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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출 로비 싱 Robbie Synge, 퍼포머 크리스틴 타인 Christine Thynne, 〈메커니즘〉: 생의 응결점
    REVIEW/Performance 2026. 7. 13. 14:49

    사물과의, 사물들의 틈

    연출 로비 싱 Robbie Synge, 퍼포머 크리스틴 타인 Christine Thynne, 〈메커니즘〉©Amy Sinead

    〈메커니즘〉은 사물들의 배치와 아상블라주로써 완성해 가는 퍼포먼스로서, 이는 2024년 당시 81세의 나이로 크리스틴 타인(Christine Thynne)이 처음 선보였던 독무대 공연이다. ‘메커니즘’이라는 제목 역시 사물의 작동과 변화, 그 원리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사물을 다루는, 더 정확히는 자의적인 사물들의 조합을 구성하는 타인의 행위는 사물들 사이의 틈, 행위 안의 간격이 지닌 차이를 발생시키며, 이는 역시 대체로 사물들을 소리로 변환하며, 기본적으로 행위와의 동조에 바탕을 둔, 폴리 아티스트에서 디제이 그사이에 위치하는, 칼럼 패터슨(Calum Paterson)으로부터 지지를 받는다.

     

    사물들의 운용 그 중심에 타인이 있다는 점이 실은 어떤 통제 불가능한 변수와 예측 불가능한 유격을 만들어낸다는 것인데, 이는 통제 혹은 제어의 메커니즘적 토대가 그 과정의 정밀함 너머의 과잉 혹은 결여를 수용한다는 일종의 아이러니에 사로잡힘을 의미한다. 그것이 노년의 육신이라는 상징성과 어떻게 맞물리는지, 곧 인간의 늙어감을 어떻게 긍정하며 수용하는지를 보여주는지가 아마도 〈메커니즘〉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이에 대한 더 직접적인 은유와 문학적 상관물은 타인이 루프 스테이션 기계에 녹음하여 하나의 사이클로 계속 되돌아오는, 서너 개의 동사로 연결된 행위 구문들의 나열인데, 이는 “손 끝으로 버티며 숨 쉬고 놓아주고”라는 구문으로 끝난다. 이는 처음 사다리를 접어 바닥 면까지 사다리꼴 형태를 만든 뒤 그 위에 올린 나무 패널 위에서 몸을 옆으로 뒤집는 동작의 실행에서 이를 하나하나 구분 동작으로 명기하는 그 움직임 메소드를, 조금 더 추상적으로 그리고 일정한 리듬 구문, 곧 시나 랩으로 이행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기다리고”와 “무너지고”의 행위 구문은 은유적 차원에서 추상성의 정도를 더 띠는 것처럼 보이는 단어들인데, 시간성과 몸에 대한 문학적 메타포로서 암시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이 가설한 소리 매질의 일정한 단위에 맞춰 그것을 전주로 삼고, 그것이 끝나는 시점에 하던 행위를 멈추고 (그러니까 그 시간만큼의 간격을 벌며) 다시 돌아와 빈 칸을, 곧 다음 구문의 ‘새로운’ 랩을 이어가게 되는데, 이때 그는 “말이 너무 많아”라고 탄식하며, ”안아줘“라고 하기에 이른다.

     

    불완전한, 복잡한

     

    곧 자기 반영의 그림자로서 작동되는 소리 메커니즘, 일종의 노동요 속에서 그는 옥죔과 그 내용이 가리키는 ‘숨쉬기’의 차원이 역설적으로 불가능해지는 시점에 이르게 되고, 이는 일상의 반복됨과 무한함으로부터 ‘은퇴’의 시점에 이르는 인생에 대한 비유를, 불완전하고 필멸하는 존재의 차원을 현상하는 한편, 자기 보존과 절대적 지지에 대한 목소리를 한데 투여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는 옆에 위치한 칼럼과 연관되지 않고, 더 직접적으로 자신에의 내재적 연속성을 구성하는 것이라는 점, 곧 자신의 분열된, 이중적인 목소리로서 출현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꽤 의미심장한데, 돌봄의 주체와 돌봄의 대상, 억압/통제의 메커니즘과 그에 부속되는 대상의 관계를 자기 경로 안에서 중첩시킨 것과 같기 때문이다.

     

    물론 이 소리 자체 전반을 켜고 끄는 건 칼럼으로, 타인의 탄식과 비명은 결국 칼럼의 이행으로 연결되지만, 거기에는 전반적으로 타인의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시차적인 ‘기입’이 있다. 그런데 이 숨은 상징적으로 더 큰 무의식적 차원에서 ‘수면’ 자체로 은유된다. 가장 처음, 타인의 등장 전에, 영상이 출현하는데, 여기서 타인은 자신의 부엌에서 여러 체조에 가까운 움직임을, 그리고 그것이 춤으로 번지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컷 되고, 다음 화면에서는 대용 플라스틱 반투명 말통들을 2층 계단에서 굴려 차에 실은 뒤, 나무 팔레트 판을 길에서 줍고, 조립해 물에 띄우고 강가로 나가 프라이팬으로 이 작은 배를 저어 나가게 된다.

