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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더 벨트〉: 끝없는 소진을 위한 충전의 기술들REVIEW/Dance 2026. 7. 25. 13:32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더 벨트〉ⓒ진석진[사진 제공=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이하 상동).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더 벨트〉는 음악과 조명의 끊임없는 낙차 안에서 꼿꼿하고도 유유하게 대열을 이루는 일군의 선글라스 낀 무용수 집단이 보여주는 역동적 자태와 가속하는 몸짓에 대한 경이와 감응을 꾀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또는 세계의 변경이 있고, 각기 다른 몸들이 있고, 그 몸들이 일정 정도의 양식성과 구조적인 상응의 특성을 띠고 질주함을 지켜보는 작품이라 하겠다. 그것은 이른바 우스꽝스러운 숭고미라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거기에는 어떤 특별한 서사가 없으며, 단지 하나의 서사가 있다면, 이는 그것이 어떤 소진을 향해 간다는 것이다. 감응의 차원은 소진을 유예하는 지속의 힘, 아니 어쩌면 소진 자체라는 점에 있으며, 따라서 이들의 우스꽝스러운 외양은 그 소진되는 바를 가장 진정한 것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것은 숭고한 것으로 뒤집힌다.
앞서 그들 위에 ‘덮이는’ 조명과 음악은 어느 정도의 때로는 급격한 낙차를 수반하는데, 이는 환경에 대한 일종의 실험과 같은데, 그 안에서 이들은 어떤 동요 없이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전적으로 유연함으로써 그 전후의 간극이 이들의 온건한 모습으로 뒤늦게 현상될 때 그것은 존재의 분투와 승리의 서사로 쟁취되는 것과 같다. 여기서 음악과 조명은 클럽이라는 재현 공간을 만들어 내는데, 중핵은 그 속에서 음악과 조명은 하나의 휘발되는 형식들 자체라는 것이다. 곧 그 둘 다 어떤 서사의 내용적 차원도 담보하고 있지 않은 지점이, 무한한 형식들 동시에 텅 빈 형식 자체라는 것에서 실제의 클럽이라는 하나의 내용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완전히 자족적이고 닫힌 공간, 그 안에서는 모두에게 한없이 열린 공간의 은유가 자리 잡는데, 이는 사전 관객 안내에서도 자세하게, 마치 그 시간만을 향해 공연이 진행될 것 같이 주요하게 고지되듯, 파트 2의 관객 참여와 무대 난입의 시간이 실제 있는 것이다. 파트 2는 집단적인 차원의 다변화된 질서가 개별적인 차원으로 분기되는 파트 1의 후반에서의 균열적 발생의 지점이 예비한 그 힘의 차원을 순차적인 방식으로 해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여기서 어쩌면 파트 2를 위해, 커튼콜을 위시한 그 발생의 지점이 이후의 순간으로 유예되면서 또 늘어지면서 실제 소진은 소진이 아니었으며 어떤 응축과 잠재에 대한 비가시화 전략이 아니었을까에 대한 인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파트 1이 그 안에서 파트 2로 분기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은 이 파트 1을 하나의 온전한 공연의 완성으로 보는 데 주저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데, 사실상 그러한 평론가의 기대가 기각되는 지점으로부터 〈더 벨트〉의 진정한 형식적 새로움 동시에 유일한 형식적 새로움이 있다. 곧 그것은 그 대중에 대한 참여, 그 전의 그것에 이르는 고양의 점진적인 진행으로써 공연이 이미 짜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독수리 5형제와 같이 긴밀힌 그룹의 대열을 산출하다 그중 한 명의 캐릭터들로 초점이 향할 때, 이는 인트로의 등장이 뒤늦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 이제부터 열림을 의미하는 것이다.
처음 기어가는 사람에게서 초점화된 벌거벗겨진 엉덩이가 조명 아래 의상과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면서 더러움과 우스꽝스러움 사이에서 관객을 혼동케 하는데, 이 영도의 인트로는 터덜터덜 걷는 것에서 발전하며, 앰비규어스댄스 컴퍼니의 전형적인 스텝의 기원적 순간을 정초하기 위한 연극적 장면에 해당한다. 동시에 그것은 소진의 결말을 선제적 타격의 형태로써 또한 정초하는데, 이는 후반 쓰러지는 존재로부터, 자동인형적 움직임의 흐름이 탈각됨을 보여주는, 어쩌면 자동인형의 고장남을 존재의 차원으로 승화하는, 바로 그 같은 장면에 겹쳐지며 사후적으로 재조립되는 장면이라 하겠다.
