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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재필, 〈파란 밤, 파란 그림자〉: 두꺼운 기호학적 층위에 대해…REVIEW/Performance 2026. 7. 23. 14:33

은재필, 〈 파란 밤 , 파란 그림자 〉ⓒ최형락[사진 제공=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이하 상동). 은재필의 〈파란 밤, 파란 그림자〉는 번역으로서 수행의 몫을 가져간다. 이는 중국의 경극 배우 메이란팡(梅蘭芳, Mei Lanfang)에 관한 리서치와 연구를 토대로, 『세설신어』에 나온 이야기 한 토막, 입장 전에 나눠준 길다란 작은 종이 토막에 적힌 문장―“날개를 자른 것은 단지 새를 곁에 두기 위할 뿐. 꽃을 기다리고 바람과 함께 꿈꾸는 새.”―으로부터 극을 구성한다. 남성이지만 여성만을 연기한 메이란팡의 일례는 버틀러의 젠더는 수행에 입각해 쓰이는 것이라는 젠더 수행성의 개념을 즉각 상기시킨다―이는 비근한 예로, 정은영의 ‘여성국극’ 관련 작업들을 들 수 있다.
작가에게 있어, 타자성의 존재로서 메이란팡을 경유해, 경극을 수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경극 자체가 기존의 젠더 개념을 전복하는 하나의 수행적 기호로서, 작가가 그것을 현재에 재위치시킬 때 경극은 타자성을 수용하고 매개하는 행위가 된다. 이때 퍼포머로 분하는 작가는 텅 빈 기표가 되는데, 그것은 메이란팡을, 경극을, 타자성을 실어나르는 채널이 된다―작가의 또 다른 근거인 암스테르담에서 그가 이를 행한다면, 타자성을 아시아성으로 번역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와 동시에 실질적으로 기호들은 작가의 몸에서 육화되는데, 기이하게도 작가는 그 두꺼운 표층으로, 곧 작은 기호들의 축적에, 화장의 두께에, 고착된 표정의 얼굴에 자신을 기식한다―이는 바르트가 일본을 보고 경도된 ‘실재의 기호학적 층위’이겠다.
이미지는 신체적이며, 신체는 실재적이다. 내면과 감정은 오직 그 신체의 자장에서만 머문다. 따라서 정체성은, 자아는 연기되는 것이며, 표현 아래 가로놓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완벽하게 자신을 감춘다기보다 또 다른 심부라는 건 없다는 진실을 보여주는 데 가까운데, 이때 그 표면의 막은 ‘나’를 결정짓는다. 곧 작가가 실어나르는 게 경극이라면, 경극이 실어나르는 건 또 다른 ‘나’로, 이는 역할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봉쇄한다. 메이란팡에서 은재필로 건너오며, 자신을 무대화하는 것으로써 그는 메이란팡에 이입하는 것일까, 아님 메이란팡을 이화시키는 것일까. 또는 그 둘은 어떻게 횡단할 수 있는 것일까. 1
입장 전에는 앞선 쪽지와 A3 크기의 인쇄물―핸드아웃―을 나눠주는데, 후자에는 “53개의 손 자세”와 “12가지 신체 자세”가 앞뒤로 제목/설명-이미지로 나열되어 있다―메이란팡의 연기를 유럽에 소개하기 위해 쓰인, 출판되지 않은 책을 발견해, 거기서 추출한 것이다―이 책이 출판되지 않은 채 자리하는 것처럼, 은재필은 과거로부터 유예된 미래를 선취한다. 후자가 신체 전체의 대략적인 포즈라면, 전자는 그 안에서 정교하고 미시적으로 분화되는 손으로 구성한 기호들로, 실질적인 서사의 흐름을 연결한다.

사실상 그것들을 분별하는 건, 스코어와 동작을 연결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관객은 이 특별한 ‘외국어’를 읽어낼 수 없다. 그것들을 연결지어 문장으로 구성해, 완성된 의미 단위를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한 조작이다. 따라서 그것은 순수한 표현 자체로 환원되는데, 이 역시 ‘두꺼운 표층’을 형성한다―일종의 바르바식 ‘연극인류학적 탐침’이다.
리젠젠(Li Zheng Zheng), 타오양(Tao Yang), 은재필의 순서로 무대는 축적되는데, 이 셋은 각기 다른 움직임에 토대를 둔다. 먼저 리젠젠은 눈동자의 굴림과 미소 지은 표정이 부각되는데, 마치 눈알만 하나의 부분 대상으로 떠돌아다니는 느낌이다. 이미지가 깨어지는 건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는 첫 번째 지표에 의해서다. 모든 동작은 거의 손동작 하나로 소급되는데, 이는 상징성을 갖는 자의적 기표들에 가깝다. 상형문자와 같이 그것들은 기원에 있어 특정 형상을 포착하고 있지만, 지시된 언어를 경유하지 않고서는 의미를 특정하기 어렵다.
곧 미시 조각의 분절된 단위들, 그러니까 신체 전신의 운용이 그것에 실질적인 영향을 행사하지 않는 차원에서 독립된 이 조각들은 그야말로 ‘떠돌아다니는데’, 리젠젠의 과잉된 표정은 그 자체로 정동의 효과를 낸다. 하나의 감정적 사태가 통째로 표현된다. 그것은 쉬이 뒤집어엎고 갈아치우는 것이 가능하다. 리젠젠이 살랑거리는 듯한 생물 자체, 말하고 발신하는 몸의 기율로 생동적이고 다채롭고 풍요롭다면, 타오양은 무언가를 엄호하고 봉쇄하는, 굳은 입술과 닫힌 표정에서 그것과 상반된다.
잰 발걸음의 은재필은 유일하게 그 스텝의 차원을 부각시키는데, 그 둘을 미끄러지며 사이의 차원을 기입하며, 마치 열정과 냉담 사이에서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은재필과 타오양은 이후 일부 같은 동작을 수행하지만, 그것은 같음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차이를 보여주기 위한 차원에 가깝다. 리젠젠이 능수능란한 표정-신체로 미결정된 에너지로 결정된다면, 은재필은 무심하지만 미묘한 틈새의 입술과 함께, 마치 두 팔의 기울기와 장력을 실험하는 것과 같이, 신체의 틀 자체를 자세적으로 변용하고 변주하는 면모를 보이는데, 이는 부분 조각으로서 손 동작의 차원보다 더 확장된 움직임의 형식이다.

