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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지애,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응시하는 섬들처럼〉: 매개되지 않는 실재의 몸들
    REVIEW/Performance 2026. 7. 25. 13:33

    번역, 시차적인 혹은 연대하는

     

    임지애의  〈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응시하는 섬들처럼 〉ⓒ최형락[사진 제공=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이하 상동).

    임지애의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응시하는 섬들처럼(이하 섬들처럼)은 제목과 같이, 두 출연자인, 일본과 독일에서 각각 거주하는 재일조선인 4세 조혜미와 안무가 임지애의 한국(의 춤)이라는 공통점을 하나의 결절점으로 두고, 하나의 바다를 사이로 마주하고 있는, 일본과 한국의 역사-지리적 차이로써 그 둘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의미화하는데, 역으로 일본과 한국의 부정적 관계성의 바깥으로 출현하는 실제적 차원의 의미-흔적을 특히 조혜미가 체현하고 있음에서 이것이 가능하다고 하겠다

     

    이때 조혜미가 일본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는 특수한 한국인의 지위를 선취한다면, 그것과 공통의 근거를 이루는, 곧 그것에 공감할 수 있는 임지애는 그 반대편에서 한국의 환유물이 되는데, 이로써 제목의 은유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퍼포먼스는 그와 함께 전시된 서신 교환을 토대로 하며, 이 둘이 현장에서 읽는 문서는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서로에게서 촉발되지만 그 수신자는 달라지는데, 곧 관객에게 들려준다는 의미로 재결정된다

     

    이는 번역의 절차를 더하면서 동시에 그 모두를 번역의 의미로 연장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곧 문서는 번역되어야 하며, 번역의 관점에서 서신 읽기는, 곧 퍼포먼스의 전반은 그 둘을 등가시키는 행위이다. 그리고 번역은 필연적으로 상대를 대신 읽기와 같아진다. 이는 최소한의 일본인 관객을 염두에 두고 진행해서라기보다는 또한 조혜미가 일본어가 더 편하고 능란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두 을 동등하게 두기 위해서, 그리고 서신이 애초에 한국과 일본을 교환하는 차원에서 쓰이기 때문이다

     

    문서를 읽는 동안 누워 있거나(조혜미) 엎드려 있는데(임지애), 이는 서신이 오가는 가운데 벌어지는 시차를 잠재적인/다른 몸의 일부로 즉물적으로 증명하는 것과 같아 보인다. 그러니까 이 둘은 서신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시간의 지연을 번역의 증대된 시간 안에 재기입한다. “특정한 세대를 넘어서는”, “특정한 공동체로 맺어지는이 둘의 관계는 통시적이고도 공시적으로 확장되는데, 그것이 곧 디아스포라로서 살아가는 둘의 공통점으로 소급된다.

     

    상호 함입되는 차이

     

    이 디아스포라-연대느슨하고도 긴밀한의 차원이 섬들처럼의 심층 코드를 이루며, 춤 너머의 의미로 확장된다. 서신은 춤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그 시차적 거리를 통한 만남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또한 그 거리가 개개인에게 어떤 자의식과 정체성, 그리고 환경에 대한 민감함 등을 구성하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춤에 대한 지각보다 더 기저에 자리하지만, 춤에 대해 무언가를 말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아마 각자의 몸에 새겨진 원본의 춤 / 지우려 했던 / 잊혔지만 이렇게 남아 있는 춤을 추어내는 데 있어 필요한 사전 작업일지 모른다

     

    조혜미의 북한의 조선무용과 임지애의 한국무용은 교차되다 병치되는데, “장단 안에서 호흡을 한층한층 더 쌓아 올린전자와 몸안을 일렁이내장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표현으로서 후자는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전자가 외양적, 현시적이라면, 후자는 잠재적이고 심층적이다. 이는 이들이 내는 소리의 양상에서 더 분명해지는데, 조혜미의 가락이 상대적으로 가볍고 들뜨면서도 자연스럽다면, 임지애의 추임새는 호흡을 아래로 매기는 형상이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그것은 몸을 운용하는 데 있어서도 하강-수축-내리깖~정지하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둘의 병립은 한국무용의 중핵으로서 자연스러움이라고 생각되던 부분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데, 그것은 물론 최승희의 신무용 이후 (‘’)정립된 한국무용 그 이전의 원형을 찾는 데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월북한 최승희를 따라 이후그 춤이 남과 북이 단절된 가운데, 이후 전승, 변형, 보존되는 과정에서 서로 간의 어떠한 고유한 차이를 낳게 됐는지의 차원에서만 접근 가능한 부분이다

