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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헤르×엠비규어스댄스컴퍼니, 〈집 속의 집: 문 밖의 문〉(서연수 안무, 강요찬 연출, 김보람 협력 안무): 절대적 경계를 기준으로 한 관계의 상대성
    REVIEW/Dance 2026. 7. 25. 13:32

    모헤르×엠비규어스댄스컴퍼니, 〈집 속의 집: 문 밖의 문〉(서연수 안무, 강요찬 연출, 김보람 협력 안무)ⓒBAKi(이하 상동).

    모헤르×엠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집 속의 집: 문 밖의 문(이하 집 속의 집)은 무대 막과 문틀 형상의 긴 높이의 직육면체 철재 구조물로써 안과 밖의 경계를 표시한다. 존재들은 그 경계에서 서로 마주하며 동시에 나뉜다. 경계는 두드리거나 열어야 하는 문 그리고 투과하는 투명한 창문의 메타포를 인장하며, 동시에 각자가 내속한 공간의 한계를 나타낸다. 처음 막이 일부 걷히며 틈이 생긴다

     

    그러니까 집 속의 집이 막 너머로, 저 너머로 이행하는 서사가 아니라, 그 막을 둘러싸고 분기된 두 영역의 영원한 간격을 확인하는 데 서사의 초점이 자리함을 환기할 필요가 있는데, 그 틈은 그것의 을 불안하면서 동시에 기대를 안기는 차원에서 들여오면서 동시에 그 밖, 가장자리에 머문 신체의 영역에서의 소외됨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기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후반부에서 다시 한번, 그리고 모든 무용수가 그 막의 안팎으로 나뉘어 투여됨을 통해 구현되는데, 곧 경계는 존재를 결정하는 장소적 표식이자 상징, 그리고 하나의 지향점이자 불가능성의 관념인 것이다

     

    분홍색 코트를 입은 존재가 구조물 안에서 정면을 응시하며 등장하는데, 그는 독립된 경계 안에서, 집과 문 안쪽에서 세계를 조망한다. 특이하게도 이 연출을 맡은 강요찬과 공동 안무가 서연수, 김보람이 모두 무대에 등장하는데, 그러니까 안이든 밖이든 하나의 경계가 만드는 두 개의 세계 그 너머에 위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일까

     

    또는 문 밖에는 문프로그램북을 참조하면, 문 바깥에는 문이 아닌, 질문이 자리한다. 곧 두 개의 문이 있는 셈인데, “() 밖의 문()”인 것이다. 이는 질문이 문에 내속되는 개념을 지시한다., 그리고 집 바깥에는 다시 집인 것과 같이 세계는 근본적으로 으로 소급되며, ‘으로 지시될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 아닐까. 그러니까 이는 두 개의 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이며, 그것은 너머가 아니라 안으로 수렴한다회전문안에 속한 각각의 존재들이다

     

    안과 밖은 상대적인 개념이며 일종의 손바닥 뒤집기 같은 교환의 놀이, 의례적 양식에 가깝다. 이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건 두 이어진 사각형 철재 프레임과 그 사이로 교직되는 철재 프레임이 하나의 구조물을 임시로 막 안에 위치하고, 그 구조물을 양쪽에서 회전시키는 가운데 그때마다 두 존재의 크고 작음의 경계가 끊임없이 번복되는/재분배되는 장면이다. 그것은 안과 바깥으로 나뉜 세계라는 (틀로써) 보여주며, 경계로부터 파생된 두 장소-존재가 하나의 세계 자체임을, 집 안에 있는 풍경임을 그 바깥에서조망할 수 있게 하는 예외적 장면이다.

     

    직육면체 구조물은 막 안에서 처음 뭉친 상태로 드러나서 이내 회전시킴으로써 분산시킨다. 이때 단면 일부들이 맞물려 자연스레 다각형 테두리 안쪽의 공간을 만들고, 그로부터 모든 존재는 검은 옷을 착용함으로써 그곳에서 태어난 존재의 양식을 갖춘다. 아마 공연에서 가장 완벽하게 하나의 안쪽을 구성하는 이 부분은 가장 은밀한 속을 내비친다. 또는 그것이야말로 집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대부분 은 그 안 자체의 행위보다는 바깥의 시선으로부터 구성된다.  

