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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topia : [고래]>: ‘유토피아는 어떻게 가시화될 수 있는가’
    REVIEW/Dance 2019. 6. 25. 12:42

    Intro

    E-conscious Dance Project의 <Utopia : [고래]>(신희무 안무/연출)는 크게 대별되는 두 개의 신(scene)으로 구성된다. 하나의 신에서 다음 신으로 넘어감은 바닷속에서 그 바깥으로의 이동, 그리고 개체에서 사회로, 의태적 움직임에서 집단적 몸짓으로의 변화를 상정한다. 무용수들은 공간에의 분포를 통해 형태를 만들고, 이어 공간 속에서 사회적 신념 체계를 이야기한다, 또는 공간을 하나의 사회로 상정한다. 이후, 그에 대해서는 주로 움직임이라는 몸의 매체적 쓰임에 대한 묘사에 기초하기로 하자. 


    #1.

    신희무 안무/연출, E-conscious Dance Project<Utopia : [고래]>ⓒ김덕원[사진 제공=E-conscious Dance Project](이하 상동)

    인트로에서 신수연의 모습은 고래를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가령 ‘고래의 환유’. 누워서 두 팔을 양옆으로 벌리고 호흡하고 몸을 크게 뒤집는 것, 단순하게 압축한 이런 과정은 곧 바닥(표면)을, 무게를 그리고 그것을 겪는 몸을 사유하게 한다―단순히 이를 본다기보다는. 가령 몸의 반절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시키는 행위는 바닥으로의 중력 이상의 무게를 싣는 가운데 이뤄졌는데, 이는 그 무게가 바닥을 ‘지향’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이러한 뒤집음은 빨랐다기보다는 무거웠고, 따라서 거대한 기표(고래의 형상)를 상정했다. 

    가령 이러한 중앙에서의 신수연의 움직임은 하나의 자리,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커다란 공간을 구성했다. 여기서 ‘고래’의 움직임은 물리적으로 크지 않은 이곳 전체를 하나의 공간으로 위치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구체적으로 여기서의 ‘공간’은 객석을 넘어 이 공간 전체까지의 경계를 지시한다. 이는 물론 더 잘 배치된, 더 정확하고 온전하게 배치된 사운드 스케이프에 의해 이뤄질 수도 있을 것이지만, 오히려 음악 자체를 제거하고 조명 역시 끈 상황에서 몸에 대한 집중을 통해서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곧 ‘어둠을 무게로 사유하기’.


    Interchange

    이 와중에 뒤에는 네온사인 같은 유체 선분이 현란하게 오가는데, 이의 속도가 일정하고 반복되는 이미지의 무한 반복이라면―시작과 끝을 일관되게 잇는다, 그와 대조적으로 고래의 움직임은 더디고 무거웠다. 몸을 앞으로 향해 뒤집고 숨을 쉬는 고래에서 장면의 변화가 일어나는 건, 신수연이 일어서서 두 손을 위로 들고 뻗는 것에서부터이다. 고래(신수연)는 자신을 바다에 함입하며 바다의 무게를 받는 동시적인 수행으로부터 다른 양상의 움직임을 펼친다. 이와 함께 세 명의 퍼포머(박소연, 유현정, 황영원)가 결합한다. 신수연으로부터 인계받고 객석에 있다 앞으로 나온 퍼포머로부터 한 명씩 연장되며 무대와 객석을 잇는 몇 번의 자리 바꿈을 통해 하나의 무리를 이루게 된다.

    이런 ‘변화’의 기점으로부터 고래는 고래-인간이거나 인간의 모습을 띠게 된다. 그리고 ‘본다’라는 행위로 지시되는 몇 가지 일련의 다른 움직임들이 유토피아를 이념적이고 상상적인 것으로 위치시킨다. 네 퍼포머가 객석 너머로 먼 곳을 보는 시점을 취하는 것에서 세계는 이곳과 저곳으로 이분화된다. 그리고 그 유토피아의 언저리쯤에 관객은 위치하게 되는데, 이러한 경계는 앞서 고래가 구성하던 무한한 세계의 공간성과는 ‘거대한’ 차이를 이루는 것이다. 


    #2.

    신수연이 고무줄을 무대 가에서 객석 앞쪽 가에까지 끌고 오며 공간 중간을 가르는 것 이후, 네 명은 고무줄과 함께 각기 다른, 곧 개성적인 움직임들을 선사한다. 고무줄이라는 시각적 지표를 몸으로부터 연장하며, 또는 그 반대로 고무줄을 몸으로 수렴시키며. 여기서 고무줄은 또 다른, 또 하나의 신체인 셈인데, 그것은 몸과의 장력을, 몸이 끼치는 영향의 가시적인 상태의 달라짐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어떤 순간에 신수연과 다른 세 퍼포머는 그중 한 명이 신수연을 내치면서 신수연은 그들과 분리되고 ‘현실’로부터 분리된다고도 볼 수 있는데(급작스럽게 펼쳐지는 장면으로, 사실 극적 개연성의 측면에서 매끄럽지는 않은 부분이다), 이후 신수연은 다시 중앙에 앉아서 고무줄을 한 손에 끼고 얼굴과 머리 사이를 이동한다. 여기서 고무줄의 세계 내 경계는 스스로의 몸에 체현되는 상태로 전이된 것으로 봐야 할까. 오히려 이는 또 다른 움직임의 가능성에 닿아 있는데, 이는 바닥과 위치적으로 가깝지만 고래로의 형태적 회귀를 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그러한 형태는 불분명하게 이 작업 안에 남아 있다.


