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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톺아보기] <아워타운>, ‘연극-보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
    REVIEW/Theater 2012. 10. 21. 15:59

    몰입의 경계

    연습 중 시작되는 공연은 빈 공간으로서 무대를 만들며 환영으로서 무대과 실재로서 극장의 경계를 허문다. 여기에 배우는 관객과 무대의 매개자로서 열린 태도를 관객에게 취한다. 실현되지 않은 무한한 잠재성만이 있는 무대 사이에서 재현은 오히려 과거를 현시하는 측면으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 앙상블의 주고받는 연기는 각 파트로 나뉜 가운데, 하나의 자장 아래 속해 있고 하모니를 넣는 긴장의 태세가 감지된다.

    재현은 과거의 역할 되기와 같으나 현실의 현시에서 그 자신의 연기는 이 현재의 인물이 됨을 의미한다. 과거의 인물을 보는 시간의 재현과 그에 대한 몰입(현존은 이 몰입에서 관객과 함께하기로 나타난다)이 가능하지만 이 몰입은 점점 그 재현의 시간이 사라져 역할-되기에서 역할 자체가 되는 묘한 혼돈의 경계가 다시 이는데, 이 재현이 다시 하나의 리허설임이 드러난다.

    이 재현의 연기는 자신의 역할 되기 이전의 그 자신 자체로서의 역할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역할과 역할-되기의 차이는 모호하다. 그리고 이 연기가 성립하게 하는 바는, 곧 처음 이들의 시선이 관객을 향해 열려 있는 이들의 초자아로서 무대감독(배우 서이숙)인 셈이다.

    전근대: 공동체 사회

    이 재현에서 현실의 측면으로 나아가며 리허설의 배우 집단은 한편 마을의 공동체로 치환되게 되는데, 공동체적 향수와 유대감이 연극에 살아 있게 된다. 귀뚜라미와 같은 풀벌레 소리가 하나의 공통 배경으로 나오고 달빛에 취한 사람들의 은은한 정서도가 체현된다. 그리고 처음 관객에게 열린 자세는 열린 장과 삶으로 바뀐다.

    이러한 무대가 주는 노스탤지어는 아늑한 도시 속 삶의 치유보다는 단순한 마취 작용을 한다. 무대는 현실과 극의 경계가 놓이는 대신 그 자체로서 과거의 사회적 재현으로 돌아온다. 무대에는 그 시간대의 현실만이 놓인다. ‘남자는 완벽해야 돼’와 같은 말로써 남자의 권위를 체현하며 그에 비해 여성은 울타리 역할로 상정되는 부분과 같이 이 시간대는 전근대적인 측면이 있다.

    나아가 운명의 질서를, 운명의 피할 수 없음을 자연의 질서로 상정하며 죽음에 대한 암시로 기능한다.

    전근대적 의식과 결혼, 분열이 없는 정서, 권위 없는 아버지, 균열 없는 의식이 지배하는 무대에서 결혼행진곡을 모두 함께 부르며 하나의 앙상블과 공동체 의식을 그 안에 교차시킨다. 이처럼 파편화되지 않은 마을의 개념은 웃음과 행복을 절정으로 이끈다.

    이러한 통합의 기제는 하나의 곳을 향한 채 서로의 서선에 묶여 있고 그것이 바로 해설자의 몫으로 통합되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해설자는 앙상블의 지휘자이자 관객과 무대의 매개자이며, 무대의 잠재력을 뭉글뭉글 피어오르게 하는 역할이 된다.

    근대로의 변화와 죽음 체험

    묘하게도 기차가 정적을 남기고 떠나며 근대가 오며 추억을 동시에 남기며 떠난다. 이제 노스탤지어라는 요소는 삶과 죽음을 시대의 전이로 변주하는 것이다.
    잠잘 시간은 우주로 돌아갈 시간으로 묘사된다. 이는 신화적인 모티브다. 사운드의 평온한 느낌이 갑자기 요란해지는 매체적 변용은 다른 감각이 현재에 유효하게 됐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바로 미래적인 느낌의 천둥보다는 비행기 소리에 가까운 무대를 뒤덮는 소음이다.

    우주적 사유는 인간 삶의 보잘것없는 면면을 드러낸다. 죽음과 삶의 유격을 가까이 둔다. 마지막으로 죽음을 맞은 에밀리(배우 정운선)는 어렸을 적의 시간을 잡아두고자 한다. 그녀는 관객에게는 인식되고 그녀의 목소리는 과거 삶에서는 들리지 않는 무엇으로, 그녀가 대답도 하기 전 이미 지나간 채 그녀 어머니와 공명을 이룬다. 그녀가 등장하며 과거의 그녀는 보이지 않고, 대신 그녀는 과거의 현실에서 보이지 않은 채 시간은 흘러간다. 삶과 죽음의 신비주의 분절과 균열적 인식에 따른 놀라움을 주는 중첩되는 종합의 시간이다.

    바깥이라는 것, 어둠은 바로 바깥이자 인식될 수 없는 경계이며 죽음의 혼돈은 여자의 현실에서 무대의 경계로 이전된다. 이 아득함은 과거라는 환영과 만질 수 없는 존재들의 현재들 사이에서 관객의 영과 육신을 분리시킨다. 관객은 죽음 체험을 하는 것이다.

    <아워 타운>은 무대가 시간이 되면 시작되는 것이 아닌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보여주는 데서부터 시작해, 존재와 역할 간의 경계를 묘연하게 하다 근대로의 시대의 전이를 삶에서 죽음으로의 전이로 교환하며 노스탤지어로서 시대를 조망하는 한편 죽음 체험을 관객이 체현하게 한다. 앞선 아득함으로서 배우들에게 비추지 않는 죽음의 모습들을 통해.

    [사진 제공=명동예술극장]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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