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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개꿈〉(정록이 안무): 상상계적 실재의 풍경들REVIEW/Dance 2026. 7. 28. 21:16
촉각과 시각의 횡단

국립현대무용단, 〈개꿈〉(정록이 안무)ⓒ황승택[사진 제공=국립현대무용단](이하 상동). 정록이의 〈개꿈〉은 피부-살-파편의 촉각적 전이와 막-베일-구멍의 시각적 산만함의 기호학적 횡단으로 쓰이는데, 그에 따라 무대는 마치 다트판이나 융단의 하나의 균일한 바닥이 되거나 하나의 레이어―바깥을 숨기거나 차단하는―로서 이미지로 결정된다. 존재자들은 편재할 뿐인데, 이는 뒤섞이지 않음을 말한다. 또는 개별 기호로서 자족적이다, 또는 과잉되어 있다. 이것은 ‘개꿈’(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포스트모던의 낡은 비유에 가깝다.―, 반대로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강도를 주입한 것이(기에 개꿈이 가능하)다. 곧 개꿈은 은유적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환유적으로 도달하는 무엇이다.
개별 퍼포머들은 서로가 아니라, 점성의 하얀 물질, 반죽 같고 비정형의 구체이며 한 손에 제법 큼지막하게 또는 어느 정도 밀도감이 있는 물질로 잡히는, 어느 정도 구겨지지만 일정 정도 복원되는, 고무공 같은 오브제가 무대에 한 번에 투여되고 난 무대에서 그것들과 주로 관계 맺는다. 막이 1/3쯤 열리고―상수와 하수로 각각 1/3쯤 열리지 않고―, 퍼포머들이 들고 주무르는, 바람을 채운 비닐 풍선은 조명을 받아 윤택이 나는 점액질의 젤리 같다는 인상을 주는데, 이는 동시에 퍼포머들을 가린다~채운다. 거기서는 연기가 새어 나오고, 이를 더 눌러 바람을 거의 다 빼면 구겨진 표면, 곧 비닐봉지로 되돌아간다.
배경에는 로우파이의 느낌이 나는, 클라리넷으로 시작해, 콘트라베이스가 기저에 깔리면서, 점차 오르간 연주가 클라리넷을 이어받는 인트로로부터 “Dream”이 튀어나온다―1951년의 Earni Felice Quartet 연주에 The Pied Pipers가 부른 〈Dream〉이다. 낭만적이고도 한편으로는 몽환적인 노래는 그야말로 (수직적으로는) 베일에 싸여 있고, 동시에 (수평적으로는) 투박한 이 공간에 ‘배어드는’데, 곧 막 안에는 또 다른 흰 커튼이 베이지색으로 굴절되고, 이때 막 아래로 그 슬라임/점액질~비정형의 구체 오브제가 신체와 다양하게 연결-접속된다.
먼저 검은색 타이즈와 레오타드를 입은 김수인은 뒷걸음질로 하수 앞쪽에서 상수 뒤쪽으로 이행하는데, 이때 그 발디딤의 날렵하고도 경쾌하며 요란하고도 매끄러운, 의상에 따른 굴곡과 동세가 강조되는 이 점 찍기는 공에 닿는 질감을, 공을 피하는, 결정적으로 공을 ‘찍(지 않기 위해 움직이)는’ 것과 같다. 저채도-흰색 계열의 상하의와 무릎까지 오는 양말로 톤 온 톤 되는 임정하는 공을 잡고 추스르며 전반적으로 저하된 심리적 분위기로 그와 대비된다.
배설의 유아적 충동

흰색 도트가 덮인 검은색 자켓과 초록색 치마를 입은 정록이는 엉덩이를 빼고 구부정하게 몸을 숙이고 양손에 공들을 뭉치로 주워들고 또 버린다. 검은색 스판 크롭 브라 탑과 붉은 트레이닝 바지를 입은 조선재는 달려오듯 튀어나와 손등을 위쪽으로 한 채, 왼손과 오른손으로 번갈아 오르내리며 공을 던지고 잡는데, ‘앞발’의 잔망스러움이 강조된다.
