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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AFE 2026] Spark Place #1_시뮬레이션으로서 움직임REVIEW/Dance 2026. 7. 23. 14:16
김혜미, 〈제로섬 게임(Zero-sum Game)〉: 실존의 결정적 변전의 순간

김혜미, 〈제로섬 게임(Zero-sum Game)〉ⓒHanfilm[사진 제공=(사)한국현대무용협회].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은 두 남녀 사이에 의자를 주요한 매개로 두는데, 이는 두 사람 사이에 한정된 자원을 놓고 다툼이 벌어짐을 의미한다. 그 과정에서 김혜미와 김승욱은 2인무의 전형성에 기울기도 하는데, 곧 적대만이 아니라 어떤 매끄러운 연합 관계가 맺어지는 것이다.
이는 보통 남자 무용수가 여자 무용수의 물리적 지지체가 되어 두 사람이 결착되는 순간인데, 아마도 이 지점에서 가장 인상적인 찰나는 남자가 홀로 의자에 올라가 있고, 그 뒤에서 여자가 갑자기 뛰어들고, 이를 전광석화와 같이 포착해 그를 들고, 여자가 허공에 체류하는 순간 남자의 미세한 머뭇거림과 생각 따위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러한 간극과 시차에 의해 주체의 가능성이 생겨나는데, 대부분 결착된 관계는 한정된 ‘공간’에 조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연루, 또는 형식적 용인 자체로 보이는 것이다. 오로지 존재의 간극과 온전한 물리적 점유 가운데 벌어지는 심리적 간극, 그리고 적대를 친화적인 것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던 자동반사적 차원의 자의성과 일종의 사건으로서 구성된 관계의 재탐색,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응결점을 형성하는 지점이, 이 남자의 어둠 속 사유의 경로로 현상되는 것이다.
의자로써 관계의 다양한 형식-양상을 그린 작업은 근래에 아하 무브먼트의 〈36.5°C〉(2025. 서강대학교 메리홀)과 한스 판 마넨 안무의 〈캄머발레〉(2024.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와 같이 꽤 많은 사례들이 있는데1, 이는 의자가 한 명의 최소한의 공간을 표현하며, 세계를 표상하는 무대에서 압축적으로 한 사람만의 현존에 대한 표현 방식을 체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일 때 그것은 위태로움, 불균형, 제약과 부자유성 등을 가져오게 된다.
〈제로섬 게임〉은 의자를 제한된 자원으로서 사회적 함의를 가져가려 하며, 그 자체의 부정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연장되지만, 그것에 대한 대안, 혹은 변증법적 갱신 등의 차원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더군다나 상투적 차원을 거듭하는 것이 될 것인데, 앞선 순간은 주체의 실존적 전기의 변용 가능성과 함께 평범한 존재가 뒤틀리며 전도되는 약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박소정, 〈자유로부터의 도피〉: 역설의 자유

박소정, 〈자유로부터의 도피〉ⓒHanfilm[사진 제공=(사)한국현대무용협회].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무대 안쪽, 하수에서 중앙쯤에 이르는 빨간색 테이프가 둘리며 배경을 설정하는데, 이는 경계를 표지한다. 곧 두 개의 지지대가 서 있고, 양 끝점을 잇는 이 테이프는 하나의 세계를, 영역을, 풍경을 구성하고, 곧 그곳을 넘어오거나 그 안에 있거나 하는 두 가지 선택지가 어떤 의미로서 연장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목은 역설적인데, 자유가 상기시키는 바가 어떤 제약과 억압의 기초로서 감각되기 때문이다.
네 명의 퍼포머들이 입은 와이셔츠와 긴 바지는 상호 색채 대비가 크다는 점에서 공통되며, 그 색은 모두 다르다. 그리고 이러한 색의 차이는 오히려 특정한 존재에 대한 개성으로 소급되는 대신, 행위에 대한 의미 자체를 소거하거나 약화하며, 그것들이 시각적으로 구분되는 지점을 넘어 어떤 특정한 캐릭터성들로 약호화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곧 그것은 구별 자체의 목적 그 이상을 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처음 베이지색 (예외적으로) 민소매 상의와 빨간색 하의를 입은 서지나는 경계선 자체와 유사한 색상을 함축하는데, 이후 김교진이 등장하고 둘이 그 경계 안팎으로 갈라지고, 다시 그 둘이 경계 바깥으로 나가고 나서의 제갈준해의 등장은 그가 그 둘 바깥에 놓이며 시선을 갖게 됨으로써 그 둘을 배경으로 산출하게 된다.
소위 두 발로 상대를 들어 비행기를 태워 줌을 교대로 한다거나 두 쌍이 일 대 일로 맞물려 누운 채 두 발목을 상대방 두 발목에 걸어 돌리는 동작 등, 몇몇 장면은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는데, 땅과 흡착된, 바닥이 전제된 움직임들은 ‘도피’의 의미를 절대적으로 저항적인 것이 아닌 낮은 자세에서의 꾸물거림에 상응하는 어떤 것으로 바꾼다.
특히 엎드린 채 들어 올린 다리를 비틀며 하체를 고립시켜 움직이는 장면은 인상적인데, 이 역시 ‘도피’를 심리적인 기제가 아닌 상징적인 차원에서 형식화한다고 하겠다. ‘자유’는 그 안에 있는 것일까. 곧 그것이 안전과 안정을 이야기할 때, 도피는 모험의 영역에서 긍정성을 띠며 역설적 제목의 의미를 보충하며 완성하는 것일까.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자유-도피의 상관항적 관계 쌍은 모호하고도 불명료한 것으로 남는다.
강현욱, 〈감정표현실패〉: 잠재, 응축된 감정

