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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균, 임지훈, 〈욕조안에서 바깥이 더 잘보였다〉: 사물적 상상력의 세계REVIEW/Dance 2026. 7. 22. 20:54

김정균, 임지훈의 이전 공연 사진. 김정균과 임지훈이 공동으로 안무하고 출현한 〈욕조안에서 바깥이 더 잘보였다〉(이하 〈욕조〉)는 현실 세계의 장면들을 실제적으로 표현하는데, 여기에는 병풍, 돗자리, 스툴, 병풍으로 다시 이어지는 사물들에 의존한 그림 그리기가 있다. 처음 무대에 놓인 병풍을 어슬렁거리는 것으로 시작해, 그 앞의 매트에서 꾸물거리다 모래시계 모양 스툴을 타고 격자 무늬 돗자리 위를 한 칸 한 칸 이동하여 서로의 때를 밀어주는 것으로써 목욕탕 장면을 연출하다 마지막으로 눕힌 병풍의 가 쪽을 무대 안쪽에서 접어 마치 ‘욕조’ 안의 뒷모습을 연출하는 장면까지 변화되는 장면들은 다소 밋밋하거나 무미한 일상을 상상력의 공간으로 풍부하게 채우는 취미에 기원하는 듯 보인다.
〈욕조〉는 거대한 시간 질서를 그리며 거기에 예속된다기보다 다른 시간을 상상할 수 있는 일상의 작은 틈을 내고, 시간들을 뽑아 쓰며, 다양한 것으로 만든다. 이는 상상력이 발휘하는 가장 ‘거대한’ 힘이다. 욕조 안에서 안온한 일상과 친연한 관계를 구성하며 세계를 그릴 수 있으며, 그 장면 자체를 만들어 내는 게 방구석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림은 현실 ‘위’에서 그려지고 현실‘에서’ 작동한다. 그림은 현실처럼 나타나고 또 현실로서 나타난다. 총 3개의 장은 3개의 각기 다른 음악에 상응하는데, 약간의 긴장과 호기심을 부르는 타악이 주조음이 된 소리, 소극의 현장을 연출하는 조금 더 진전되고 안정된 서사를 지칭하는 음악, 그리고 무성영화에 나올 법한 노래는, 각 장면의 분화와 전개 양상에 부합한다.
거꾸로 돌려져 세워진 병풍 앞에 선 존재(김정균)에게서 조금씩 뒤로 병풍이 이동하는 와중에 다른 존재(임지훈)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병풍이 신체를 휘감듯 남자는 거기에 휘말리며, 그 가운데 둘은 ‘안’과 ‘바깥’으로 나뉘어 서로를 마주하는, 접하고 드리워지는 양면의 불가분성 아래, 하나의 이중적 분화 형식을 그려 나간다. 병풍이 회전문처럼 다시 뒤집히고 또 뒤집히며 두 존재가 맞바꾸어지는 가운데, 안과 바깥의 세계는 교환되며, 어쩌면 제목처럼 안에서 그 바깥이 더 잘 보인다, 또 느껴진다. 마침내 학과 소나무가 공존하는 병풍의 이미지가 관객을 향할 때, 이들은 병풍의 그림을 한번 펴고 그것을 감상한다.
아마 가장 인상적인 건 안으로 말린 병풍 안에 누워서 사지를 들고 버둥거리는 김정균의 모습인데, 이때 조명이 둥근 반경을 그리며 모이며 그를 품고 산란된다. 이때 임지훈은 그 경계에서 그를 지켜보는데, 그렇게 장면이 그의 눈으로 이전된다. 그 장면은 마치 김정균의 영혼이 육체를 휘감고 있는, 육체에 휘말리고 있는, 곧 영혼이 육체로부터 산란되고 있는 인상을 준다. 그처럼 김정균에게서 임지훈이 용출되고 다시 임지훈에게서 김정훈이 소급되는데, 이 착종된 관계는 병풍의 앞뒷면이 갖는 양면적 차원의 전적인 유비이다.
아마도 세 번째 장에서 그 음악적 양상의 명확함처럼 현실을 의태하는데, 가령 이 둘이 보이지 않는 풍선을 부풀려 거대하게 만들거나 또 바람을 빼 손가락 사이의 작은 조각으로 만들거나 하는 교환의 놀이를 할 때 마임에 가까워지는 것이 그러하다. 어쩌면 그것은 존재의 신비가 서로를 비추던 이전에 비해 지나치게 핍진하거나 상투적인데, 그것이 일종의 병풍 자체가 거둬진 평면의 몸부림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것과 비교하면, 이어 병풍을 모로 돌려 바닥에 눕히고, 그것을 사이에 두고 무대 앞쪽에서 뒤쪽으로 걸어가며 엄지와 검지로 집게 모양을 만들어 서로의 지지체가 되어주는 장면은, 꽤나 탁월하게 병풍의 이전 서사를, 병풍으로서 상징성이 지배하는 〈욕조〉 전체의 서사를 완성한다. 불가분성의 나뉨이 하나의 분화됨과 양면임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마치 병풍을 모로 돌려 앞으로 이전시킬 때 두 사람이 서로에 가장 근접하면서도 그리고 서로를 고스란히 닮아 있으면서도 결국 하나의 세계 안에 나뉘어 있다는 어떤 역설, 놀라움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비로소 관계는 우정과 연대의 상징성으로 응결된다. 또 이때 취해지는 손가락 모양은 임지훈이 홀로 돗자리 위에서 앉아 허공에 무언가를 그려 나갈 때 앞에 무언가를 견주어 보는 식으로 내밀고 다시 눈으로 가져갈 때 취한 두 손가락 모양과 같다. 그러니까 이 손가락 모양이 뒤늦게 해명되는 것인데, 또는 의미화되는 것인데, 이는 다른 세계의 접면을 그리는 것이면서 또한 다른 세계를 향해 기꺼이 자신을 드리우는 행위인 것이다. 곧, 후자로부터 전자가 세계 바깥을 지지하고 있었음으로 재의미화되는 것이다.
〈욕조〉는 사물을 전적으로 이용해 환경을, 세계를, 존재와의 연루됨을 만드는 차원에서 독창적이고 새롭다. 이는 고도화된 사물과의 연루됨, 사물과 존재의 등가 교환적 행위로써 지속되는 춤판 야무의 무대를 일정 정도 상기시키는데, 이 사물적 상상력, 만듦을 통한 표현의 차원은 재현적 차원에 있어 마임이라는 특정 장르와의 유사성보다는 표현의 양태 자체가 다른 재현의 가능성을, 곧 상상적이면서도 실재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더 흥미롭고 또 더 흥미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곧, 병풍이 서로의 다른 존재로의 변환과 다른 존재의 체현, 그리고 상호 지지로 연장되는 중요한 틀이자 환경, 오브제로 자리하는 것, 곧 모호하지만 풍부한 상상 가능성을 주는 그런 이미지의 활용 차원 말이다.
김민관 편집장
2026 내일을 여는 춤-개인전
안세원,조현희,김정균*임지훈,임소정
2026년 3월10,11 일 PM 7:30, 7일 PM 7:30
포스트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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