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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애, 〈게팅옐로우〉: 감응되는 신체REVIEW/Dance 2026. 9. 7. 15:31
현상학적 의제

김다애, 〈게팅옐로우〉©옥상훈[사진=크리틱스초이스댄스페스티벌](이하 상동). 〈게팅옐로우〉가 말하는 노랗게 변하는 점진적 상태의 흐름은 일차적으로 인지적-감각적 차원에서의 상태 변화라는 주체가 느끼는 현상학적 차원을 반영한다. 이는 그 느낌으로부터 단락되는 주체의 양상으로부터 굴절되기에 이르는데, 곧 주체가 일종의 전염, 중독의 상태에 빠져듦을 의미한다. 이는 물리적 차원에서 주변의 세계가 주체를 변양함에 대해 주체가 무감각해지는 것, 또는 무의미성을 띠게 되는 것을 말하면서부터 상징적 의미로 전화한다.
〈게팅 옐로우〉에서 직립하여 걸어가는 일종의 정초로서 동작은 계속 반복되는 가장 중요한 표식인데, 이는 오른발 앞꿈치에서 왼발 뒤꿈치로 이어지는 분절적이고도 간극적인 스텝으로, 결과적으로 몸을 순간 들었다 떨어지는 낙차를 동반하여 위태로운 균열을, 우스꽝스러운 미끄러짐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데, 주체는 그럼에도 마치 고고한 포즈를 양립시킬 수 있다는 듯 순간의 격차를, 움찔거림을 무마한다.
주체는 무언가를 느낀다. 또는 느끼지 못한다. 조명 아래 직립하는 것, 바깥의 변화에 대한 무감함을 보여주기 위한 심리적 차원이 물리적으로 결정되는 것, 잘못된 관성과 함께 자아 확장을 도모하는 것, 〈게팅옐로우〉 이 안팎의 차이를 구분 짓기 위해, 굳건한 자아의 균열을 정초하기 위해 각각 물리적 대비, 그리고 신체 내재적 대비를 전제한다. 거기에는 공통적으로 정지라는 기준점이 필요하다.
중앙 3X3의 조명 아래, 서 있는 세 명은 바깥의 상태 변화와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 변화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바깥의 변화되는 움직임들은 이 셋과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 부속되는 움직임일 뿐이다. 그러니까 ‘정지’는 의미의 기호이다. 이는 음악적으로 숭고와 고양의 상태에 있는데, 부피-질량적으로 꽉 차 있다. 채워지는 건 어떤 적막과 공허이다. 뒤돈 채 둔각삼각형을 이루는 주체의 심리는 둔감하지만, 그 외부의 향상과 대비를 이루면서 약호화되어야 한다.
직립의 기호

셋의 사이는 둘의 통로가 된다. 그리고 하수에서 풍선 든 여자 둘이 나타나 줄지어 지나간다. 이때 이들이 셋의 배경을 이룬다는 점이 중요하다. 풍선의 개수가 더해지고, 이것들을 한데 이어받는 김다애는 은색 실크 슈트를 입었다. 그는 상대적으로 저채도에 저명도의 의상 색상으로 인해 독특한 존재로 식별되는데, 또한 일종의 무용 외적인, 현실적인 차원의 상징성을 입는다.
정지됨과 풍요로움의 대비는 후자의 차원이 일종의 효과로서 주어지는 것이며, 환상적인 차원의 과잉임을, 무모한 자유임을 나타낸다.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좌우로 나비 모양의 유선형 리듬을 타는 움직임 역시 반복적으로 주어지는 움직임인데, 그것은 정지된 공간 자체가 내면적 차원의 이행을 통해 하나의 유동하는 세계 자체로 피어나는 것을 현상한다.
그러니까 정지와 직립은 실존적 차원의 고립과 소외의 차원으로 독립되는 게 아니라, 노란색 자장 아래 하나의 세계를 표지하는 기호가 되는데, 은근한 움직임이 배가되는 건 세계 자체가 변경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몸의 축은 세계의 구조적 차원의 경계로 작동하는 것이다. 이는 개별 존재를 집단의 규약으로 옭아매지 않고, 개체 각자의 특유함으로 분기되는, 그렇지만 공통된 차원을 공유하는 안무로 연장된다.
의상들은 모두 상이한데, 스팽클을 데코로 한 레이어드 원피스의 김민수, 옅은 은색 슬립 원피스의 김다운, 연분홍 슬립의 이지희, 올리브그린 정장 박경희, 무엇보다 라 바야데르 무희 의상을 떠올리게 하는 오렌지색의 브라탑과 새틴 팬츠 배꼽이 드러나는 오리엔탈식 의상의 김향림 등이 클래식 발레 무용수의 어떤 전형적인 복장이면서 각기 다른 캐릭터성을 형성하고 있다면, 하얀색 슬립 탑에 연갈색 스커트를 입은 장다영과 민트 그린 볼레로 블라우스와 숏팬츠의 김민경, 그리고 김다애 역시 현대적 색깔을 띤다.
진동하는 몸