특색 있는 캐릭터들 모두의 등장 이후, 조명 전체가 꺼졌다 켜지며 손바닥 뒤집기처럼 세계가 변경되고 또 철회될 수 있음을 지시한다―그 직전 스트로브 조명 효과를 통해 공을 마구 버리는/던지는 동작은 더 극단적인 사례다. 그 직전 임정하는 공을 들고 무언가를 해보려 하다 실패하는 순간으로 그와 맞물리는데, 그처럼 그는 우물쭈물한 태도로 일관된다―이는 마지막 장면의 닫히는 막, 성문이거나 입술인 그 거대한 말의 기계 이미지가 서서히 닫힘을 예기한다. 그와 달리 다른 캐릭터들―박선화를 제외하면―은 일종의 욕동 그 자체에 가까운데, 거기에는 생기와 소진되지 않는 힘이 있다.
공은 사실 일종의 똥과도 같은데―자줏빛 조명으로 공간 전체가 덮일 때 특히 그것은 ‘무겁게’ 착색된다.―, 배설의 쾌감과 함께 상징적 터부가 예외적으로 벗겨진 환상 공간에서 똥은 가지고 놀 수 있는 대상으로 ‘변경’된다. 캐릭터들, 그리고 공들이 편재하는 양상인 것처럼, 산만하게 주어지는 것처럼 음악 역시 여러 소리가 뒤섞여 있다. 그 가운데, 임정하가 주체의 심리적 불안정성에 침잠한다면, 이후 박선화는 주체의 균열과 혼동 자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둘은, 그리고 특히 박선화는 예외적이다)―그는 꿈 자체를 아마도 지각한다. 금빛 드레스를 입은 박선화는 뒤쪽에서 커튼을 매만지는데, 그것은 꿈과 현실 사이의 경계적 지각을 지시한다.
흰색 하의에 보라색 레오타드를 입고 배 께에 초록색 띠를 두른 임소정은 공들을 뭉치면서 옮겨 오는데, 바로 그가 한데 뭉친 공들을 내려놓는 하수 앞쪽의 공간에서, 그로부터 다시 분배 작용이 일어난다. 이때 그가 양손에 든 공을 상대로 건네는 동작은 그 옆으로 늘어선 다른 존재들로 전파되는데, 동시에 그가 짓는 표정과 제스처 역시 함께 전이되며, 웃음, 의기소침함, 아양 등 감정이 전달 과정에서 마구 널뛰기한다. 다시 흩어진/편재하는 존재들은 공을 들고 바닥에 뿌리면서 옆모습으로서 직립하고, 이때 신체의 이완과 긴장이 기묘하게 교환된다―공을 놓기보다 공으로부터 놓아짐을 겪는다.
가변적, 집합적

이때 조명이 왔다 갔다 하며, 일종의 착시를 불러일으키는데, 그것은 공간이 정지되어 있다라는 것이다―공간 단위의 미세한 변화의 거대함이 그 안의 세부적인 역동성을 감축한다. 음악 역시 분절되며 그처럼 지연된다. 이때 홀로 남은 박선화의 먹다-토하다와 같은, 그의 고유한 어떤 신체 결여-과잉의 상태, 불안정성의 영역이 드러난다. 반면, 이런 단독의 시간을 제하면, 생기를 가진 그 모든 신체들은 쉬이 짝을 이뤄 한 몸인 듯 움직인다. 연결-접속의 차원은 신체 분절의 가변성을 극대화하는 것으로써 가능해진다.