     

    그리고 비좁은 매우 작은 섬에 다다라 배를 땅에 일부 올려 정박한 후 체조한다. 타인은 무게의 절대적 차이, 곧 공기(가 담긴 용기)로써 수면―물―을 안정적으로 제어하는데, 그것은 희극적이고도 약간의 긴장을 자아낸다. 이 물의 메타포가 무의식적으로 운항이 실패했을 때의 여분의 잠재적 차원과 결합하는 것, 곧 그가 물에 빠진 것과 같은 상태가 되는 것, 물과 공기가 합성되는 것이 바로, 이 구원을 향한 탄식을 자아내는 것이 되겠다. 따라서 메커니즘은 안정과 안전, 그리고 (숨을 쉬는 것의 차원에서) 건강 모든 것과 연관되면서, 규율, 억압, 일상의 반복됨 모두의 부정성의 기제 역시 포함하는 중의적이고 복합적인 개념이 된다.

     

    잠재적인 신체-환경

     

    우리는 타인과 같이 우리의 몸을 적절하게 제어, 운용하려면, 신체 메커니즘을 잘 작동시켜야 하며, 동시에 우리가 완벽한(?) 기계가 아니며, 또한 타인이 해부학 용어로써 자신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점진적으로 내려가며 자신의 신체를 지칭해 가는 것과 같이 복잡한 메커니즘이기도 하다는 것, 그리고 이 물통은 신체와 조응하지 않는 사물, 신체의 수치를 측정하는 사물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신체 자체에 대한 은유이기도 한데, 그것은 숨이 오고 가는 용기로서 몸, 통로를 오가는 신체를 실은 배라는 용기, 그리고 그 강물을 환유하는 채워진 물통 등, 무언가를 ‘일시적으로’ 담고 있는 신체적 사물로서 확장되어 간다.

     

    또한 영상에서 무모한 듯 잠시 체류한 섬이 다시 현실로 되돌아오지 않고, 그곳에서 멈춘다는 것에 따른, 이곳이 일종의 하나의 새로운 조건의 현실이라는 것, 불시착한 섬이라는 것은, 우리가 타자로서 체현되는 것이면서 동시에 타인에게도 이곳이 일종의 임시적 정착지로서 낯선 곳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우리와 타인이 조응되는 제3의 지점으로서 무대를 구성한다. 마치 우리는 모두 이 무대 위에서 떠 있다는 인상을 주는데, 그러니까 모종의 들뜸과 흥분, 열기 등에 입각해 무대 전체가 하나의 역동적인 메커니즘의 차원에서 라이브니스성을 띠게 된다.

     

    여기서 영상의 급격한 종결은 그 영상 자체로서 자족성, 완결성을 결코 띠지 못한다. 이 점은 다매체 간 접점을 이루는 경우에서, 하나의 매체가 희생당하면서, 오히려 그 매체 자체로는 그럴 수 없는 지점에 맞닿으면서 특이점을 맞게 되는 부분이다. 결과적으로, 무대 위의 시간을 향한, 곧 매체 간의 횡단을 위한 일종의 비약으로서 영상의 지위가 뒤집히는 건 오히려 온전한 현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이 찜찜함을 해소하는 일이 실재의 임무가 된다는 점에서 그러한데, 거꾸로 영상은 징후적이며, 따라서 정신분석적 차원의 심급을 초래하는 것이 된다.

     

    동시에 그 사물-환경과의 긴장 관계는 무대로 전이, 증폭됨으로써‘만’ 구제된다. 곧 그는 섬에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임시 정착지에서는 사물의 임시적 토대와 행위와의 유격, 행위의 불안정성, 또는 불안정성으로서 (본래적인) 행위의 성격으로 인해 앞서 언급한 지연, 시차, 여지 등의 여러 요소가 예측 불가능한 차원으로 부상한다. 삶을 여행이나 모험의 차원으로 비유하고, 불안정한 행위의 조건들이 우연한, 자의적인, 즉흥적인 사물과의 결합으로 지속됨을 보여주는 것이 된다.