무대 자체도 의상화되어 도착하는데, 얇은 막으로 싸인 주머니들이 무대 아래로 내려와 마치 종유석처럼 매달려 있는 광경, 그리고 그 앞으로 내려오는 얇은 또 다른 천막이 그것이다. 특징적인 건 종유석이 지닌 수직성의 기호 역시 두 발의 얻디딤의 움직임이 연장된 결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때 천막은 가림막의 경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두드리며 접지되는 촉각과 청각으로 전이되는 매체가 되는데, 이는 또한 수직성과 수평성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그 전에 일자의 클래식 발레의 전형 같은 장면이 삽입되는데, 이는 이후 심층의 내면과의 대비를 끌어내기 위한 작위적인 극중극이다. 동시에 종유석 오브제가 내려오는 순간을 가리고 전이되는 순간을 중화시키기 위한 중첩된 장치이다. 다시 천막이 내려오면서 주의가 한층 더 분산되며 최종적으로 완전히 잠긴다.
이 과정에서 좌우로 마구 부산스럽게 진동하는 몸들은 두 발 끝으로 선 발레의 기본적 토대를 계속 유지함으로써 우스꽝스러워지면서 또한 급격히 불안정해진다. 성악이 섞인 앰비언트-미니멀리즘 음악―윌리엄 바신스키(William Basinski, 1958~)의 〈All These Too, I, I Love〉(2020)―이 이때 동반되는데, 흔들리는 몸이 크래클 배경음과 조응한다면, 그로부터 피어나오는 불안정한 심리는 성악의 인격에 조응한다.
곧 이 분열된 몸과 심리가 음악의 절합적 상태와 맞물린다. 또한 막을 마구 때리지만 그것을 완전히 뚫을 수는 없는데, 일종의 시도와 한계가 막에 각인되는 것이다. 막이 내려오는 순간 무대 안쪽으로 튕겨져 나가지만 막이 완전히 내려오면서 거기서 멈추는 지점이 발생한다. 이제 무용수들은 실루엣 형상으로 전치되는데, 곧 막에서 이지러진다. 풍선이 도입되고 터뜨려지는데, 이내 내려온 하나의 전등이 내는 노란 빛에 한쪽 바닥에 모인 풍선 잔해가 전이된다.
매체-구조적 분기

〈게팅옐로우〉는 결정적 표지의 반복을 통해, 발레의 기초적 동작으로 이진법적 세계의 구조로 분화시킨다. 곧 일종의 드미포인과 플렉스의 교차적 병치로써 어정쩡한 걸음을 만들어 내는 가운데, 수직적 기호의 공통된 양상을 만들어 간다. 어쩌면 〈게팅옐로우〉는 발레라는 특정한 매체를 기초적 단위로 재분절시켜 그로테스크한 몸으로부터 불안정함의 심리를 극대화하며 발레를 해체, 재구성하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곧 발레는 하나의 지지체가 되며, 기능적 차원으로 식별된다. 현대인의 실존이라는 일반적인 보통의 주제는 매체 성찰의 경로를 가정하면서 강도를 높이게 된다. 곧 심리적인 건 신체-물리적인 것, 매체적인 것에 입각해 펼쳐진다. 여기서 실존은 현상학적 탐침이라는 철학적 명제 구성의 실험에 의거하며 단독적 주체에 대한 지향점으로 고착되는 것과는 다르다.
이는 발레를 토대로 하는 이해니의 〈꼬끼-오〉(2025)가 “닭을 발레의 몸짓으로 전유하여 의태하는데, 이는 거꾸로 발레를 닭의 움직임으로써 재전유”1하는 것과 같이, 주제적 차원을 구현하면서 발레가 근본적으로 재접지되는 차원과 유사하면서 한편으로는 우리의 감각과 세계의 관계가 구성되는 지점 자체가 추상적인 철학-감각의 층위라는 점에서, 모호하고도 잠재적인 것으로 남는다.
결과적으로, 순수 매체적 실험, 그리고 근본적인 차원의 추상 명제의 재고로서 〈게팅옐로우〉는 모더니즘의 연장으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덜컹거리고 삐걱거리는 몸에서 후반 동요하고 흔들리는 것으로 변화하는 몸이, 일종의 감정적-주체적 신체로의 수렴이 아니라, 젖어 들고 변화하는 감각의 매체적 토대 자체라고 본다면 말이다.
김민관 편집장
안무 김다애
댄서
김다운, 김민경, 김민수, 김향림, 박경희, 이지희, 장다영, 김다애
특별출연 김민주
프로듀서 황수정, 무대감독 이도엽
조명디자인 김익현, 무대디자인 조일경, 음악감독 성현지
촬영작가 옥상훈
- 1. 「이해니, 〈꼬끼-오〉: 관음증적 차원에서 상연되는 도착된 미래」, 참조=https://www.artscene.co.kr/216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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