     

    집 속의 집은 이 구조물 틈에 끼어 있는 존재들, 집보다는 경계에 내속된 존재들을 다룬다. 그 경계는 안무의 형식점 분기점이기도 한데, 곧 이 분절은 모헤르 댄스컴퍼니(이하 모헤르)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이하 앰비규어스) 둘의 기이한 조합을 해소하는 실제적 방편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면의, 막 바깥이자 무대 바깥에서 아우성치는 존재들과 막 안쪽이자 무대에서 활개치는 존재들이 그러하듯, 앰비규어스와 모헤르 각각 두 다른 춤의 시간을 공간의 대비 아래 귀속시킨다. 무대 막 앞에서 일렬로 춤을 추던 앰비규어스가 야생의 재현적 분위기를 내는 음악과 함께 바깥으로 확장되어 나오며 객석에 이른다면, 모헤르는 그 안을 온전히 확장해 구가한다

     

    처음 분홍 코트의 현실적 존재가 집과 문 안에 투사되었던 것처럼 존재는 개체로 시작되고 개체로 환원된다. 집 속의 집이 집단의 무리로서 필연성을 갖는 게 아니라, 생기를 지닌 객체들의 우연한 집합에 가깝다는 건 그 움직임이 통일되기보다 시차를 두고 각자의 차원에서 진작된다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는데, 각 존재는 각자의 생기 안에 있다. 이는 하나의 문-공간에 한 명이 위치하는 것처럼 개체로 환원되는 공간, 또는 하나의 공간으로 연장되는 개인의 차원이 전제되기 때문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반면, 존재는 문을 경계로 한 안과 바깥으로 구분되는 상대적인 개념일 뿐, 그 안과 바깥의 각각의 존재가 다른 고유한 무엇으로 환원되지는 않는다. 막의 경계는 실제의 막이 걷힌 이후에도 경계로 남으며 이전된다. 가령, 막 안쪽의 존재들이 실루엣과 같이 막 바깥쪽 존재들 뒤로 산란되다 하수의 끝, 아래쪽으로부터 수평으로 조명이 가해지면서 이 환상적 차원의 장면은 현실화된다. 테크노풍 음악의 진동이 고조되면서 분홍 존재가 다시 뒤에서 등장해 전면을 관찰하는데, 이때 앰비규어스만의 단독 장면이 처음 나오는데, 그것은 그 리듬이 강조되는 쾌의 음악적 정조를 따른 것이다

     

    음악이 급강하할 때 슬로우모션으로 동작은 처리되는데, 이때 움직임은 느려지기보다 랙이 걸린것처럼 한 구간으로 정체되며, 결과적으로 강도를 포기하기보다 유예시키고 잠재시키는 차원에 가깝다. 특히 얼굴 좌우로 손을 왔다 갔다 하는 김보람의 움직임과 같이 미시 운동은 신체의 내재적인 차원에서 신체와 더 강력하게 연루된다신체 운용 범위가 줄어들면서 오히려 강도는 더 집중된다. 곧 디스코에 가까운 춤은 꼬이게 되지만 강도는 유지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위치 무대 앞쪽, 오케스트라 피트가 내려가면서 이들은 사라진다

     

    그리고 하나로 맞물린 안과 밖의 차이가 상대와 나를 다른 존재로 체현함을 그리고 사실은 그것이 허구적 관념임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장면, 앞선 상징적 차원에서 그 그림자 놀이 이후, 구조물들이 걷히면서 무대는 정사각형들이 모여 이룬 흰색 가와 나머지 중앙의 검은 정사각형의 영역으로 나뉘는데, 이는 안과 밖의 관념을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검은 모노크롬은 빈 공간이면서 낮게 깔리는 어둠의 힘 아래 깊이와 두께를 지닌 절대적인 물질의 영역을 표현하는데, 존재들은 쉬이 그것을 가로지름으로써 순전히 이미지의 영역으로 처리된다

     