가령, 직립한 조선재와 뒤에서 그의 다리를 두 팔로 안은 임소정이 서로 맞물려, 조선재가 다이빙하듯 바닥으로 두 팔을 꽂을 때 임소정이 두 다리를 들어 일어나고, 다시 조선재가 두 팔을 벌리며 착지할 때 임소정이 두 다리를 바깥으로 펼치는―허공을 ‘한’ 신체가 나는 느낌을 준다.―, 얼굴이 교체되는 하나의 몸, 몸 속의 몸과 몸을 벗어나는 몸을 한데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상의를 탈의하고 뱀피 무늬 바지를 입은 정의영과 그 위에 거꾸로 올라간 하얀 레이스 칼라를 한 빨간 상의와 초록 바지와 레깅스를 한 김민주 역시 한데 얽히는데, 이때 김민주의 다리를 정의영이 잡고, 김민주가 물구나무서기를 하며 정의영의 배 안에 꽂히는 형국이 된다. 이처럼 구분 불가능한 신체의 결합 양상은 나와 타자성의 관계 맺기가 아니라, 주체의 의지가 상실된, 주체의 형해화된 혹은 타자화된 형상의 분화이며, 파편화된 신체들의 자유로운 유희로 나타난다.
신체들의 절합이 전이되는 촉각을 선사한다면, 뒤의 하얀 막에 오로라 같은 4차원 비정형 무늬를 지닌 환영이 맺힘은 지각의 결정 불가능성에 대한 이미지와도 같은데, 그것은 그 표면 자체를 깊이에 대한 환각을 부여하는 시각적 이미지를 구성한다. 이때 초록 입술 모양의 구멍이 무대에 출현하는데, 거기서 하얀 조명의 반사가 달의 반짝임처럼 인계되면서 ‘꿈’의 입구가 마련된다. 그 구멍만큼 아래로 두꺼운 매트가 깔리고, 그 위에 하얀 두건을 두르고 하얀 선글라스 모형을 착용한 단체의 이미지로, 일종의 하얀/비가시성의 발화 자체로 재등장한다.
구멍으로서 세계

이 입술-막의 체현은 전면으로 나와 반복되며, 앞선 결말에 이르는데, 가로와 세로로 각기 줄어드는 막은 일종의 대형 수동 카메라 렌즈를 손으로 조이는 것과 같이 각진 다각형의 줄어듦―곧 빛이 줄어드는데, 결과적으로 무대를 하나의 카메라로 비유한다고 볼 수 있다.―을 연상시키는데, 이는 응시의 시점이 전면을 향하며 조금씩 어둡게 세계를 바라보는 것, 그리하여 꿈에서 깨어나기보다 꿈으로 들어감을 ‘더’ 의미하게 된다―〈개꿈〉은 결코 꿈에서 관객을 놓아주지 않는다.
그 안에서 정록이는 하얀 풍선을 매단 비닐에 상체가 쌓여 있는 채 출현하는데, 그는 정면을 응시하고 무언가 말을 머금고 있으며, 풍선의 끝을 붙잡고 있다. 그러니까 그가 풍선과 함께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풍선을 경유해 (자신을 숨길 수 있고 그리하여) 그 꿈임을 선택할 수 있고, 또는 그것을 차마 놓지 못해 머뭇거림으로써 꿈에서 완전히 깨어나길 주저하는 모습은, 양가적이고 경계적인 차원에서 꿈의 이중적인 속성을 나타낸다, 꿈에서 벗어나는 건 ‘더’ 명확하게 보기이면서, ‘덜’ 풍부하게 보기라는 지점에서 말이다―앞선 노래의 마지막 가사처럼 “보이는 만큼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Things never are as bad as they seem)”이기 때문이다.
김민관 편집장
2026-04-03 ~ 2026-04-05 시간 금 7:30PM 토·일 3PM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안무 정록이음악 양현석
조안무 문형수
비주얼디렉터 전건우
출연 김민주 김수인 김현우 박선화 임소정 임정하 정록이 정의영 조선재
조명 디자인 김건영
무대 디자인 조일경
의상 디자인 최인숙
제작무대감독 이도엽
음향감독 안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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