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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다 칼로의 푸른집」 리뷰 : 프리다 칼로의 고통 어린 삶의 환유적 무대
    REVIEW/Dance 2011. 10. 1. 10:09

     

    ▲  9월 29일 프레스콜 장면 ⓒ 박상윤 [사진 제공=2011 서울세계무용축제]

    커튼 위의 낙서, 이 중심 기표 없는 너저분함은 프리다 칼로의 상처/삶을 나타내는 것일까. 무대가 열리고 타악의 물결이 남미의 생래적 삶의 열정을 체감케 하는데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중심 기표로서 얼굴은 유지한 채, 그래서 자신의 다양한 표정의 얼굴로 분화와 조합을 가능케 하는 가운데 그 안에 있다. 이 짧은 (춤의 향연의) 순간은 정말 짧아 약간의 허망함과 그 자취를 남길 수밖에 없는데, 그에 대비해 붉게 물든 스크린에 검은 얼룩은 그 황홀한 젊음과 죽음으로의 하강을 대비시키며 또 조화시킨다.

    이 삶과 사고의 나락을 극단적으로 대비시키고 나서 기타 사운드는 변위된 칼로의 삶을 비추는데, 마치 몸을 전시하듯 흰색 물결 안에서 이 가벼운 기타 사운드의 증발에 조심스럽게 칼로는 유영하고 있고 현재의 순간에 비껴나 있다.

    시간은 장면들로 전환되고, 탱고가 나오기 전 칼로는 다른 배역의 칼로에게 자신을 넘겨주며 떠나며 이런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장면/순간의 서사는 시간의 흐름과 점프에 대한 허망함을 낳지만 존재에 대한 무게중심을 무대로 옮기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역사적 격변기, 저항의 물결을 군무의 신으로 표출하는데 이 삶의 시간/역사 안에 있었던 사건은 실상 그녀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지는 못 한다는 점에서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로 자리할 뿐이다.

    칼로의 초록 방이 열리면 거울을 보는 칼로의 모습이 나오는데 이 ‘거울’은 그녀 자신의 세계로의 침잠을 강하게 나타내는 반면, 그녀를 보고 싶은 매혹의 욕망을 상정시킨다.

    ‘엑토르 사모라’의 기타의 감미로운 세레나데는 남자의 자유분방하고 정열적인 면모를 상기시키는 반면 그 세계 안에 칼로는 자신의 옷매무새를 조용히 가다듬을 뿐이다.

    ▲ 9월 29일 프레스콜 장면 ⓒ 박상윤 [사진 제공=2011 서울세계무용축제]

    추상화된 양태, 그리고 음악과 음악의 접합(전환과 봉합)의 지점은 시간의 지정(역사의 사건과 칼로의 삶의 표면적인 전환점)을 보여주는 가운데 그 시간의 단절과 가로지름을 낳을 수밖에 없는데, 그 안에 칼로의 고통은 매우 낯설고도 고독하게 놓이게 된다.
    즉 이는 관객에게 이질적이고도 급작스럽게 놓이는 한편, 혼자만의 시간/고통임을 극대화시키는데, 이와 대비되는 플라멩코/탱고의 정열·기쁨·유희는 삶에 대한 긍정과 고통을 잊는 순간의 촉매로서의 춤으로써 그 짧게 주어지는 순간에 고통의 시간은 이어지는/이어질 것이다. 이는 칼로의 고통의 잊음과 기쁨의 외면화의 과정과 동시에 고통의 내재화의 측면 역시 들여다보게 한다.

    칼로의 고통은 그림을 통해 승화되는데, 자화상으로서 그림 안의 기표/대상들과 그녀가 일치하는, 한 발 더 나아가 그림 속의 대상이 그녀의 또 다른 자아로 나타나 그녀와 관계 맺는, 또한 위로하는 친구가 되는, 유아기적인 상태이자 현실의 고통 어린 삶 이전으로 돌아가는, 그리고 초월의 순간이 주어지기도 하는 한편(사슴은 숲 속에서 야생의 자유를 얻는다), 그림 속에서 절망을 표현하고 또 그림은 절망 그 자체로 분출된다.

    가령 그림은 붉은 선분으로 난도질되는데/찢기는데 이는 고통의 순간을 넘어 사고의 순간으로 균열 난 삶의 형태를 비추는 것이기도 하다.

    칼로는 무대 한 편에 위치한 모레를 손으로 감아쥐고 그것을 떨어뜨리며 보통 모레시계의 무의미한 공허한 시간의 흐름을 장면의 전환마다 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녀의 죽음은 삶의 마무리라기보다는 고통으로부터의 도피/망각/영면의 측면을 띠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기에 오히려 이는 죽음으로 분해될 삶을 돌아보며 무의식적인 위안을 얻는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상 이 고통의 과잉(곧 완전히 동화/몰입이 힘든 수용의 지점)은 고독 전체로 번져 있는 무대(어쩌면 이 무대 자체가 고독한 신체의 환유일 수 있는 공허함의 실재라면)는 비어 있음의(빈 기표)의 과잉이다. 이 비어 있음(이를 알리는 무대에 울려 퍼지는 절절한 엑토르 사모라의 실재적인 노래/목소리)은 공허함인 동시에 하나의 실재인 것.

    ▲ 9월 29일 프레스콜 장면 ⓒ 박상윤 [사진 제공=2011 서울세계무용축제]

    「프리다 칼로의 푸른집」은 칼로가 세 명의 인물로 표현됨으로써 다면적인 칼로의, 풍부한 모습을 조각한다. 이는 프리다 칼로라는 존재를 획정 짓고, 하나의 역할로의 심층적인 깊이를 상정할 수는 없다. 무대 자체의 환유 차원의 조각, 빔, 그 텅 빈 기표(표현의 과잉)가 칼로의 삶의 절망과 고통을 멀고도 강하게 드러낸다. 그러니까 칼로의 삶의 재현적인 측면이 시간 순의 배열을 통해 획득되지만, 그것들의 분배와 분할의 측면에서 매끄럽지 않은 절단면과 대비적 심상은 이 작품이 칼로의 삶의 재현, 칼로를 현전하게 하는 것을 성립시키기보다 오히려 칼로의 자취와 삶의 실존의 실재(내지는 그것의 아우라)를 보여주는 데 더 초점이 있다고 보인다.




    [공연 개요]
    제목 : 「프리다 칼로의 푸른집 Casa Azul- inspired by Frida Kahlo」 (14 회 서울세계무용축제 (SIDance 2011) 개막작 Opening Performance)
    일시 : 9 월 29 일 (목) ~30 일(금) 오후 8 시, 서강대학교 메리홀 Sogang University Mary Hall, September 29th(Thu.), 30th(Fri.), 8pm
    티켓 : R- 60,000 S-40,000 A-20,000
    팀명 : 독일 자를란드 주립 발레단-돈론 댄스 컴퍼니
    Germany Donlon Dance Company-Ballett des Saarländischen Staatstheaters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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