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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DP] <사이>, <Knock Knock> 리뷰
    REVIEW/Dance 2019. 4. 24. 17:46

    ▲ 윤나라 안무, <Knock Knock> ⓒBAKi

    LDP 무용단의 작업들을 조금 단순하게 결정화하자면 ‘움직임들의 향연’이랄까. 많은 무용수가 대극장에 동원되며 그들은 제각각의 움직임을 추구한다. 이들은 어떤 비슷한 스타일을 간직하고 있되 자신이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춤을 춘다. 곧 비슷한 스타일이라는 느낌을 주지만 그 안에서 자율적인 방식으로 움직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듀엣이나 그룹으로 곧 확장되며 개별 움직임의 유려함들 역시 종합된다. 사실 이런 파편적인 움직임들은 순간적인 미적 표상이며 곧 사라짐이다. 이는 어떤 안무의 반복적 코드를 구성하는 단편이 아니다. 곧 끊임없는 움직임의 선형적인 나열에 가까우며, 움직임에 있어서 시간의 구조적 내러티브를 만드는 대신 어떤 스타일들이라는 느낌으로 수렴됨에 가깝다. 

    이는 어떤 주제 의식을 전제로 두고 있지만, 이는 기표와 기의의 양분된 세계를 선연하게 드러낸다. 곧 춤은 기표이며 주제의식은 기의가 된다. 곧 움직임은 파편적으로 분쇄되며 분석의 단위를 벗어나고, 이는 멋있다 또는 현란하다 등의 느낌을 안긴다. 반면 작품의 메시지는 그런 느낌의 배면에 명확하지 않은 또 다른 느낌으로 남는다. 이는 사실 작품보다는 작품 이전에 작품을 소개하는 안내 방송의 언어에서 드러나며 기의는 기표와 같이 순간적이고 불확실하다. 그리고 아마 이런 주제의식의 추상화는 극무용이 갖는 대부분의 특징(가능성이라기보다는 한계)이기도 하다. 이렇게 본다면, <사이>와 <Knock Knock>은 다른 두 안무가에 의한 작업이지만, 어떤 유사성의 측면에서 읽을 수도 있다.

    ▲ 정지윤 안무, <사이> ⓒBAKi

    <사이>는 두 사람 간의 밀착된 연결 동작들이 강조된다. 귀와 눈 등 얼굴 부위의 신체는 타인에 의해 잠식되고 이에 따라 내 움직임도 끊임없이 변경된다. 이로써 강조되는 건, 이들이 집단적인 자리가 그 사이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에 방점이 맞춰져 있듯, 둘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영역과 동시에 구성되는 내가 빈자리로 인식하는 영역이다. 나는 ‘사이’를 유영하지만, 공백에 몸을 담고 있는 셈이다. 무대 바닥에 놓인 돌들은 내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매개 요소로 사용되었다. 이보다 더 명확하게 드러나는 건 미세한 사운드 스케이프다. 

    이런 소리는 실시간으로 잡히는 것이 아닌 무대에 덧입혀지는 기표의 실험 차원에서의 미세한 보충이다. 이런 부분은 기표들의 놀이를 한층 복잡하게 하는데, 그 소리의 근원을 궁구하다가도 실은 그것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은 명확하다. 이는 실재의 증폭이 아니라 어떤 알레고리 차원의 덧입힘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이 실제, 실재와 실재 사이의 비가시적인 공백을 형상화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주제의식을 구현하는 차원이기도 할 것이다. 사운드와 움직임 간의 어떤 무대 뒤 구조물 위에 올라간 무용수들을 위의 카메라에 의해 라이브로 송출되는데, 이로써 잡히는 건 직접적인 움직임 뒤의 사이의 공백이다. 

    ▲ 윤나라 안무, <Knock Knock> ⓒBAKi

    <Knock Knock>은 무언가 경도되어 있거나 감전된 듯한 움직임들로 구성된다. 관계는 <사이>에 비해 더 직접적인데, 문이라는 더 실질적인 경계가 가시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가정하기 때문이다―<사이>에서는 가령 두 사람의 관계에서 부재와 현존이 가시화되고 집단의 관계에서도 개별자의 형상을 유지한다면, <Knock Knock>의 관계는 조금 더 형태를 구조화하는 측면에서 시도되는 데 가깝고 이는 합산된 형태에서도 그러하다(<사이>가 사회를 형상화한다면, <Knock Knock>은 그 사회 내 집단을 구체화한다). 그리고 그 문은 관객이 보는 정면으로 상정되므로 이는 직접적으로 관객을 마주하는 형태가 되며, 관객은 더 생동감 있게 이를 바라보게 된다. 그럼에도 추상적인 메시지의 거대한 원환 아래 그것들이 작동한다는 것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검은 상의로 얼굴을 가렸다 벗었다 하는 동작의 지속됨은 ‘LDP무용단’의 동작들이 갖는 끝없는 변화의 한 단편으로 수렴된다. 몸들이 쌓여 거대한 구조물을 만드는 장면이 많은데, 이는 앞선 경도의 흐름이 집단적인 질서로 소급되는 것과 연관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정지윤 안무, <사이> ⓒBAKi

    앞서 언급한 것처럼 LDP 무용단의 무대는 관객의 이목을 끄는 현란한 움직임과 시각적 시노그라피를 통해 다변화된 모습을 구성해 왔다. 그렇지만 이후 춤의 패러다임은 조금 다른 지점에서 모색될 수 있지 않을까. 가령 지금까지와 다르게 순전하게 움직임으로서의 기표들이 반복하는 원리 자체로부터 출발하거나 기표와 기의의 분절된 놀이를 거대한 세계의 인간 군상으로 환원하는 시도가 아닌 또한 주제의식을 후차적으로 춤의 언어로 수렴시키는 것이 아닌 춤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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