이 같은 틈의 순간을 제하면, 그야말로 〈더 벨트〉는 숨 쉬지 않고 달려가는데, 앞선 집단의 역학은 개별적 극대화 혹은 헌신의 기제를 아껴두는 또는 감추는, 일종의 집단적 공여에 가까운데, 그러니까 그것은 수많은 개체들의 통합적 분기 혹은 종합적 차원의 구성이 갖는 개체들 고유의 분간할 수 없음, 그 대열의 속도를 유지하기 위한 개체‘들’의 노력이 그 집단의 역학으로 승화될 때 그것은 숭고함의 효과를 내게 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개체의 구분 불가능성은 또는 미세한 틈의 차이‘들’로의 수렴은, 실은 집단의 억압적 규범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개별 주체가 지닌 폭발적이고 극대화된 움직임을 유예하는 데, 단지 그 적당한 수준의 속도를 유지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집단의 숭고미는 최대치를 평평한 것으로 그 수위를 조정하는, 개체들(의 힘)이 아니라, 집단적 역학의 힘 자체를 개별적인 것(의 합산)이라 착각하게 하면서 동시에 봉합하는 기제에 다름없다.
그리고 이 종합적인 것은 개별적인 것의 차이를 경유할 때 극대화됨을 볼 수 있는데, 바로 그 지점에서, 파트 2로의 이행이, 그 이행을 향한 잠깐의 가속 작용이 파트 1에 내속하지 않고 적용되며, 이는 오히려 파트 2에서 더 지속되는 대신에 감산 작용으로 지속적으로 느슨해지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곧 파트 2에서 개별 주체들의 커튼콜로서 등장은 그 극점의 효과를 느슨하게 편재시키는 것에 가까운데, 관객에게 수여하고 전이하는 그 ‘캐릭터’의 대표적 움직임은 이제 매우 단순화된, 거의 율동에 가까운 수준으로 재번역되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1부의 진정한 완성에 대한 아쉬움 혹은 애착은 2부가 사실 더 큰 무엇을 진정 가져오지 않는다는 데서 유효하다. 〈더 벨트〉는 순수 쾌락주의의 극단을 예고하며 그것을 향해 전진하는 과정에서, 기술적인 재처리와 절합을 통해 그것의 소진을 다소 늦추는, 따라서 모든 것은 헐떡이지만 맹렬한 무엇으로 춤을 지시하고 정의하며, 춤 너머의 것들을 봉합한다. 오직 이행을 위한 이행으로서, 중독된 춤의 현상을 비춘다. 이때 관객 역시 소진의 변증법적 순환에 연루되고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몸의 일차원적 역학에 따라 몰입하고 떨어져 나오고 함을 거듭하게 된다.
무엇보다 〈더 벨트〉는 무대에서 관객으로 이전하면서 관객을 연루시킨다. 이때 그것을 순전히 긍정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음은 내재적으로 그 이행을 따라 가고 있음으로부터 적확하게 연장되는 것이라 할 수는 없는데, 그런 지점에서 〈더 벨트〉는 사후적으로 춤의 어떤 기원적 정초를 더 열화된 차원으로, 하락의 차원으로 갈음한다고도 할 수 있다. 곧 춤은 〈더 벨트〉에서 나타나는 것이며, 부상하는 것이며, 팔딱이는 것이다. 따라서 그 소진이 마지막을 향해 갈 때, 몸들이 더 더뎌지고 느슨해져 갈 때, 구원의 차원이 관객에게 위임되는데, 거기에 전제된 이념은 움직임의 평등이다.
사실 춤들은 일종의 공명점을 안기는 명확한 분절들의 효과이며, 그리하여 몸들이 순수 물리적 차원에서 공명하는 것이었다면, 그리하여 일종의 자동인형의 환상, 그 이상을 수여하는 것이었다면, 그것이 더 증폭된 차원으로, 그리고 더 상승된 차원으로 재질서화되는 데에는 그 바깥의 몸들이 거꾸로 요청되었던 것 아닐까. 곧 그 자동인형이 향유되는 대상으로서 모두의 참여를 끌어내는 것으로 연장되는 데에는 객석이라는 또 다른 물리적 차원의 매개가 가시화되어야 한다는 필연적인 결말이 전제되어 있지 않았을까. 그 객석으로의 연장은 무대의 소진을 분산시키는 것이기도 하고 또한 더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 지점에서 〈더 벨트〉에서 2부는 다소 과감한 선택이자 포기이다, 더 넓은 무대를 위한 그리고 더 순전하지 않은 무대를 위해서 말이다.
김민관 편집장
2025-11-06 ~ 2025-11-09
하늘극장
예술감독·안무 김보람
출연 김보람, 장경민, 이학, 박선화, 임소정, 김덕용, 이승아, 이신우
음악감독 최혜원
의상 정호진
조명 감독 황규연
음향 감독 안형록
무대 감독 박재민
촬영 진석진
그래픽 로호타입
프로듀서 이희진
프로덕션 매니저 한지현
주최 국립극장,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프로듀서그룹 도트
주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프로듀서그룹 도트
제작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프로듀서그룹 도트, 코로넷 시어터(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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