     

    이때 한편으로 섬들처럼이 춤의 유형학적 분류의 차원과 담론의 정초 작업으로서보다는 의 차이와 고유성을 보여주면서, 그 둘이 먼 사이를 좁혀 무엇보다 서로에게 접속한다는 차원에서 서신의 지연된 시간이 아니라, 어떤 교류와 연대가 순간적으로 이행되었다는 것 그 자체가 메시지라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따라서 춤은 일정 부분 기능적으로 전용되는데, 이때 아카이브로서의 몸이 향하는 바는 춤과 몸의 직접적 상응 관계-의 차원이 아니라, 춤을 아우르는 몸의 다양성~을 향한다

     

    순간으로 아니 순간으로써 잠입하기

     

    이러한 만남의 서사는 점점 가까워지다 마침내 임지애와 조혜미가 대략 90도 직각을 이루면서 서로를 비켜난 채 응시하는 결정적 장면에서 극대화되는데, 이때 둘은 서로를 마주하지 않고 그 시선에서 비켜난 채 곁을 수호하게 된다. 이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응시하는 섬들처럼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장면 아닐까. 그러니까 가깝지만 그 응시의 엇갈림을 통해 무거운 기류가 감도는 동시에 시차와 거리를 재생산하는 점에서 말이다

     

    어쩌면 섬들처럼은 전시가 중핵을 차지하는데, 이는 퍼포먼스에 부속되는 차원에서 전시가 임시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시 안에 퍼포먼스가 일시적으로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임을 의미한다이는 오히려 전시로서의 완성됨을 더 충족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디아스포라의 고유한 정동은 조혜미에게서 더 특정하게 또한 주요하게 응결되는데, 이 지점에서 실은 번역이 더 필요하다고 하겠다조혜미의 평양을 방문하여 직접 조선무용을 배우며 쓴 기록 노트역시 그러하다

     

    특히, 2024년 고베에서 처음 둘이 만난 이후, 서신 교환의 과정에서 2025819일 조혜미가 임지애에게 보낸 서신은 그해 광복 80주년을 맞은 한국과 일본의 두 각가의 사뭇 다른 온도 차를 언급하며 시작되는데, “일제놈 일제 원수라는 교과서에 나온 말에서 모순을 느끼고, “나라 없는 망국자 뿌리 없는 "데라시내"라는 입장데라시네(deracine)’는 실향민을 뜻한다.으로서 울분을 느끼는 건 그 자체로 모순되는 일인데, 이때 조혜미에게 애국심은 양국 모두에게 부정적 기제를 만드는 관념으로 지목된다

     

    재일교포인 나 그리고 엄마가 일본인인 나”(2025.08.18)로서 조혜미는 그 둘이 서로에게서 부정당하는 상황에 대해 가슴 아파한다. , “애국심의 보르테이지가 올라가는 순간을 목격하면싸움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은 하나의 역사적 형상에 귀착되지 않으며 현재 재일조선인으로서 살아가는 일에 대한 실재적 차원을 함축한다

     

    참고로, 여기서 보르테이지(ヴォルテージ)’voltage(전압)을 일본어 가타카나로 표기한 것으로, 에너지나 열정 같은 것이 강도를 더하게 되는 현상에 대한 비유로 쓰이는 맥락이 거기에 가미되어 있는 듯 보인다. 이러한 용어 사용은 앞에서 언급된 야구대회 "고신엔"과 같이 특히 응원의 열기가 가득 찬 장소의 체현으로서 더 적절해진다.

