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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 드리밍] 우리 맛 살린 창작 뮤지컬, <운현궁 로맨스>
    REVIEW/Musical 2012. 10. 26. 09:38

    문화적 원형 : '풍류'

    처음 <운현궁 로맨스>는 자유로운 유랑극단과 운현궁의 삶이 대비되며 시작된다. 이러한 두 세계의 병치는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이른바 두 주인공 소리광대 진채선과 고종의 사랑은 질서로부터 탈주하는 유목민과 중심을 상정하는 지배체계의 수장이 만나 피어나는 매우 이질적 조합이다.

    그럼에도 이 대립적 만남은 팔팔한 진채선과 유약해 보이는 고종의 만남이어선지 대립각을 세우지 않는다. 왕이 감화되는 진채선의 매력의 근원은 바로 소리다. 곧 <운현궁 로맨스>는 이념과 정치를 떠나 풍류로서 하나가 될 수 있는 세계를 전제하고 있다.

    네 글자로 나타낸 우리 말의 맛

    계속 반복되는 중요한 어구는 다 네 자로 완성된다. 처음 춘향가의 “갈까부(보)다”는 고종의 왕의 권위를 벗어던지고 자유롭고자 하는 정서를 잘 반영한다. 이어 “소녀 따라 갈까부다”로, 소녀 곧 사랑, 길 떠나기 곧 놀이의 두 상징이 교직하며 운현궁 정취를 느끼는 ‘운현궁 로맨스’가 비로소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갈까부다’는 간다는 것도, 갈지 망설이고 있는 것으로 귀착되지만도 않는 매우 독특한 우리의 어법이다. “가야겠다!”와 그 ‘가는 곳으로의 아련한 깊이’가 동시에 전제되는 의지와 소망이 함께 담긴 단어인 셈이다.

    반면 “보고지고”는 이 사랑이 그치지 않는 마음 곧 그리움으로 깊숙이 흘러감을 의미한다. 극 중 극 형식으로 진행되는 <운현궁 로맨스>는 춘향과 몽룡의 사랑이 파국의 위기를 맞는 장면에 맞물려 흥선대원군에 걸린 채선과 고종의 사랑이 파국을 맞음을 중첩해 놓는다.

    앞선 가야금 연주에서 거문고는 무게감을 더한다. “내 사랑이야!”, 둘의 직접적 거리는 아련함을 띠며 중첩된다. 여기서 ‘보고지고’는 둘의 은밀한 기호와 간절함의 기의로 대원군의 마음을 보여준다. 이 극중극 형식으로 판소리를 하는 진채선의 목소리에 그 가사에 담긴 내용이 고종이 무대 2층의 기와 위쪽에서 맞는 우연한 상황들과 맞아 떨어진다.

    ‘갈까부다’는 다시 비극의 정서로 치환된다. 기와 위쪽에서 은밀하게 만난 둘은 옷을 벗기며 하나씩 바꿔 입어며 “쑥대머리 귀신형용”이란 ‘춘향전’의 네 글자 구문을 함께 부른다. 동시에 바꿔 입는 움직임은 사랑의 안무로 완성되지만, 이는 기약할 수 없는 하루이며 사랑의 힘없는 마지막 저항에 가깝다.

    흥선대원군이 평소 가까이 두었던 채선에게는 당장 목에 칼이 들어온 것 같은 위태로운 현실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왕은 이 권력의 중심에서 한 치도 나아갈 수 없이 자유롭지 않으며, 본디 자유로운 예술가 채선은 완전히 그 자유를 이 권력에 의해 빼앗긴 형국이다.

    이 와중에 우리말은 서양 작법처럼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고 정갈한 마음이 담기며 음악보다 더한 우리 멋과 맛을 뮤지컬화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작품의 실과 허

    주로 피아노가 기조가 된 멜로디 위주의 촘촘한 긴장 선을 타는 다른 뮤지컬의 형식 대신 넉넉한 악기들의 분포와 은은한 표면을 장식하는 연주는 기존 뮤지컬과 분명히 다른 내지는 이질적일 수 있는 새로움의 감각을 제공한다.

    흥선대원군이 “천주쟁이”들을 대거 죽인 것을 위로하는 채선의 말은 역사의 상처를 서둘러 봉합하는데, 역사 전체를 현재에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눈을 제공하지 못하는 윤리적인 문제와 동시에 그보다 밋밋하고 불필요한 구문으로 작용하는 허점을 보이는 부분이다.

    <운현궁 로맨스>는 춘향가라는 사랑의 비극적 흐름과 극복의 진취적인 옛 이야기의 원형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데 포인트가 있다 보이지만 ,비극을 단지 채선과 고종의 사랑으로만 돌리며 그 역사의 비극적 배경을 입체적으로 조망하지 못함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그 만큼의 시간과 정교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음향이 많이 약하다는 느낌인데, 아무래도 공명 장치가 크지 않은 가야금, 거문고 등이 기본적인 선율을 제공하고 다른 악기들이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데 있어 우리 식의 연주 기법의 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운드를 조금 더 확장하고 극장 전체에 잘 분배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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