    이 이미지의 공작으로 실체의 경계가 관념으로 대치됨에 따라 중심으로부터의 이탈은 손쉬어지고 결정적으로 한 번에 그 경계가 다 사라지며 해체된다. 그렇지만 마지막 경계지대, 처음의 그 막의 인장이 피드백되는데, 무대는 그 막을 기준으로 두 존재의 그룹으로 선명하게 나뉘게 되는 것이다. 단추를 채우지 않은 흰 셔츠와 검은 치마를 입고 메트로놈 소리에 맞춰 무대를 활보하며, 무대를 잠식하는, 활성화된 자유의 에너지를 보여주는 이들은, 이 보이지 않는 경계로부터 순전히 관객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 바깥의 경계에서 나머지 존재들은 암약하며 이들을 지켜보는 것으로 관객으로 연장된다

     

    검은 선글라스의 그들은 무대 위의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옷을 벗어젖히는데, 커튼콜의 토속적 리듬 아래 짧은 구음이 반복되는 기저음으로 이어지기까지, 무대 바깥으로 튀어나온 그 생명력의 존재들은 예컨대 구분의 표식을 덜어나가면서 극장의 경계를 관객으로 확장하고 중첩시킴으로써 하나의 시간으로 모두가 개방되었음을 지시한다. 이제 모든 것은 막힘 없이 하나의 장면으로 펼쳐진다. 곧 일종의 황톳빛 땅으로 육화되는 무대에서, 모두는 제각각 음악적 리듬의 고양에 따른 발구름을 토대로 한 발산의 에너지를 뽐낸다. 커튼콜로서 또 다른 무대를 예비하는 단계로서 말이다

     

    집 속의 집은 막, 구조물, 조명 등에 의해 안과 밖의 경계를 구분하는 과정 아래, 대치되는 두 존재의 양식을 두 집단의 독립적 세계로서 교차시키고, 이후 의 상대적 관계항으로 재구성하고, 이미지적 관념의 차원에서 구분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막의 경계를 관객의 시점으로 전이하여 장애물 없는 무대의 충만한 영토로 관객을 이끌어 가는 승화를 꾀한다. 이때 경계의 의미는 사후적으로 완성보다는 망각되는 데 가까운데, 그것이 단순히 구조적 차원에서의 부족적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하거나 집단무의식적 의미로 발현되는 것이라는 희미한 단서를 그것의 극복이라는 차원에서, 하나의 부정적 의미로 환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경계는 견고하다기보다 다양하거나 (그래서) 지루한 것에 가깝다. 일종의 형식으로서 이 경계의 차원은 심미적인 차원에서 다양성의 변주로 갈음되는데, 이는 애초에 이 전-의식적 차원에서 요청되는 것이며, 일종의 원형적 상징인데이 부분에서 예컨대 구조주의적 사고가 어떻게 전복될 수 있느냐의 문제의식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인데, 결말은 이를 봉합하는 데 가깝다., 어떤 시대적 맥락과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구체적으로 노정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니, 그보다는 경계 안팎이 모헤르와 엠비규어스의 두 상징적 존재의 만남으로 신화화되면서, 그 둘의 상승 작용과 두 존재에 대한 긍정의 차원으로 모든 것이 소급되는 것임을 상기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김민관 편집장 

     

    2026-03-13(금) ~ 2026-03-15(일) 시간 금 19시30분 / 토,일 17시

    CJ 토월극장

     

    출연진

    모헤르댄스컴퍼니
    정하연
    전미라
    양지수
    진솔
    김민주
    성혜경
    송예빈
    이소미
    김민희
    임소현 외 11명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김보람
    장경민
    서보권
    강다솜
    김현호
    김덕용
    김지혜
    박예진

     

    스태프
    총괄기획PD 신경아
    드라마투르그 권태현
    비주얼디렉터 무대 정승재
    조명디자이너 김철희
    음향감독 성호근
    의상디자인 쎄뚜진영진
    굿즈디자인 황석민
    무대디자인 김종석
    음악 김재덕

    포스터사진 및 포토그래퍼 BAKi
    영상 KUNST
    행정 강하라
    홍보·진행 김소연 김재은 강소연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컴퍼니매니저 한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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