     

    고유성의 신체에서 역사의 표상으로 

     

    결과적으로 섬들처럼은 몸의 연장선상에서 춤을 다루면서 필연적으로 그 몸이 가진 장소성과 역사성 모두를 함께 점검해야 함이 요청되는데, 곧 개인의 경험과 역사와 타자성에 관한 윤리, 그리고 예술의 표현성 자체를 겹쳐 놓아야 한다. 그리고 둘 간의 특별한 연대의 차원이 상징적 차원을 지닌 문화 교류의 메시지로 소구되며 재의미화되는 과정에서, 서로를 향해, 서로에게로 기울어지는 향방에는 어떤 공백이 자리한다

     

    그것은 그 둘의 횡단 사이에서 더 큰 섬의 간격을 나의 것으로 경유해 오기 때문이다. 섬들처럼은 둘 간의 충만한 교류 또는 연대의 윤리가 지닌 아름다움 자체를 결말로 삼지 않는다. 그것을 빈칸으로 둔다. 작업은 오히려 그 공백이 거꾸로 기입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감각하는 일에 가깝다

    따라서, 서로에 대한 서로의 바깥으로, 그러니 조금 더 넓은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인지하거나 나아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그 둘이 다시 연대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는 바닥에 설치한 철판 아래 부착되어 전시된 조혜미가 젊은 시절 함께했던 교토조선가무단의 활동 사진들에서처럼 조금 더 많은 목소리가 그 안에서 출현할 수 있음의 차원에서, 감지되는 바다

     

    이 역사-지리적 차원의 섬에 대한 정동적 차원을 부여하는 두 섬이 마주하는 바다에 대한 상상력이 전제된 작업으로, 임흥순의 항해〉―참조: https://www.artscene.co.kr/2005를 들 수 있겠다. 항해는 재일조선인을 타자로 대하는 임흥순의 의도에 따라, 역설적으로 작가라는 주체는 비주체적 형상이 되는 반면, 섬들처럼은 그 둘의 교류를 핵심에 둠으로써 그 둘의 간극과 차이를 그대로 보존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니까 퍼포먼스는 무언가를 결정짓는 작업이 아니다. 의미화되지 않는, 독해 불가능한 일부를 읽어내는 일에 가깝다. 그리고 전시는 하나의 사물로, 실재로 잠재한다. 거기에는 더 많은/풍부한/복잡한 세부의 맥락이 담겨 있는데, 그것이 곧 서신이며, 이로써 다시 한번 공연에서의 번역이라는 형식을 갈음할 수 있는데, 곧 두 실재의 몸들 중간에, 그 바깥에 어떤 언어들이 들어올 수 있는지의 차원에서 전시는, 그리고 퍼포먼스는 이른바 두 사람의 다른 언어가 아니라, 공통을 향하는 중간의 언어, 사이의 언어를 하나의 절대적인 형식으로 두는 일인 셈인 것이겠다

     

    김민관 편집장 


    렉처 퍼포먼스
    4. 3.(금) 15:00 – 16:00
    4. 4.(토) 15:00 – 16:00
    4. 5.(일) 15:00 – 16:00

    아카이빙 전시
    4. 3.(금) 11:00 – 14:00, 16:30 – 20:00
    4. 4.(토) 11:00 – 14:00, 16:30 – 20:00
    4. 5.(일) 11:00 – 14:00, 16:30 – 20:00

     

    서서울미술관 지상 1층 전시실 3

    콘셉트, 아카이빙, 안무, 공연: 임지애
    리서치 파트너, 안무, 공연: 조혜미
    리서치 파트너: 손옥주
    드라마투르지컬 서포트: 고주영
    사운드: 키안 바야니
    영상: 박재평, 임지애
    조명: 공연화
    공간 제작: 중간공간제작소(김건태)
    전시그래픽 디자인: REMOTE(강주성)
    전시 기획: 박수정, 이성민, 이지연
    아카이브 제공 및 인터뷰 협조: 조혜미, 김묘수, 교토조선가무단, 일본에서 조선무용을 사랑하는 사람들
    코커미션: 댄스 박스 고베
    리서치, 발전, 리허설 공간 지원: 캘리스 베를린 레지던시
    후원: 세존 문화재단
    사진: 우토로아트페스티벌 김지운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 커미션
    기획·제작 이성민 학예연구사
    제작·운영 곽소민, 김수나, 박수정, 이소영, 이지연, 임다울, 이도현
    조명 공연화, 김세현, 신유미, 박지원
    음향 김성욱, 이원석, 전희주
    영상 엄현수, 왕종민, 오승현
    무대 이도엽, 이유성, 김지수, 김진태, 손성현
    사진 최형락,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2026.4.4.)
    주최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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