강현욱, 〈감정표현실패〉ⓒHanfilm[사진 제공=(사)한국현대무용협회](이하 상동). 〈감정표현실패〉는 제목과 같이 감정의 적확한 전달이 실패함을, 들끓는 신체의 반향 아래 잠재된 차원으로 구성하는데, 이는 또한 무대의 등장과 퇴장의 절차가 수시로 일어나는 가운데 그때마다 어떤 감정과의 재접지되는, 재구성된 신체 양상을 드러낸다. 곧 달리 말하면, 무대를 탈바꿈의 전환적 경계로서 지정하는데, 거기에는 ‘순전한’ 몸만이 있다.
곧 다른 여타의 효과가 작용하지는 않는데, 이는 그 자신이 마법적 전환의 연극적 효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상태 변화 자체가 무대의 경계를 재구성하는 결정적 매체가 됨을 의미하며, 이 매체로서 몸은 결정적으로 그 감정이 명확하게 어떤 것이라고 예증되지 않는 차원으로 제약되며 동시에 잠재적 영역을 이루게 된다.
타격음과 함께 등장한 남자―강현욱―는 검은색 반소매와 긴 바지를 입고 있는데, 이는 그 자신이 무대에 대한 알레고리임에 의도치 않게(?) 부합한다. 두 팔을 90도 이내로 접어 그 경계를 넘어서지 않는 어떤 특정 전제조건으로서 그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도 있을 텐데, 그것은 일종의 ‘크럼프’식 움직임의 발단적 특징을 간직하는 것으로 보인다.
곧 크럼프의 가슴을 튕기거나―체스트 팝(Chest Pop)―, 팔을 휘두르거나―암 스윙(Arm Swing)―, 발을 구르는―스텀프(Stomp)―, 일련의 움직임은 모두 감정에 ‘붙들린’ 양상에서, 그 에너지를 품고, 시작 전에 있는 것과 같다. 곧 가슴을 크게 튕기기 전, 팔을 휘두르기 전, 발을 놀리기 전 동작들은 그 힘의 발전 과정 중에 단락, 전도되어, ‘실패’하는 감정의 통로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니까 이 움직임은 어떤 형식을 분명히 드러내지만, 그것은 명료한 차원 너머를 또는 이전을 상정한다. 강현욱 자신이 무대가 될 때, 그리고 그 무대 내 긴장과 힘이 그의 안에서 꿈틀거리며 완전히 열리지 않은 상태에 있을 때, 〈감정표현실패〉는 결국 가장 순수한 의미에서 무대 내 현존에 근접해 간다. 텅 빈 무대, 극장이라는 환영적 실재성을 채우는 건 하나의 온전한 신체 자체이다. 그것은 등장과 퇴장으로 인해 뒤집히며, 무대를 계속 다시 쓴다.

그리고 또한 감정은 숨이 턱 막혀 있는 상태를 표현하는데, 그것은 입을 벌린 채 고정되는 (마치 개구기를 물고 있는 것 같은) 어떤 하나의 전제적 제스처가 이후의 몸 전체를 결정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지점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곧 감정은 발화되지 않고, 오히려 수동적으로 무언가를 받아들이면서 정체되는 구간을 향하고 있으며, 그것은 완전히 바깥으로 향하는 대신에, 안에 고이고 순환하고 도는 어떤 움직임들의 공통적인 그렇지만 명확하게 구별되지는 않는 움직임 양상에서 그것이 시작되는 기원적 순간을 지정하는 듯 보인다.
등장 시 타격음, 그리고 일상 소음에서, 기관차의 단속적인 노이즈, 전자음, 쇳소리, 기계의 작동음 등으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소음의 질서 아래, 남자는 분열되거나 산만한 양상을 띠며, 이는 원활한, 유기적인 감정의 단위를 형성하는 데 저어하게 하는 요소, 또는 그것을 상징하는 요소로서 작용한다. 의사 마지막 장면인 것처럼, 마치 커튼콜을 하듯 하수 앞쪽에서 재출현해서 가슴에 손을 올리고 머무르는 동작은 꽤 인상적인데, 이때 사운드 구간은 비어 있다.
이 지연과 텅 빈 시간은 그가 곧 무대임을 여전히 드러내는 동시에, 무대의 규칙을 자신의 몸에 표지하는데, 그것은 재현적 차원이다. 하지만 그것이 뒤집히는 것 역시 납득 가능한데, 이는 결과적으로 ‘감정표현실패’의 측면과 관객과의 연루를 더 강렬하게 획책하면서 그것을 일종의 속임수로서 쉬이 벗어나는 지점(과 그것을 수용함)을 만드는 것 둘을 동시에 달성한다. 벌어진 입과 텅 빈 표정은 신음과 괴성 사이에서 어떤 특이점의 주체적 경로를 보여주는 상징적 표지이다. 그리고 이하 몸은 그것이 예측 불가능하게 옮겨 다니며 재배치되는 어떤 효과이다.
양하영, 〈A choice without a choice〉: 게임이라는 과잉 지속성