     

    생의 한 순간

     

    곧 시간은 사물들처럼 덜컹거리고 있고, 장소는 표류하는 곳이며, 아상블라주의 차원에서 사물들은 결합되고 활용되며, 그 반대로 신체 역시 불안정한 결합의 일부가 되며, 사물과의 경로 안에 있게 된다. 아마도 이 지점이 〈메커니즘〉이 갖는 특이성이자 독보적인 창의성으로 봐야 할 것인데, 그것은 어떤 명확한 시간 측정, 결과의 달성에 대한 효과가 불가능한 지점에서, 또는 그것을 기각한 지점에서 무대의 시간이 펼쳐진다는 것, 곧 그것을 성사하는 데 있어 들뜸과 열기, 미숙함 혹은 과잉 등의 현장적 요소가 부각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른바 생이 신체로써 체현되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의 일상에 적합한 차원으로 우리가 발현되는 모습과 같지 않은가.

     

    사다리 중앙과 양끝 사이의 관절을 바깥으로 구부려 세우고 두꺼운 나무 자재를 위쪽 가깝게 두 다리의 좁은 틈 사이에 끼워 시소를 만들고, 상수 쪽 부분에는 물통들을 올리고, 반대편에 탑승해 평형을 이루는 것은, 조금 더 미묘한 동적 균형 상태를 이루기 위해 변주된다. 물통에 호스를 연결해, 물이 점점 차면서 조금씩 무거워지며 자연 평형을 맞출 때까지를 숨죽인 채 조용히 기다리는 것. 결국 타인이 떠오르고, 소생한다. 결과적으로 평형 직전은 묘연하다[각주:1].

     

    그것이 평형을 이룰 때의 부상함, 사다리 위에 떠 있는 나무의 형상은 곧 강 위의 배에서 강 위의 섬으로 옮겨 가는 경로를 또한 상기시킨다. 하지만 이는 그 직전의 타인의 숨죽임이 사물과 미세한 틈을 유지하고 있는 순간이 순식간에 확장된 이미지에 가깝다. 그리고 이는 처음 나무 패널 위에서 뒤척이고 뒤적이던 또는 보채던 모습의 변주이기도 하다.

    곧 누워 있음, 하나의 신체를 겨우 가눌 수 있음의 차원이 갖는 생의 한 단면, 좁아진 그러나 한정되어 시각적으로 강화된 몸, 그것은 적나라한 클로즈업인데, 우리의 일상적 차원의 보편의 몸과 노년의 어떤 특수의 몸 어느 사이에서 실은 우리는 같은 메커니즘으로 마치 다만 그 역량의 정도 차이를 갖고 조금씩 변용‘되어 갈 뿐인’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이 고요한 평형의 순간은 죽음 자체를 상정하는데, 그것은 나와 사물 사이에 어떤 힘의 작용이 가해져 효과를 미치는 순간이 멈추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곧 그 전까지의 모든 동적 간섭과 교환의 작용이 멈추는 것은 그것을 잠잠이 수용하는 타인의 반전된 모습으로 인해 가능해지며, 그에 따라 생겨나는 숙연함은 묘연하다. 어두워지고 말을 멈추고 잠자코 있는 순간은 우리가 보아왔던, 우리가 믿는 타인의 모습이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완전히 잠들기를, 숨이 멎기를 언젠가 우리는 기다리게 되는 순간을 그와 같이 맞이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겪는 마지막 죽음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니까 타인은 그 죽음의 순간을 어떤 제의의 차원으로 바꾼다. 순순히 허공에 뜨는 순간, 결과는 명확하지만 제어할 수 없으며 그 순간을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는, 균형의 상태로 현재를 바꾸기 위해 자신을 제물로 올린다, 투여한다. 하지만 이 두 번에 걸쳐 반복된 타동적 순간, 나의 제어 메커니즘이 역전되고 태업을 하고 시효를 다하는 순간을 (한 번은 보채고 다음 번은 정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그 순간은 죽음으로 증폭된다, 아니 죽음이 순간으로 승화된다.

     

    김민관 편집장

     

    2026.05.28 ~ 2026.05.30 목·금 19:30 토 15:00

    모두예술극장 

     

    [창작진]

    공동 창작 / 퍼포머 크리스틴 타인 Christine Thynne

    공동 창작 / 연출 로비 싱 Robbie Synge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 헬런 맥킨토시 Helen McIntosh

    음악 / 퍼포머 칼럼 패터슨 Calum Paterson

    조명 디자인 엠마 존스 Emma Jones

    의상 디자인 클레오 로즈 맥케이브 Cleo Rose McCabe

    프로덕션 매니저 피 프레이저 Fi Fraser

     

    [출연]

    크리스틴 타인 Christine Thynne

    칼럼 패터슨 Calum Paterson

     

    [지원 및 후원]

    크리에이티브 스코틀랜드 Creative Scotland

    메이드 인 스코틀랜드 Made in Scotland

    루미네이트 Luminate

    댄스 베이스 Dance Base

    이든 코트 Eden Court

    시티무브스 Citymoves

    1. 1. 이 묘연함, 침묵이 고정시키는 시각적 이미지의 증폭에 대해서는 다음의 풍선 장면을 참조할 수 있다. 참조=https://www.artscene.co.kr/230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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