연과 비교하면, 패드와 스크리닝이 세계의 절대적 차원을 메우는 지점은, 다른 세계의 고지와 그것을 포함한 세계들 간의 넘나듦으로 변환되며, 현실이 아닌 가상 세계에 초점을 맞추어 세계관을 구성하고자 한다. 여기서 극장의 물리적 크기는 작품을 결정짓는 바로 추정된다. 참조= https://www.artscene.co.kr/189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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