    P.S. 

    결과적으로 이 안에서 음악은 다변화되고 있고, 이는 움직임을 초과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은 보통 안무에서 비가시적인 측면에서의 어떤 형태와 몸짓들을 상정한다. 그것은 ‘변화’ 이후 주어진, ‘보는 것’에 대한 우묵한 말하기, 곧 이 작품에서 한 음절씩 반복되며 말함으로써 문법으로부터 또 글로부터 벗어나기의 측면에서 시도되는 영어로 된 음성[나(“My”)에서 우리(”We”)로 바뀌며 본다(“see”)는 단어들을 포함한 반복]에서조차 기의가 아닌 기표의 차원을 띤다. 

    그러므로 음악은 일반적인 공연에서 움직임을 선취하고 움직임을 다르게 또한 말한다. 그러니 오히려 이 음악들은 그 수많은 움직임의 가능성들을, 이 실재하는 움직임들을 경계 짓거나 그로부터 어긋나는 지점에 있지 않은가. 그런 부분에서 이 공연 역시도 음악적 초과 상태로부터 나아가 바닷속을 상상하는 것, 그리고 텅 빈 몸을, 또 실재하는 몸을 ‘듣기’ 차원에서 위치시키는 또 다른 음악적 가능성을 또한 상상할 수 있지 않겠는가.

    #0.

    유토피아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충분치 않다. 유토피아는 현실에 대한 다른 가능성에서 연유하거나 유토피아와 거리가 먼 현실에 대한 반동 차원에서 생겨나는 알레고리라는 지점에서 보면 그렇다. 평화문화진지라는 남북전쟁의 역사적 현장과 맞물려 <Utopia : [고래]>가 사용한 고무줄에서 상징되는 ‘경계’는(평화문화진지 2기 입주작가 결과보고전의 일환으로 이 공연 역시 열리는 가운데, 그 전체 제목인 ‘<구심>과 <원심>’ 역시 가깝고 먼 상상적 경계를 체현하고 있다), DMZ(비무장지대)에서처럼 물리적이고 실재적이면서(실제 이곳의 출입은 엄격하게 통제된다) 동시에 이념적 차원에서 도달 (불)가능한 지점[남과 북의 휴전(선)에서 연장된 분단을 상징한다. 그것은 또한 통일을 상상하게 한다]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실은 인간의 상상력으로 수렴되는 유토피아와 접점을 맺는다. 

    신체의 그 바깥 사물인 고무줄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 자체로 신체로서의 특징을 갖는다. 이는 신체 자체와 그것이 관계를 맺을 때 가능한데, 반대로 고무줄과 관계 맺지 않을 때 역시 신체는 그것과 관계 맺음에 대한 목적 지향성을 잠재적으로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신체와 고무줄의 관계는 간극(‘떨어져 있음’)과 애착(‘접촉하고자 하는 지향’)에 근거한다. 유토피아가 상상 가능한 차원에서 현실과 완전히 먼 세계가 아니라는 점을 전제한다면, 그리고 공연에서의 마지막 바라보기가 현실(관객)을 너머(거쳐) 바라본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Utopia : [고래]>에서 신체가 맺는 고무줄과의 관계는 유토피아(라는 이념 또는 지향)의 모습이 그 자체로 드러날 수 있기보다는 현실이라는 매개를 통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유토피아를 스펙터클로 대상화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마주하는 현실의 관점을 가시화한다는 점에서 <Utopia : [고래]>는 유토피아를 온전하게 매개한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말해 두 개의 신으로 구별되는 이 작업에서, 고래는 유토피아를 또는 유토피아는 고래를 어떻게 매개하는가는 의문으로 또는 과제로 남는다. 

    [공연 개요]

    공연명: Utopia : [고래] 

    공연 일시: 2019년 05월 31일 (FRI) 8PM, 06월 01일 (SAT) 5PM

    공연 장소: 평화문화진지 1동 다목적공연장(서울특별시 도봉구 마들로 932)

    주최/후원: 서울시, 도봉문화재단, 평화문화진지

    주관: E-conscious Dance Project

    안무/연출: 신희무

    기획: 신수연

    출연: 박소연, 신수연, 유현정, 황영원

    디자인: 정주희

    기록: 김덕원

    *2019 E-conscious Dance Project 신작, 평화문화진지 2기 입주작가 결과보고전 발표작

    공연 소개:

    #1 선 하나의 차이, 유토피아 [Utopia]  

     유토피아란, 현실적으로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 또는 이상향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는 유토피아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어쩌면 한 끗 차이, 선 하나의 차이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2 유토피아와 고래

     유토피아는 환상의 공간이다. 고래는 실재 하지만 환상 속의 동물이 되기도 한다. 작품 속 무용수들은 유토피아를 유영하는 고래가 된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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