지상의 입구를 기준으로 세로축을 거의 덮는, 90도 이상으로 꺾이며 바닥에 길게 드리워진 파란 천을 무대로 하여 〈파란 밤, 파란 그림자〉는 펼쳐지는데, 하수 윗쪽 테이블 위에 리젠젠이 “눕다”를 기입하면서 타오양이 등장하고, 타오양이 상수 아랫쪽에 다시 “앉다”를 기입하면서 은재필이 그 사이를 통과하며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는 타오양의 꿈 혹은 꿈 속의 꿈으로서 은재필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곧 리젠젠이 깨어남을 표시하면서 극은 마지막을 향해 크게 접히는데, 이는 그의 꿈틀거림으로 앞의 행위들이 소급되면서 물러남을 의미한다. 리젠젠 앞으로 스칠 듯 타오양이 잽싸게 지나가는 장면에서, 리젠젠은 황급하게 그것을 스쳐 보내며, 진짜 놀란 것 같은 표정을 취하는데, 그것은 꿈속의 지각이 현실로 이어지는 것의 놀라움을 내포하는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는 어떤 잔상이 생겨나는데, 그것은 기억의 자취를, 기억이 머문 자리를, 실재의 부재함에 대한 여운과 아쉬움을 표기하면서, 전체적으로 꿈과 현실의 지각적 혼란 상태를 지칭한다.
그렇다면 이는 선취된 짧은 문장, 곧 비유적 의미에서 독단적인 자기의 꿈속의 새를 다시 현실로 내보내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따라서 〈파란 밤, 파란 그림자〉는 일종의 변증법적 의식의 각성을 수반하는데, 그것은 새를 보고 꿈꾸고, 그 새를 가두어두다 다시 그 새의 부자연스러움을 깨닫고 새를 회복시켜 날려 보내준다는 것. 곧 꿈이었음을 깨닫는 것, 그것이 나의 꿈에 머무르지 않는 실체임을 깨닫는 것이 바로 그를 무심하게 지나간 타오양의 이미지일까―그렇다면 타오양과 은재필은 일종의 인간의 표정을 지니지 않은 비인간, 곧 새를 표현하는 것일까.
파란 천이 드리워진 것과 같이, 배경 위에는 파란 그림자로서 형상들이 일시적으로 비친다. 〈파란 밤, 파란 그림자〉는 그것이 (꿈으로서) 무대임을 드러내며, 그 꿈에 입각해 모든 것이 아름다운 것일 수도, 한갓된 것일 수도 있음을 각각 순수 표현의 층위에서, 그리고 인식론적인 서사의 격상을 통해 표현한다. 실제 경극 배우인 리젠젠이 경극을 ‘실어나른다면’ 그의 꿈에, 그의 환각에 들어서는 건 비경극 배우인 타오양과 은재필로, 그렇게 경극의 내밀한 층위로 들어선다, 또는 닫힌다. 경극으로 이전된다―경극 속 경극을 바라보는 배우에 의해 수용, 그리고 승인된다.
김민관 편집장
2026. 3. 27.(금) 19:00 / 3. 28.(토) 14:00, 18:00
서서울미술관 지상 1층 전시실 3
콘셉트, 연출: 은재필 초대작가: 타오 양 퍼포머: 리 젠젠, 타오 양, 은재필 조명: 공연화 코디네이터: 박수정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 커미션(2026)
기획•제작 이성민
제작:운영 곽소민, 김수나, 박수정, 이소영, 이지연, 임다울, 이도현
조명 공연화, 김세현, 신유미, 박지원
음향 김성욱, 이원석, 전희주
무대 이도엽, 이유성, 김지수, 김진태, 손성현
사진 최형락,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
주최 서울시립미술관
- 1. 이 글은 전체적으로 경극의 두꺼운 기호학이 은재필에게 향하는 이차적 의미를 공연 자체로써 진단하고자 하며, 이 지점에 대해서는 추후 작가의 작업을 더 보고 연구해서 다루기로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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