양하영, 〈A choice without a choice〉ⓒHanfilm[사진 제공=(사)한국현대무용협회](이하 상동). 〈A choice without a choice〉은 인생을 게임의 메커니즘으로 상정하는데, 카트와 옷, 행거 등의 오브제의 동원과 함께 캐릭터들은 그곳을 빠져나올 수 없이 어떤 행위를 지속해서 해야 하는 과정에 놓이게 되면서, 이들에게는 중단 없는, 필연적인 ‘선택’의 차원이 발생하게 된다. 바퀴 달린 카트와 행거 모두 일정한 이동의 경로를 그리면서 신체와 긴밀하게 결착되며, 기본적으로 행위 양식 자체를 움직임에 포함시킨다.
곧 이동형 카트 철망 안에 사람이 있고, 이를 끌고 가는 남자―고태웅―, 그리고 검은색 복면을 둘러 쓴 두 존재―양하영, 하가은―, 그리고 연두색 형광 레오타드에 하체에 원뿔대 모양, 일종의 치마의 뼈대인 파니에를 두르고 있는 마법적 양식의 존재―김수민―, 갈색 조끼 안의 반짝이 반팔이 있는 존재―윤지후―는 파편적 서사들의 총체를 이룬다. “Continue” 팻말의 등장에 이어, 동그란 패널에 기입되는 초반 카운트다운은, 이 질서 없는 계열들의 산만함과 편재성을 하나의 세계 안으로 수렴시킨다.
이후 하얀색 메리야스 상의와 팬티를 입은 남자―이두희―는 그 앞으로 나온 행거와 함께 이동하며, 거기에 걸린 옷을 입는데, 이때 행거는 일종의 스크린 공간을 형성하며, 옷을 입는 장면이 패닝되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정면을 향한 상태에서 후드를 입고 그로부터 모자를 눌러 써서 변신된 존재의 양상을 기입한다. 이어 “Tutorial”이라는 팻말이 등장하고, 앞의 후드 남자의 예시를 연장해, 존재들은 행거와 함께 등장해 거기에 걸린 옷을 계속 갈아입는 식으로 전유하는 행위를 펼친다.

이때 전자 음악의 단속적 소리, 그리고 조명을 경유해 격자무늬로 맺힌 바닥은 게임의 가상 세계를 실재화한다. “Game over” 그리고 이내 “Continue”로 이어지는 팻말들의 등장은 게임의 재시작을 제안 혹은 강요하며, 게임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여섯 명에 해당하는 여섯 개의 행거가 하수에 연이어 서며 게임의 터전이 재설정된다. 그리고 집체를 이뤄서 한 명씩 옆으로 이동하며, 그 직사각형 패널의 스크린을 채워 나간다.
마지막에 상수 앞단에서 등장하는 카트에 마네킹 옷걸이 스탠드가 꽂혀 있고, 그 위에 빨간 풍선이 얼굴을 대체하고 있다. 〈A choice without a choice〉는 다양한 개성의 캐릭터들의 현란하고 정신없는 제시 속에서, 게임의 서사에 대한 몰입 대신에, 그 게임의 장면이 지닌 블랙코미디 같은 분위기를 구성하는 데 집중하는데, 그것은 제목을 향하는바, 계속해야 한다는 어떤 절대적 규칙 혹은 영도 이외에 다른 방도가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그들은 평등하기보다 동등한 셈인데, 각각의 옷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의 여지 없는 선택 사항인 동시에 계속해서 변주되는 정체성의 차원을 보여준다. 가령 파니에를 걸친 초록색 존재가 처음 쓴 회색 털 동물 얼굴 형상의 가면은, 그 정체를 신비화하는데, 이는 후에 벗겨지며 역시 하나의 의상 차원의 순간적 변용으로 갈음되는 것이다.
〈A choice without a choice〉가 주목하는 건 의상이 어떤 캐릭터의 특정함을 상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게임 안에서 정체성은 일정하지 않다라는 것으로, 그것은 게임이 구성하는 의도치 않은(?) 강력한 효과인 셈이다.
김민관 편집장
- 1. 전자가 일상의 시간으로 접속되는 차원에서 의자가 평범한 그 자체의 기능을 가진 연극적 사물로 드러난다면, 그러니까 그 의미가 공유되는 하나의 내용이라면, 후자는 무대 내 강력한 표현을 위한 형식주의적 도구로서 그것을 제한하지만, 신분이나 계급에 대한 상징적 표지로서 작용한다. 참조 https://www.artscene.co.kr/218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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